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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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의 슈바빙 이야기. 최하림인가가 쓴 전혜린의 평전을 읽은 적이 있었다. 삼십이 넘어서야 읽었다.

그녀가 번역한 책은 몇 개 읽었으나 전혜린 그 자신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복에 겨워서, 세상에 어린 자식을 남기고 자살을 해 버리다니, 그것도 겨우 나이 서른을 넘긴 주제에. 이것이 이유였다. 당시 나는 유복한 가정의 아이가 지적인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특별하게 자란 것에 대해 일종의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다른 애들처럼 전혜린에 부화뇌동 않기로 혼자 결심하고 전혜린을 외면한 채로 이십대를 건넜다. 그래서 삼십이 넘어서야 전혜린 평전을 집어들었고 결국 이유야 어찌됐든 이십대에 전혜린을 읽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말았다. 그때 읽었더라면 나는 내 환경을 저주했을 것이고 끔찍하게 건방졌을 것이고 불가피하게도 자살을 생각하고 실천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치기나 객기 같은 것은 대개 당면한 개체에게만은 절대적이니까. 그러나 이즈음 나는 그때 전혜린을 읽었더라면 지금 많이 달라져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훨렁훨렁, 이십대를 그토록 허무하게 술이나 마셔대며 보내지는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아주 허망한 것만도 아니니, 젊은이는 1960년대나 1980년대나, 뮌헨의 슈바빙에서나 서울의 신촌에서나, 반항적이고 저항적이고 그지없이 가난했다. 담배연기와 맥주냄새, 소주냄새로 가득찬 술집에서 몇 년이나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걸치고  제대로 빗지도 않은 머리를 마주대고 앉아서 과연 술만 먹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름만 슈바빙이 아니었을 뿐. 슈바빙이라는 이름을 단 장소는 오히려 종로에 있었다. 

종로의 슈바빙. 그저 시끄럽고 얄팍한 술집에 지나지 않았던 그 슈바빙은 전혜린의 슈바빙. 그러나 그녀의 슈바빙은 그때 내가 상상하고 코웃음치던 종로의 그 슈바빙이 아니다. 허수경이 독일에 가 있는 이유도 이런 촉발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슈바빙에 가보고 싶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참이다. 전혜린은 왜 자살했을까. 그 자살로 아직까지 그 둘렀던 머플러 하나도 소장자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전혜린이 죽은 이유를 곰곰 살펴보고자 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이유였단 말인가.

이 책에 그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그래도 자살자들은 자기 생을 걸 만큼 진지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스스로는 어쩌지 못한다는 우울증도 이유가 되었을 것이고. 그 심정을 살아있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고도 하고. 그러하니 이 책을 통해 본 것은 당시 이만한 '여성'이 없었을 거라는 것. 나아가 그래서 그토록 많은 청년들을 매혹시켰을 것이라는 점. 거기에 동년배 여성들의 막연한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리라는 것 또한 추가! 그리고 그녀가 들려 주는 해외 소식이란 당시엔 목을 빼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을 것이라는 것 때문에라도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시대에 그녀가 살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실, 이 전혜린과 닮은 지금의 '여성' 하나를 나는 알고 있다. 뭇남성들의 그녀에 대한 애정에서도 느꼈던 바이지만 여자인 나로서도 그녀에게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전혜린도 그 시대, 그런 인물 중 하나였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한 매혹적인 사람이 있다는 것, 그를 알고 있다는 것이 생을 풍부하게 한다는 것을 느낀지 오래이니 전혜린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관심을 이해할 수 있다.

기형도와 더불어 일찍 죽어 버린 자들의 후광이 이 도시를 감싸고 짙은 회색 안개처럼 흐르고 있다. 여간해서 젊은이들의 주변을 떠나지 않는 짙은 안개. 일찍 죽은 자는 오래 살아가는 자에게 언제나 반성의 시간을 손에 쥐어 주고, 더구나 손에 닿을 수 없는 자리에 면면히, 당당하게 서서 살아있는 자보다 언제나 더 위대한 손짓을 한다. 저 맑고 깊고 신비하기까지 한 손짓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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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시와시학 푸른시떼 3
반칠환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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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로 되어 있는데...

1. 외딴집

2. 속도에 대한 명상

3. 둥근 시집

 

'외딴집'은 그대로 하나의 이야기다.

