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전집 3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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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삶은 다른 곳에 있어요! 완전히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가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 시기에 집필을 시작해서 1968년 러시아 침공 이후에 끝마친 장편소설 『삶은 다른 곳에』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삶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훗날 시인이 되는 '야로밀'은 정확하게 어디에서 잉태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공원 벤치, 아니면 어느 오후 시인의 아버지의 친구의 아파트, 혹은 어느 날 아침 프라하 근교의 한 낭만적인 장소"(9쪽) 중 하나일 텐데, 시인의 어머니는 프라하 근교의 한 낭만적인 장소에서 잉태되었길 바랐다. 그곳만이 시인이 잉태되기에 적당한 곳이니까.

시인이 잉태되어 부랴부랴 결혼한 시인의 부모. 시인의 아버지는 이미 잉태된 시인을 떼버리자고 할 정도로 무심했고, 그런 아버지 때문에 시인의 어머니는 점점 더 시인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시인의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고, 가족들은 수용소에서 그가 죽었다는 통지서를 받게 된다.

어머니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시인을 향할 수밖에 없었고, 시인 또한 그런 관심과 시선을 즐겼다. 특히, 어머니는 "인생은 잡초 같아요."(27쪽) 같은 시인이 짧게 내뱉는 단어들의 조합을 듣고 "문장의 각운"(25쪽)이 느껴진다며 칭찬했고 훗날 시인이 될 재능을 발견했다. '프라하 근교의 한 낭만적인 장소'에서 잉태된 것은 야로밀일뿐, 사실 시인은 이때 잉태된 것이 아니었을까? (어머니로부터)

어머니는 재능 있는 아들의 조기교육을 위해 한 화가에게 미술 교육을 맡긴다. 그런데 이 화가는 삐뚤삐뚤한 시인의 그림을 바로잡아주기는커녕 그것이 바로 예술적 재능이라고 말하고, 항의하러 온 어머니의 몸을 탐하기도 한다.

소년 '야로밀'은 왜 시를 썼을까?

사춘기 무렵의 소년들이 그러하듯이, 이즈음 야로밀도 성적 충동이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후 하녀 마그다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게 된 야로밀. 치밀하게 준비를 했지만, 마그다가 욕실 열쇠구멍을 쳐다보는 것 같자 이내 자기 방으로 도망쳐 버린다. 야로밀은 대담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해 격렬한 혐오감"(89쪽)을 느꼈고, 그 혐오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때의 불발된 행동과 감정들을 시로 써냈다.

내가 이토록 작디 작음을 문득 깨닫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어디로 도망을 치는가? 위를 향한 도피만이 밑으로 낮아지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책상에 앉아 그 작은 책(화가가 다른 누구에게도 빌려 주지 않는다고 했던 그 소중한 책)을 펼치고 제일 좋아하는 시들에 집중하려고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또다시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으니, 저 멀리 그대 눈동자가 잠기는 바다가 있고, 또다시 눈앞에 마그다가 보이고, 그렇다, 그녀 몸의 고요 속에 깃든 눈송이를 포함하여 거기 모든 게 있었고, 닫힌 창을 너머 강물 소리가 방으로 들어오듯 찰랑이는 물소리가 시 속으로 들어왔다. 야로밀은 나른한 욕망이 온몸을 사로잡는 느낌이 들었고, 책을 덮었다. 그는 종이 한 장과 연필을 꺼내 엘뤼아르, 네즈발, 비에블, 데스노스 식으로 자기가 직접 글을 쓰기 시작하며, 운율도 각운도 없이 짧은 시행들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이건 그가 읽은 시들의 변주였지만 이 변주 속에는 그가 조금 전 겪은 것이 들어 있었고, 녹아내려 물로 변하는 슬픔이 있었으며, 수면이 올라가고 또 올라가 내 눈까지 차오르는 초록빛 물이, 몸이, 슬픈 몸, 내가 쫓아가는, 한없는 물을 가로질러 내가 쫓아가는 물속에 잠긴 몸이 있었다.

그는 이 구절을 큰 소리로, 선율적이고 비장한 목소리로 여러 번 읽으며 열광했다. 이 시의 근원에는 욕조 안의 마그다가 있고 욕실 문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댄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 체험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그 위에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그가 느낀 혐오감은 저 아래 있는 것이었다. 저 아래에서 그는 두려움에 질려 손이 축축해지고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 이 위에서, 시 속에서 그는 자신의 초라함과 아주 멀리 떨어진 저 위에 있었다. 열쇠 구멍과 자신이 비겁하게 굴었던 사건은 이제 그가 딛고 뛰어오르는 발판일 뿐이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방금 겪은 것에 종속되지 않았고, 그가 방금 겪은 것이 그가 쓴 것에 종속되어 있었다. 90~91쪽

*밑줄 : 책 본문에서 볼드체로 표시된 부분.

