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동물기 - 전 세계 동물들의 자연생태기록
이와고 미쓰아키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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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즐거움과 경이로움이 함께 있는 동물의 세계를 엿보다!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세계 동물기』는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동물을 공유하기 위해서 읽었다. 늘 TV 대신 책에 빠져 있으니 이 책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보다 우리 가족이 이 책을 더 좋아한다. 물론 우리 집에는 펭귄을 뽀로리라 부를만큼 어린 사람이 없다. 다 큰 어른들이 동물들을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신기해하며 책장을 펼쳤다.  

   책이 어떤 식으로 구성돼 있는지 살펴보려고 책장의 가운데를 대충 펼쳐 들자마자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새끼 자이언트판다가 졸린지 하품을 하고 있는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사진을 보고 어느 누가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무엇이든 새끼는 다 귀엽다고 하지만, 이렇게 귀여우니 우리 가족이 동물을 좋아나보다. 그때서야 신기함이 긍정으로 바뀌었다.  

   『세계 동물기』는 일본의 사진 작가인 이와고 미쓰아키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담은 동물들의 자연생태기록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대부분이 쉽게 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수십년 동안 위험을 무릎쓰고 수많은 동물들의 사진을 찍었다. 과연 한 사람이 찍은 사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사진들도 있다.  

   이 책은 1년 365일동안 동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지내는지 각 날짜에 맞춰 사진들을 배열했다. 오늘, 그러니까 8월 16일에는 북극곰을 바라보고 있는 북극땅청서 사진이 있다. 사진 위주로 구성돼 있어서 어른뿐만이 아니라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나 같은 어른은 글이 적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사진을 찍으면서 겪었던 일화나 잘모르는 동물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세계 동물기』를 본 이후로 입체적인 동물을 보기 위해 동물원 나들이에 여념이 없다. 얼마전에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있는 동물원을 찾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기린은 커녕 그나마 있는 동물들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엉망인 상태였다. 아쉬웠다. 만약 입장료를 받더라도 충분히 지불할 의사가 있으니 사람들이 자주 찾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관리를 해줬으면 했다.

   그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어제는 대전까지 동물원 나들이를 갔다. 일단 이곳엔 기린도 있고 펭귄도 있었고, 책에서도 보지 못한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실제 동물이든 사진이든 천진난만한 동물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마냥 웃을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이 책을 펼쳐 보게 되리라. 그리고 자이언트판다의 사진을 보며 웃음 치료를 받겠지.  

09-111. 『세계 동물기』 2009/08/1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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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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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빨리 문 좀 열어주세요! 궁금해요!
   과거에는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포와로나 셜록 홈즈, 또는 코난이 등장해 범인을 밝혀냈다. 그런데 최근 쏟아져 나오는 추리소설들은 과거 추리소설들의 전형적인 전개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범인을 알려주지 않는가하면, 처음부터 범인을 공개하기도 한다. 이런 전개 방식은 과거의 그것보다 궁금증을 더 유발해서 앉은 자리에서 책 한권을 다 읽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추리소설 작가 가운데 한 명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과 함께 '본격미스터리 대상' 후보로 선정돼 마지막까지 1위를 다툰 작품이라고 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했지만, 이미 그 재미가 입증된 『용의자 X의 헌신』과 겨뤘다고 하지 않는가.
   이 책은 범인이 완벽한 밀실 살인 사건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잠시후면 사건의 현장이 공개되고, 형사들이 범인을 추적하게 될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친구들은 나타나야 할 시간에 친구가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방문이 완벽하게 잠겨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면서도 그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범인과 친구들은 오랫동안 방 안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만 한다. 완벽한 밀실에다가 사고사로 위장했기 때문에 사건 현장이 공개돼도 문제될게 없는데도 범인은 친구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다. 누군가에게 의심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그는 무엇 때문에 친한 후배를 죽였으며, 또 무엇 때문에 사건 현장이 늦게 공개되길 원하는 걸까?
   안타깝게도 작가는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킬뿐 도통 그 이유를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이제 곧 문이 열리고 이유도 밝혀질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읽자고 하던 것이 결국 끝까지 읽게 됐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단숨에 읽지 않고서는 못 참게 만든다. 다행히 이시모치 아사미는 히가시노 게이고만큼 잔인하지는 않다. 적어도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 이유를 모두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용의자 X의 헌신』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또한 범인과 그것을 알고자 하는 이의 두뇌 싸움이 재밌다. 두 작품에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있다. 왜 두 작품이 1위를 다퉜는지 이해된다.

