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훔치기 -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자유주의자 고종석???

자유주의자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진보'라는 '말' 만큼, '말많은' '말'이다. 왜 자꾸 '말'이냐고? 그건, 이런 것들이 다 '말'의 '상찬'에서 비롯되는 허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상, 자유주의자에 대해서 합의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자기를 자유주의자라고 하든, 남이 지칭하든, 일치되는 바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고종석도, 기실 그 '말많은' 자유주의자라 칭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유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대충 열거해 보기로 하자.

복거일, 고종석, 공병호, 강준만 등이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지칭한다.

과연 그들을 같은 카테고리 안에 엮을 수 있는가?

그걸 엮을 수 있다고 하는 자와 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예를 들면, 복거일과 공병호는 어느 수준에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리버러테리언(Liberatarian) 자유 지상주의자 수준에서... 장기를 매매하는 것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하이에크를 사랑하는 복거일 수준이라면,

조셈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에 몰두하신 나머지, 창조적으로 한달에 2권의 책과, 2권의 번역을 뱉어내는 분이 공병호다. ( 그 수준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하자. 서로 비참해 질 따름이다. )

하지만 고종석, 강준만과 이 둘을 '자유주의자'라는 카테고리로 과연 묶어 낼 수 있는가?

그러기에는 그들의 '자유주의'는 너무나 좌익적일 따름이다.

게다가 어느날 부터인가, '강준만'은 너무나 강한 사회적 책임이라는 가치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고종석은 더더욱 포지션을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자유주의자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어떤 측면에서의 자유주의인가?? 정치적 리버럴인가? 아니면, 경제적 리버럴인가? 아무래도 전자인 듯하다. 로크적 자유주의라기 보다는, 스튜어트 밀 식의 타인에 대한 배려를 포함한, 연대적 개념의 자유주의일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포지션을 갈피잡기에 그의 행적이나 언행은 이따금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예를 들면, 어떤 면에서는 굉장한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 발언하면서도, 동시에 복거일을 강하게 추천한다는 점이 그럴 것이다.

고종석이 바라본 21세기의 화두 - "코드 훔치기"

이 책은 고종석이 신문에 기고했던 특집기사를 묶어낸 책이다. 마지막 꼭지의 40장 "자유의 한계"의 마리화나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모든 기사는 기고를 묶은 것이고, 또한 기고 뒤에는 거기에 나왔던 인물이나, 개념에 대한 설명들을 친절하게 다시금 설명해 준다.

그냥 간단하게 묶어냈다는 느낌을 지우고, 다시금 더 정리했구나라는 생각을 들게끔 해주는 충실함이다.

사실 이 책을 산 건 2001년이다. 하지만 가지고만 있다가, 조금 읽다가 재미 없어서 놨던 것 같다. 역시 책이라는 건 사고서 뒀다가 묵혔다가 문제의식이 변한 어느 정도 시점에 읽었을 때 또 다른 맛이 있고, 색다른 감으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고종석은 일관되게 양극단을 피하고자 하는 입장을 전개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양극단을 피하는 입장이라는 거와 한국사회에서의 중도는, 정치적 중간자적인 말로의 '자유주의자'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의 '자유주의자'라는 말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용인되는 '정치적 올바름'에 가까운 말일 테다.

 예를 들면, 사회주의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고종석은,

"사회주의 '체제'의 부활은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마르크스의 재해석이나 마르크스주의의 '전화(轉化)'와 같은 이론적 덧칠을 통해서 그런 불가능한 과업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존재해본 적 없었던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 얘기하면서 사회주의 '체제'를 이론적으로 구출하려고 애쓰는 것은 부질없을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기까지 하다. ... 살아남는 사회민주주의는 제3의 길이 아니라, 조스팽식 사회주의에 가까울 것이다. 제3의 길은, 그것이 옳든 그르든, 자유주의와의 차이를 거의 잃었으니까."(pp. 22-23)

라고 말을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정치/경제적 체제에 대한 그의 입장은 사회주의자가 된다. 다만 그의 사회주의 '안'에서 포지션은 중도적 '사회주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서 우리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라고 말할 근거는 없는 게 되어버린다. 이러한 관점은 동시에 한국사회에서 '민주노동당 정도'의 입장인 '프랑스식 사회주의자'의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서 살펴볼 때마다 나타난다. 각 이슈에 대한 양극단의 입장을 정확하게 살피고 한발씩 뒤로 물러보면서 그 한계를 보이고 있지만, 사실 그가 기계적 중립을 취하는 건 아니다. 그는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으로 한발 더 나아간 상태에서 중립을 취하는 거다.

진보가 1이고 보수가 4라면, 그는 2.5의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중도'가 아니라, 2의 관점에서 1과 3를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점으로 놓고, 2의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말이다. 아예 4는 배제하는 것이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를 믿을 수가 없는 것이, 3.5의 관점에서 1과 4를 싸잡아 욕하면서, 4에 있는 극우파에서 반보밖에 못나가면서도 끝끝내 자신이 '수구'는 아니라고 하는 거라면, 이러한 고종석의 관점은 오히려 균형이 잡혀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런 '균형'을 잡아보려는 생각 덕택에,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도그마들을 쉽게 깨어버릴 수 있는 거다. 그는 '진보'에 대해서 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도 진보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있는 '민족주의'등을 쉽게 한발 뒤에서 물러보면서 그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는 거고, 그건 입체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조건에 기인하는 거다.

그러한 균형감각 덕택에 그는 '자유주의자'라 칭하는, 칭함을 당하는 자 중에서 '보석'으로 받아들여지는 거다.

다만, 아직 배움이 짧아 그런줄은 모르나, 고종석이 프래그머티즘에 대해서 논하는 논지는 파악이 좀 어렵다.

"로티에 따르면 미국 사회는 프래그머티즘의 '실험적이고 희망에 찬 심성'을 정치로 만들었다."(p.318)

"중요한 것은 우리들을 더 잘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변형시키는 것, 그래서 우리들에게 더 낫게 보이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p.318)

그의 생각대로라면, 프래그머티즘의 미국의 경향은 지속적인 진보를 담지해야 하나, 아직 그 부분은 장담을 할 수 없는 부분이고, 고전적인 비판들이 아직도 여지없이 드러맞는 미국인데,, 어떻게 '실험적이고 희망에 찬 심성'의 '정치'인지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는거다.

프래그머티즘의 이론적 결함인가, 미국사회가 '프래그머티즘'을 충실히 따르지 않는건가?

그 부분은 따로 논해야 겠지만, 후자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굉장히 곤란할 것 같다. 하지만 그 부분은 더 공부해볼 '숙제'로 남겨둔다.

그리고 책의 논의와는 상관없지만, 그의 입장에 대해서도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의 복거일에 대한 예찬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

한바탕 21세기 현안에 대한 브레인 스토밍을 하기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한권의 책이다.! 지식을 얻기에 나쁘지 않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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