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1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E L 제임스 지음, 박은서 옮김 / 시공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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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에게는 권장하지 않는 책입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 3부작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2012년 상반기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미국 사회를 들끓게 하고 출판 시장의 판도를 바꾼 데뷔작. 여성의 에로티시즘에 대해 공론할 수 있는 장을 만든 문제작. 여자들이 뉴욕 전철에서 거리낌 없이 꺼내어 읽는 에로 소설. 좋아하는 사람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독서의 길티 플레저(guily pleasur)를 주는 바로 그 책. 플로리다의 도서관에서는 퇴출 명령을 내렸던 책. (그러나 곧 시민들의 강력한 항의로 다시 책을 들여놔야 했던.) 빈티지 출판사에서 정식 페이퍼백이 출간된 지 6개월도 되기 전에 이 소설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그렇지만 가장 얘기하기를 꺼리는 책이 되었다. (p.357 옮긴이의 말 中)

옮긴이의 말에서 발췌해 온 내용이지만, 이보다 더 이 책을 짧고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감상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야말로 화제의 책입니다. 조만간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며, 두 남녀 주인공을 누가 맡을 것인가를 두고도 논란이 많은 책입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의 소설이라서 이토록 화제가 되고 있는 걸까요?

다른 사전 정보 없이 그저 해리포터의 판매기록을 갈아치웠다는 글을 보고 정말 엄청난 장르소설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표지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풍기고, '그레이'하면 회색 뇌세포의 소유자 포와로가 떠올라서요. 그래서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합하지 않은 책들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보통 19금 딱지가 붙으면 화제가 되긴 하지만 흥행을 하긴 어렵잖아요. 아무래도 볼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제한적이니 말이죠. 책을 손에 들고나서야 제가 생각했던 장르소설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19세미만 구입불가 판정을 받은 소설이라는 것도 말입니다.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보세요!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용을 궁금해 했습니다. 그 줄거리를 정리하기는 참 힘들지만, 그래도 한번 정리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감기에 걸린 친구 대신 백만장자의 인터뷰를 간 아나스타샤는 27세의 젊은 CEO 그레이에게 반해 버립니다. 이런 이야기가 다 그렇듯이 상대에게 반해버린 건 아나스타샤 뿐이 아닙니다. 그레이 또한 아나스타샤에게 반해서 위풍당당하게 그녀를 찾아옵니다. 아나스타샤는 전용헬기까지 있는 그레이가 다소 버겁기는 했지만 이미 그에게 반해버렸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평범하지 않았던 건 재력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남들과 다른 성적 취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일종의 계약서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의 성적 판타지가 어떤 것인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정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보세요. 아무튼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게다가 이전에 남자 친구를 만난 경험이 한번도 없는 여자라면 쉽게 수용할 수도 쉽게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나스타샤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앞서도 언급했지만 아나스타샤는 이미 그레이에게 반해버렸고, 그가 어떤 성적 판타지를 갖고 있든 그와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살짝 경험해 보니 상상했던 것처럼 두려운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구요. 그렇게 그 둘은 잘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수용할 수 있는 임계치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레이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지점은 아나스타샤가 참을 수 있는 임계치를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나스타샤는 그를 떠나기로 합니다.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자신이 참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그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요.

1부에서는 이렇게 이야기가 끝납니다. 2권까지 다 읽고나서야 알았습니다. 이 책이 3부작이라는 것과 1부의 이야기는 1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부 1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요. 그래서 참 난감합니다.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엄마들의 포르노'라고 이 책을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 미국에서는 이 책을 통해 주부들이 성을 공론화하고 토론하기 시작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포르노가 되기엔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야한 동영상'이 아닌 그저 야한 영화 한편 본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분량은 꽤 되지만 술술 읽힙니다.

