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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ㅣ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평점 :
평균 나이 70대 꽃할배는 가라! 흔치 않은 100세 노인이 있다!
자신의 100번째 생일날, 양로원 창문 너머로 도망친 노인이 있습니다. 모두들 흔치 않게 100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그를 축하하기 위해 시장과 지역신문 기자까지 초대한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는 왜 양로원을 도망쳤을까요? 그는 생각했습니다.
꼭 여기서 죽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다른 때, 다른 곳에서 죽는다고 하여 문제 될 게 없지 않은가? (p.9)
양로원을 탈출할 때 그의 행색은 표지 속 모습과 같았습니다. 밤색 재킷에 밤색 바지를 입고, 발에는 같은 색의 오줌 슬리퍼를 신고 있었습니다. '오줌 슬리퍼'는 이 나이 때가 되면 오줌발이 슬리퍼 끄트머리 이상 뻗어 나가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행색을 보아하니 치밀하게 계획된 탈출이라고는 할 수 없겠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재킷 안주머니에 지갑이 있었는데, 이 지갑 속에 1백 크로나짜리 지폐가 몇 장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1백 크로나는 우리 돈으로 약 16,000원 정도 됩니다. 그러니 10만원을 넘지 않는 돈을 들고 무작정 양로원을 탈출한 것입니다. 100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이렇게 100세 노인이 무작정 떠나는 것은 더 흔치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가 사라졌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될 터, 그래서 그는 가까운 곳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가서 가장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로 합니다. 그리고 돈이 얼마 없으므로 아껴써야 하기 때문에, 50크로나로 갈 수 있는 곳까지만 버스를 타기로 하죠. 그런데 정말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삐딱한 청년이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그에게 묵직한 캐리어를 맡깁니다. 그는 지금 당장 버스를 타고 떠나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100세 노인의 상황으로 봤을 때, 절대 기다려 줄 수가 없죠. 그래서 버스에 올라타는데, 청년의 캐리어까지 함께 끌고 탑니다. 왜냐하면 노인에게는 오줌 슬리퍼 대신 신발다운 신발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의 여행이 시작되는데, 이 캐리어 때문에 노인은 청년에게 쫓기게 됩니다. 이 청년은 그냥 청년도 아니고, 불법 조직의 조직원이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50크로나로 갈 수 있는 지역에 우연히 도착해 우연히 조력자를 만나 이 청년을 해치우게 됩니다. 혼자 무작정 시작했던 노인의 여행은, 이런 식으로 동행자를 만나게 되고 청년이 몸담았던 조직과 경찰도 끈질기게 그를 뒤쫓습니다.
이렇게 남다른 100세 노인의 이름은 알란 엠마누엘 칼손. 1905년에 태어난 알란은 지난 100년 동안 현대사 곳곳에 등장하며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그가 이처럼 현대사의 주요 장면마다 등장하게 된 것은, 폭약 전문가라는 그의 이력과 그가 태어난 시대적 배경 때문입니다. 그가 태어난 이후, 세계는 끊임없이 전쟁의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 그리고 민족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폭약을 잘 써서 적재적소에서 잘 터트리는 사람이 대우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덕분에 그는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필요한 인물이 되었으며 트루먼이나 마오쩌둥, 김일성과 같은 인물들과도 직접 대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항상 죽임과 배신이 들끊는 곳에서 믿을만한 가족 하나 없이 평생을 산 그가 행복할 수는 없었겠죠. 그런데도 그는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매 순간마다 잘 극복해 냅니다. 양로원을 탈출할 때 그 마음가짐, 양로원에서 죽나 다른 곳에서 죽나 아무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던 그 마음가짐이 평생을 함께 한 것이죠.
"본 특별 법정은 스웨덴 시민 알란 엠마누엘 칼손이 소비에트 사회주의 사회에 위험한 요소라고 판단해 블라디보스토크 교정 노동 수용소에서의 30년 강제 노역형에 처한다!"
… 알란 칼손은 관대한 판결을 내려 준 법정에 감사한다고 발언했다.
