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번지는 곳 불가리아 In the Blue 3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도비쥐다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때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며 유럽을 긴장시켰던 발칸 반도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외부 세력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다. 이 발칸반도에 장미의 나라 '불가리아'가 있다. 사실 불가리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없다. 장미와 요구르트로 유명하다는 것 밖에 알지 못했다. 그 나라가 정확하게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모른채 『사랑이 번지는 곳, 불가리아』라는 제목을 접하자 더 신비롭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불가리아는 루마니아, 세르비아, 그리스, 터키 등의 나라로 둘러싸여 있으며 500년간 오스만투르크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1908년에서야 불가리아 왕국으로 독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산정권이 수립됐지만 동유럽의 민주화 바람을 타고 1991년 지금의 불가리아 공화국이 탄생했다. 불가리아어와 키릴 문자를 사용하며 국민의 80% 이상이 불가리아 정교회를 믿는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곳은 수도 소피아와 릴라 수도원, 옛 수도 벨리꼬 투르노보, 플로브디프 네 곳이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은 '소피아(Sofia)'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불가리아의 수도다. 장미향 솔솔 풍기는 예쁜 아가씨를 연상시키는 '소피아'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로 '지혜'를 뜻한다고 한다. 소피아는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오랫동안 외부 세력의 지배를 받고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유적 보존 상태가 잘 돼 있는 편이다.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둥근 지붕 모양의 건출물들. 저자는 현지인들이 한결같이 친절해서 반했다고 했는데, 어쩌면 저 둥글둥글한 지붕은 그네들의 성격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국립 미술관이었다. 자세히 보면 굴뚝과 굴뚝 사이에 오선지가 펼쳐져 있고 그 오선지 위에는 음표들이 걸려 있다. 그 음표들을 따라 흥얼거리다 보면 그것이 베토벤의 <합창> 앞소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토벤의 고향은 독일인데, 이곳과 베토벤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오선지를 그려넣은 디자이너의 개인적인 취향인지 궁금했다. 언젠가 가게 되면 꼭 물어보리라.

   다음으로 등장하는 곳은 '릴라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10세기에 세원진 발칸반도 최대의 수도원으로, 오스만투르크의 지배 아래서 유일하게 종교 및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본거지라고 한다. 당시 오스만투르크는 불가리아를 지배하기 위해 기독교를 금하고 불가리아어로 된 서적을 읽는 것조차 제한했지만, 이곳에서만은 예외였다고 한다. 한때 우리도 우리의 말과 문자를 사용할 수 없을만큼 핍박을 받았었는데, 우리에게도 분명 이런 곳이 있었을 것이다. 너무 멀리 있어서 미지의 나라로 여겨졌던 불가리아의 숨은 사연을 듣고 나니 심적으로는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릴라산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수도원은 세상과 단절하고 오직 수행에만 몰두하는 수도승들로 넘쳐 났다고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한 이 곳, 아쉽게도 지진과 화재로 소멸될 뻔한 것을 몇 번의 복구와 재건으로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이 곳을 복원하기 위해 전국의 수많은 화가들이 힘을 합했다고 하니, 수도원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과 수도원을 덮고 있는 색채들이 다채로울 수 밖에.

   세 번째로 소개된 옛 불가리아 왕국의 수도 '벨리꼬 투르노보'는 내 두 눈을 사롲 잡았다.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이곳은 '불가리아의 아테네'로 불리기도 했단다. 
   마치 마을의 배치가 남해의 다랭이 마을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마을. 키재기를 하는 듯 하늘을 향해 예쁜 지붕을 뽐내고 있는 이곳은 언덕 위에 만들어진 마을로, 언덕 아래로는 얀트라 강이 흐르고 있고 푸른 숲이 우거져 있다. 그 뒤로 차르베츠 성이 보인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마을을 만들 수가 있었을까. 골목 골목을 걸어다니고 싶었고, 이 예쁜 마을에서 하룻밤쯤 머물고 싶기도 했다.
   경주 안압지의 야경처럼 밤이 되면 차르베츠 성은 예쁜 조명들로 휘감긴다. 특히, 차르베츠 성 아래로 흐로고 있는 강에 그 모습이 비춰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여행자 30명이 돈을 내야 멋진 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돈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30명분의 돈을 혼자서 다 내고라도 꼭 보고 싶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있는 곳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플로브디프'다. 이곳은 불가리아 제2의 도시로 거리 곳곳에 각 시대의 영향을 받은 건출물과 유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름도 예쁜 갈맷빛 언덕 위로 올라가면 빨간 지붕의 옛마을 너머로 빌딩숲들이 보인다. 예쁜 마을들과 오래된 건출물들만 보여서 현재의 시가 모습이 궁금했는데, 우리의 도시와 별반 다를게 없어 보였다. 아마 전주에 가면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갈한 한옥 마을 너머로 쏟아난 아파트와 빌딩숲 말이다.

