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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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이 책을 읽게 만든 건 이 한 줄의 문구였다. 무언가에 빠진 히키코모리라면 뭐든 할 수 있겠지만, 왜 하필 루마니아일까? 한국 드라마에 빠져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여럿 보아온 터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루마니아에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드라큘라밖에 모르는) 내가 모르는 매력이 분명 있을 테지.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 사이토 뎃초는 방구석에서 루마니아어를 습득했다. 일본에서 출간된 딱 두 권뿐인 루마니아어 교재를 사서 온라인으로 사전을 찾아보며 루마니아어를 공부했다. 루마니아어가 지원되는 영화를 봤고, SNS를 통해 루마니아 친구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루마니아어를 공부하다 보니 루마니아 출신의 영화감독이나 작가에게도 끈이 닿아 일본에서 만나기도 하고 SNS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들 중에 한 명이 저자가 쓴 글을 출판 편집자에게 보냈고, 그렇게 저자는 루마니아어로 쓴 소설을 루마니아에 발표하게 된다. 이쯤 되면 루마니아에 한 번쯤 갈 법도 한데 저자는 크론병이라는 불치병(장거리 여행이 힘들다)을 갖게 되어 집 밖을 나가는 것도 힘든 상태다.

믿어지는가? 방구석에서 독학으로 배운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써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됐다는 사실이. 놀랍게도 사실이다. 물론 저자는 자신을 대학교도 겨우 다닌 히키코모리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언어 습득력이 뛰어난 편이다. 게다가 루마니아어는 일본어처럼 희귀 언어이긴 하지만 로망스어군에 속한다. 즉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의 친척이며 루마니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탈리아어를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읽거나 들어서 어느 정도 의미를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관계다. 또, 루마니아어가 라틴어의 틀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현대어라는 학설도 있다고 하니 이미 영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저자에게는 막연하게 어려운 언어는 아니었을 것이다. 일본에 출간되어 있는 루마니어 교재나 책이 적었던 것 역시 트위터나 페이스북 친구들을 활용해 극복할 수 있었다. 교재에 실려있는 표현들 중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표현들이 있어서, 오히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이나 슬랭들을 배울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루마니아에는 전업 작가가 거의 없다고 한다. 책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소설가는 다른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높은 빈도로 루마니아 문학이 출판되는데, 이는 자국 문화를 끊기게 할 수 없어서 자선 사업으로 한다고 한다. 일종의 문화 부흥인 것이다. 또 일본은 신인상에 응모해 상을 받으면 프로로 데뷔(우리와 비슷하다) 하는데, 루마니아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고 그저 작품이 편집자 마음에 들면 실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탈락이다. 실리지 않으면 실릴 때까지 다른 곳에 반복해서 보내면 된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는 한 편의 글도 실을 수 없었던 저자가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됐다는 것. (그래도 대단하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번역이 아닌 소설을 쓰다니.)

그래도 나는 바로 당신에게 다른 곳에는 없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게 나였으니까, 나 같은 건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 외국에 갈 필요가 없다는 소리는 안 할 것이다. 갈 기회가 있다면 가는 게 좋다. 그저 지금 서있는 그 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곳이기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있다. _252쪽

어디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지금 거기 있다는 사실, 그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나에게는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 거기 선 당신이야말로 미래다. 어이, 하면 할 수 있어! _253쪽

아니, 이렇게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히키코모리라니! 그동안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히키코모리의 이미지를 완전히 박살 내 버린 저자. 심지어 책의 내용도 진지한 편이다. 표지를 보고 가볍게 썼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외국어를 공부할 때 가져야 하는 태도나 방법에 대해서는 꽤 진지하다.

나쁜 시인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시인들의 글만 읽는다는 사실이다(나쁜 철학자들이 철학자들의 글만 읽는 것처럼). 식물학이나 지리학 책을 읽으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자신의 분야와 멀리 떨어진 분야를 자주 접해야만 풍요로워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자아가 강렬하게 작용하는 분야에서만 사실이다. 에밀 시오랑, 『태어났음의 불편함』 121쪽

_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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