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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대로
수산나 타마로 지음, 최정화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난 '마음 가는 대로' 읽었을 뿐이고!
오래전 편지 형식을 빌린 소설을 읽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말만 편지 형식이지 글을 읽고 있다보면 여느 소설과 다름이 없었다. 편지라면 분명 1인칭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그 소설은 시점이 1인칭과 3인칭을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편지 형식을 빌린 소설이라면 일단 멀리했다. 또 하나 멀리하는 것은 '삶의 성찰' 어쩌구, '치유' 저쩌구 하는 내용의 책들이다. 과연 책 한권으로 누군가의 삶을 성찰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 물론 사람에 따라 그런 것이 가능한 작품들도 있지만, 책을 소개하면서 그런 멘트를 날리는 것은 너무 자신감에 찬 것이 아닐까.
즉, 형식과 내용 면에서 수산나 타마로의 『마음 가는 대로』는 결코 내 취향의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읽었을 뿐인데, 다행히 예상 외의 재미를 맛봤다.
자신의 상처를 가늠하고, 보듬어 보라!
여든살의 한 할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하나뿐인 손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두달 전 자신과 다툰 후 훌쩍 떠나버린 손녀가 마음에 걸렸다. 할머니가 아프다는 전화 한 통화면 금새 달려올 손녀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녀에게 어떤 이야기도 없이 할머니의 죽음을 마주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지나온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미처 손녀에게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썼다. 그것은 할머니 자신의 이야기이자 딸의 이야기였고, 또 그 딸의 딸 이야기였다. 여성 3대가 나란히 등장하는 이야기여서 행복한 이야기겠거니 여겼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한 순간은 극히 짧았다. 손녀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행복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번도 온전한 가정을 가지지 못했고, 온전한 사랑을 하지 못했다. 세 여성이 유일하게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상처'뿐이었다. 할머니는 혼자 남게 될 어린 손녀가 더이상 상처 받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고백하며 진심으로 편지를 썼다.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를 때, 그냥 아무 길이나 들어서진 마. 내가 세상에 나오던 날 그랬듯이, 자신있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잠시 기다려 보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고 또 기다려.
네 마음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그러나 네 마음이 말을 할 때, 그때 일어나 마음 가는 대로 가거라. (p225~226)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소설은 흔하다. 그 내용 또한 상투적이라서 굳이 그 소설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음 가는 대로』는 다르다. 제목은 여느 소설처럼 상투적이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수산나 타마로를 키워준 친할머니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기 때문일까. 억지스러운 '치유의 메시지' 같은 것은 없다. 다만, 할머니와 다른 이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스스로 '상처'의 깊이를 가늠해 보고 보듬어 볼 뿐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상투적인 홍보 문구는 이제 그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불안한 세상, 희망을 전하는 치유의 메시지'라든가, '2천만 여성 독자를 울린 감동의 초 베스트셀러', '작가 기욤 뮈소와 공지영이 인용, 추천한 바로 그 소설'이라는 홍보 문구다. '마음 가는 대로' 읽으면 되는데 홍보 문구는 지극히 부자연스럽다. 오히려 홍보 문구 때문에 작품에 대한 관심이 반감될지도 모를 일이다.
09-57. 『마음 가는 대로』2009/05/09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