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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출구 없는 지옥
참 많은 이들이 '생각없는' 20대를 비판한다. 책도 안 읽고, 기껏 한다는 건 영어 문제집이나 풀어대고, 사유라는 건 하는 지 안 하는 지도 모른다고. 또 한편으로 기업에서는 계속적으로 기업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라고 실무교육에 필요한 교양을 닦아 오라고 대학을 닥달한다.
그렇다고 참 '생각없이' 20대가 사는 것 만은 아닌 것 같다. 시테크, 초테크까지 등장할 정도로 빡빡하게 생활하고, 자신의 살아갈 준비를 하는 20대는 많다. 하지만 길은 열리지 않는다.
예전에 논스톱에서 고시생 녀석은 '청년실업이 50만인 시대에'라고 이야했지만, 이제 이태백(20대의 태반 백수) 시대를 훌쩍 건너넘어 이구백(20대의 90% 백수)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 같다. 대학생에 대해서 예전에 예비 노동자라고 이야기했던 시절이 있었다면, 지금은 예비 실업자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화가 엄청난 속도로 전개되면서 가장 피해를 보는 대상은 누가 될 것인가? 우리는 항상 그런 대상을 돈없고 빽없는 모습의 '가장'으로서의 40대를 이야기해왔지만, 기실 더 치명적으로 그 영향을 받는 건 '20대'와 그 이하의 세대가 아닐까?
놀아본적이 없이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또 시키는 대로 준비하고 있지만, 미래라는 건 잘 변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또 무엇을 해야하는가?
88만원 세대
88만원 세대는 비정규직 평균 임금(119만원) * 75%(평균적인 20대의 임금 비율)이다. 앞으로 비정규직이 90%정도로 증가하게 될 상황에서(경향상 추정치이다.) 10%의 현재 20대는 88만원~119만원 임금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가정에서 저자는 논의를 시작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가?
"지금의 20대가 만나게 된 세상은 확실히 30대와 40대가 만났던 한국 사회와는 다르다. 옛날에는 대학 졸업장만 있어도 종합상사의 문은 크게 열려 있었고, 꼭 그렇게 큰 직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퍼상'이라 불리던 소규모 수출 대행업자와 같은 것을 혼자 운영할 수도 있었다. 인력이 모자라서 지방을 해체하며 수도권으로 노동자들을 불러내던 시기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문은 이제 닫혔고, IMF 이후 새롭게 형성된 한국경제의 질서는 매우 가혹하게 변했다."(p.79)
더 이상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건 이후의 논의인 "샌드위치 위기는 허구다"라는 책에서 더 강하게 상술될 것이지만,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예전의 대량생산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대량의 노동수요가 지금의 구조안에서 생성되지 않고, 따라서 예전과 같은 취업의 문이라는 것은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20대의 생활이라는 것은 생지옥이다. 대학생들이 맞닿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은 어쩌면 그 이하의 학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우스운 것일지도 모른다.
문은 닫혔다. 그렇기에 가장 안정적인 직업인 공무원에 올인하거나 공기업을 노리는 것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면서기'로 그냥 아는 지인을 통해서 들어가는 시대도 아닐 뿐더러, 그 공채에 지원하는 인원도 상상을 초과하며, 서울시 공무원 시험 응시자를 위해서 특별 열차가 증편되는 세상이다.
더 문제는 취업의 문을 뚫더라도 그 것이 해결되지 않는 데에 있다.
"현재 20대의 승자 독심 게임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점은 경쟁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패자부활전과 같은 보완 장치가 거의 없을 뿐더러, 중간에 개입하는 보증자도 없다는 점이다. 적어도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완벽한 승자 독심의 게임은 진행된 적이 거의 없고, 이렇게 '차가운 자본주의'(cold capitalism)'가 펼쳐진 적도 없었다. 그런데 20대들이 만나게 된 전면적인 경쟁은 세대 내 경쟁의 양상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대간 경쟁(inter-generation competition)'의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더욱 치명적이다."(pp.98-99)
예전처럼 대학에 가는 성적순으로 연봉이 결정되는 것이 '세대 내 경쟁'이라면, 차라리 그 질서는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 왜냐면, 사회가 균등하게 연공서열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약간 연봉이 작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더라도, 어짜피 나이에 따라서 연차가 쌓이고 연봉은 올라갔기 때문이다. 최소한 바닥으로 곧바로 추락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의 'TV 손자병법'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이제는 20대의 경쟁상대는 20대만이 아니라 윗세대 이기도 하다. '무한경쟁'의 시작.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은 싸움이다. 단순히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들이 갖고 있는 모든 사회적인 총량과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불균등을 안고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고, 세대의 연대성의 정도의 차이에 따른 힘의 차이 또한 감수해야 하는 싸움인 것이다. 쉽게 생각해보자. 386세대와 지금의 20대가 동일 선상에서 평가받는 것이다.