하녀 마그다가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다가 생긴 혐오감 때문에 쓴 시인데, 야로밀은 자신이 쓴 이 시를 읽고 열광한다. 더 웃긴 것은, 그의 어머니 또한 이 시를 엄청난 사상이 내재된 시로 여기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이 시의 진실을 안다면, 어머니는 도대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마그다를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이야기라는 것은 짐작도 못 했고, 물속의 사랑이란 그녀에게 무언가 더 일반적인 것, 사랑의 신비로운 범주 아니 불가해한, 그 의미는 예언의 의미를 추측하듯 그렇게 추측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라고 여겨졌다. 350쪽

이처럼 야로밀이 '시'에 집착하는 이유는, 시가 그를 "이 아래 세상"에서 "저 위"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위안이 있었다. 이 아래 세상, 일상의 삶을 살고, 학교에 가고, 어머니, 할머니와 점심을 먹는 여기에서는 단조로운 공허가 펼쳐져 있지만 저 위, 자신의 시 속에서 그는 푯말들을 세우고, 설명을 새긴 이정표들을 박아 놓았다. 그곳에서 시간은 서로 구분되고 달랐다. 그는 어떤 시의 시기에서 다른 시기로 건너갔고, (곁눈으로 흘깃 저 아래 세상을, 아무 일도 없이 끔찍하게 정체된 그곳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상상에 예기지 않던 지평선이 열리는 새로운 시기의 도래를 벅찬 황홀감 속에서 자신에게 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그는 별 볼일 없는 자신의 외모(또한 삶)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겐 어떤 특별한 풍요로움이 있다는 굳건하고 든든한 확신을 가질 수도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선택된 존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155~156쪽

시를 쓰면서 야로밀은 "별 볼일 없는 자신의 외모(또한 삶)"가 "선택된 존재"로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는 '신동'이라고 감탄하기까지 했으며, 저속한 내용의 시도 고상한 사상이 담겨있는 것으로 받아졌다.

야로밀은 어떻게 행동하는 삶으로 뛰어들었나?

이랬던 그가 각성하는 계기가 생겼다. 학창시절 함께 다녔던 수위의 아들이 있는데, 사실 이 친구는 아버지 때문에 왕따처럼 지냈다. 야로밀 역시 친구들로부터 하나씩 버림을 받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둘은 친구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만난 수위 아들은 경찰관이 되어 있었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가장이 되어 있었다. 청년 야로밀이 시를 쓰며 추상의 세계(혹은 거울 속 세계)를 헤매고 다닐 때 그는 '행동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게다가 야로밀만의 세계라고 생각했던 '시의 세계'를 알고 있었고, 야로밀의 시를 알아봐 주었다.

야로밀은 이렇게 말하며 또다시 이런 남성적인 직업과 이런 기밀과 아내를 가진 동창이 부러웠고 또한 아내 앞에서 기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아내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부러웠다. 그는 그의 진짜 삶, 자기는 아무리 해도 다가가지 못하는 (갈색 머리 남자가 왜 잡혀갔는지 전혀 영문을 모르고, 그저 단 하나, 그래야만 했다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잔인한 아름다움(또한 아름다운 잔인함)을 지닌 그 진짜 삶이 부러웠으며, 그 자신은 아직 들어가지 못한 (동갑인 옛 동창 앞에서 다시 한 번 쓰라리게 깨닫는다.) 그 진짜 삶이 부러웠다. 357~358쪽

야로밀은 수위 아들의 삶이 부러웠다. 자신은 여전히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어머니 테두리 안에서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심지어 독립적인 공간 하나 갖지 못해 어머니 눈치를 보고 여자친구 집만 전전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서 시의 세계로 숨어들었는데, 수위 아들은 그와 정반대인 '진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소심하고 수동적이며, 여성적인 환경에 둘러싸인 자신과는 달리 남성적이며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 심지어 시까지 잊지 않고 있다니.

야로밀은 이런 부끄러움 혹은 분노를 빨간 머리 여자친구에게 내뱉는다. 여자친구가 잠깐 늦었을 뿐인데, 야로밀을 잠시 기다리게 했을 뿐인데, 무엇 때문에 늦었는지 여자친구를 추궁하는 야로밀. 자신을 기다리게 만든 이유가 중요한 일이길 원했던 야로밀 때문에 여자친구는 오빠가 국경을 넘으려 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정도쯤 되면 야로밀이 진짜 중요한 일이라고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친구 오빠 이야기를 들은 야로밀은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시대가 정해준) '의무'에 따라 행동할 때라고 생각하고는 수위 아들을 찾아가 여자친구 오빠를 밀고한다.

