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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학
이청준 지음, 전갑배 그림 / 열림원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원작인 소설 『천년학』.
지금까지 임권택 감독이 무려 100여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나는 한번도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유명하다던 <서편제>조차 보질 않았다. 영화 <천년학>이 <서편제>의 후일담을 담은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고 책을 보기 전에 <서편제>라는 영화부터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했었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였다.
『천년학』에는 3가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서편제』는 워낙 영화가 유명하여 비록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혹시 내가 예전에 읽은 책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소릿재에 있는 주막을 찾은 한 남자가 그 소릿재에 얽힌 이야기를 주인 여자에게 듣는다. 오래전 그 동네에 소리를 하는 부녀가 찾아왔다. 목청이 좋았던 아비가 그곳에서 죽게 되자 부녀의 소리를 좋아했던 어른이 아비의 무덤 근처에 주막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때 주인 여자는 아비를 잃은 여자를 도와 잔심부름을 하면서 틈틈이 소리도 배웠다고 한다. 그 소리꾼 여자는 아비의 3년상을 마치던 날 새벽 홀연히 떠났다고 한다. 주인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는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 이야기인 『소리의 빛』에서는 그 남자가 또다른 주막을 찾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주막에는 남도 소리를 잘하는 눈이 먼 장님 여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밤새도록 그녀의 소리를 청해 들으며 북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리고 이튿날 날이 새자 그곳을 떠나버렸다. 남자가 떠나고 나자 그녀는 궁금해 하는 주막 주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가 자신의 오라비라는 이야기를 한다.
세 번째 이야기 『선학동 나그네』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서편제』보다 더 유명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오라비는 다시 여자의 자취를 찾아 선학동으로 온다. 그곳 주막에서는 오라비는 얼마전 여자가 다시 찾아와 아비의 유골함을 묻고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오라비에게 전해주라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한 마리 학이 되어 선학동 포구 위를 날고 있을테니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날이 새자 오라비는 여자가 그랬듯이 홀연히 그곳을 떠났다.
어렴풋한 내 기억으로는 어릴적 교과서를 통해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의 말하기 방식에 상당히 이끌렸었던 것 같다. 뭔가를 알면서도 먼저 이야기를 털어 놓지 않음으로써 비밀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까지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말하기 방식이 말이다.
“사람의 한이라는 것이 그렇게 심어주려 해서 심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닌 걸세. 사람의 한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누구한테 받아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살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 동안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것이라네. 어떤 사람들한텐 사는 것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것이 사는 것이 되듯이 말이네…….” (「서편제」, p52)
사실 ‘한(恨)’이라는 말을 우리나라 작품들을 접하다보면 많이 듣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대충 이런 것들을 가지고 한이라고 부르는게 아닐까 하는 정도 밖에.
어쩌면 여자의 오라비가 주막 여자에게 말했듯이 한(恨)이라는 것은 단순히 아비가 자식의 눈을 다치게 한다는 식으로는 도저히 심어줄 수 없는, 한 사람의 평생에 걸쳐 먼지처럼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구체화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