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일상 속에 갇혀사는 당신의 심장을 겨누다!

   2015년 1월, 이민기, 여진구 주연의 영화로 개봉 예정인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는 상금이 1억이나 되는 세계문학상의 다섯번째 수상작입니다. 『아내가 결혼했다』나 『스타일』처럼 세계문학상 수상작들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영상으로 옮기기에 스토리나 구성이 적합하다는 뜻일테지만(어쩌면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수상작을 선정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 이유로 세계문학상 수상작들을 기피하고 있기도 합니다. 가볍다는 느낌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정유정 작가는 『7년의 밤』으로 먼저 만났기 때문에 일단 기피 대상은 아니었고, 『7년의 밤』이 꽤 인상적이어서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내 심장을 쏴라』 책표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주인공들이 어떤 상황인지 대충 눈치챌 수 있습니다. 빠삐용을 연상시키는 유니폼(!)을 입고 침대 위에서 희한한 몸짓을 하고 있는 두 남자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환자입니다. 25살 동갑에, 같은 날 입원한 동기지만 외모나 병명, 상황은 전혀 다른 남자들이죠.

   이수명은, 얼마전에 드마라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이 앓았던 병과 같은 스키조, 즉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습니다. 수명이 열아홉살 때,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어머니가 욕조 안에서 목에 가위를 꽂고 자살한 이후로 앓게 된 병입니다. 그날 이후로 수명은 머리를 한번도 잘라본 적이 없습니다. 바리캉도 수명에게는 가위와 마찬가지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긴머리를 늘어 뜨리고 다니는 수명을 병원 사람들은 '미스 리'라고 부릅니다.

   덩치가 커서 움직일 때마다 물건을 쓰러뜨리는 류재민은, 진짜 병을 앓고 있는게 아닙니다. 어느 재벌가 회장의 혼외 아들인데 그의 이복 형들이 그를 병원에 가둔 것입니다. 병원에 갇히기 전 재민은 패러글라이딩 선수였습니다. 그래서 병원 근처에 활공장이 있는 걸 알고는 수시로 탈출하려고 애씁니다.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던 사람인데, 게다가 미치지도 않았는데, 정신병원에 갇혀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 있나요? 아니 미쳐 날뛰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재민의 진짜 병은 따로 있었습니다. 재민은 단순히 덩치가 커서, 야맹증이 심해서, 물건을 쓰러뜨리고 다니고 밤마다 어딘가에 부딪혔던게 아닙니다. 재민은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투약했던 약이 재민의 실명을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길 두려워하는 수명은 이런 재민 때문에 탈출을 도모합니다. 자신은 미쳐서 갇혀 있는거지만, 재민은 미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곧 눈이 멀 예정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을 때 세상을 한번 더 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마음 혹은 몸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수명과 재민은 무언가를 꿈꿉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 매번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그들에 비하면 몸과 마음이 매우 자유로운 우리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갇혀서 꿈조차 꾸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 갇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지 망각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다른 부분에 비해 도입부가 쉽게 읽혀지지 않습니다.

외톨이로 돌아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외로움이란, 외롭지 않았던 적이 있는 자만이 두려워하는 감정이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p.52)

내가 제대로 들었다면, `존재의 징표`에 대해 물은 거라면, 내놓을 것이 없었다. 내 인생에서 나는 유령이었다. (p.240)

 "난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게 아냐. 내 시간 속에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삶이야. 나는 살고 싶어.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살려고 애쓰고 있어. 그뿐이야."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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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5-03-24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 격이 가물 가물가물하네요.

뒷북소녀 2015-03-24 12:37   좋아요 0 | URL
특별히 인상적인 책이 아니었다면, 보통은 다들 가물가물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