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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쓴 마르크스의 사상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정진상 외 옮김 / 북막스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대해서 특별히 조망하는 이유는.. 이 책이 대다수의 '맑스주의'를 공부하고자 하는 대학의 사회과학학회들에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상당히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위험함을 제공한다..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의 한국현대사 인식이 300만 대학인들의 지적 수준을 초등학생 이하로 만들고 있듯이..) 모든 '간편한' 해설서의 문제점이 그것이지만,, 편리하고 이해하기 쉬운 내용의 이면에는 작의적인 해설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목차로 구성된다.
1. 혁명가의 생애
2. 맑스 이전의 사회주의
3. 리카르도, 헤겔, 포에르바흐
4. 맑스의 방법
5. 역사와 계급투쟁
6. 자본주의
7. 노동자 권력
8. 맑스와 오늘의 세계
이 책의 모든 논의는 맑스와, 엥겔스, 레닌, 그리고 뜨로츠끼의 원전만을 참고한다.. (아도르노와 그람시의 이야기가 한 두번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참고할 서적으로 루카치의 논의가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모든 책의 배치는 '맑스'와 '엥겔스'의 논의를 기반으로, '공산주의를 구성하는 원리'에 대해서만 보태는 수준에서 이루어 지며,,
대체로 모든 이론의 편제는 '공식화 된' 뜨로츠끼주의의 교리와 orthodox 맑스주의의 논법을 따라가는 선에서 해결이 되고 있으며,, Chapter 7과 8의 뜨로츠끼주의적 해석은 정말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당의 관료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도 그 근본적인 문제의 폐절을 하는 방법론은 없이 단순히 당의 '순수성'의 원칙만 제기 하며, 맑스주의의 모든 문제가 '잘못된 당의 변혁 노선'에만 국한시키는 협애한 문제인식을 갖고 있다.
스탈린식 일국사회주의에 대한 대안적 모델로 '국제주의' '세계혁명'에 대한 언급을 하는 정도는 뜨로츠끼의 논의를 더 참조해서 논의를 확장해야 했지만,, 그 부분도 약술하는 수준이었고 ,, 결합 발전을 언급하는 수준이었기 떄문에 설득력이 약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뜨로츠끼 주의 운동이 맑스주의 운동사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의 지점은 점점더 피어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노선자체는 노동운동에 대한 압박이 강해질 수록 강해질 테지만,, 그들의 순진한 '맑스주의 변혁이론'으로 변혁의 길은 요원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만약 맑스주의 연구 학회에서 활용하려면..
Chapter 1~5까지를 대체로 '영국식 문체'라는 것을 감안하면서 그들이 쉽게 쓰느라 생략했던 부분들을 맑스-엥겔스 저작선집을 다시 보면서 문맥과의 상관관계를 따져가며 꼼꼼히 작의적 해석을 걷어내면서 읽을 것을 권하고,, 아니면,, 신좌파의 논의(Nomadist들의 논의나 Autonomia 주의자들의 논의 -> 이진경, 네그리, 해리 클레버)와 같은 대척점에 서있는 맑스주의자들의 논의와 함께 보는 것이 유용할 것으로 보이며,,
맑스주의를 참칭했던 자들의 혁명이 '현실사회주의'(아니 국가자본주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은,, Chapter 6~8은 그냥 가볍게 상식적인 비판을 제기하면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주체사상이 허접하다면,, 뜨로츠끼는 구닥다리라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맑스는 현실의 모순을 통해서 실천의 이론을 획득한다고 했고,, 단순하게 본다면,, 뜨로츠끼 주의자들의 주장(현재의 이윤율 저하 경향을 통한 자본주의 붕괴이론의 주장과 같은 것들)도 그런 측면에서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모순을 움직이는 -맑스가 그리도 강조하고 있는 'dynamics'- 역동적인 힘을 읽어내는 데 뜨로츠끼주의의 한계는 오히려 명백하다.
오히려 맑스주의적 인식에 충실하려면 더 넓은 범주에서의 현대사회의 분석이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고, 그 것을 통해서 사회를 추동하는 힘에 대한 분석(일국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 계급적 측면과 탈 계급적 측면, 모두를 범주로)이야 말로 이 책의 협애한 인식을 뛰어넘어 '비판의 무기'로서의 맑스주의의 칼을 벼리는 것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