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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이야기 - 독서중독을 일으키는 진짜 벌레들의 유쾌한 반란
스티븐 영 지음, 우스이 유우지 엮음, 장윤선 옮김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당신이 지금 이 텍스트를 읽고 있는 이유도 책벌레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흔히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책벌레'라고 한다. 나 또한 그 수많은 '책벌레' 중 하나일테고. 보통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책에 끌리기 마련이다. 제목에 혹해서 차례를 살펴봤더니, 차례는 더 매력적인 이 책. 어찌 읽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저 책이 좋아서 스스로 '책벌레'가 된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책을 좋아하는 '책벌레'가 된 이유는, 진짜 '책벌레(bookworm)'에 감염됐기 때문이란다. 이 책벌레는 워낙 크기가 작기 때문에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사람들은 그저 책이 좋아서 그런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벌레는 책을 갉아먹는 작은 해충인 좀벌레(silverfish)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책벌레는 책을 사랑하여 절대 책을 먹어치우지 않는다. 또, 어떤 종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화해 온 생명체이며 아직까지는 이런 저런 설들이 많은 벌레이다. 혹자들은 이 책벌레를 무생물이라 주장하기도 하며, 한번 감염되면 완치가 불가능해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벌레를 절대 미워해서도, 절대 멸종 되어서도 안되는 이유를 지금부터 알려 주겠다.
책벌레는 종류는 대략 257종 정도로, 종류가 다양한 만큼 감염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나 감염 경로도 아주 다양하다. 책벌레는 크게 읽기벌레와 쓰기벌레로 나누는데, 여기서 책벌레의 생태나 증상에 따라 다양한 책벌레로 가지치기를 한다.
꾸준히 읽는 성실읽기벌레가 읽는가 하면 장편만 골라 읽는 슈퍼장편읽기벌레도 있다.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천천히읽기벌레에 감염돼 천천히 읽으면서 오탈자만 쏙쏙 발견해 내는 오탈자발견증후군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독서습관에 따라 책모서리접기증후군, 밑줄긋기증후군도 있으며 읽지는 않고 구입하는데서 즐거움을 찾는 수집증후군, 전집구입벌레, 중고책구입버레, 전자책구입벌레 등도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이 중 문제가 되는 증후군 중 하나가 바로 한 작가에게만 너무 빠져 급기야는 스토킹까지 하는 작가스토킹증후군이 있다.
읽기벌레 보다 훨씬 더 많은 개체수를 가진 것이 쓰기벌레인데, 읽기벌레보다 문제가 많은 벌레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일기장이든 블로그든 어디든 기록을 남겨야 하는 일기쓰기벌레가 있는데, 이 벌레에 감염되면 자기역사쓰기증후군을 보이거나 자기가 쓴 것을 무조건 출판해야 하는 자비출판증후군을 보이기도 한다. 소설쓰기벌레에 감염되면 재능이 없으면서도 평생 소설을 쓴다고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고, 반대로 그런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독설을 내뿜기도 한다.
문제적 책벌레도 있긴 하지만, 결국 감염됐을 때 우리에게 유익한 점이 많은 것이 책벌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이 책벌레의 개체 수가 줄어 들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벌레를 사육하기도 한다는데, 책벌레 사육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직접 책을 읽는 것이고 최고 단계는 자신이 읽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다양한 책벌레에 감염되어 여러 증후군을 보이고 있지만, 결국은 재미있게 읽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 주는 바람직한 사육자인 셈이다.
만일 천적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라는 것이 이 책의 관점이다. "그들의 생활환경이나 번식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명확히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오직 인간만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책의 감소, 책에게 보내는 인간의 따뜻한 시선의 감소, 환경오염(환경호르몬에 의해 책벌레가 약해져가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등은 모두 인간이 일으킨 현상이다. 이 책에서는 책벌레의 천적은 사실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세상에 던져보고자 한다. (p.44)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스티븐 영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필명이다. 엮은이에 따르면, 버펄로 스프링필드라는 록밴드가 있었는데 그 멤버의 이름이 스티븐 스틸스와 닐 영이었고, 스티븐 영은 그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 동명의 작가가 있다는데, 스티븐 영이라는 필명의 작가는 록음악을 좋아하는 한 작가인 걸로 추측해 본다.
발견 당시 우리는 책벌레를 공포의 대상으로만 보았다. 그러나 그런 오해는 책벌레를 소외시키고 궁지에 몰 뿐이었다. 책벌레들은 지금 인간의 뜨거운 시선과 많은 책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책벌레들과의 따뜻한 교류를 위한 안내서이면서 책에 빠져드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다. 인간과 책벌레와의 교류는 막 시작되었다. (p.48)
『책벌레 이야기』의 분류는 에세이로 되어 있는데, 재치 있는 상상력도 발휘되고 있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어떤 벌레에 감염되었는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스스로 진단하면서 보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