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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평점 :

간단후쿠를 입고, 나는 간단후쿠가 된다.
간단후쿠는 나를 입고 자신의 것으로,
자신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간단후쿠가 돼 눕고, 일어서고,
먹고 마냥 서 있고, 걸어 다닌다. _7쪽
『간단후쿠』,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단어였다. '간단후쿠'는 옥수수자루 아니면 항아리 같은 모양에 둥그스름한 구멍이 네 개 있는 옷이다. 입고 벗기 쉽도록 만든 것으로, 일본군 위안소에서 '위안부'들이 주로 입은 간단한 원피스식의 옷이다. 보통은 감자 껍질 빛깔의 광목천으로 만들었는데, 쉰 옥수수 냄새를 풍기며 대나무 잎보다 빳빳하다고 한다.
'간단후쿠'를 입은 소녀들은 원래 다른 곳에 가 있어야 했다. 바늘 공장도 있었고, 실 공장도 있었다. 그저 좋은 공장, 돈 많이 버는 공장으로만 알고 따라나선 곳이 만주 허허벌판에 세워진 '스즈랑'이었다. 그곳은 널빤지 하나로 방 아니 칸막이를 만든 곳이었는데, 소녀들은 밤마다 그곳에서 군표를 받고 잠을 잔다. 군인 한 명에 군표 하나. 밤새 15장의 군표를 모아서 가도 빚을 갚기에 부족하다고 한다. 빚을 갚기는커녕 매일 이자가 늘어만 간다. 소녀들은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저마다 떠나온 고향으로, 가족들이 바라던 대로 돈을 벌어서 돌아갈 수 있을까?
'엄마, 나 만주 실 공장에서 아기를 낳을 거 같아요. 누구 아기인지는 묻지 마세요. 실 공장에서 번 돈은 집에 갈 때 가지고 갈게요. 답장은 마세요.' _287~288쪽
쉬이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소녀들은 어떻게 그 세월을 견딜 수 있었을까? 작가는 어떻게 그 이야기를 듣고 글로 쓸 수 있었을까? 소녀들의 이야기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것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장 한 장 읽는 게 힘들었고, 입을 틀어막고 읽을 때도 있었다.
작가 김숨은 10년 동안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만났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침내 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듣는 것도, 쓰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포기하지 않아서, 외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반복되는 전쟁과 폭력과 학살. 간단후쿠를 입고 간단후쿠가 된 소녀들은 여전히 곳곳에 있다. 우리가 보고 있지 못하거나 보려고 하지 않을 뿐.
존엄을 회복하고 숭고한 모습으로 그 소녀들의,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되어 찾아오실 할머니들께 이 소설을 드린다. _290~2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