10월, 당신의 추천 도서는?
책벌레
내가 책읽기에 취미를 붙였던 게 언제였을까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어렸을 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난 영재도 아니었고, 수재도 아니었고, 그냥 유약하고 나약한 아이었음에 틀림없다. 초등학교 때 난 공부도 정말 못했고, 처음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느꼈던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4과목 * 25문항 = 100문항의 시험에서 4개 틀렸었다). 5학년 때는 다시 공부를 못한(다고 성적표가 나왔)고, 6학년 때 처음으로 속셈학원을 다니면서 반에서 1등을 해보면서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늦게 트였음에는 분명하다.
책 읽기에 취미를 붙인 건 확실히 6학년~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반에서 어떤 놈이 1년에 100권의 책을 읽는 다는 말에 발끈했었고,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책 대여점(지금은 확실히 만화 대여점으로 '업종전환'한 것 같지만)에 들락날락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중1때는 주로 에세이(<일본은 없다>와 <일본은 있다>를 번갈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를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또 로빈 쿡의 SF 소설,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들(이상하게 <개미>는 읽지 않았다.)도 많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나 역시 그 당시 가장 많이 본 책은 이문열 평역 <삼국지>였다.
중2때부터 관심을 갖게 된건 '역사소설'이었는데, 잡다한 책들 참 많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면 <광개토대제>라는 소설에 이상하게 꽂혀서 다 읽었던 게 생각이 난다.
지금의 나를 책에게 미친 인간으로 바꿔준 건, 오로지 한 녀석의 힘이었다. SJS라는 녀석. 간단하게 쉽게 이야기하자면 전교 1등이었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인문학적 소양이 뛰어나고 어디에서나 논변을 해대는 녀석이었다. 나에게 그 녀석은 벽초 홍명회의 <임꺽정> 시리즈를 빌려주곤 했었다. 난 그의 집의 서재를 보면서, 빈약한 우리집의 책꽂이를 보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고, 장서욕심을 키우게 되었고, 그 녀석이 말하는 책들은 나도 다 읽으리라 하고 생각을 했다.
덕분에, 난 책을 안읽으면 불안해지는 '활자중독' 중증 상태로 산지 10년이 넘어가고 있고, 학교를 다닐 때도 시험 기간에 가장 짜증나는 것이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이 될 정도로 책에 대한 '욕구'는 커져만 갔다.
처음에는 시샘이었으나, 나중에는 독서가 주는 힘에 대해서 느끼고, 또한 책냄새 자체를 좋아하는 지경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독서가보다는 '탐서가' 혹은 '장서가' 밖에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제대만이 살길이다 -_-;)
책벌레, 학문을 횡단하다
이정우의 <탐독>을 읽었다.
자신의 책 읽기의 여정, 공부했던 여정을 기록하고 그것들이 향하는 바를 집약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로 보인다. 왜냐면, 그런 집약의 가능 자체가 의미하는 것이 곧 자신의 공부가 어느 정도 지도와 경로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책 읽기의 여정이라는 것은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지만, 바로 '가로지르기' 그 자체이다. 후기 구조주의의 여러가지 사유들을 전개하고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그의 여러가지 지적 편력들이 그의 그러한 '가로지르기'를 가능하게 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문학과 더불어(chapter.1)"라는 장에서는 그가 청소년기 읽었던 문학작품 들을 다시금 현재의 시점에서 읽어보면서 당시의 받았던 인상들과 지금의 사유와 함께 이어본다.
그 다음장인 "과학의 세계(chapter.2)"는 그의 대학에서 관심 가졌던 자연과학의 분야들(물리학, 열역학, 기하학...)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인 "철학마을 가로지르기(chapter. 3)"에서는 그런 방향들을 통해서 얻어낸 철학적 방향들(과학철학 -> 존재론적 사유 -> 들뢰즈와의 접속)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문학책들을 읽으면서 인간과 인생을 깊숙이 반추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후 과학책들을 읽으면서 물질, 생명, 문화를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후 철학책들을 읽으면서 다양한 지식들을 창조적으로 종합하는 사유 능력을 배웠다. 그 많은 책들이 내 마음에 심어준 사유들이 없었다면 삶이란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을까."(p.381)
나도 이런 공부의 여정을 계속하고 싶다, 이 책을 내가 읽으면서 치명적이었던 문제는 바로 내가 자연과학에 대해서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공통과학도 겨우 마친 내게 그의 현대 과학에 대한 논의들은 사실 '딴 세상 이야기' 혹은 암호와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어떠한 깊은 이해도 성공하지 못했고, 더 많은 과학 교양서를 읽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했다. 덕분에 지금은 '과학사' 책들을 잡고 늘어지고 있다.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 )
물론 이정우의 글은 평이한데, 문제는 그 맥락 전체를 이해할 '자연과학'적 베이스가 내게 전무하다는 게 난점 이었던 거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의 책 좋아하는 '책벌레 근성'에 대해서 깊이 공감했었지만, 내가 못알아드는 이야기(특히 점입가경이라고 마지막의 현대철학에 대한 사유는 참 난해한 부분들이 있는데, 들뢰즈와 푸코의 이야기야 뭐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사이사이의 베르그송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실 거의 해석하기 어려웠다. 이러니 내가 들뢰즈에 대해서 누구에게 정확한 위상을 설명할 수 없는 거겠지? 푸코가 조금 낫겠군)에 대해선 사실 어느 정도 '여지'를 두고 차후에 다시금 살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2번 읽어 볼만 한 책으로 사료되고, 나의 책읽기 근성을 살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요새 한참 '교양', '학습법', '학문의 길' 등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갖고 몰입하고 있는 데, 이정우의 '탐독'역시 다시금 "횡단성"의 사유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준 점에서 도움이 되고, 그의 방대한 reference가 나를 긴장시킨다는 점에서 좋았다.
자주 하는 말. "공부할 건 미어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