읽으면서 그 외딴집이 눈앞에 그려져서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처음엔 이 것을 시가 아니라 기록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했지만

외딴집 전체가 하나의 시란 생각으로 정리됐다.

차라리 한 권 모두가 외딴집이었다면 좋았을 걸, 1부가 끝나고 든 생각이다.

참 좋은 시집 만났다.

 

외딴집을 떠나와 도시에서 그는 속도를 경험하는데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물리적 공간의 크기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스스로 속도에 얹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했던 외딴집의 밝음은 굉장한 속력으로 도시의 어둠 속으로 와버렸다.

그래서 그 지킴이뱀은 어디로 가서 업이 되어야할지 망설였던 것일 게다.

그 속도의 어둠이 좀 가렵다.

참으로 좋게 느껴진 것은 슬픔이 감상적이지 않다는 것.

수사가 많지 않아서 또한 좋았다.

장식은 조금만 지나가면 지겨워진다.

감정을 명명한 단어 역시 읽던 시를 집어던지게 한다.

그러나 이 시집, 그럴 틈이 없이 빨라서 좋다.

시 안에 머뭇거려야 할 비유의 驛舍가 거의 없어서 시 한 수가 그대로 驛舍일 수 있는 시들.

그것이 반칠환의 시선이고 그 깊이일 것이다.

장식이 많은 시들을 읽지 못하는 내게는 상당히 좋은 시집이었다.

또한 나의 이런 경향성이 결국 나를 서툴게 할 것임을 느낀다.

 

느낌에, 요즘 유행하기에 조심스럽다는 생태시가 아닌가 했다.

저 산골 촌놈이사 어찌 개구리 한 마리가 예사로 보일 수 있겠는가.

이곳 도시에 아직 정착하기로 한 것이 아닌 시인으로 보였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밖에는 모르고 도시 바깥에서는 절대로 살 수 없을 것이 분명한 나는

이런 시들을 읽으며 내 깃든 곳의 어둠만 있어서 좀 서럽기는 했다.

그러나 어쩌랴, 자기 유년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란 없다.

그래서 해석하기 나름인 것이고 혼자만 볼 수 있는 빛도 가끔 바깥에다 흘려줄 수 있을 것이니

나, 시골로 가서 나무와 숲과 벌레들과 사는 삶을 그리워하며 지내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충분하다.

 

첫 시집의 서툶이 그대로 드러나긴 해도, 아쉬워서 어떤 시구는 바꾸고 싶었어도

참 좋은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은 여전하다.

도서관에서 빌린 터라 시인에게 미안하다.

대신 나는 내 좋아하는 여백 채우기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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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관계 1
마키무라 사토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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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인 아버지 탓에 모모에는 세상의 맛있는 음식이란 음식은 안 먹어본 것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모모에는 타고난 입맛아가씨.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사이좋고 다정하고 자상한 부모 슬하에서 모모에는 부러울 것 없는 그야말로 부르조아 영양이었다. 아버지가 그 과식 습관으로 인한 지방간의 공격에 무참히 쓰러지기 전까지는.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인 모모에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식당에 취직한다. 그곳은 참으로 맛있는 프랑스 요리점. 그 가게의 셰프 오다는 와아, 무지막지하게 신경질적이고 고집 세고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 남자. 냉랭하기 짝이 없으나 그의 요리를 맛볼 수만 있다면 어떤 처사라도 달게 받으리라 다짐하는 모모에. 여기에 오다와는 어린 시절까지 얽힌 천재 요리사 타카하시가 합세하고. 진부한 삼각관계가 전개될 것 같지만 no! 다. 이 만화의 주제는 '맛있는 인생'이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들은 종종 줄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오다를 짝사랑하던 모모에는 오다의 티끌 만큼도 없는 애정에 절망하지만 타고난 낙천성은 그대로 삶의 힘이 된다. 그 낙천적 전개로 해서 언뜻 야자와 아이 생각이 나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그저 단순한 '해피마인드여야만 해!'가 아닌, 여러 날의 숙고를 통한 극복이어서 읽는 맛이 남다르다. 게다가 감칠맛나는 조연들이 많다.

