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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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트라우마 상황에 노출돼 있다!
   최근 트라우마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어떤 이들은 대한민국 전체가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고도 한다. 트라우마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 PTSD)로 전쟁, 대참사, 재난 같은 '일반적인 인간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충격적인 외상 사건을 경험한 후 그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장애(p.30)를 말한다. 그러나 여성이나 아동의 경우 가정폭력, 학대, 성폭행처럼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도 당사자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충격이 되므로, 최근에는 외상 사건을 '일반적인 적응 능력을 압도하는 특별한 사건'(p.30)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렇게 정의해 놓고 보면, 우리는 늘 트라우마를 겪을 상황에 노출돼 있다. 아직까지도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기억되고 있는 대구지하철참사, 수 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사건, 어린 학생들이 많이 희생된 성수대교 붕괴 사건 등 대참사뿐만이 아니라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동차 사고, 성폭행, 학교폭력, 아동학대 등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나의 트라우마
   나 또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어릴적 부모님이 여행가시고 동생과 둘이 잠든 날, 부부 싸움하던 옆집 아저씨가 홧김에 불을 질렀다. 어떤 큰 소리에 잠이 깬 나는 천장에서 불꽃이 떨어지는 걸 보고는 동생을 깨워 얼른 뛰쳐 나갔다. 다친 곳이 없어 다행이라 했지만, 2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그날 밤의 악몽이 나를 따라다닐 줄은 몰랐다. 
   난 밤이 되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팔딱팔딱 뛰고, 자다가 놀라서 일어나면 다시 잠을 잘 수가 없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이 방문 닫는 소리나 바람에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 혹은 비가 내리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돼도 심장 박동이 진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책조차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흥분돼서 집중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그저 잘 놀라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밤이 되면 불안감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선풍기가 과열돼서 불이 나면 어쩌나,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창문이라도 깨지면, 혹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무너지는 일은 없겠지 등 침대에 누웠다가도 몇 번씩 다시 일어나 집안을 확인하고서야 잠이 든다.
   만약 내가 사고로 죽게되더라도 절대 화재로는 죽지 않을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어렴풋이 어릴적 화재 사고가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 됐나보다 여겼다. 그 충격의 실체가 궁금해서 몇 번 치료를 받아볼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알게 됐다. 그건 나의 트라우마였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정면 승부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를 소개하며, 트라우마의 정의와 원인, 증상, 극복방법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외부 자극을 받으면 그것이 위험한 것인지 아닌지를 평가해서 행동을 취한다. 그런데 매우 위협적이고 위험한 자극이 들어오게 되면 자극을 찬찬히 평가할 수 있는 여유가 없이 오로지 응급으로 빠르게 반응하는 시스템만 작동하게 된다. 이것은 살아남기 위한 적응적인 반응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위험한 상황이 끝나고 난 뒤에도 이러한 시스템의 변화가 그대로 지속된다는 것이다. (p.45)
   이 상태는 《여자, 정혜》의 정혜처럼 꾸준히 지속될 수도 있고, 람보처럼 그 사건을 상기시키는 어떤 요인으로 인해 촉발될 수도 있다. 이것을 촉발 인자, 트리거라고 한다. 또, 그 사건이 발생한 특정 시간이 되면 증폭되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밤에 자다가 어떤 소리를 들은 후 화재가 났기 때문에 밤마다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못 이루는 것이다.
   이 트라우마의 고통을 극복하려면 정면 승부를 해야 한다. 혼자서 어렵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의 의지다. 아직 마음을 열 준비가 돼 있지도 않은데, 외부에서 억지로 트라우마를 들춰내고 치료하려고 하면 안된다. 강력한 트라우마를 받은 환자에게는 마음의 방어벽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굿 윌 헌팅》에서 맥과이어 교수는 자신도 윌 헌팅과 같은 상처가 있었노라며 먼저 말해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윤수는 유정 또한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자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연다. 무엇보다 교감이 중요한 것이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환자들은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이 모두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특히,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은 자기의 행동이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다며 자학한다. 또, 주변 시선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유정의 엄마는 성폭행을 당한 유정을 차갑게 대한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면, 트라우마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당사자의 잘못이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포레스트 검프》의 포레스트는 아이큐가 고작 75였고 다리마저 불편해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했다. 그런 친구들로부터 달아나면서 다리는 불편하지만 누구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장점인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으로 대학까지 가게 된다. 포레스트는 단점이 많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장점을 살렸다. 그것이 바로 긍정의 힘인 것이다. 