참고로 이 책은 종이책 보다는 전자책이 더 잘 팔린다고 합니다. 또 필수 아이템으로 북커버를 준비하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 제가 알고 있던 19금 책이 두 권 있었습니다.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와 얼마전에 재출간 된 사드의 『소돔의 120일』이 그것인데요, 그 책들과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예전 번역본은 확실하게 19금이었는데, 새롭게 나온 『소돔의 120일』은 아직 19금이 안 붙었더라구요. 제가 찾지 못한 것인지. 아무튼 제가 아는 19금 책이 또 한 권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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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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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자란 어른들의 슈퍼 울트라캡숑 개꼬장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제7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여운을 남겨줬던 심윤경. 2년마다 꼬박꼬박 일관성 있게 장편소설을 써냈던 그녀가 잠시 동화의 세계로 외도를 하더니 4년만에 덜 자란 어른들의 슈퍼 울트라캡숑 개꼬장전으로 돌아왔다.

꼬장도 이런 개꼬장이 없다. 평소 꼬장 좀 부린다는 사람들도 이 가족 앞에 서면 명함 한번 못 내민다. 『사랑이 달리다』의 '나', 김혜나 일가는 온가족이 개꼬장을 부려서 누구 하나 말릴 사람이 없는, 일명 콩가루 집안이다. 가난한 트럭운전사에서 자수성가해 알아주는 병원장이 된 아버지, 잉그리드 버그만 같은 외모에 이화여대까지 나왔지만 사랑 하나 때문에 트럭운전사와 결혼한 어머니, 부자 아빠를 둔 덕분에 돈 걱정 없이 살았던 두 아들과 막내딸.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이 콩가루 집안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지금부터 나열해 보겠다.

큰 오빠 철원은 자기 살 궁리 밖에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부자 아빠의 덕을 볼 수 있을까, 혹은 장남으로 가족 때문에 피해 보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 생각 뿐이다. 작은 오빠 학원은 최고 대학을 나와서인지 사고도 최고로 친다. 그동안 친 사고로 빚만 50억이 넘는데, 요즘은 컨버터블이 저렴하다며 1억이 훌쩍 넘는 외제차를 수시로 바꾼다. 그는 속도를 즐긴다. 조수석에 동생 혜나를 태우고 마치 아무도 없는 아우토반을 달리듯 미친듯이 질주한다. 39살의 혜나는 막내딸의 특권을 즐기느라 할줄 아는게 하나도 없다. 동갑내기 성민과 결혼한 후에도 부자 아빠의 카드를 남발하며 돈 아쉬운 줄 모르고 산다.

이렇게 미친듯이 살고 있던 그들에게 아버지가 제대로 미친 한방을 날려주신다. 큰 오빠 철원 보다도 나이가 어린 여자 때문에 어머니와 황혼 이혼을 한 것이다. 잉그리드 버그만 같은 어머니는 끝까지 우아하게 남기 위해 재산분할청구도 하지 않는다. 집안에 돈 벌 줄 아는 사람이라곤 아버지 밖에 없었는데, 아버지가 어린 여자 때문에 집에서 나가버리자 이들의 경제상황은 곤궁하다 못해 최악에 빠진다.

그나마 막내딸로 곱게 살아왔던 혜나가 덜 미친 것 같았다. 남편 성민은 혜나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최고 대학의 공대를 나와 기업에서 월급 꼬박꼬박 받으며 일하고 있다. 혜나가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화를 내더라도 이내 풀려버리는 착한 남편 성민. 그런데 아버지로 인해 그나마 있던 인맥이 끊겨버리자 성민은 지방으로 좌천되고 혜나는 그런 성민을 따라가지 않는다.

