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몸에 지닌 것으로 결판이 난다.

자신을 위해 마련된 것도 아니고, 있을 곳이 일정하지도 않은 장소에서,

가족도 일도 없는, 자신의 과거나 미래와도 이어지지 않는 장소에서

그 며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머리와 마음과 몸과 가방 하나.

그 홀가분함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 에쿠니 가오리의 『우는 어른』 p.116 ─

 

 

 

 ↑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의 버스 정류장

 

여행을 할 때 내 가방은 항상 부피가 큽니다.

커다란 DSLR에 이런 저런 책과 필기도구들,

혹시나 내릴지도 모르는 비를 위해 준비한 우산,

넉넉히 충전해둬야 마음까지 편한 각종 배터리와 여분의 메모리카드까지.

그런데 이런 나와는 달리 매우 홀가분하게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보입니다.

작은 가방 하나 크로스로 메고,

짝궁이랑 손 잡고 가볍게 흔들면서 걷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다음 여행 때는 가방의 크기를 줄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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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어 사놓고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잔뜩 쌓여 있고,

전에 정말 재미있게 읽어서 조만간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책도 잔뜩이다.

그런 데다 일 때문에 읽을 필요가 있는 책,

누가 보내주었으니 읽고서 고맙다는 편지라도 써야지 하면서 그대로 놔둔 책,

읽어야 할 책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책꽂이를 한차례 죽 훑어보고는 한숨을 쉬며

읽고 싶은 책이 없다고 중얼거린다.

 

골치 아픈 것은 책을 읽고 싶지 않은 것 자체가 아니다.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들고 만 것이다.

 

전철을 타거나 목욕을 할 때,

또는 치과 로비에서 책을 읽는 버릇이 붙고 말아

무슨 책이든 들고 가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또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책 따위 하나도 읽고 싶지 않은데,

책보다는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싶은 기분인데도

책을 읽고 싶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탓에,

읽고 싶은데 읽을 거리가 없다는 갈증에 허덕이는 꼴이 되는 것이다.

 

─ 에쿠니 가오리의 『울지 않는 아이』 p.67~68 ─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마음인가 봅니다.

책장 가득 읽지 않은 책들이 줄줄이 있는데,

또다시 서점을 서성이곤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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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216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강훈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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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에 어떤 우울함도 발을 딛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끔찍한 기근, 피의 일요일이 남긴 지독한 상처, 1990년대의 대호황, 다시 닥쳐온 어려운 경제 상황. 아일랜드를 이렇게 요약하곤 합니다. 1847년의 대기근으로 800만 명의 인구 중 200만 명이 죽었고, 200만 명이 이민선에 올랐습니다. 또,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는 끊임없이 독립 전쟁과 테러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20세기의 아일랜드는 말 그대로 암울한 곳입니다.

  

   비록 22살에 더블린을 떠나긴 했지만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가 된 제임스 조이스는 트리에스테, 취리히, 파리 등으로 옮겨 다니며 살면서도 늘 자신의 영혼은 고향 더블린에 머물러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항상 더블린에 대해 쓴다. 내가 더블린의 심장에 다가간다는 것은 세계 모든 도시의 심장에 다가간다는 말이다. 그 세부 속에 전체가 담겨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대표작인 『율리시스』와 『더블린 사람들』에는 20세기 초반의 더블린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그의 첫 번째 소설집인 『더블린 사람들』은 그가 더블린을 배경으로 쓴 15편의 단편들을 묶은 것으로, 영국의 식민 지배로 암울하고 피폐해진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더블린 사람들』은 평소 알고 지냈던 신부의 죽음을 목격하는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자매」로 시작해 어릴적 자신을 좋아했던 한 소년의 죽음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는 「죽은 사람들」로 끝납니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이 함께하며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 냅니다.