캐리어우먼이자 오다의 애인인 카나코는 마음이 병든 어머니를 병원에 맡겨두고 있다. 카나코는 자기에게 기대기만 하는 어머니가 너무나 부담스럽다. 정신력이 약한 어머니는 카나코가 힘들면 힘들수록 자학으로 딸을 괴롭힌다. 주치의는 그런 어머니를 이제 놓으라고 권한다. 카나코도 이젠 어머니에게서 벗어나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서로 의지만 하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일시적으로 많이 외로워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언젠가는 (엄마도)알 게 될 거야. 카나코씨가 매정하게 돌아서면 오히려 강해질지, 아니면 자신을 상처입힐지는, 알 수 없지만...... 살려는 욕구가 있다면 기왕 사는 거 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참으로 의사가 해야할 말인 듯하다. ^^ 그래, 기왕 사는 거 강하게 살아야지. 암.

카리스마 넘치는 할머니 치요. 왕년의 대요리사. 오다와 타카하시를 데려다 키우고 요리사로 만들어낸 여자대마왕이다. 가끔 이런 사람, 능력있고 자신만만하고 옳은 늙은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없을까? 돌아다니며 배우려 하지 않으니 이런 사람 만나기는 내 생에 글렀다. 모모에는 치요를 만나 자기도 모르게 매번 크게 깨닫는다. 부러워, 부러워!!!!!!


-
어머, 포도분재에요?
(포도분재는 굵은 한 줄기가 사이좋게 양분되어 정말 멋지게 자라 있다)
-같은 씨에서 난 싹이지만 이젠 어느 한 쪽을 잘라내야 해. 이렇게 보고 있으면 양쪽 다 쑥쑥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을 것 같아. 하지만 현실은 다르지. 이대로 키운다면 결국 어느쪽 가지에 충실할 것인가를 망설이다가 이도 저도 안 되게 되지. 망설이며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찰캉! 찰캉!(두 가지를 다 싹둑 잘라 버리는 치요)
-그 시점에서 죽어 버린 것과 같은 거야.

-인간이란 젊어서 철없을 때는 마치 자신에게 영원의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생각하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인간에게 영원의 시간 따윈 없어. 선택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어 버리게 돼.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그것이 인간의 숙명. 그것만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절대'야. '죽음'만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평등'. '절망'은 인간의 숙명. 인간은 약해서 그런 당연한 것조차 보려고 하지 않지. 절망의 늪 깊은 곳에는 희망이라는 구원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야.

요컨대 어떤 상태가 되든 견디고 견뎌서 바닥을 치라는 말이렸다?

-요리는 마법이 아니야. 정확한 맛을 내는 법칙이 있지. 레시피는 바로 그것을 위한 가이드고, 기술은 손끝이 갈라질 때까지 손에 익히는 수밖에는 없어. 물론 센스도 중요해.


세상에 마법이란 없다. 정확한 것이 되는 법칙이 있다. 레시피. 가이드가 있다면 그걸 활용하라. 무엇을 만들든 가이드를 활용하라....이러쿵저러쿵, 치요는 찾아온 모모에에게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그걸 듣고 있는 모모에는 어딘가 다시 자기를 이끌어 올리는 힘을 느끼게 된다.

-매화향기가 막 느껴진다 싶었는데 금세 사라져 버렸어. 허무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더 좋아. --무상하군. 인간은 행복도 언제나 계속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 때문에 더욱더 소중히 여기는 거야. 한순간의 행복조차 고맙게 느끼는 거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해. 자신의 마음 속에 행복의 원형이 없으면 알 수 없고 알아채지도 못해.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으면 불행만을 보게 되지만 이러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어.(6권 中)

'행복의 원형'이라는 말.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나에게 그 원형이란 게 있나? 그런 게 정말 있는 건가? 이런 스승과 함께 있으면 저 순간의 모모에처럼 여기저기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될까?

젊은이들 이야기여서인지 읽으면서 자꾸 뒤가 돌아봐졌다. 참 열심히 사는구나, 이 젊은이들은, 하면서 나는 이들처럼 열심히, 치열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선택하고 실행했던가, 하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에게는 정말 투미한 정신만 있었는지, 놀아제낀 기억밖에는 없는 것이다. ㅠ_ㅠ 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보니 그야말로 해놓은 거 정말 없는 인생. 좀 나이든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는 세상이라는 것도 모르고 좋다고 얼씨구나 놀아보세, 살아오지 않았는가, 이렇게 나이만 들지 않았는가, 자탄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이 만화를 읽는 동안 사실은 의기소침해 있었다. 요즈음 같은 기세로 살지 않았던 세월을 아아, 후회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일종의 열정을 내 삶에 부어왔다고 믿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회란 없어야 한다,가 내 생활지침이었다. 분명 지금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있는 나의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고는 저 원형에 대해 고심했는데... 아무래도 나는 역시 낙천가인 모양이다. 나이가 무슨 대수랴. 나는 지금 몸과 마음이 다 바빠서 후회할 시간이 없는데 이 무슨 짓이람, 도대체 득될 것이 아닌데. -_-

