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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ㅣ 시와시학 푸른시떼 3
반칠환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3부로 되어 있는데...
1. 외딴집
2. 속도에 대한 명상
3. 둥근 시집
'외딴집'은 그대로 하나의 이야기다.
읽으면서 그 외딴집이 눈앞에 그려져서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처음엔 이 것을 시가 아니라 기록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했지만
외딴집 전체가 하나의 시란 생각으로 정리됐다.
차라리 한 권 모두가 외딴집이었다면 좋았을 걸, 1부가 끝나고 든 생각이다.
참 좋은 시집 만났다.
외딴집을 떠나와 도시에서 그는 속도를 경험하는데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물리적 공간의 크기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스스로 속도에 얹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했던 외딴집의 밝음은 굉장한 속력으로 도시의 어둠 속으로 와버렸다.
그래서 그 지킴이뱀은 어디로 가서 업이 되어야할지 망설였던 것일 게다.
그 속도의 어둠이 좀 가렵다.
참으로 좋게 느껴진 것은 슬픔이 감상적이지 않다는 것.
수사가 많지 않아서 또한 좋았다.
장식은 조금만 지나가면 지겨워진다.
감정을 명명한 단어 역시 읽던 시를 집어던지게 한다.
그러나 이 시집, 그럴 틈이 없이 빨라서 좋다.
시 안에 머뭇거려야 할 비유의 驛舍가 거의 없어서 시 한 수가 그대로 驛舍일 수 있는 시들.
그것이 반칠환의 시선이고 그 깊이일 것이다.
장식이 많은 시들을 읽지 못하는 내게는 상당히 좋은 시집이었다.
또한 나의 이런 경향성이 결국 나를 서툴게 할 것임을 느낀다.
느낌에, 요즘 유행하기에 조심스럽다는 생태시가 아닌가 했다.
저 산골 촌놈이사 어찌 개구리 한 마리가 예사로 보일 수 있겠는가.
이곳 도시에 아직 정착하기로 한 것이 아닌 시인으로 보였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밖에는 모르고 도시 바깥에서는 절대로 살 수 없을 것이 분명한 나는
이런 시들을 읽으며 내 깃든 곳의 어둠만 있어서 좀 서럽기는 했다.
그러나 어쩌랴, 자기 유년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란 없다.
그래서 해석하기 나름인 것이고 혼자만 볼 수 있는 빛도 가끔 바깥에다 흘려줄 수 있을 것이니
나, 시골로 가서 나무와 숲과 벌레들과 사는 삶을 그리워하며 지내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충분하다.
첫 시집의 서툶이 그대로 드러나긴 해도, 아쉬워서 어떤 시구는 바꾸고 싶었어도
참 좋은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은 여전하다.
도서관에서 빌린 터라 시인에게 미안하다.
대신 나는 내 좋아하는 여백 채우기를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