   "나는 하느님이 주신 세 가지 은혜 덕분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첫째, 집이 몹시 가난해 어릴 적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같은 고생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둘째,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약해 항상 운동에 힘써왔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셋째, 나는 초등학교도 못 다녔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다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나 물어가며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p.236) 


   우리나라 기업인들에게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한 말이다. 그는 무엇 '때문에'가 아닌 그 '덕분'으로 매사에 임하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이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도 필요하다.

   이 책에는 트라우마 지수 체크 리스트가 있어서 자가 진단을 할 수도 있다. 트라우마는 특정한 사람들만 겪고 있는 장애가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노출돼 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자신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거나 트라우마가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은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09-94.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2009/07/1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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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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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 감춰진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위해!
   책을 덮은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가슴은 먹먹하기만 하다. 제목 그대로 먹먹함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 책을 읽기 전 결말이 좀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쓴 연애소설을 읽은 이후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그녀의 작품을 읽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 불편의 정도를 가늠조차 하지 못한채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몇 장 읽지 않았는데도 어슴푸레한 것들이 전해오기 시작했다.

   『도가니』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등장하는 무진시(霧津市)가 배경이다. 사업에 실패한 강인호는 아내의 친구 소개로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 자리를 얻는다. 청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애 학원은 안개로 둘러싸인 무진시에 있다. 게다가 마을에서도 떨어져 있어 자애학원은 마치 고립된 하나의 거대한 성채 같았다. 안개가 내리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한들 외부에서는 전혀 알 길이 없을 터였다.(p42) 바로 그곳에서 학교 교장과 행정실장, 생활지도교사 등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상대로 성폭력과 폭행을 일삼았다.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아이들은 외부와 단절된 학교 안에서 무참하게 유린당했지만, 제대로 듣고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눈과 귀를 모두 닫아버린다.
   소설에는 두 편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 편은 아이들의 편에 써서 진실을 밟히고 아이들을 짓밟았던 사람들을 처벌하려는 사람들이고, 또 한 편은 아이들을 짓밟았던 사람들 편에 서서 진실은 외면한채 현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언론은 물론이고 법정에서까지 그들의 죄상이 밟혀졌지만, 그들은 죄의 대가를 받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알았지만, 힘없는 자들의 편에 서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잃고 싶어하지 않았다. 또, 오랫동안 자신들이 살아왔던 무진시가 불명예를 안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상처받은 아이들의 치유를 위해 그 모든 것들을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소설 속 아이들이 유린당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먹먹했고, 또 그 엄청난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결국 면죄부를 받았다는 것에 먹먹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먹먹했던 것은, 그 모든 것이 현실감이 떨어지는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자행되고 있는 현실 말이다.

   왜 하필 그녀는 무진시를 배경으로 설정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첫장만 읽고 책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오래 전에 읽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다시 펼쳐 들었다. 『도가니』를 읽으면서 무진시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뿌옇게 도시를 감싸고 있는 안개 때문에 그들은 진실을 바로 마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은폐하기도 쉽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또한 무진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불편하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제쯤이면 우리는 이 안개를 걷어버리고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가슴 속 먹먹함도 가실테지.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p165)


09-90. 『도가니』 2009/07/0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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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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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드는 촛불도 역사의 한복판이다!
   지난해 6월 대한민국을 열기로 가득 채웠던 촛불, 그 시작은 중고등학생들이었다. 한창 입시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 오죽 답답했을까. 그런데 정부는 자신들이 한 일은 까맣게 잊은 채 전교조 빨갱이들이 새빨간 교과서로 아이들을 버려놓아서(p.334) 그런거라며 배후를 찾아나섰다. 그리고 촛불의 열기가 사그라질 무렵, 정부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만들고 역사 특강을 실시했다.
   현재 고통 받고 있는 집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청년 실업자들이다. 우석훈이 짱돌을 들고 일어서자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그들은 아무도 토익책을 덮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이 두려워 광장으로 나가지 못하는걸까. 물론 나 또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 선수를 우리보다 한참이나 어린 중고등학생들에게 빼앗겨 버리기까지 했다. 두 집단 모두 독재에 맞서며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가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궁금했다. 
   그런데, 그 답을 친절하게도 정부가 알려줬다. 그들이 앞서 말한 것처럼 새빨간 교과서든, 아니면 새파란 교과서든 어쨌든 지금의 아이들은 현대사 교육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땠는가. 그나마 몇 장되지 않는 국사 교과서의 현대사 부분은 시험에 잘 나오지 않는다며 대충 훑어보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그런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기 어려운 판국에, 새빨갛고 새파란 이념 논쟁을 어찌 알겠는가. 덕분에 우리들은 동생들을 따라 나서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금 세대에게 이 한 몸 다 바쳐 운동하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그런 친구들도 아주 드물게 가끔씩 있기는 하겠죠. 그러나 대다수는 88만원 세대로서 취직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훨씬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죠. 그것은 민주화된 세상에서 당연하다고 봅니다. 다만 자기 이익만을 마음껏 추구하기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공동선을 함께 증진하는 방법을 찾고, 또 자기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대를 해야만 자기 이익을 실현할 수 있구나 깨달아야 하겠죠. (p.380)