물론 알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느냐고 물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 판결에는 좋은 측면들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우선 그는 목숨을 건졌다. 인민의 적으로 간주된 이에게는 매우 드문 경우였다. 또 도형지로 정해진 블라디보스토크로 말할 것 같으면, 시베리아에서 기후가 가장 견딜 만한 곳으로 알려진 지역이었다. 시베리아 북부나 내륙 지역의 겨울 기온은 영하 50도, 60도, 심지어 70도까지 내려가는 게 다반사인데, 이 블라디보스토크는 스웨덴에 있는 그의 고향, 쇠데르만란드보다도 춥지 않았다. (p.299~300)
세계 곳곳을 누볐던 알란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탈출해 북한을 거쳐 남한으로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는 한국 전쟁 중이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까지는 갈 수 있었지만 남한은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한국전쟁과 김일성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알란이 이해한 바에 따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한반도는 일종의 공백 상태에 있었다. 스탈린과 트루먼은 나라를 사이좋게 나누어 점령했고, 임의로 38선을 그어 남과 북으로 양분했다. 그러고나서는 이 나라를 어떤 형태로 독립시킬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협상이 이어졌다. 트루먼과 스탈린은 정치적 견해가 전혀 달랐기 때문에 역사는 독일의 전철을 밟게 되었다. 즉 미국이 남한을 세우자 소련은 북한을 만들어 응수했다. 그러고 나서 미국과 소련은 한국 사람들이 자기네끼리 알아서 하도록 놔두었다.
한데 일이 삐딱하게 흘러갔다. 북쪽의 김일성과 남쪽의 이승만은 서로 자신이 한반도 전체를 통치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시작했다.
3년 후, 거의 4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됐지만 상황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북은 북이고 남은 남이었다. 38선은 여전히 반도를 가르고 있었다. (p.311~312)
김일성은 1912년 평양 근교 지역의 한 기독교 가족에게 태어났다. 당시 모든 한국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족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 벌써 수십 년 동안 일본인들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강압과 전횡을 휘둘러 왔다. 수십만의 여인들과 소녀들이 붙잡혀 가 천황 군대의 위안부가 되었으니 남자들은 강제로 징집되어 천황을 위해 싸워야 했다. 또 이 천황은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등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김일성의 아버지는 평소 조용한 한의사였지만 일본인들의 만행에 대해서는 소리 높여 비판했고, 결국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가서 사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1931년 일본군이 만주를 침공하자 그곳도 더 이상 평화로운 장소가 되지 못했다. 이때 아버지는 이미 사망한 뒤였고 어머니가 김일성에게 일본인들을 만주에서,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중국 유격대에 들어가 싸우라고 권했다.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 유격대 내에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의 과단성과 용맹함은 곧 두각을 드러내어, 한 군단 전체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 부대를 이끌고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으나 결국 그를 비롯한 극소수만 살아 남았다. 이때가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으로, 김일성은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도 출세 가도는 중단되지 않았다. 소련군 대위가 된 그는 소련의 깃발 아래서 1945년까지 싸웠다.
결국 전쟁은 끝났고, 일본은 한국에서 물러났다. 김일성은 민족적 영웅의 후광을 둘러쓰고 망명에서 돌아왔다. 이제 남은 것은 한 국가를 세우는 일이었으며 국민들이 자신을 '위대한 영도자'로 원한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두 전승국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를 각자의 이익에 봉사하는 두 개의 세력권으로 분할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자타 공인의 공산주의자를 한반도 전체의 머리로 삼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망명 중이던 또 다른 한국인을 데려와 반도 남쪽의 국가수반으로 세웠다. 김일성은 북쪽 부분으로만 만족해야 했으나, 그러지를 않았다. 대신 그는 한국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 놈들도 몰아낸 자신인데, 미국과 그 졸개들에 불과한 유엔군을 몰아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김일성은 중국의 깃발 아래서도 싸웠고 소련의 깃발 아래서도 싸웠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자신을 위해 싸웠다. (p.334~335)
작가 요나스 요나손은 소설을 통해 수많은 현대사를 다루고 있는데, 사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현대사들도 많습니다. 아마도 저처럼 세계사 교육을 받지 못한 독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가 던지는 유머와 냉소를 사실과 100% 구별하기란 어려웠습니다. 반대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외국 독자들에게는 어떨까요?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것은 기우일 수도 있겠지만, 특정 내용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 오해를 심어주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가며 서술되다가 마지막에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게 되면서 끝납니다. 시종일관 유쾌하게 전개되는 소설로, 현대사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세계사를 쭉 훑고 지나가기 때문에 세계사에 약한 독자들에게는 그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치 않은 이 100세 노인을 한번 만나보세요! 어쩌면 당신도 또다른 창문을 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