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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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이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작가의 마음이 함께 읽혀지는 소설이었다.
읽어가는 나 역시 그만큼 속도감이 붙어서 하루만에 읽기를 마쳤다.
처음에, 문장이 하도 심심하여 
긴 소설만 찾아 읽는 작금의 내 습관 때문인가 싶기도 한 실망감이 앞섰다.
가끔은 이 사람, 직전에 김훈을 읽었는가 하는 생각도 들만큼 그 문장이 짧고 담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작가의 소설이 처음이므로 원래 이 이의 문장일 수도 있다는 게 결론.
그렇게 읽는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억울하게 죽어 서대문 밖에 머리가 걸린 역관의 소중한 외동딸이
러시아로 들어가 따냐가 되어 봉이 김선달 뺨치는 사기꾼으로,
다시 조선으로 들어와 러시아 공사관에서 고종의 연인 아닌 연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아버지의 의문사를 파헤치고 범인을 잡고 응징하며
단단한 정체성으로 미국에까지 건너가 카페를 열고
뿌쉬킨의 시를 읽으며 살아가게 되는 일종의 성장소설이 노서아 가비이다.
아관파천과 고종황제가 즐겼다는 노서아 가비를 엮어 짧고도 풍부한 서사를 이끌어내고 있다. 

우리가 아는 조선은 참으로 단면뿐이다.
팩션이라는 장르가 이 단면의 역사에 이렇게 자꾸 켜를 더한다.
조선의 계집아이가, 그것도 역관의 자식이 압록강을 넘어 러시아까지 흘러가
위조전문가로 얼음여우 사기단의 은여우가 되고
유럽의 귀족들에게 러시아 숲을 파는 사기꾼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다
민비를 잃고 시름에 빠진 황제의 단 하나 믿음직한 사람으로
황제의 목숨을 구하고 국민의 의리를 지키는 대역사.
그래. 그런 일이 조선 역사에 숨겨져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읽기 시작한 즈음에는 만족스럽지 않은 문장의 깊이에 시간낭비인가 싶었지만
다 읽고난 느낌은 낭비가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만족감이었다. 
그럼에도 별 하나 모자란 것은
소설이란 게 그다지 우연에 기댈 필요가 없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우연을 남발했다는 점이다.
그 우연에 기댐이 극적인 진행과 결말을 낳은 것이겠으나
의도하지 않았는데 모든 의문을 풀어줄 근거가 바로 옆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그런 인식의 재구성이라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필 이반이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그 사람이라니.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풀어지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챕터 제목들은 도무지 내용과 연결짓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그 제목 문장들이 뭐랄까... 허세끼  다분한 남세스러운 라디오 멘트를 듣는 심정이 되고 만달까.
작가가 한번쯤 이렇게 놀고 싶었구나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큰 흠이라 여기지는 않지만 소설의 완성도를 좀먹는 것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모르지. 노서아 가비.
싸이폰을 갖추고 러시아 가비를 내려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며 읽어나간다면 아주 걸맞게 느껴질 문장들일 수도.
하긴 번역소설만 읽었던 이 즈음 우리 문장이 그리워서 그나마 선택한 책 중의 하나임을 생각하면
이만큼도 감지덕지해야 할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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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 열두 가지의 거짓, 열두 가지의 진실
아사노 아츠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아고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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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오래 전 어렸을 때부터 기담을 좋아하긴 했다. 커갈수록 잔혹으로 기울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아름다운 기담을 선호한다. 우리나라 기담은 내가 아는 그런 기담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아니 기담이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 기껏, 사랑했으나 결국 이루지 못한 남녀가 따로 묻힌 관을 각각 파보니 기괴한 식물줄기로 서로 연결되어 있더라 정도였으니 뭐 말 다한 것이지. 그래서 우리나라 기담은 그냥  TV 전설의 고향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기담은 허황되기 그지 없어 오싹한 느낌이라기보다는 헛웃음을 치게 했다. 을유판 요재지이를 읽으며(다 읽지는 않았지만) 잠결을 다친 적은 없었다. 기담다운 기담은 일본에 있었다. 이쪽 작가층이 워낙 두텁다. 하루키조차도 기담을 피하지 못하니까. 사실 하루키 작품치고 기담 아닌 것이 없기도 하거니와. 어찌되었든 또 한 편의 기담을 읽었는데...  

