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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1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조선 최초의 의사는 백정의 아들이었다!
우연찮게도 백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을 연이어 읽게 됐다. 임꺽정은 누구나 아는 백정이자 의적이다. 혹시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도 백정 출신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1908년 6월 우리나라 최초로 면허를 받은 의사 7명이 배출됐는데, 그 가운데 백정 집안 출신의 박서양이 있었다. 『제중원』은 박서양을 모델로 해서 백정 출신인 주인공 황정이 의사가 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기원 작가는 드라마 〈하얀 거탑〉의 일본 원작을 각색하면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을 조사하던 중 '제중원'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일본은 '난학'이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에서 의학을 받아 들였지만 우리나라는 선교사 알렌에 의해 미국식 의학을 들여왔다. 그 출발점이 다른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 일본은 서양식 의술을 받아들일 것을 우리에게 요구했다. 그들의 요구처럼 앞선 의술을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왕과 왕실은 물론이고 백성의 목숨까지 일본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서 고종은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그 자리에 있던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이 온몸에 자상을 입고 실려온다. 미국 선교사 알렌은 서양식 의술로 민영익을 살려냈고, 그것을 계기로 고종은 '제중원'을 설립하게 된다.
고종은 서양식 병원의 이름을 '널리 은덕을 베푸는 집'이라는 뜻의 '광혜원'으로 지었지만, '만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제중원'으로 바꿨다. 그만큼 고종이 백성을 생각했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백성들의 생각은 달랐다. 양의가 온몸을 만지고 칼로 자르고 꿰매는 서양식 의술을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또 병원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의학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피 냄새조차 참을 수 없었고, 남녀 환자를 불문하고 보살필 여자 간호사를 찾기도 어려웠다. 황정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알렌의 의학 조수로 들어갔다. 그는 알렌이 감탄할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의술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인술 또한 좋았다. 그러나 그는 백정이었고, 신분이 밝혀지자 처형에 처해졌다. 참으로 답답했다. 황정이 그토록 출중한 실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백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피 비린내에 익숙했고, 소를 도살하면서 그 속을 자주 봤던 터라 인간의 장기에도 익숙했다. 그런데 단지 백정이라는 이유로 의생 자격이 박탈당하고 죽임까지 당해야 하다니. 답답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다 죽어가던 대가집 딸을 살려놨더니 오히려 능욕을 당했다며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기까지 한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머리로는 이해 됐지만, 가슴 속 답답함까지 풀리지는 않았다.
다행히 '제중원'은 백성을 사랑하는 고종이 뒷받침하고 있다. 난 『제중원』에서 그 어느 소설에서보다 강단있고 백성을 사랑하는 고종을 만났다. 그는 백성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신분의 벽쯤은 문제삼지 않았다. 고종은 실력있는 조선인 의사가 단지 백정이라는 이유로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그를 구하려고 한다. 또 면천을 시켜주고 성과 이름을 하사하며 다시는 그가 신분 때문에 의술을 펼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준다. 덕분에 황정은 의사 면허를 받고 마음껏 의술을 펼칠 수 있게 된다. 가축 잡는 백정 출신이지만 그 누구보다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컸던 황정, 그의 그런 마음이 사람들에게 번져나가고 급기야는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던 라이벌까지 그의 편이 되게 한다.
『제중원』은 단순히 백정이 신분의 벽을 뚫고 의사로 성공하는 성공스토리가 아니다. 진짜 의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진정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대의(大醫)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드라마로 제작될 것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라 전개가 빠르고 캐릭터들이 살아있다. 11월에 방영 예정인 드라마가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09-106. 『제중원』 2009/08/11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