꼭 짚어야 할 한국 현대사의 8가지 쟁점
   한홍구는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한겨레 21>에서 5년동안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그는 촛불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총 8회에 걸쳐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현대사 특강을 열었다. 그는 2008년 상황과 부합하는 8가지 쟁점을 골랐다. 그는 우리 현대사와 지금의 상황을 접목해 8가지 쟁점을 설명하고 있으며,또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1강은 최근 급부상한 뉴라이트와 역사 왜곡을 다루고 있다. 역사 왜곡은 일본이나 중국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론 국내 정세에 따라 정부 주도하에 역사가 바뀌기도 한다. 특히, 현재의 교과서는 좌편향적이라며 개편을 시도한 교과서 문제다 그러하다.
   2강에서는 간첩 조작 사건으로 얼룩졌던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과거 뻔히 보이는 함량 미달의 간첩을 조작하는데 대한민국 전체가 가담했다. 그들이 간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포상금 때문에 신고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말도 안되는 국가기밀 운운하며 증거 자료를 내놓는 검사가 있는가 하면 거기에 유죄 선고를 하는 재판부도 있었다.
   3강에서는 욕망의 정치가 불러온 공사 붐과 부동산 붐을 다루고 있다. 무서운 통치자가 아닌 인기 많은 통치자가 되고 싶었던 박정희 정권은 강남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강남을 개발하려면 일단 다리도 놔야하고, 도로도 만들어야 한다. 고급 아파트도 짓고, 명문 학교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시작한 토건 사업은 토목회사와 몇몇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워 주었고, 덕분에 특정 사람들은 그 덕을 보게 됐다. 독재의 산물인 토건 사업은 결국 악순환을 끊지 못하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4강은 헌법정신과 민영화를 다루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타나는 민영화 바람, 그들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공기업을 매각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민영화를 한다고 해서 효율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공기업은 헌법정신에 따라 효율성이 아닌 공공성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어떻게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두고 효율성만 따질 수 있겠는가.
   5강에서는 촛불의 도화선이 됐던 광우병 괴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터넷 종량제 괴담, 독도 포기 괴담, 정도전 예언 괴담, 민영화 괴담은 광우병 괴담과 함께 당시에 떠돌았던 5대 괴담이다. 이런 괴담이 생성되는 것은 언로가 막히고 정보가 유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생성되는 괴담을 무조건 막으려만 하지 말고 진정 국민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6강에서는 촛불 시위와 함께 다시 등장했던 경찰 폭력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시위대들이 먼저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에 진압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경찰 폭력의 역사는 오래된 것이다. 대부분의 정권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경찰의 힘을 빌렸다. 서비스 부문에서의 경찰 인력은 부족한데, 정작 간첩 잡으려고 만들었다는 보안과나 정보과는 필요하지도 않는데 없애지 않는다. 그는 경찰의 중립화와 경찰노조 설립을 주장하고 있다.
   7강에서는 사교육 공화국이 돼 버린 교육 현실을 다루고 있다. 어떤 이들은 신분 상승의 유일한 돌파구가 교육이라고 하지만, 교육 또한 계급 세습의 수단이 돼버린지 이미 오래다. 그는 참교육을 위해 뭉친 전교조가 외면 받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다시 처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전교조 또한 노조이니 선생님의 입장을 대변할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은 그래도 선생님들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8강은, 촛불과 한국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쟁취해서 얻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몸에는 이미 민주주의가 배어 있다. 그런데 지금와서 그것을 포기하고 살 수 있을까. 당연히 살 수 없다. 그러니 그 민주주의의 대가를 치르고 다음 5년을 위해 준비하라고 한다.

   민주주의는 절대로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비슷한 심정일 테고요. 그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여러분 스스로 해야 할 일들과 원칙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십시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4년입니다. 1년 동안 원칙을 찾고, 1년 정도 그 원칙에 합당한 사람을 찾고, 그 사람을 준비시키고, 경쟁을 시켜야 하는데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 많지 않은 시간 동안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각자 무엇을 준비하실지 여러분도 고민을 해주시면 하는 바람입니다. (p.391)

우리가 갈망하는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다! 준비하자!
   새빨갛든 새파랗든 무엇이든 알아야 한다. 설마 아직까지도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을 믿으며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TV 토론회에 나오는 논객들의 입담을 보며 감탄할 때가 아니다. 유시민은 지금의 민주주의는 우리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거저 얻은 것이니, 그것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고 했다. 한홍구 또한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 바로 민주주의고, 이 시대의 화두 또한 민주주의다. 
   앞으로 우리에겐 3여년의 시간이 남았다. 더이상 슬퍼하지도 화내지도 말자. 자포자기하지도 말자. 그의 말처럼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때다. 특히, 역동의 현대사를 경험하지도 배우지도 못한 우리 같은 세대들은 그것을 알아가는 것 또한 준비가 될 것이다.  