그러나 이 즈음에서 좀 쉬었다 가겠다. 바쁜 마음은 거둬들이고 좀 느긋하게 가자. 이런저런 쓰기로 해서, 바쁜 마음에 잃고 말았던 나에게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한다. 맛있는 인생이라는 거, 좀 알고 있었는데 그걸 잊어 버리다니. 내 바빠도 한참 바빴구나, 쓸데없이.

느리게 가도 된다. 맛있는 인생이 그 속에 있으니 그걸 즐기자. 새해도 이미 시작되었고. 그나저나... 여기 나오는 수많은 프랑스요리들... 흐윽... 먹어본 것이 없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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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게빵 1 - 빵에도 여러종류가 있나 보다...
타카하시 미키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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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 큰 아이가 문구점에서 다른 건 다 마다하고 코게빵 그림이 그려진 것만을 고집했을 때가 있었다. 아이의 설명에 의하면 코게빵이란 탄 빵이고 일본 캐릭터인데 자기는 그 탄 빵이 좋단다.

-왜? 탄 빵이 뭔데?
-그냥 유행하는 건데, 나는 타래팬더보다 코게빵이 더 좋아.

결국 아이의 책가방에는  탄 빵이 새겨진 문구 몇 개가 들어가게 되었다. 유래야 일본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떻게 나온 것인지 알아야 좋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냐는 내 말은 그냥 흩어지고 말았다.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이 스토리북을 발견했다. 기다렸던 것은 아니지만 코게빵이 도대체 뭔가를 알고 싶어서 나온 3권을 다 샀다. 사실 다른 걸 가져다 주기로 했는데 가져오겠다던 사람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애들에게 대신해 줄 것을 찾고 있던 차였다.

1. 빵에도 여러 종류가 있나 보다
2. 빵의 행복이란 뭘까
3. 빵에게도 새로운 만남이 있나보다

제목도 그럴 듯하다. ^^

작가의 그림과 캐릭터 스토리, 자포자기 생활이라는 4컷 만화로 이루어진 이 스토리북은 상당히 재미있다. 자기가 좋아했던 것의 정체를 알게 된 아이들의 환호성을 듣는 것도 일종의 보람이라면 보람이고. ^^;

내용을 둘러보면, 어차피 그리된(탔다. 그리고 그때부터 빵이 아니다.) 운명과 동료들, 그들과 함께 삐딱하지만 살아가는 재미도 가끔은 느끼는 탄 빵의 삐딱하고 한숨 나오고 불쌍하기도 한 생활. 사람도, 자기 운명과 신세와 삶을, 아마 탄 빵과 그리 다르지 않게 짊어진 듯한, 아리까리한 메타포를 던진다.

과연 코게빵이란 무엇인가?



본래 모습은 이래야 맞다. ^^

의욕제로에다 걸핏하면 시비 걸고 자격지심 만땅에, 어떻게든 팔려가는 빵이 되고 싶어 밀가루칠도 해보고 탄 얼굴에 딸기잼도 발라보고 하지만, 탄 빵은 탄 빵. 피부를 긁어내고 싶어했던 사강의 여주인공처럼 제 몸의 탄 부분을 긁어내지만 말랑말랑해지기는커녕 버석버석한 가루만 떨어질 뿐. 새들조차 물었다가 뱉어 버린다. 아무도 사가지 않는 빵은 구석에 앉아 '빵의 행복'이라는 책을 읽는다. 돌아 앉아 어차피 어차피 하면서도 잘 구워진 빵들에게 더 예쁘게 웃으라고, 그래야 잘 팔린다고 훈계도 잊지 않는, 살아있는 빵이 코게빵이었다. 하핫.

