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관계 1
마키무라 사토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미식가인 아버지 탓에 모모에는 세상의 맛있는 음식이란 음식은 안 먹어본 것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모모에는 타고난 입맛아가씨.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사이좋고 다정하고 자상한 부모 슬하에서 모모에는 부러울 것 없는 그야말로 부르조아 영양이었다. 아버지가 그 과식 습관으로 인한 지방간의 공격에 무참히 쓰러지기 전까지는.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인 모모에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식당에 취직한다. 그곳은 참으로 맛있는 프랑스 요리점. 그 가게의 셰프 오다는 와아, 무지막지하게 신경질적이고 고집 세고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 남자. 냉랭하기 짝이 없으나 그의 요리를 맛볼 수만 있다면 어떤 처사라도 달게 받으리라 다짐하는 모모에. 여기에 오다와는 어린 시절까지 얽힌 천재 요리사 타카하시가 합세하고. 진부한 삼각관계가 전개될 것 같지만 no! 다. 이 만화의 주제는 '맛있는 인생'이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들은 종종 줄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오다를 짝사랑하던 모모에는 오다의 티끌 만큼도 없는 애정에 절망하지만 타고난 낙천성은 그대로 삶의 힘이 된다. 그 낙천적 전개로 해서 언뜻 야자와 아이 생각이 나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그저 단순한 '해피마인드여야만 해!'가 아닌, 여러 날의 숙고를 통한 극복이어서 읽는 맛이 남다르다. 게다가 감칠맛나는 조연들이 많다.

캐리어우먼이자 오다의 애인인 카나코는 마음이 병든 어머니를 병원에 맡겨두고 있다. 카나코는 자기에게 기대기만 하는 어머니가 너무나 부담스럽다. 정신력이 약한 어머니는 카나코가 힘들면 힘들수록 자학으로 딸을 괴롭힌다. 주치의는 그런 어머니를 이제 놓으라고 권한다. 카나코도 이젠 어머니에게서 벗어나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서로 의지만 하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일시적으로 많이 외로워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언젠가는 (엄마도)알 게 될 거야. 카나코씨가 매정하게 돌아서면 오히려 강해질지, 아니면 자신을 상처입힐지는, 알 수 없지만...... 살려는 욕구가 있다면 기왕 사는 거 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참으로 의사가 해야할 말인 듯하다. ^^ 그래, 기왕 사는 거 강하게 살아야지. 암.

카리스마 넘치는 할머니 치요. 왕년의 대요리사. 오다와 타카하시를 데려다 키우고 요리사로 만들어낸 여자대마왕이다. 가끔 이런 사람, 능력있고 자신만만하고 옳은 늙은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없을까? 돌아다니며 배우려 하지 않으니 이런 사람 만나기는 내 생에 글렀다. 모모에는 치요를 만나 자기도 모르게 매번 크게 깨닫는다. 부러워, 부러워!!!!!!


-
어머, 포도분재에요?
(포도분재는 굵은 한 줄기가 사이좋게 양분되어 정말 멋지게 자라 있다)
-같은 씨에서 난 싹이지만 이젠 어느 한 쪽을 잘라내야 해. 이렇게 보고 있으면 양쪽 다 쑥쑥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을 것 같아. 하지만 현실은 다르지. 이대로 키운다면 결국 어느쪽 가지에 충실할 것인가를 망설이다가 이도 저도 안 되게 되지. 망설이며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찰캉! 찰캉!(두 가지를 다 싹둑 잘라 버리는 치요)
-그 시점에서 죽어 버린 것과 같은 거야.

-인간이란 젊어서 철없을 때는 마치 자신에게 영원의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생각하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인간에게 영원의 시간 따윈 없어. 선택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어 버리게 돼.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그것이 인간의 숙명. 그것만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절대'야. '죽음'만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평등'. '절망'은 인간의 숙명. 인간은 약해서 그런 당연한 것조차 보려고 하지 않지. 절망의 늪 깊은 곳에는 희망이라는 구원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야.

요컨대 어떤 상태가 되든 견디고 견뎌서 바닥을 치라는 말이렸다?

-요리는 마법이 아니야. 정확한 맛을 내는 법칙이 있지. 레시피는 바로 그것을 위한 가이드고, 기술은 손끝이 갈라질 때까지 손에 익히는 수밖에는 없어. 물론 센스도 중요해.


세상에 마법이란 없다. 정확한 것이 되는 법칙이 있다. 레시피. 가이드가 있다면 그걸 활용하라. 무엇을 만들든 가이드를 활용하라....이러쿵저러쿵, 치요는 찾아온 모모에에게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그걸 듣고 있는 모모에는 어딘가 다시 자기를 이끌어 올리는 힘을 느끼게 된다.

-매화향기가 막 느껴진다 싶었는데 금세 사라져 버렸어. 허무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더 좋아. --무상하군. 인간은 행복도 언제나 계속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 때문에 더욱더 소중히 여기는 거야. 한순간의 행복조차 고맙게 느끼는 거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해. 자신의 마음 속에 행복의 원형이 없으면 알 수 없고 알아채지도 못해.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으면 불행만을 보게 되지만 이러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어.(6권 中)

'행복의 원형'이라는 말.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나에게 그 원형이란 게 있나? 그런 게 정말 있는 건가? 이런 스승과 함께 있으면 저 순간의 모모에처럼 여기저기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될까?

젊은이들 이야기여서인지 읽으면서 자꾸 뒤가 돌아봐졌다. 참 열심히 사는구나, 이 젊은이들은, 하면서 나는 이들처럼 열심히, 치열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선택하고 실행했던가, 하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에게는 정말 투미한 정신만 있었는지, 놀아제낀 기억밖에는 없는 것이다. ㅠ_ㅠ 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보니 그야말로 해놓은 거 정말 없는 인생. 좀 나이든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는 세상이라는 것도 모르고 좋다고 얼씨구나 놀아보세, 살아오지 않았는가, 이렇게 나이만 들지 않았는가, 자탄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이 만화를 읽는 동안 사실은 의기소침해 있었다. 요즈음 같은 기세로 살지 않았던 세월을 아아, 후회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일종의 열정을 내 삶에 부어왔다고 믿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회란 없어야 한다,가 내 생활지침이었다. 분명 지금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있는 나의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고는 저 원형에 대해 고심했는데... 아무래도 나는 역시 낙천가인 모양이다. 나이가 무슨 대수랴. 나는 지금 몸과 마음이 다 바빠서 후회할 시간이 없는데 이 무슨 짓이람, 도대체 득될 것이 아닌데. -_-

그러나 이 즈음에서 좀 쉬었다 가겠다. 바쁜 마음은 거둬들이고 좀 느긋하게 가자. 이런저런 쓰기로 해서, 바쁜 마음에 잃고 말았던 나에게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한다. 맛있는 인생이라는 거, 좀 알고 있었는데 그걸 잊어 버리다니. 내 바빠도 한참 바빴구나, 쓸데없이.

느리게 가도 된다. 맛있는 인생이 그 속에 있으니 그걸 즐기자. 새해도 이미 시작되었고. 그나저나... 여기 나오는 수많은 프랑스요리들... 흐윽... 먹어본 것이 없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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