    마치 동화 속 나라같은 불가리아. 향긋한 장미향이 솔솔 풍겨오고, 이렇게 예쁜 풍광이 펼쳐지는데 이곳에서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느새 나는 이곳을 사랑하게 돼버렸다.

10-093. 『사랑이 번지는 곳, 불가리아』 2010/08/17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팬이야 (양장)
전아리 지음, 안태영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확실한 삶'의 범주를 찾는 방법!
   작가 전아리의 이름 앞에는 참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중고교 시절부터 많은 문학상들을 받아온 그녀, 과히 천재소녀라는 수식어가 어울릴만큼 어린 나이에도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20대 그녀들의 이야기. '또래'라는 어드밴티지를 갖고 있는 전아리만큼 이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는 작가가 있을까? 광고 문구처럼 '거침없이 성장한 문학천재'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팬이야』는 뒤늦게 10대 아이돌에게 푹 빠진 스물아홉살의 '그녀'이야기다. '그녀' 김정운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계약직 사원으로, 회사에서는 심부름이 주업무이며 늘 튀지 않고 조용히 뭉어가려고 애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녀의 생일날, 회사에서는 축하는 커녕 핀잔만 들었고 얼마전에 만난 멋진 남자친구는 자신이 애 딸린 유부남이라 선언한다. 평범하다 못해 그 평범함에 완전히 매몰돼 있던 그녀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우연히 갔던 마트에서 경품행사에 당첨돼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아이돌 그룹 시리우스의 멤버들과 포옹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경품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실망했던 그녀, 그런데 그날 이후 그녀는 시리우스의 열혈 팬으로 거듭난다.
   늘 '확실하게' 하지 못한다는 핀잔을 들어왔던 그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늘 짝사랑만 해왔던 그녀,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고 놀림거리가 돼도 화는 커녕 오히려 숨죽이고 살았던 그녀. 사람들은 뒤늦게 아이돌 그룹에 푹 빠진 그녀를 한심하다는 듯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아이돌 그룹을 따라다니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명한 행동이다.

   전아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녀보다 이 이야기를 더 잘 쓸 수 있는 작가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이야기 속 사람들의 말투였다. 요즘 아이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거친 표현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속어나 욕설을 사용하지 않으면 마치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냥 거침없이 내뿜는 아이들. 그녀의 글이 그랬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들과 똑같은 말투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또 '확실한 삶'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라는 것은 신선해서 좋았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전혀 신선하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TV를 켜면 흔하다. 아직까지 그녀는 '문학천재'로 성장하지 못한 '천재소녀'일 뿐이다.

10-094. 『팬이야』 2010/08/17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냥 사랑할 수 없었던 그들이 참 답답하면서도 안타깝더라구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국 '우리'라는 청춘들은 이 시대적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지난해 봄, 『엄마를 부탁해』 100만부 돌파를 기념해 신경숙 작가의 강연회가 열렸다. 그때 준비 중인 연재소설에 대해 잠시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연재소설을 쓰기 위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 9시까지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고 했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려면 그 전날 9시쯤에는 잠이 들어야 하는데, 강연 전날엔 밤늦도록 지인들과 함께 하느라 조금 피곤하다는 말까지 전했다. 그렇게 쓴 소설이 바로 이 책이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2009년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알라딘에서 연재됐던 작품을 단행본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초여름까지 다시 고쳐 쓴 것이다. 그녀는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90년대 이후엔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청년기의 사랑의 열병과 성장통을 대변하는 것을 보며 뭔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어를 쓰는 작가로서 우리말로 씌어진 아름답고 품격 있는 청춘소설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내가 지금 쓰려는 소설이 그런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지금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 영혼들의 노트를 들여다보듯 그들 마음 가까이 가보려고 합니다."(p.374)  
   

 

   한국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나 그것이 불만이었다. 성장소설, 역사소설, 어떤 사상이나 시대를 반영하는 소설은 많지만 순수하게 청춘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소설 속 청춘남녀들은 질펀하게 연애를 하거나 자신의 청춘을 다바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됐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20대 청춘들을 바라보고, 또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은 매일 시위가 벌어졌던 시대에 대학생이 된 윤, 명서, 미루, 단, 이 네 청춘남녀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그 시대를 살아내는 방법이 조금씩 달랐고, 저마다 견뎌내야 하는 고통의 질감도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래서 모두가 함께일 때 가장 행복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서로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해주지는 않았다. 한 광고 카피처럼 그냥 서로 사랑하게 놔두면 안되었을까? 사랑하는 누군가의 실종과 연이은 자살, 그리고 자연사. 작가는 네 청춘들을 끊임없는 상실과 고통 속으로 떠민다.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 미루와 단은 자살을 선택했고, 그것을 지켜봤던 윤과 명서는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했지만 또다시 뒤따라올 상실의 두려움 때문에 더이상 다가가지 못한다.  