그는 (경찰서처럼 중요한 건물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듯이) 수위실에 신분증을 제출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가 어떻게 걸어가는지, 한 걸음 한 걸음 어떻게 재듯이 걷고 있는지 보라! 그는 마치 어깨 위에 자신의 운명 전체를 지고 있는 것처럼 걷고 있다. 그는 건물 위층이 아니라 자기 삶의 위층, 아직 보지 못했던 것을 이제 내다보게 될 위층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420쪽

야로밀의 밀고 때문에 여자친구는 체포되고, 야로밀은 그녀를 만날 수가 없었다.

야로밀은 (유치하지만) 여자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자신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겠냐고 여자친구에게 물었더니 여자친구는 그냥 슬플 거라고만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야로밀은 자신이 없어졌는데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냐고 크게 화를 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사라진 후 야로밀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여자친구가 풀려난 3년 뒤로 건너뛰어 버린다. 그녀는 예전부터 자신에게 의지가 됐던 '사십 대 남자'를 찾아가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그날 그녀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그 후 야로밀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야로밀은 그의 말처럼, 그녀가 사라지자 죽어버렸다.

그런데 그 죽음은 그렇게 위대하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잉태와 달리 시인답지 않게) 며칠 뒤 감기에 걸려 죽었다. 심지어 어떤 이의 집에 갔다가 발코니로 쫓겨나는 바람에 감기에 걸렸던 것이다.

1부. 또는 시인이 태어나다

2부. 또는 자비에

3부. 또는 시인, 수음을 하다

4부. 또는 시인은 달린다

5부. 또는 시인, 질투하다

6부. 또는 사십 대 남자

7부. 또는 시인이 죽다

『삶은 다른 곳에』 역시 밀란 쿤데라의 여느 소설처럼 7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첫 소설인 『농담』을 쓰고 난 후부터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숫자'7'에 집착하고 있다.) 각 장의 제목처럼 1부, 3부, 4부, 5부는 시인의 이야기이며, 6부의 '사십 대 남자'는 여자친구가 시인을 만나기 전부터 알고 지냈던 남자로, 여자친구 입장을 전한다. 2부에 등장하는 '자비에'는 시인이 창조해 낸 가상의 인물이다. '자비에'의 정체는 7부에서 밝혀지는데, 그는 자신이 현실에서 살 수 없었던 삶을 '자비에'를 통해 대신 살았다.

처음에는 야로밀, 자기 혼자밖에 없었다.

나중에 야로밀은 자신의 분신, 자비에를 만들어 내 그와 더불어 또 다른 삶, 꿈과 같고 모험에 찬 다른 삶을 지어냈다. 477쪽

누구나 단 하나 유일한 자신의 삶 외에 다른 삶들을 살아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당신 또한 실현되지 못한 당신의 모든 잠재적 삶들, 당신의 모든 가능한 삶들을 살아 보고 싶을 것이다.(아! 실현 불가능한 자비에!) 우리의 소설은 당신과 같다. 우리의 소설 역시 다른 소설들, 그렇게 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않은, 다른 소설들이고 싶다. (…) 사람은 결코 자기 삶에서 나올 수가 없다면, 소설은 훨씬 자유롭다. 434쪽

『삶은 다른 곳에』는 '야로밀'(야로밀의 분신인 '자비에'까지)를 제외하면 주요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그러니까 하녀 마그다는 주요 인물이 아니라는 이야기) 아버지, 어머니, 빨간 머리 여자친구, 사십 대 남자, 수위의 아들, 영화학도, 노시인 등.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이야기로 특정 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시절을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살았다고, 그들 모두가 비슷한 일들을 겪었었다고.

앞서 읽었던 두 편의 소설, 『농담』, 『우스운 사랑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읽었던 작품이다. (사실 할 이야기도 많아서 정리하기도 어렵다.) 『농담』부터 공통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인물 혹은 상황들이 있고, 그 모든 작품들 속에서 '농담' 같은 에피소드들이 존재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은 각각의 이야기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 얽혀있는 것 같다. 아니면 그 모든 작품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설계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삶은 다른 곳에 있어요! 완전히 다른 곳에! 4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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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02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쿤데가 전작으로 가시나요?

ㅋㅋ 전 꼴랑 한 권 읽은 게 전부네요.

<참을 수>도 읽다가 말았더라는. 그것
도 두 번이나.

뒷북소녀 2019-12-02 21:34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ㅋ 전집 15권 도전 중입니다. 완주하고나면 자랑할게요. 참고로 엄청 재밌어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