   특히, 「죽은 사람들」에 등장하는 남편 게이브리얼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열린 무도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원칙을 갖춘 세대가 우리 곁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진지하고 새로운 사상에 매우 열설적입니다. 그리고 그 열성은 방향을 잃었을 때조차도, 제가 보기에는, 대체로 진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의적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 옛날 생각, 젊은, 변화, 오늘 밤 우리가 여기에서 그리워하는 얼굴들에 대한 생각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그런 슬픈 기억들이 많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생각들만 하고 있으면 산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의 일을 계속해 나갈 용기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성실한 노력을 요구하는 살아 있는 의무, 살아있는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과거에 머물지 않겠습니다. 저는 오늘 밤 이곳에 어떤 우울한 도덕도 발을 딛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번잡함과 소란으로부터 잠시 동안 떨어져 이곳에 모였습니다." (p.274~276)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당시 아일랜드에는 민족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또, 친영파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인물들이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데, 「죽은 사람들」의 게이브리얼은 친영파 신문에 문학 칼럼을 쓰고 돈을 받는다며 오랜 친구로부터 비난을 듣기도 합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더블린을 떠날 당시, 그의 마음을 반영한 이야기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더블린 사람들』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와 함께 더블린 3부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율리시스』를 읽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는 말도 있듯이, 『율리시스』가 호흡이 너무 길어서 막상 시작하기 두렵다면 짧은 호흡의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더블린 사람들』로 시작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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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15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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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은 당신 마음 속에 살아 있습니다!

   어릴 때 『백경』이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줄거리부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다면, 줄거리 부분은 건너 뛰고 읽으세요.

   육지생활이 답답했던 이슈마엘은 상선에서 일을 해 본 경험을 살려 고래잡이 배에 타기로 합니다. 고래잡이 배에 타기 전에 들른 숙소에서 만난 식인종 퀴퀘그와 함께 같은 고래잡이 배에 타기로 하는데, 그 식인종은 유능한 작살잘이였습니다. 온몸에 문신이 있고, 문화도 다르지만 짧은 기간동안 이슈마엘과 퀴퀘그는 친구가 됩니다.

   이슈마엘과 퀴퀘그가 승선한 피쿼드호에는 에이해브라는 선장이 있는데, 그는 예전에 고래잡이에 나섰다가 '모비 딕'이라는 흰 고래에게 다리 한 쪽을 잃었습니다. 모비 딕을 향한 복수심으로 가득한 에이해브는 고래잡이 보다는 모비 딕을 잡는게 목적인데,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에이해브 선장과 생각이 다릅니다. 하지만 에이해브 선장과 이미 그에게 동조하고 있는 수많은 선원들의 생각을 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합니다.

   에이해브 선장은 모비 딕이 자주 출몰한다는 장소를 찾아 향하고 결국 모비 딕과 마주하게 되지만, 모비 딕에게 복수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모비 딕이 배를 공격해 배는 침몰하고 모든 선원들은 죽었습니다.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슈마엘입니다.

 

   "누구든 이마에 주름이 지고 아가리가 비뚤어진 흰머리 고래를 발견하면, 누구든 오른쪽 꼬리에 구멍 세 개가 뚫린 흰머리 고래를 발견해서 내게 알린다면, 그에게 이 금화를 주겠다!" (p.276)

   "나를 파괴하고, 나를 죽는 날까지 의족에 의존해야 하는 불쌍하고 한심한 놈으로 만든 게 바로 그 빌어먹을 흰 고래다!" (p.277)

 

   "저는 녀석의 굽은 아가리쯤은, 아니 죽음의 아가리라도 겁나지 않습니다, 에이해브 선장. 그게 우리의 정당한 용무라면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고래를 잡으러 여기 왔지, 선장님의 복수를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그래서 북수에 성공하더라도 기름을 몇 통이나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걸 잡아봐야 낸터컷 시장에서 큰 벌이가 되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p.278)

   "말 못하는 짐승을 상대로 복수라뇨!" 스타벅이 소리쳤다. "고래는 단지 맹목적인 본능에 따라 공격했을 뿐이라고요! 에이해브 선장님, 그런 짐승에게 원한을 품는 건 신성 모독이나 다름없어요." (p.279)

 

   이처럼 『모비 딕』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혹시 에이해브 선장이 모비 딕에게 복수하는데 성공할거라 생각했다면, 정말 아쉬운 결말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복수의 결말은 정해져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거대한 자연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보잘 것 없는 우리 인간들이 이긴 적은 없었으니까요.

   이렇게 먼저 『모비 딕』의 줄거리를 정리한 이유는, 이 소설에서 줄거리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비 딕』은 소설이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여느 소설들과는 다릅니다. 『모비 딕』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 소설을 문학이 아닌 '고래학'으로 분류했다고 합니다. 고래나 고래잡이에 대한 사회, 과학적인 연구가 실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래나 고래잡이가 언급된 거의 모든 기록들이 인용되고 있기 때문에 혼란을 주었나 봅니다.