성민을 따라가지 않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커피값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작은 오빠 선배의 산부인과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되는데 그곳에서 혜나는 유느님 보다 더 멋진 욱연을 만나게 된다. 세상 그 어떤 여자라도 욱연을 한번 만나면 그에게 반해 버리고, 돈 있는 남자들은 그에게 투자를 하지 못해 안달이다. 성민과의 결혼생활도 꽤 무신경 했던 혜나도 별 수 없이 그를 사랑하게 된다.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에 마하39의 속도로 달려온 사랑,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이 달리다』는 젊은 남녀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평균 연령을 계산해 본다면, 아마도 쉰이 훌쩍 넘을 것이다. 아들보다 더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아버지, 아들의 채권자이자 평소 잉그리드 버그만 같은 어머니를 흠모해 왔던 대부업자 박회장, 그런 박회장에게 흠뻑 빠져버린 어머니, 수많은 여자들의 흠모를 외면했으면서도 결국 혜나에게 넘어간 욱연, 그런 그를 완전 사랑하는 혜나. 그들의 사랑은 로맨틱 보다는 크레이지에 가깝지만 어쨌든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사랑이 그들을 향해 달려온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어느 누구의 엔딩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하39의 속도로 달려온 사랑을 쉽게 멈출 수는 없지만 욱연이나 학원의 부인 수진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면 폭발하거나 포기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우리들과는 경제 단위가 어마어마하게 다른데다가 미친 가족처럼 묘사돼 있어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얼핏 들 수 있지만, 욱연이 횟수의 문제라고 했듯이 이건 스케일만 다를 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돈, 계급, 사랑 등 이런 저런 이유로 미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뉴스만 틀어도 나오지 않던가.

사실 이전의 심윤경 소설은 다소 진지하고 차분한 맛이 있었는데, 『사랑이 달리다』는 마치 박민규나 김중혁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발랄하다. 과연 이 작가가 이런 단어의 사용법을 알고 있었을까, 싶은 것들도 더러 있다. 그저 변화를 시도하는걸까? 아님 변화를 통해 성장을 하고 있는걸까? 아무도 알 수 없는 혜나 일가족의 결말이 궁금한만큼 그녀의 다음 작품도 궁금해진다.

혜나씨, 인생은 다면적인 거야. 그래서 어떤 한 면만 생각하면 전체가 우스꽝스럽게 비틀려 보이기도 하는 거지. 나도 대략 굶지나 않으면 다행인 형편이었지만, 가끔은 좋은 물건을 손에 넣거나 잘 차린 음식을 먹을 때도 있었다고. 횟수의 문제일 뿐이지. 인생은 길거든. (p.320~321)

난 수진씨가 이해되는데. 아무리 잘 버티는 사람이라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어떤 일이 있거든.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흔한 일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일격이 되기도 하니까. (p.32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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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베이커리 1 한밤중의 베이커리 1
오누마 노리코 지음, 김윤수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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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문을 여는 『심야식당』이 있었죠. 늦은 새벽,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이 심야식당에서 배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우고 돌아갔는데, 『한밤중의 베이커리』도 비슷합니다.

'블랑제리 구레바야시'라는 이름의 빵가게는 프랑스어로 '빵가게 구레바야시'라는 뜻으로 오후 23시부터 오전 29시까지, 즉 한밤중에만 문을 여는 빵가게입니다. 이제 막 오픈한지 보름쯤 된 곳인데, 점원은 흰색 요리사 옷을 입은 블랑제 '히로키'와 검정색 요리사 옷을 입고 손님을 맞이하는 '구레바야시' 두 명입니다.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구레바야시'는 '블랑제리 구레바야시'의 주인이랍니다.

틈새 시장을 잘 공략한 탓인지 그런대로 손님이 이어지던 이곳에 17살의 여고생 '노조미'가 찾아옵니다. '노조미'는 '구레바야시'의 이복 여동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구레바야시'의 아내 '미와코 구레바야시'는 이 가게를 준비하던 중 사고를 당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 게다가 '미와코'의 아버지는 20년 전에 돌아가셔서 '노조미'가 '미와코'의 이복 동생일리가 없지만, '구레바야시'는 아내 '미와코'가 '노조미'를 돌봐주겠다는 편지를 남겼기 때문에 아무말 하지 않고 '노조미'를 받아 들입니다.