   시간이 흐른 뒤, 자신보다 더 어린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 윤은 지금의 이십대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함꼐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잊.지.말.자, 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p,365)

 
   

   주인공들이 자주 했던 말이다. 그들은 즐겁거나 행복한 일이 있으면 서로에게 "오늘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자신을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 "내가 그쪽으로 갈게"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내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물론이고,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쭉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괜히 마음 한 켠이 씁쓸해졌다. 난 그 수많은 이십대의 나날들을 무얼하며 지냈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그녀의 말처럼 누군가 그렇게 다가와주길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어야 하는건데, 다가오는 사람마저 밀쳐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었다.

   작가의 말처럼 난 그저 아름답고 품격 있는 청춘소설을 읽길 원했는데, 그들에게 이런 아픔을 심어준 작가가 조금 밉다. 결국 '우리'라는 청춘들은 이 시대가 가져다 준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청춘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은 답답했고, 조금은 속상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녀의 문장은 여전히 아름답고 품격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문장은 나지막하면서도 마음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엄마를 부탁해』처럼 가슴 한켠이 떨어져 나갈듯한 울컥함은 없었지만, 마치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 때문에 호수 위에 서서히 파문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랬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소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아마 나였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속상했었나보다. 그게 바로 나의 모습, 우리들의 모습이니까.

10-095.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2010/08/18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 사이언스 클래식 16
칼 세이건 지음, 박중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의 존재와 종교의 역할에 대한 명쾌한 과학적 탐구! 

   과학자 칼 세이건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과학을 이용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길 원했다. 그래서 『코스모스』와 같은 책을 쓰고 대중들 앞에서 강연도 자주 하며, 대중들이 과학과 친해질 수 있도록 했다.
   『과학적 다양성』은 1985년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열린 칼 세이건의 기퍼드 강연을 정리한 책으로, 그는 아홉 차례의 강연을 통해 종교와 신에 대한 그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종교의 역할 혹은 기능을 부정하거나 비난하지는 않는다. 종교의 장점이나 기능을 인정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런 측면에서 종교가 활약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종교가 종교의 영역을 벗어나는 영역에서 월권 행위를 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한다. 그는 종교의 영역을 벗어난 영역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증거와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종교의 월권 행위는, 흔히 우리들이 종교에 대해서 가지는 의구심과 관련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서양의 종교에서 주장하는 하느님이 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조설, 이 세계를 심판하거나 구원할 하느님이 재한다거나 어떤 종교적인 현상을 목격하거나 체험했다는 주장 등이 바로 그것이다. 혹자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게 아니라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부정도 못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칼 세이건은 종교가 혹은 유신론자들이 하느님이 해왔다고 주장하는 업적(!)들을 과학적 증거들을 제시하며 반박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그런 것들은 과학의 영역이니, 종교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들을 들먹이며 대중들을 유혹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스터 섬의 거석상이나 버뮤다 삼각지 등에서 발견되는 미스테리한 사건들과 외계생명체에 대한 언급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현상과 외계생명체를 목격하거나 경험했다고 하지만,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어떤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한다. 또 그런 것들의 대부분은 조작이거나 이미 과학적으로 밟혀진 것들도 많다. 
   이미 수 십 년 전에 한 사람이 이스터 섬에 가서 소규모 팀과 가장 간단한 도구만을 이용해 완성되지 않고 누워있던 거석상들 가운데 하나를 직접 운반하고 세워 보기도 했으며, 버뮤다 삼각지에서 발생하는 실종이 비슷한 날씨와 환경에 있는 다른 장소에서의 실종보다 결코 많지 않다는 것도 통계적으로 밟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물며 매체들도 여전히 그런 사건들을 미스테리한 것으로 여기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인간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보고 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보다는 미스테리한 것이 더 흥미로운 일이니까. 

   한편, 강연 곳곳에서 대량 살상 무기와 핵전쟁에 대한 칼 세이건의 우려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수십 억 혹은 수백 억년에 걸쳐 진화해 온 우리 인간이 한 순간에 스스로를 파괴하려 한다고 하면서, 느긋하게 해결책을 찾을 시간이 없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발휘될 수 있는 종교의 역할을 언급하기도 한다. 
   우리 인간은 굳이 하느님의 존재가 없더라도 충분히 경건해지고 겸손해 질 수 있다. 그것은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우주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알게 되고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게 된다면 스스로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는 우리의 시야를 넓힌다면, 스스로를 지금보다 더 잘 이애할 수 있을거라 말한다.  

   꽤 오랫동안 내게도 종교가 있었지만, 과학 교육을 받으면서 더이상 종교를 믿지 않게 됐고 무수한 의구심만 품게 됐다. 이 책은 그런 의구심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은 대부분 어렵고 골치 아프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의 과학은 쉽다. 게다가 강연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라 쉽게 읽히기도 하면서 곳곳에서 그의 재치를 확인할 수 있다. 
   나처럼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각 강연 때마다 주고 받았던 질문과 그의 답이 함께 실려 있다. 혹시 그의 강연을 읽으면서 그에게 반박하고 싶거나 '그래도 신은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꼭 찾아보길.

10-077.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2010/08/04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