읽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쩌다 말이야, 어쩌다가... 이렇게 재수없게 탄 빵이 될 수도 있어. 그래도 친구도 있고 술(여기서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우유가 술이다. ^^)도 있고, 봄도 다시 돌아오고 그러잖아? 이렇게 살 수도 있는 거야. 그래도 재미있겠지? 탄 빵이 되는 건 싫지만 말이야.

아이들은 어찌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뭐, 미래는 예측불허라고 그랬다. 한숨 나오는 신세도 가끔 떠올려 보는 거, 어른이 되어서만 해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 하하.

코게빵이 어쩌다가 탔냐구요?
그건 스스로 알아보도록 하세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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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페이크 1
후지히코 호소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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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명화를 감상하는 것에 대해, 특히나 화가나 명화의 이름들을 줄줄 꿰고 그에 대한 리뷰를 하는 것에 대해 그동안 편견을 가졌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에 대해서라기보다는 그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시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되어서도 마찬가지였고 현재 시에 대해서는 그 편견이 상당히 사라진 상태다. 그림과 그를 감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역시 시에 관한 지금의 태도를 지향하고 있다. 나아가 명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더는 부르조아적 취향으로 몰아세우지 않겠다. 그야말로 '타인의 취향'이다.

덕분에 즐거운 만화를 보았다. 친구의 소개도 있었다. 한동안 대여점을 기웃거렸지만 찾지 못했었는데 이사한 덕분에 찾아볼 수 있는 책이 되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전 큐레이터이자 현재는 도쿄에서 '갤러리 페이크'라는 작은 화랑을 운영하는 후지타 레이지. 메트로폴리탄에서 '교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실력자였지만, 그가 운영하는 '갤러리 페이크'는 복제화랑. 게다가 겉으로는 복제품을 다루지만, 실제로는 불법 유출물이나 싸게 구입한 장물을 비싸게 파는 '뒷거리 세계'의 질나쁜 화랑이다. 그러나 가짜미술품 화랑을 운영하면서, 진짜미술품을 파는 화랑계의 위선과 졸부들의 허위의식을 파헤치는 후지타를 보는 일은 상당히 통쾌하다. 물론 세상에 후지타 만한 인물도 없다는 식의 만화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감안을 해야 하겠지만.-_- 그러나 명화 복원에 있어서 일본인이 최고임은 이미 사실이라고 들었다. -ㅇ-

박물관이나 화랑, 복제 등이 주소재인 만화인 만큼 명화나 명품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읽는 즐거움의 하나다. 끌로드 모네의 '볏집', 르느와르의 '목욕 후', 피카소의 '청색시대',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뿐만 아니라 세잔느, 모딜리아니,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 유명 작가들의 이름난 작품을 만화로 만날 수 있다. 빅터 하르트만과 무소그르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 대한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도 나로서는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언뜻 들은 적이 있었으나 확연하지는 않았던 에피소드였는데 말이다. 비단 명화나 명품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골동품, 건축물, 시계, 엘도라도의 전설 탐험, 피라미드의 보물, 해저 속 보물선 인양, 오래된 장난감 등도 다뤄지는데 가끔 소재를 찾고 있는 저자가 떠오르기는 해도 읽는 재미를 해치지는 않는다. 큐레이터가 뭔지, 미술상이 뭔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어찌 돌아가는 건지 들여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만화는 읽는 데 시간이 좀 든다. 그만큼 설명이 많다는 뜻인데 흠은 아니다. 순전히 지식전달의 차원인데다가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라서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그림체는 상당히 어눌하다. 하긴 후지타가 꽃미남이었으면 좀 꺼려질 수도 있었겠다. 후훗. 여튼, 재미가 눈을 이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만화라는 점에서 여기 언급된 게 허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평소 만화와는 담을 쌓고 지내온 미술평론가 윤범모씨가 "미술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뒷받침"되고, "미술사학자, 미술기자가 들려주는 미술이야기 같다"라며 추천의 글을 다 쓴 것으로 보아, 그림이 뭔지도 모르는 내가 강추를 해도 욕은 안듣겠다 싶었다. ^^;

디글디굴 심심해 우웅... 만화나 한 권 때려볼까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하루 한 권 내지 두 권을 들고서 쉬엄쉬엄 읽는 것도 즐거운 시간나기겠다, 한다. 나는 다 읽었지만서도... 그래서 지금 좀 아쉽다. 재밌는 건 자꾸 지나가 버리고 새 재미를 찾아야 하는 고난이 내게로 자꾸 밀려온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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