   허먼 멜빌이 이토록 세세하게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실제로 포경선을 탄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이슈마엘처럼 그는 포경선을 타기 전에 상선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미 해군으로 남태평양을 누볐던 적도 있습니다. 그가 소설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식인종에 대한 이야기도 사실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동틀 무렵에 깨어 보니 퀴퀘그의 팔이 내 몸에 얹혔는데, 그 모습이 다정하고 사랑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누가 봤더라면 내가 그의 마누라인 줄 알았을 것이다. 이불도 네모지고 세모진 작은 헝겊을 알록달록하게 잔뜩 이어 붙였는데, 그의 팔도 크레타 미궁처럼 끝없는 형상의 문신으로 뒤덮였고 색깔까지 제각각이었다. 아마 바다에서 생활하는 동안 햇볕과 그늘을 들락거리며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소매를 걷었기 때문인 듯했다. 그의 팔은 암만 봐도 조각 이불의 한 부분처럼 보였다. 실제로 처음 잠에서 깨어 이불 위에 반쯤 올려놓은 팔을 봤을 땐 구분이 어려울 만큼 색깔이 서로 어우러졌고, 퀴퀘그가 나를 끌어안고 있는 걸 안 건 순전히 무게와 누르는 힘 때문이었다. (p.69)

 

   문신이 온몸을 뒤덮고 있고, 이상한 종교의식을 하는 식인종이라면 보통 사람들은 피하곤 합니다. 이슈마엘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사실 퀴퀘그는 그들의 문화를 따를 뿐이지 악한 사람은 아닙니다. 이슈마엘과 한 침대에서 잘 때도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그를 배려하려 했으며, 이슈마엘이 위험에 처했을 때는 그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마치 퀴퀘그가 이슈마엘의 경호원인 것처럼요. 반대로 이슈마엘은 언어와 표현력이 딸리는 퀴퀘그의 대변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포경선의 침몰로 모든 사람들이 죽었을 때, 이슈마엘을 살려낸 것도 결국 퀴퀘그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종교가 다르다고 하면 이교도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이슈마엘은 퀴퀘그의 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가 신성한 것이라고 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허먼 멜빌은 기독교에 대해 불경한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허먼 멜빌은 특정 종교나 인종이 우월하다는 근거없는 생각과 배타적인 태도를 경계했고, 소설 곳곳에서 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에이해브 선장이 복수에 눈이 먼 나머지 배가 뒤집히는 줄도 모르고 쫓아다녔던 모비 딕. 모비 딕을 쫓아다니느라 눈이 먼 사람은 에이해브 선장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또다른 '모비 딕'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소설 곳곳에 다양한 매력이 숨어있는 소설입니다. 특히, 저는 이슈마엘과 퀴퀘그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는데, 여러분들도 여러분만의 재미를 한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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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14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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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은 당신 마음 속에 살아 있습니다!

   어릴 때 『백경』이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줄거리부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다면, 줄거리 부분은 건너 뛰고 읽으세요.

   육지생활이 답답했던 이슈마엘은 상선에서 일을 해 본 경험을 살려 고래잡이 배에 타기로 합니다. 고래잡이 배에 타기 전에 들른 숙소에서 만난 식인종 퀴퀘그와 함께 같은 고래잡이 배에 타기로 하는데, 그 식인종은 유능한 작살잘이였습니다. 온몸에 문신이 있고, 문화도 다르지만 짧은 기간동안 이슈마엘과 퀴퀘그는 친구가 됩니다.

   이슈마엘과 퀴퀘그가 승선한 피쿼드호에는 에이해브라는 선장이 있는데, 그는 예전에 고래잡이에 나섰다가 '모비 딕'이라는 흰 고래에게 다리 한 쪽을 잃었습니다. 모비 딕을 향한 복수심으로 가득한 에이해브는 고래잡이 보다는 모비 딕을 잡는게 목적인데,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에이해브 선장과 생각이 다릅니다. 하지만 에이해브 선장과 이미 그에게 동조하고 있는 수많은 선원들의 생각을 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합니다.

   에이해브 선장은 모비 딕이 자주 출몰한다는 장소를 찾아 향하고 결국 모비 딕과 마주하게 되지만, 모비 딕에게 복수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모비 딕이 배를 공격해 배는 침몰하고 모든 선원들은 죽었습니다.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슈마엘입니다.