09-109.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2009/08/1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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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2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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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의사는 백정의 아들이었다!
   우연찮게도 백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을 연이어 읽게 됐다. 임꺽정은 누구나 아는 백정이자 의적이다. 혹시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도 백정 출신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1908년 6월 우리나라 최초로 면허를 받은 의사 7명이 배출됐는데, 그 가운데 백정 집안 출신의 박서양이 있었다. 『제중원』은 박서양을 모델로 해서 백정 출신인 주인공 황정이 의사가 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기원 작가는 드라마 〈하얀 거탑〉의 일본 원작을 각색하면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을 조사하던 중 '제중원'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일본은 '난학'이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에서 의학을 받아 들였지만 우리나라는 선교사 알렌에 의해 미국식 의학을 들여왔다. 그 출발점이 다른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 일본은 서양식 의술을 받아들일 것을 우리에게 요구했다. 그들의 요구처럼 앞선 의술을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왕과 왕실은 물론이고 백성의 목숨까지 일본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서 고종은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그 자리에 있던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이 온몸에 자상을 입고 실려온다. 미국 선교사 알렌은 서양식 의술로 민영익을 살려냈고, 그것을 계기로 고종은 '제중원'을 설립하게 된다.

   고종은 서양식 병원의 이름을 '널리 은덕을 베푸는 집'이라는 뜻의 '광혜원'으로 지었지만, '만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제중원'으로 바꿨다. 그만큼 고종이 백성을 생각했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백성들의 생각은 달랐다. 양의가 온몸을 만지고 칼로 자르고 꿰매는 서양식 의술을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또 병원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의학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피 냄새조차 참을 수 없었고, 남녀 환자를 불문하고 보살필 여자 간호사를 찾기도 어려웠다. 황정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알렌의 의학 조수로 들어갔다. 그는 알렌이 감탄할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의술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인술 또한 좋았다. 그러나 그는 백정이었고, 신분이 밝혀지자 처형에 처해졌다. 참으로 답답했다. 황정이 그토록 출중한 실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백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피 비린내에 익숙했고, 소를 도살하면서 그 속을 자주 봤던 터라 인간의 장기에도 익숙했다. 그런데 단지 백정이라는 이유로 의생 자격이 박탈당하고 죽임까지 당해야 하다니. 답답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다 죽어가던 대가집 딸을 살려놨더니 오히려 능욕을 당했다며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기까지 한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머리로는 이해 됐지만, 가슴 속 답답함까지 풀리지는 않았다.
   다행히 '제중원'은 백성을 사랑하는 고종이 뒷받침하고 있다. 난 『제중원』에서 그 어느 소설에서보다 강단있고 백성을 사랑하는 고종을 만났다. 그는 백성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신분의 벽쯤은 문제삼지 않았다. 고종은 실력있는 조선인 의사가 단지 백정이라는 이유로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그를 구하려고 한다. 또 면천을 시켜주고 성과 이름을 하사하며 다시는 그가 신분 때문에 의술을 펼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준다. 덕분에 황정은 의사 면허를 받고 마음껏 의술을 펼칠 수 있게 된다. 가축 잡는 백정 출신이지만 그 누구보다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컸던 황정, 그의 그런 마음이 사람들에게 번져나가고 급기야는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던 라이벌까지 그의 편이 되게 한다.

   『제중원』은 단순히 백정이 신분의 벽을 뚫고 의사로 성공하는 성공스토리가 아니다. 진짜 의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진정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대의(大醫)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드라마로 제작될 것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라 전개가 빠르고 캐릭터들이 살아있다. 11월에 방영 예정인 드라마가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09-106. 『제중원』 2009/08/1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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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1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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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의사는 백정의 아들이었다!
   우연찮게도 백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을 연이어 읽게 됐다. 임꺽정은 누구나 아는 백정이자 의적이다. 혹시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도 백정 출신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1908년 6월 우리나라 최초로 면허를 받은 의사 7명이 배출됐는데, 그 가운데 백정 집안 출신의 박서양이 있었다. 『제중원』은 박서양을 모델로 해서 백정 출신인 주인공 황정이 의사가 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기원 작가는 드라마 〈하얀 거탑〉의 일본 원작을 각색하면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을 조사하던 중 '제중원'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일본은 '난학'이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에서 의학을 받아 들였지만 우리나라는 선교사 알렌에 의해 미국식 의학을 들여왔다. 그 출발점이 다른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 일본은 서양식 의술을 받아들일 것을 우리에게 요구했다. 그들의 요구처럼 앞선 의술을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왕과 왕실은 물론이고 백성의 목숨까지 일본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서 고종은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그 자리에 있던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이 온몸에 자상을 입고 실려온다. 미국 선교사 알렌은 서양식 의술로 민영익을 살려냈고, 그것을 계기로 고종은 '제중원'을 설립하게 된다.