'노조미'를 시작으로 이 '블랑제리 구레바야시'에는 따뜻한 빵의 힘이 필요한 사람들이 자주 나타납니다. '노조미' 역시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사라져서 어떻게 된 사연인지도 모르는 '구레바야시'의 신세를 지고 있는데, 어린 소년 '고다마' 역시 '노조미'와 상황이 비슷합니다. 여기에 원룸만 있으면 충분하다며 망원경으로 세상 사람들을 지켜보는 변태 각본가 '마다라메'와 지금은 홈리스가 된 여장남자 소피아, 능력있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아이를 낳았지만 자신과 닮아가는 것 같아서 고다마를 버린 '오리에'까지 '블랑제리 구레바야시'를 찾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사연 많고, 그만큼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구레바야시'의 아내 '미와코' 또한 늘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결혼은 했지만 '구레바야시'는 일 때문에 대부분 해외에 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레바야시'는 빵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내 '미와코'가 왜 빵이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음식인지, 왜 사람들에게 따뜻한 빵을 먹이고 싶어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빵은 평등한 음식이잖아. 길가나 공원, 어디서든 먹을 수 있어. 마주할 식탁이 없어도, 누가 옆에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어. 맛있는 빵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맛있잖아." (p.280)

"맛난 걸 먹으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웃지? 그런 빵을 만들고 싶어. 빵은 특별한 날 먹는 게 아니라 매일 먹는 거야. 맛난 빵으로 매일 웃을 수 있다면 완전 남는 인생 아닐까." (p.60)

'미와코'의 말처럼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빵은 참 평등한 음식입니다. 하지만 왠지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평등한 음식을 먹는 이유는, 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라 혼자이기 때문이니까요.

책장을 덮자마자 바로 집앞 빵가게로 달려갔습니다. 이 책은 그런 책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빵을 부르는 책이죠. 『한밤중의 베이커리』의 저자 오누마 노리코는 각본가로 활동하다가 2005년에 소설가로 데뷔한, 비교적 경력이 짧은 소설가입니다. 2011년에 나온 이 책을 통해 일본에서는 기대되는 신예 작가로 떠오르고 있다고 하는데, 작품 곳곳에 신예 작가의 어설픔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연애시대』를 쓴 노자와 히사시 또한 각본가였습니다. 노자와 히사시의 소설을 보면 마치 드라마처럼 상황과 대화가 전개되는데, 오누마 노리코의 성장도 한번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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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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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그의 시를 가슴에 새긴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쉬이 읽지 못하는 이유는 시를 처음 만나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시는 가슴으로 읽고 느껴야 하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그들은 시를 머리로 배우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밤하늘에 반짝 반짝 빛나는 별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듯이, 시를 읽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져야 한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알록달록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빼곡하게 메모까지 하며 배웠던 시가 저절로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은 시를 읽는 방법에 대한 책도 아니고, 비평집도 아니다.

두 권의 역사소설로 한국을 대표하는 팩션작가로 우뚝 솟은 이정명 작가의 신작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은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든 때,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벌어진 간수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죄수들 사이에서, 아니 간수들까지도 '악마'라 부를 정도로 잔인했던 한 간수의 죽음, 철창 밖의 간수와 철창 속의 죄수 밖에 없는 이 형무소에서 과연 누가 그를 죽였을까?

죽은 간수(스기야마)의 교대 파트너이면서 스기야마가 죽자 그의 업무는 물론이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일까지 맡게 된 어린 학병 출신의 간수 와타나베 유이치. 의외로 살인범을 찾아내는 일은 쉬워 보였다. 평소 잔인하기로 소문난 스기야마였으니, 그에게 원한 품은 죄수가 한 둘이겠는가. 살인범은 간도에서 독립군 활동을 하다가 잡혀 들어온 최치수라는 인물이었고, 자신이 스기야마를 죽였다고 순순히 자백까지 한다. 하지만 뭔가 꺼름칙함을 떨쳐낼 수 없었던 유이치는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결과 유이치는 사건의 내막에 한발짝 다가선다. 죽은 스기야마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시 한 편을 보고 유이치는 히라누마 도주가 이 사건에 깊이 연관돼 있음을 알아차린다.

히라누마 도주, 이것은 시인 윤동주의 창씨명이다. 민족 저항시인이라 불리는 그에게 창씨명이라니,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부친의 권유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다. 당시 도항을 하려면 반드시 창씨명이 있어야 했다고 한다. 아무리 유학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창씨개명한 것을 오랫동안 부끄러워하며 한 편의 시를 쓴다.