 

   "누구든 이마에 주름이 지고 아가리가 비뚤어진 흰머리 고래를 발견하면, 누구든 오른쪽 꼬리에 구멍 세 개가 뚫린 흰머리 고래를 발견해서 내게 알린다면, 그에게 이 금화를 주겠다!" (p.276)

   "나를 파괴하고, 나를 죽는 날까지 의족에 의존해야 하는 불쌍하고 한심한 놈으로 만든 게 바로 그 빌어먹을 흰 고래다!" (p.277)

 

   "저는 녀석의 굽은 아가리쯤은, 아니 죽음의 아가리라도 겁나지 않습니다, 에이해브 선장. 그게 우리의 정당한 용무라면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고래를 잡으러 여기 왔지, 선장님의 복수를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그래서 북수에 성공하더라도 기름을 몇 통이나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걸 잡아봐야 낸터컷 시장에서 큰 벌이가 되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p.278)

   "말 못하는 짐승을 상대로 복수라뇨!" 스타벅이 소리쳤다. "고래는 단지 맹목적인 본능에 따라 공격했을 뿐이라고요! 에이해브 선장님, 그런 짐승에게 원한을 품는 건 신성 모독이나 다름없어요." (p.279)

 

   이처럼 『모비 딕』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혹시 에이해브 선장이 모비 딕에게 복수하는데 성공할거라 생각했다면, 정말 아쉬운 결말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복수의 결말은 정해져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거대한 자연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보잘 것 없는 우리 인간들이 이긴 적은 없었으니까요.

   이렇게 먼저 『모비 딕』의 줄거리를 정리한 이유는, 이 소설에서 줄거리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비 딕』은 소설이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여느 소설들과는 다릅니다. 『모비 딕』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 소설을 문학이 아닌 '고래학'으로 분류했다고 합니다. 고래나 고래잡이에 대한 사회, 과학적인 연구가 실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래나 고래잡이가 언급된 거의 모든 기록들이 인용되고 있기 때문에 혼란을 주었나 봅니다.

   허먼 멜빌이 이토록 세세하게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실제로 포경선을 탄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이슈마엘처럼 그는 포경선을 타기 전에 상선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미 해군으로 남태평양을 누볐던 적도 있습니다. 그가 소설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식인종에 대한 이야기도 사실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동틀 무렵에 깨어 보니 퀴퀘그의 팔이 내 몸에 얹혔는데, 그 모습이 다정하고 사랑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누가 봤더라면 내가 그의 마누라인 줄 알았을 것이다. 이불도 네모지고 세모진 작은 헝겊을 알록달록하게 잔뜩 이어 붙였는데, 그의 팔도 크레타 미궁처럼 끝없는 형상의 문신으로 뒤덮였고 색깔까지 제각각이었다. 아마 바다에서 생활하는 동안 햇볕과 그늘을 들락거리며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소매를 걷었기 때문인 듯했다. 그의 팔은 암만 봐도 조각 이불의 한 부분처럼 보였다. 실제로 처음 잠에서 깨어 이불 위에 반쯤 올려놓은 팔을 봤을 땐 구분이 어려울 만큼 색깔이 서로 어우러졌고, 퀴퀘그가 나를 끌어안고 있는 걸 안 건 순전히 무게와 누르는 힘 때문이었다. (p.69)

 

   문신이 온몸을 뒤덮고 있고, 이상한 종교의식을 하는 식인종이라면 보통 사람들은 피하곤 합니다. 이슈마엘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사실 퀴퀘그는 그들의 문화를 따를 뿐이지 악한 사람은 아닙니다. 이슈마엘과 한 침대에서 잘 때도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그를 배려하려 했으며, 이슈마엘이 위험에 처했을 때는 그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마치 퀴퀘그가 이슈마엘의 경호원인 것처럼요. 반대로 이슈마엘은 언어와 표현력이 딸리는 퀴퀘그의 대변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포경선의 침몰로 모든 사람들이 죽었을 때, 이슈마엘을 살려낸 것도 결국 퀴퀘그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종교가 다르다고 하면 이교도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이슈마엘은 퀴퀘그의 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가 신성한 것이라고 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허먼 멜빌은 기독교에 대해 불경한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허먼 멜빌은 특정 종교나 인종이 우월하다는 근거없는 생각과 배타적인 태도를 경계했고, 소설 곳곳에서 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에이해브 선장이 복수에 눈이 먼 나머지 배가 뒤집히는 줄도 모르고 쫓아다녔던 모비 딕. 모비 딕을 쫓아다니느라 눈이 먼 사람은 에이해브 선장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또다른 '모비 딕'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소설 곳곳에 다양한 매력이 숨어있는 소설입니다. 특히, 저는 이슈마엘과 퀴퀘그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는데, 여러분들도 여러분만의 재미를 한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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