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길거리의 추억? 

누구나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살아온 환경에 따라서 굉장히 그 추억의 강도나,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어떤이에게 어린 시절이 엄마의 따뜻한 품과, 학교에서 선생님을 사모했던 일, 아름답게 사색하던 일의 추억을 만들어 낸다면,

또 다른 어떤이에게 어린 시절은 매일 싸움박질이 벌어지는 길거리, 선생에게 대들면서 대거리 했던 일, 중학교 때에 담배를 피우면서 불만들을 토로하던 일들로 기억되기도 한다.

순수 소설이나 시, 영화 대신 여럿이 모여서 집에서 보던 야동을 기념비적인 문학으로, 또 문화체험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감성을 지니느냐도 그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 같다. 길거리 문화에 익숙해 지거나, 아니면 아파트 문화에서 자라거나 혹은 ...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 상황과도 결부되는 데, 내가 85~6년도에 고등학교를 다니고 87년에 대학을 입학했다면, 지금과는 사뭇다른 정서를 갖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특정 국면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상황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다는 거다.

69

제목부터 음란하지 않은가? 1969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무래도 sex 체위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딱 이정도 감성으로 무라카미류는 소설을 전개한다.

68혁명이 문화적으로 전세계를 흔들고 청춘에게 많은 꿈들을 현실로 만들라고 강요하던 시기.

어떤 시절이었을까???

주인공 야자키(겐 - 무라카미 류)은 혁명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고, 바리케이트 봉쇄를 말하고, 니체를 이야기하고, 비틀즈를 이야기하고, 트로츠키, 마오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건 떠들어 대는 멘트들에 불과하다. 사실 겐은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닌데다가, 제목정도 알고서 너무 떠들어 대는 것에 대해서 부담을 느낄 정도니....

야마다는 실제로 책을 엄청나게 읽지만, 야자키저럼 질러대지는 못한다. 오히려 소심하게 뒤에서 주도면밀하게 실수하지 않게끔 조정을 할 뿐.

그들은 여러가지 혁명적인(?) 행동을 기획하고 벌인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이념에 경도되어서도 아니었고, 거창한 행동강령을 지닌 것도 아니었고 오로지 즐겁게, 그리고 '천사'를 꼬시기 위해서 였다.

한편으로 비판할 수 있다. 고작 그런 찌질한 이유로 그런 일들을 벌이는 것의 무모함에 대해서. 하지만, 다시 물어보자. 그 동기가 과연 무시할 만큼 가치가 없는 것인가???

"나는 꽤 길게 내 생각을 말했다. 전공투운동, 맑스주의, 60년대 안보투쟁의 교훈, 카뮈의 부조리소설, 자살과 프리섹스, 나치즘, 스탈린, 천황제와 종교, 학도출진, 비틀스, 니힐리즘에서 이웃 이발소 주인의 권태와 퇴폐에 이르기까지,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 그렇습니다, 사실은 나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말입니다, 라고 나 스스로 말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pp.159-160)

"아뇨, 그냥 여학생 시선을 끌고 싶어서 했을 뿐이에요, 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p.161)

사실 지금의 나야 그렇게 변호할 수 있었겠지만, 그게 가능했겠는가?? 하지만 이런 사건들은 그들을 변화시킨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싸움이다. 나는 그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지겨운 사람들에게 나의 웃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싸움을, 나는 죽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p.269)

가네시로 가즈키의 좀비스 시리즈나, 무라카미 류의 69.

유쾌하게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유쾌하게 비추어 댄다. 그들은 '유쾌하기' 때문에 '멋지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시대의 전복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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