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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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라는 청춘들은 이 시대적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지난해 봄, 『엄마를 부탁해』 100만부 돌파를 기념해 신경숙 작가의 강연회가 열렸다. 그때 준비 중인 연재소설에 대해 잠시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연재소설을 쓰기 위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 9시까지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고 했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려면 그 전날 9시쯤에는 잠이 들어야 하는데, 강연 전날엔 밤늦도록 지인들과 함께 하느라 조금 피곤하다는 말까지 전했다. 그렇게 쓴 소설이 바로 이 책이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2009년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알라딘에서 연재됐던 작품을 단행본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초여름까지 다시 고쳐 쓴 것이다. 그녀는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90년대 이후엔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청년기의 사랑의 열병과 성장통을 대변하는 것을 보며 뭔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어를 쓰는 작가로서 우리말로 씌어진 아름답고 품격 있는 청춘소설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내가 지금 쓰려는 소설이 그런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지금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 영혼들의 노트를 들여다보듯 그들 마음 가까이 가보려고 합니다."(p.374)  
   

 

   한국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나 그것이 불만이었다. 성장소설, 역사소설, 어떤 사상이나 시대를 반영하는 소설은 많지만 순수하게 청춘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소설 속 청춘남녀들은 질펀하게 연애를 하거나 자신의 청춘을 다바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됐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20대 청춘들을 바라보고, 또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은 매일 시위가 벌어졌던 시대에 대학생이 된 윤, 명서, 미루, 단, 이 네 청춘남녀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그 시대를 살아내는 방법이 조금씩 달랐고, 저마다 견뎌내야 하는 고통의 질감도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래서 모두가 함께일 때 가장 행복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서로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해주지는 않았다. 한 광고 카피처럼 그냥 서로 사랑하게 놔두면 안되었을까? 사랑하는 누군가의 실종과 연이은 자살, 그리고 자연사. 작가는 네 청춘들을 끊임없는 상실과 고통 속으로 떠민다.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 미루와 단은 자살을 선택했고, 그것을 지켜봤던 윤과 명서는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했지만 또다시 뒤따라올 상실의 두려움 때문에 더이상 다가가지 못한다.  

   시간이 흐른 뒤, 자신보다 더 어린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 윤은 지금의 이십대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함꼐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잊.지.말.자, 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p,365)

 
   

   주인공들이 자주 했던 말이다. 그들은 즐겁거나 행복한 일이 있으면 서로에게 "오늘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자신을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 "내가 그쪽으로 갈게"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내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물론이고,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쭉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괜히 마음 한 켠이 씁쓸해졌다. 난 그 수많은 이십대의 나날들을 무얼하며 지냈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그녀의 말처럼 누군가 그렇게 다가와주길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어야 하는건데, 다가오는 사람마저 밀쳐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었다.

   작가의 말처럼 난 그저 아름답고 품격 있는 청춘소설을 읽길 원했는데, 그들에게 이런 아픔을 심어준 작가가 조금 밉다. 결국 '우리'라는 청춘들은 이 시대가 가져다 준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청춘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은 답답했고, 조금은 속상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녀의 문장은 여전히 아름답고 품격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문장은 나지막하면서도 마음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엄마를 부탁해』처럼 가슴 한켠이 떨어져 나갈듯한 울컥함은 없었지만, 마치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 때문에 호수 위에 서서히 파문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랬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소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아마 나였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속상했었나보다. 그게 바로 나의 모습, 우리들의 모습이니까.

10-095.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2010/08/1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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