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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해,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연재되고 있는 『촐라체』를 만났다. 작가들이 연재소설을 쓸 때는 어느 정도의 텀(term)을 두고 쓰는지, 그 기간 동안에 얼마만큼의 글을 쓰는지, 이야기의 마디 마디가 궁금했다. 그러나 연재소설이 주는 매력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 더 컸다. 다음 이야기를 손꼽아 기다려가며 읽을만큼 내 인내심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 만약에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이야기가 지루해질 기미가 보이면 쉽게 포기해 버릴거라는 것,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모니터를 통해서는 긴 글을 못 읽다는 것이다. (스크롤바를 내려야 볼 수 있는 길이의 글들은 무조건 패스해버리거나 일단 프린트를 해서 본다.) 어차피 연재가 끝나면 종이책으로 나올건데, 굳이 나의 약점들을 극복해가며 볼 필요가 있을까.
가을도 마찬가지지만, 화창한 봄은 내가 책을 읽기에 적당하지 않은 계절이다.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니까. 그렇게 읽지 않은 책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고 그 뜻을 알 수 없는 '촐라체'라는 제목에 대한 궁금증도 쌓이기 시작했다. 더이상 내 책상 위에도, 머리 속에도 쌓을 수가 없게 되었을 때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제서야 '촐라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촐라체'는 로체처럼 에베레스트 서남쪽에 있는 산이란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예전부터 나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위험한 산을 오르내리는 산악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촐라체'라는 제목의 궁금증은 풀렸으니, 이 책에 대한 흥미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복형제인 박상민과 하영교는 히말라야에서 우연히 만난 정우진에게 자신들의 베이스캠프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뒤, 간단한 장비만 챙겨 촐라체로 향한다. 10년 전 자신의 눈 앞에서 추락하는 선배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로 처음 등반하는 상민과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빚 독촉을 하던 사람을 칼로 찌르고 도망온 영교. 그들에게는 지난 세월 동안 가슴 속에서 쌓이고 쌓인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말없이 산을 오른다.
시작이 순탄해서 그들은 예상대로 1박 2일만에 촐라체를 정복하고 내려올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교가 버너를 떨어뜨려서 배고픔과 싸워야 했고, 영교가 크레바스에 떨어져 발목을 다치게 되자 고통과 싸워야 했다. 때론 배고픔과 추위보다 더한 고독과 싸워야했고, 그 모든 것이 고통스러워 삶을 포기하고자 하는 나약함과 싸워야 했다. 그저 그들을 지켜보고만 있는 나까지 힘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봐도 그들이 살아서 돌아갈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데, 차라리 이쯤에서 덜 고통스럽게 그들을 놓아주는게 낫지 않을까.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일임을 알면서도 몇 번이나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이 왜 그토록 산에 오르는지를. 극한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그들은 차라리 죽음을 택해 편해지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이 아니다. 죽음의 유혹이 커질수록 생에 대한 애착도 커지는 법. "정상이란 모든 길의 시작이자 그 귀결점"(p.54)이라는 라인홀트 메스너의 말처럼, 현실의 고난과 맞닥뜨린 그들은 산으로 도피하기 위함이 아닌 산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이다.
"왜 산에 오르는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나 자신과 싸우며 언제나 새로운 '약'이 필요해서인가.
나는 산 없이는 못 산단 말인가." ─ 메스너 (p.102)
2008/05/25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