참회록

파란 녹이 긴 구리거울 속에 /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소설은 이런 식이다. 유이치는 사건의 내막을 추적하는 곳곳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와 마주치며, 그때마다 윤동주 시인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는지 소설처럼 풀어준다. 비록 허구이기는 하나, 밑줄 쫙 긋고 메모까지 해가며 읽었을 때보다 훨씬 잘 와닿는다. 문득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한번 읽게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정명 작가는 소설 속에 시를 끼워 넣기 위해 소설을 다시 고쳐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단순히 살인사건의 내막을 밝혀내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정명 작가의 소설을 한번쯤 읽어본 작가라면 누구나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살인사건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엄청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초반에 드러나는 정황이라 스포일러가 아닐 수도 있지만, 하나만 밝혀주자면 죽은 스기야마는 잔인한 간수였지만 시와 문학을 사랑한 검열관이었고, 그를 잔인한 간수에서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꾼 것은 윤동주 시인의 시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유이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전쟁이 끝나고 전범 수용소에서 벌어진 전범 용의자 심문 때, 유이치는 한결 같이 스스로를 유죄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유이치에게는 어떤 죄가 성립될 수 있는 걸까? 이 대목을 읽으면서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에 등장했던 한나가 떠올랐다. 어쩌면 한나와 유이치는 같은 입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범죄행위에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나는 처벌받아야 할까? 그럴 것이다. 언젠가 미친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이 형무소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범죄는 단죄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범죄자들 중에는 나도 끼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전쟁이 끝나고,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지 말아야 할까? (p.166)

나는 악마들의 광기에 침묵했고 죄 없는 자들의 비명에 귀를 닫았습니다. 악마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지 못했고, 더러운 전쟁을 멈추게 하지도 못했으며, 죄 없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지 못했고, 폭격으로 죽음의 공포에 내몰린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내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나는 그들의 죽음에 책임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잔인한 시대를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유죄입니다. (p. 289)

그동안의 이정명 작가 작품들을 살펴보면 예술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보인다. 『바람의 화원』에서는 김홍도와 신윤복을,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한글을, 그리고 이번에는 윤동주 시인과 그의 시를 다루고 있다. 그는 단순히 소설의 주제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한번 더 일깨워주고 되새겨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특히, 이번 소설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소설 속에 싣고, 시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소설을 여러 번 고쳐 썼다고 한다. 원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조선인이었으나 일본인 간수로 이야기를 다시 쓴 이유도 그렇게 하면 그의 시가 주는 힘과 감동이 더 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윤동주 시인의 시가 어떻게 잔인한 간수까지 바꿔 놓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이 이 책을 읽을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무, 심지어는 거짓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의 잘못을 다시 곱씹을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새 출발 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돌이켜 볼 수 있고, 돌이켜 보아야 과오를 찾을 수 있고, 과오를 찾아야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해야 용서를 빌 수 있으며, 용서를 빌어야 용서받을 수 있고, 용서받아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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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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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그의 시를 가슴에 새긴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쉬이 읽지 못하는 이유는 시를 처음 만나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시는 가슴으로 읽고 느껴야 하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그들은 시를 머리로 배우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밤하늘에 반짝 반짝 빛나는 별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듯이, 시를 읽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져야 한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알록달록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빼곡하게 메모까지 하며 배웠던 시가 저절로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은 시를 읽는 방법에 대한 책도 아니고, 비평집도 아니다.

두 권의 역사소설로 한국을 대표하는 팩션작가로 우뚝 솟은 이정명 작가의 신작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은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든 때,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벌어진 간수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죄수들 사이에서, 아니 간수들까지도 '악마'라 부를 정도로 잔인했던 한 간수의 죽음, 철창 밖의 간수와 철창 속의 죄수 밖에 없는 이 형무소에서 과연 누가 그를 죽였을까?