09-93. 『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2009/07/1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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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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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 헌법을 이렇게 알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지식소매상, 딱 어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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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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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얻은 민주주의는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뤄야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정치인은 잘나거나 못나거나 도토리 키재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딱히 지지하는 정당도 정치인도 없다. 유시민 교수*가 대구에서 출마했을 때 회사가 그곳에 있어서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또 대구에서 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생은 아니지만 그의 강의를 들을 기회도 있었다. 두 달 전, 맬서스의 『인구론』을 가지고 보수와 진보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었다. 사실 맬서스의 『인구론』은 누구나 알고 있는 고전이지만 누구나 읽을 수 없는 고전이기도 하다. 유시민 교수는 맬서스의 이론을 소개하고 그것을 어떻게 보수와 진보에 적용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아주 명쾌한 강의였다.
 (* 당시 강의에서도 유시민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대한 말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한번 관직에 오르면 그렇게 부르는 습성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혹은 전 의원이라고 불렀다. 그 중에 유시민씨라고 부르는 학생이 있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현재 그의 직업은 경북대학교 시간강사이니, 유시민 교수로 부르겠다.)

   나는 지식소매상이라는 직업에 대해 제법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 맛있는 음식으로 많은 고객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데서 기쁨을 얻는 맛집 주인처럼, 나도 재미있거나 유용한 지식을 많은 독자들과 나누어 가지는 데서 행복을 얻는다. (p.358)

   유시민 교수는 스스로를 '지식소매상'이라 부른다. 무언가에 대해 직접 연구하고 이론을 펼치는 사람도 훌륭하지만, 누군가의 이론을 알기 쉽게 풀이해주는 사람도 대단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그가 낸 『후불제 민주주의』는 우리 헌법에 대한 이야기다. 헌법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려워서 지레 겁을 먹기 마련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헌법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고민하지 않고 바로 선택하게 됐다.

   대한민국은 정부가 수립될 때부터 민주공화국이었다. 어떤 나라는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키고 왕의 목을 잘랐지만 우리는 그런 일을 한적이 없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우리나라를 통치하고 있던 일본이 패망하면서 우리는 우연찮게 그것을 얻게 됐다. 그러나 우리는 반만년 동안 왕이 통치하던 나라였다. 얼떨결에 민주주의를 얻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누리며 살아야 하는지를 몰랐다. 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예전처럼 왕이 되려했고, 국민 또한 대통령을 나라의 아버지로 여기며 모든 것을 맡기려 했다. 결국 과거의 왕처럼 군림하려는 자가 나타났고, 그제서야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알게 됐고 다시 찾으려 했다. 그때부터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후불제 민주주의'인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1부 헌법의 당위"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을 소개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국민들의 기본권도 함께 보장하고 있다. 이것 또한 어떠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은 '후불제 헌법'이다. 그래서 국가는 물론이고 국민들까지 헌법 전문을 제대로 읽어본 이가 드물다.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니 해석 또한 잘못할 수 밖에. 그는 1부에서 헌법 조항을 소개하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국민들이 누려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짚어주고 있다.
   "2부 권력의 실재"에서는 몇 년 동안 정치 및 공직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과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10년 전 처음 이 책을 기획했을 때는 헌법 판례를 소개하려고 했단다. 그런데 그 사이 정치를 하면서 직접 경험한 것도 생기고, 헌법을 적용하는 상황도 많이 바뀌어서 원래의 기획을 바꾸게 됐다고 한다. 2부에는 그의 정치적인 견해가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자신과 노무현 정부에 대한 변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애정도 있고, 비판도 함께 있다. 그는 이런 성향 때문에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서 미움을 받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적인 견해가 담긴 2부보다는 1부가 훨씬 유익했다.

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 나는 침묵했다 /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 나는 방관했다 /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 나와 함께 항의해줄 /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은 독일 시인 니묄러가 썼다고 알려진 시를 바꾼 것이다. 유시민 교수는 원래부터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악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선한 사람도 악한 상황과 악한 시스템을 만나면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단다. 그저 넋놓고 있다가는 우리가 얻은 선한 시스템인 민주주의를 놓쳐 버리는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얻은 민주주의를 온전히 누리려면 우리는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뤄야 할까.

09-91. 『후불제 민주주의』 2009/07/1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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