이건 개개인이 토익/토플, 자격증을 공부한 다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 벌어진 틈새를 사회가 그리고 국가가 완충해주어야 하는 부분이 된다. 그런데, 저자의 진단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는 그 통로를 막아버렸다.
"노무현 정부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선택받기 위한 '모방'을 강요하는 시스템인데, 이 때의 모방 전략은 정부에서는 '규모화'라고 부르고, 우리말로는 '덩치 키우기'라고 부른다. 흔히들 '영세기업'이 문제라고 하지만, 현대 경제학에서는 이들을 영세업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중소기업 혹은 혁신기업 아니면 첨단 기업 같은 고상한 용어로 바꿔 부른다. 산업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나라 경제는 획일적 규모화의 덫에 빠져 있는데, 불행히도 이 변화는 20대에게 아주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고, 국민경제 자체도 대단히 위험한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pp.244-245)
전지구적인 경제구조는 다원화된 구도(탈 포드주의)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은 대기업위주의 전형적인 집중화 정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더더욱 통로가 열리지 않고 있는 거다. 이 부분은 장하준(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과 충돌하는 부분인데, 장하준은 대기업이라는 것들이 사실 전산업의 네트워크를 이용한 하나의 '집약체'로서의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으로 성장해온 한국 경제를 다시 해체해서 중소기업형으로 전환하기 보다는, 대기업체제의 이점을 살려보자고 이야기한다. 이부분의 아무래도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내가 당장 양당간에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다 손놓고 기다리자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다만 제약조건을 저자는 제기한다.
1. 혁명을 쓸 수 없다. -> 세대간의 혁명이 가능한가?
2. 세계화 -> 중층적이기 때문에 명확히 겨냥할 수가 없다.
3. 포디즘으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전제에서 어떤 방법이 있는가?
1. 교육 - 1)"대학입시와 관련된 과목들에 대해서 제한적으로 사교육을 금지시키고, 이 분야의 사교육 종사자들이 업종전환을 할 수 있는 2~3년간의 유예기간을 주는 방안이 하나이고, 이들의 상당 부분을 공교육 체계로 흡수해서 교사들의 숫자를 대폭 늘리고 그 대신 학생당 교사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pp.226-227)
2) "모든 대학을 국립대로 전환"하거나 "국립대학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방법(p.227)
2. 고용 - 1)"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대신에 정부가 노동자에 대한 재교육에 지금보다 10배 정도 더 많은 돈을 들이고 창업기금 같은 것을 지금의 10배 정도로 늘려서 경제 전체의 혁신율을 경쟁의 방식으로 높이는 것"(p.235)
2) "'일자리 나누기'(job-sharing'). 원리는 노동자들의 전체 임금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노동자의 고용을 늘려 총고용을 높이는 방식이다."(p.235)
3. 경제구조 - "대기업과 맞서서 중소기업이 지금 당하고 있는 불공정 사례를 줄여주는 일과, 정상적으로 국민경제를 작동시키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 자영업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조치들을 도입하는 두가지 일을 하면 된다."(p.246)
그 외의 솔루션들을 저자는 제기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것들이 쉽게 정책입안자의 마인드에서 나올까에 대해서 회의적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1968년의 프랑스의 거리를 메꾸었던 학생들의 봉기가 생각나는 건 무슨 이유일까??
우석훈의 블로그를 자주 들어가지만, 참 그의 글은 쉽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 1학년 정도"를 겨냥한 이 책은 역시 쉬운 문체로 쓰여있고, 마치 기획안 처럼 명료하게 쓰여있어 한국 경제를 횡단하여 볼 수 있는 커다란 책이라 할 수 있다. "미래를 빼앗긴 세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아니 나도 같은 세대로써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하는가????
음울한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의 모티브를 통해서 전개된 책이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쿠르지 영감이 꿈에서 깨어나서 변하는 것처럼, 상상력에 의한 변화가 추동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된다.
다만, 경제학을 좀 더 공부하고, 더 나은 대안들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추동했고, 언젠가는 우석훈을 넘어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직은, 난 우석훈과 강유원에게 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