죽은 간수(스기야마)의 교대 파트너이면서 스기야마가 죽자 그의 업무는 물론이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일까지 맡게 된 어린 학병 출신의 간수 와타나베 유이치. 의외로 살인범을 찾아내는 일은 쉬워 보였다. 평소 잔인하기로 소문난 스기야마였으니, 그에게 원한 품은 죄수가 한 둘이겠는가. 살인범은 간도에서 독립군 활동을 하다가 잡혀 들어온 최치수라는 인물이었고, 자신이 스기야마를 죽였다고 순순히 자백까지 한다. 하지만 뭔가 꺼름칙함을 떨쳐낼 수 없었던 유이치는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결과 유이치는 사건의 내막에 한발짝 다가선다. 죽은 스기야마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시 한 편을 보고 유이치는 히라누마 도주가 이 사건에 깊이 연관돼 있음을 알아차린다.

히라누마 도주, 이것은 시인 윤동주의 창씨명이다. 민족 저항시인이라 불리는 그에게 창씨명이라니,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부친의 권유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다. 당시 도항을 하려면 반드시 창씨명이 있어야 했다고 한다. 아무리 유학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창씨개명한 것을 오랫동안 부끄러워하며 한 편의 시를 쓴다.

참회록

파란 녹이 긴 구리거울 속에 /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소설은 이런 식이다. 유이치는 사건의 내막을 추적하는 곳곳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와 마주치며, 그때마다 윤동주 시인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는지 소설처럼 풀어준다. 비록 허구이기는 하나, 밑줄 쫙 긋고 메모까지 해가며 읽었을 때보다 훨씬 잘 와닿는다. 문득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한번 읽게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정명 작가는 소설 속에 시를 끼워 넣기 위해 소설을 다시 고쳐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단순히 살인사건의 내막을 밝혀내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정명 작가의 소설을 한번쯤 읽어본 작가라면 누구나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살인사건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엄청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초반에 드러나는 정황이라 스포일러가 아닐 수도 있지만, 하나만 밝혀주자면 죽은 스기야마는 잔인한 간수였지만 시와 문학을 사랑한 검열관이었고, 그를 잔인한 간수에서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꾼 것은 윤동주 시인의 시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유이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전쟁이 끝나고 전범 수용소에서 벌어진 전범 용의자 심문 때, 유이치는 한결 같이 스스로를 유죄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유이치에게는 어떤 죄가 성립될 수 있는 걸까? 이 대목을 읽으면서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에 등장했던 한나가 떠올랐다. 어쩌면 한나와 유이치는 같은 입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범죄행위에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나는 처벌받아야 할까? 그럴 것이다. 언젠가 미친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이 형무소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범죄는 단죄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범죄자들 중에는 나도 끼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전쟁이 끝나고,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지 말아야 할까? (p.166)

나는 악마들의 광기에 침묵했고 죄 없는 자들의 비명에 귀를 닫았습니다. 악마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지 못했고, 더러운 전쟁을 멈추게 하지도 못했으며, 죄 없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지 못했고, 폭격으로 죽음의 공포에 내몰린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내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나는 그들의 죽음에 책임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잔인한 시대를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유죄입니다. (p. 289)

그동안의 이정명 작가 작품들을 살펴보면 예술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보인다. 『바람의 화원』에서는 김홍도와 신윤복을,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한글을, 그리고 이번에는 윤동주 시인과 그의 시를 다루고 있다. 그는 단순히 소설의 주제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한번 더 일깨워주고 되새겨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특히, 이번 소설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소설 속에 싣고, 시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소설을 여러 번 고쳐 썼다고 한다. 원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조선인이었으나 일본인 간수로 이야기를 다시 쓴 이유도 그렇게 하면 그의 시가 주는 힘과 감동이 더 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윤동주 시인의 시가 어떻게 잔인한 간수까지 바꿔 놓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이 이 책을 읽을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무, 심지어는 거짓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의 잘못을 다시 곱씹을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새 출발 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돌이켜 볼 수 있고, 돌이켜 보아야 과오를 찾을 수 있고, 과오를 찾아야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해야 용서를 빌 수 있으며, 용서를 빌어야 용서받을 수 있고, 용서받아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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