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판 키드의 추억
신현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고등학생 때 있었던 일의 한자락.

고1, 방송반에서 울려나오던 노래에 빠진 나머지 Announcer에 도전했다. 그 때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PD였으나, 괜한 주눅과 뭔가를 쓰고 방송을 만든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조차 없었던 나는, 일단 아나운서가 먹고들어간다는 사실에 곧바로 아나운서를 지웠했지만, 실제로 방송반 생활을 하면서 나를 잡아끈 건 1년 선배였던 박진호(형 보고 싶네요. 뭐하고 지나나요?!!)의 음악관이었다. 이승환의 목소리로 천일동안을 열창하면서도 Mr. Big이나 Rialto, Radiohead, Nirvana를 틀어주는 그가 존경스럽기 시작했고, 음악관에 혁명적 변화를 겪고야 말았다. FinKL(Fine Killing LIberty라는... 어이 없는)이나 R.ef, 서태지와 아이들을 마냥 좋아하던 나는 어느날 부터 Rock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얼치기 락음악 매니아가 되었다.

친구들과는 커트코베인과 히데가 죽었는 지 안 죽었는 지를 가지고 대판 논쟁을 벌였으며, TV에 나오던 한 때는 흠모했던 아이돌 스타들에게 저주를 의식적으로 퍼붓기 시작했다.

그런 의식은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날 까지 나를 휘감기 시작했고, 덩달아 인물과 사상, 강준만, 진중권, 한겨레21로 이어지는 지식인 스타들과 그 세계를 접함에 따라, 변할 수 없는 Identity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하지만, 그건 내 체험이나 내 계급성의 인지가 아닌 마냥 잘나보고 싶었던 치기어린 과시욕과 공명심의 상징이기도 했다. 김규항의 말처럼 "달콤쌉쌀한 초콜릿" 같은 게 아니었을까?

여튼 덕분에 나는 Queen을 듣기 시작하고 프레디 머큐리를 존경하기 시작했고, Paul Gilbert같은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고, 패닉을 들으며 UFO의 가사를 한국 사회에 도입시켜보기도 했다.

신현준, 빽판 키드의 추억

어쩌면 신현준은 내가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일 거다. 말장난 하자는 게 아니라, 양면적이라는 거다. 어렸을 적의 빽판키드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거고(나는 열심히 내 버전의 mp3 playlist를 만들고 있었으니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만큼 음악을 내가 잘 듣지 않을 뿐더러, 나는 요즘 힙합에 미쳐있기 때문에, alter문화의 중심에 Rock을 놓는 그와 차별적이고 그런 면을 공감할 수 없다는 거다. 사실은 '공감'이라는 말을 붙이기 보다는 '차이'라는 점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현재 문화평론가이자 진보적 음악운동을 전개하는 신현준의 일대기에 대한 이야기다. 언제나 자서전류의 책을 쓰는 이들은 과거의 관점과 현재의 관점이 섞이는 지점에서 묘하게 고민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과거를 현재의 관점으로 바라보느냐, 혹은 그 때를 그 때의 기억으로만 순전하게 정리하느냐의 문제이다. 마치 이는 랑케의 '사실 그 자체의 역사'냐, 혹은 E.H. 카의 '역사가에 의해서 판단된 역사'냐의 문제만큼이나 빈번하게 부딪히는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신현준은 랑케식으로 이야기를 호도하려하지 않는다. 그 때의 기억을 지금의 관점에서 추억하면서도 나름의 판단을 가하고, 그 것을 통해서 자기의 지도를 발견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저술은 한편으로 모자이크 같이 흩어져 있으나 결과적으로 단단하게 엮이고 그의 관점을 설명하고 그가 갈 방향까지의 길을 잘 보여준다.

민중문화가 주는 역동성에 빠져서 노래패 활동을 하면서도, 죽어가는 그 바닥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야했던 내 대학시절의 모습과도 자꾸만 결합되는 그의 과거는 내 고민들의 단상과 묘하게 결합되어 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잡은 즉시 다 읽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대안담론을 만들고자하면서 밴드음악을 추구했던 것이 어떤 의미였을까를 노찾사나, 인디밴드들에 대한 그의 기록을 통해서 다시금 고민하게 했다. 또한 과거의 한국 대중음악(그는 실제로 한국 음악사의 고고학을 작성한 바있다.)의 공과에 대한 부분과 그 가능성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좁은 음악에 대한 이해를 탓하게 만들었다.

이쯤에서 끝났다면, 이건 대중음악평론가 중 '학자연'하면서 '먹물티' 팍팍내는 작자의 단상에서 멈췄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한 발 더 나아가서 대중과 어떻게 소통할 까의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이는 내게도 같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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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현준을 기억했던 건 그가 서사연에서 이진경과 함께 저술했던 '철학의 탈주'가 가장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열어가고자 하는 평론가로서의 관점을 더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안타까워했지만, 문화와 정치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확인하고 편견은 치워버리기로 했다.

간혹 이런 부분일 것이다.

... 대학생문화가 꼭 청년문화가 되어야 한다든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 1980년대는 '혁명'의 시대였으니까. ... 보다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똑같은 시대에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대학생의 정치적 저항과 록 커뮤니티의 미학적 반란이 그럭저럭 잘 어울리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어쨌냐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운동권 대학생들은 록 음악을 여전히 외래문화 정도로 생각하고, 록 음악의 마니아들은 정치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캠퍼스 내에서 방황하고 있는 현상이 안타깝다는 이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p. 203-206)

.... 이럴 때마다 나는 한국에서는 문화적 세련됨과 정치적 올바름은 영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씁쓸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어쩌다가 문화적으로 세련된 취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급진적 정치사상을 신봉하는 젊은 친구들을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정치적 올바름을 문화적 세련됨의 하나의 장식품 정도로 취급한다'는 의심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사회주의든, 무정부주의든 다른 무엇이든 급진적 사상을 실천하는 삶이 문화적 욕구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면, 지금 그걸 기꺼이 수용할 사람이 젊은 세대 중에 얼마나 있을까는 회의적이다. 그래서 가끔은 '펑크 밴드에게 열광하는 것과 <엽기적인 그녀>에게 열광하는 것이 과연 뭐가 다를까'라는 우문을 던지게 된다. 현답은 그들 스스로 내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pp. 273-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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