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소연 옮김, 미셸 배럿 작품해설.주해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여성이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합니다!

   만약 셰익스피어에게 뛰어난 재능을 갖춘 주디스라는 누이가 있었다면, 그녀 또한 셰익스피어처럼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니 시대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상상해 보겠습니다. 셰익스피어는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우고, 기본 문법과 논리학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누이는 교육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집에서 오빠의 책을 읽으며 스스로 익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아무도 몰래 다락방에서 글 몇 장을 끄적여 보곤 했지만, 오빠처럼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습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집안에서 정해 준 사람과 결혼도 해야했습니다. 그녀는 그 결혼이 싫다고 말했다가 아버지에게 심하게 매를 맞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믿고 집을 떠납니다. 오빠처럼 연극에 재능이 있어서 극장을 찾았는데 남자들이 그녀를 문전박대합니다. 어떤 여자도 절대로 배우를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요. 그 시대에는 여자 역할도 모두 남자 배우들이 담당했기 때문에 여자 배우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좌절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는 여성이 뛰어난 재능을 갖추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여성에게는 교육 받을 기회도, 바깥 세상을 경험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한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겪었을 법한 대략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고인이 된 주교의 입장에 동의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갖춘 여성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할 수 조차 없다고 봅니다. 셰익스피어의 재능과 같은 천재성은 힘들게 일하는, 교육받지 못한 노동 계층 사람들에게는 나올 수 없었지요. 그러한 천재성은 영국의 색슨 족이나 브리튼 족에서 나올 수 없었지요. 또한 오늘날 노동 계층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여성 사이에서 그런 천재가 나올 수 있겠어요? 트리벨리언 교수에 따르면 육아실을 나오기도 전에 집안일을 시작하고, 부모의 강요에 떠밀리며 법과 관습의 권력에 제지를 받는 그런 여성에게서 말입니다. (72~73쪽)


   버지니아 울프는 '셰익스피어의 누이'를 통해 여성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거나 발휘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합니다. 특히, 여성이 글쓰기를 하려면 1년에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외칩니다. 여기서 '1년에 500파운드라는 돈'은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기만의 방은 홀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을 상징적으로 의미합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시대에는 여성이 1년에 500파운드를 버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뿐아니라 여성에게는 법적으로 사유재산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도서관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에게 제약이 많은 시대였습니다. 게다가 집안에서는 하루종일 육아와 집안일에 시달리는 바람에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었습니다. 혹여 집안 형편이 좋아서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경험 부족으로 멋진 글을 쓰는 것도 힘듭니다.


   여성이 글을 쓴다면, 그 여성은 가족의 공동 거실에서 써야만 했을 것입니다. 나이팅게일 선생이 격앙된 목소리로 불만을 털어놓았던 것처럼, "여성은 자신만의 시간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 30분도 되지 않았으며" 그 시간마저 언제나 방해를 받기 마련입니다. (95~96쪽)


   몇 년 후 여성에게도 재산을 소유할 수 있고, 투표할 권리가 부여됩니다. 게다가 여성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도 생겨납니다. 그래서 그녀는 한 세기 후에는 "각자 연간 500파운드와 자신만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며,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 습관과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정확하게 쓸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며, "우리가 공동 거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인간을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의 관계에서도 볼 수"(157쪽) 있게 될 것이라며 기대합니다.

   그녀가 기대했던 일들은 한 세기가 아니라 겨우 반 세기만에 이뤄집니다. 그러나 아직은 완전하게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육아와 집안일 때문에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기 힘든 여성들이 많고,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성에 따른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여전히 여성들 앞에는 어떤 장애물이 가로 막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방』이 지금까지도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히며 읽히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여성은 여전히 싸워야 할 유령이 많고, 극복해야 할 편견이 많습니다. 사실상 내 생각에  죽여야 할 환영을 마주치는 일 없이, 달려가다가 갑자기 바위에 부딪히는 일 없이 여성이 자리에 앉아 책을 쓸 수 있을 때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문학에서 일어난다면, 그러니까 여성의 전문직 중 가장 자유로운 분야에서 상황이 그러하다면, 여러분이 지금 처음으로 입문하고 있는 새로운 직업에서는 어떠할까요?

   이것이 바로 시간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입니다. 명목상 문호가 개방된 때조차도, 즉 여성이 의사나 변호사, 공무원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에도 수많은 환영과 장애물이 불쑥 앞길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그러한 장애물을 규정하고 그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내 생각에 매우 큰 가치와 중요성을 지닙니다. 그럼으로써만이 노고를 서로 나눌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66~167쪽, 「여성의 전문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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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5-04-20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역사는 인류의 억압을 연구하는 것 같다는

뒷북소녀 2015-04-20 15:40   좋아요 0 | URL
앗!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민주주의의 역사와도 같이 하지 않나 싶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4-2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류학에서 오히려 고대이전사회는 남녀평등이고, 그땐 원시공산주의였죠. 따라서 민주주의란 개념이 없어도 그 사회가 민주주의였죠.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이 말해주는 것처럼요.

뒷북소녀 2015-04-20 15:45   좋아요 0 | URL
이런 심도 있는 덧글을 만나게 되다니...
기회되면 루소의 책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kitty99 2015-04-20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트 화면은 영어원작이고 읽으신 것은 한국어로 번역된 것인가보죠? 이 책 교과서에서 들어본 제목인데, 소설인줄로만 알았어요...

뒷북소녀 2015-04-20 19:12   좋아요 1 | URL
아니요... 표지 자세히 보시면 ˝버지니아 울프˝라고 한글로 적혀 있어요. 펭귄 클래식 이 디자인 시리즈가 좀 그렇게 보이나봐요. 다들 원서 읽냐고 물으시더라구요.^^

kitty99 2015-04-20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펭귄시리즈는 표지가 해외풍이 있어요! 원화가 나온 표지를 봐도 처음 보는 그림들이 있더라구요~^^

뒷북소녀 2015-04-21 09:20   좋아요 1 | URL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책도 페이퍼백이라 가벼워서 다른 작품도 한번 사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