   고종은 서양식 병원의 이름을 '널리 은덕을 베푸는 집'이라는 뜻의 '광혜원'으로 지었지만, '만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제중원'으로 바꿨다. 그만큼 고종이 백성을 생각했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백성들의 생각은 달랐다. 양의가 온몸을 만지고 칼로 자르고 꿰매는 서양식 의술을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또 병원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의학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피 냄새조차 참을 수 없었고, 남녀 환자를 불문하고 보살필 여자 간호사를 찾기도 어려웠다. 황정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알렌의 의학 조수로 들어갔다. 그는 알렌이 감탄할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의술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인술 또한 좋았다. 그러나 그는 백정이었고, 신분이 밝혀지자 처형에 처해졌다. 참으로 답답했다. 황정이 그토록 출중한 실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백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피 비린내에 익숙했고, 소를 도살하면서 그 속을 자주 봤던 터라 인간의 장기에도 익숙했다. 그런데 단지 백정이라는 이유로 의생 자격이 박탈당하고 죽임까지 당해야 하다니. 답답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다 죽어가던 대가집 딸을 살려놨더니 오히려 능욕을 당했다며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기까지 한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머리로는 이해 됐지만, 가슴 속 답답함까지 풀리지는 않았다.
   다행히 '제중원'은 백성을 사랑하는 고종이 뒷받침하고 있다. 난 『제중원』에서 그 어느 소설에서보다 강단있고 백성을 사랑하는 고종을 만났다. 그는 백성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신분의 벽쯤은 문제삼지 않았다. 고종은 실력있는 조선인 의사가 단지 백정이라는 이유로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그를 구하려고 한다. 또 면천을 시켜주고 성과 이름을 하사하며 다시는 그가 신분 때문에 의술을 펼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준다. 덕분에 황정은 의사 면허를 받고 마음껏 의술을 펼칠 수 있게 된다. 가축 잡는 백정 출신이지만 그 누구보다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컸던 황정, 그의 그런 마음이 사람들에게 번져나가고 급기야는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던 라이벌까지 그의 편이 되게 한다.

   『제중원』은 단순히 백정이 신분의 벽을 뚫고 의사로 성공하는 성공스토리가 아니다. 진짜 의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진정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대의(大醫)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드라마로 제작될 것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라 전개가 빠르고 캐릭터들이 살아있다. 11월에 방영 예정인 드라마가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09-106. 『제중원』 2009/08/1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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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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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은 그녀가 유일하게 떨쳐낼 수 없었던 것!
   고종에게 매일 커피를 올리는 여자,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이야기를 담은 『노서아 가비』. 이 한 문장을 읽고 나는 『리심』을 떠올렸다. 리심은 조선 최초로 파리까지 건너간 궁중 무희였고, 고종의 총애를 받았던 왕의 여자였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김탁환 작가의 최근작들은 이전 작품에 비하면 뭔가 아쉬움이 남았고 특히 『리심』에서는 여성의 심리 묘사가 약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어쩔 수 없이 망설이게 됐다.
   먼저 읽은 다른 독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은 "빠른 전개"였다. 과연 그랬다. 마치 런타임 100분짜리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사건이 빠르게 전개됐다. 그동안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단권보다는 여러 권 분량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그의 작품들과 달리 사건 전개가 빠를 수 밖에 없다. 그 덕분에 쓸데없이 늘어지기만 하는 묘사가 없다. 참 깔끔하다.

   '따냐'는 역관의 외동딸로, 아버지는 따냐에게 러시아말을 가르치고 함께 커피를 즐겼다. 그랬던 아버지가 나랏물건을 빼돌린 죄로 목이 매다리자 러시아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따냐는 러시아의 숲을 파는 사기단에 들어가게 되고, 같은 조선인인 이반을 만나 다시 조선으로 건너온다. 그녀가 사랑한 이반은 사기꾼이다. 세 치 혀로 고종의 곁에서 일하게 된 이반, 마찬가지로 그 덕분에 고종에게 커피를 올리게 되는 따냐. 명성황후가 살아 있을 때는 고종 곁에 리심이 있었고, 명성황후가 죽고 불안함과 외로움에 떨고 있던 고종 곁에는 따냐가 있었다. 고종은 따냐가 올리는 '노서아 가비'를 마시는 동안만큼은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고 싶어했다. 지금의 우리들처럼.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따냐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녀는 여느 주인공과 달리 발랄한 캐릭터다. 대담하게 사기를 치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설혹 그것이 사랑이더라도, 그 상대가 절대 권력자라도 말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더이상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겠다고 한 그녀 역시 한가지는 집착한다. 절대 커피향은 잊지 못한다는 것.

   출간 즉시 영화 제작이 결정됐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작품 같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군더더기 묘사가 없어서 영화로 만든다면 감독이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상상력을 발휘해 그려본 이야기의 배경은 푸르르고 따스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나름의 가상 캐스팅도 해봤다. 저 배경에 누굴 세우면 가장 어울릴까. 그동안 영화 제작이 결정됐음에도 제작 여건이 어려워 완성작을 내놓지 못한 작품들이 많다. 이번에는 부디 영화로도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09-105. 『노서아 가비』 2009/08/0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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