내용으로 따지면 잔혹에 기울고, 수준으로 따지면 중상위레벨. 오싹함의 수위도 상위는 아니다. 장점이 있다면 구성적 측면이다. 스물네 편의 이야기가 나열되지만 결국 쓰루라는 악귀 한 사람의 이야기. 인간의 본성을 악귀로 보고,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무서운 생물은 거울 속에 있다는 말로 너 자신을 돌아보라가 주제인 것인데 쓰루가 바로 나라는 등식에는 갸웃할 수밖에 없음이 이 소설을 중상위에 머물게 한다. 기담이라면 기담으로 끝내야 한다는 것. 어울리지 않게 심오한 주제를 담으려고 만용을 부렸달까. 독자에게 확인시켜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야기와 주제의 핀트가 서로 어긋났다. 같은 기담이라도 나는,   

이 소설이 훨씬 좋은 기담집이라고 생각한다. 기담이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소설집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만에 읽어버린 이 기담을 리뷰까지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동화를 참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동화 쪽에 가까운 이야기는 더이상 읽기 힘들겠다는 것. 동화도 어린이를 위한 본격적 동화가 아니라 어른을 상대로 씌여지는 동화 말이다.이 소설이 그런 소설이란 뜻은 아니다. 다만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런 책들... 폼잡는 게 너무나 완연해서 진력이 나. 가르치려고 드는 게 너무나 역력한데 수준이 따라주질 못해. 아키노 마츠리가 훨씬 낫다. 기담이 고프면 이제 펫숍이나 질리도록 복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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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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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일의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스와루프의 소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다르다.
스와루프의 소설은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아니라 Q&A 이다.
영화가 행복한 동화였다면 소설은 섬세한 세태화라고나 할까.

주인공의 이름도, 그의 인생역정도 아주 다르다.
그는 형도 없거니와 어머니 얼굴도 모르는 유기아이다.
또한 도둑이기도 하고 사람을 죽인 범인이기도 하다.

람은 고아로 훌륭한 신부의 아이로 자라지만
그에게 닥쳐오는 세상은 그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무서운 것이다.
인도 빈민가를 전전하며 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람.
그러 중에 영혼이 착한 자를 알아보고, 영혼이 맑은 자를 사랑하고, 세상이 버린 자를 구한다.
그 사람들의 고마움이 모여서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일까?
나오는 퀴즈마다 람이 살아온 인생의 갈피갈피에 접어 끼워놓은 지폐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는 자기가 넣어 두었던 그 지폐를 꺼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람은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행운은 그 보답인 양 차곡차곡 쌓인다.
그는 퀴즈쇼에 나가 자신을 알릴 필요도 없었고
퀴즈쇼 상금을 받아야만 할 이유도 없었으나
퀴즈쇼에만은 반드시 나가야 했다.
그곳에 가서 해야할 일이 분명히 있었고 그는 그것만 해치우면 되는 것이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참으로 영화다워서
그 두 시간으로는 어림없는 이 소설의 몇 개 에피소드를 가져다가
감동적이고도 아주 재미나게 버무려냈다.
영화만 보고서 이 소설을 안다고, 혹은 읽었다고 뻥치지 말길 바란다.
아주 다르니까. 같은 것은 그저 퀴즈쇼라는 전개장치 뿐.
귀여운 자말은, 영화 속의 그 아이는 결코 주인공 람이 아니다.
자말의 삶도 역시 람의 삶이 아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퀴즈쇼라는 틀은 정말 참신하고 파워풀한 장치였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람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는
그야말로 어디선가 수집한 인도사람들 각각의 인생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람에게 많은 일이 일어나고
그만큼 람은 극적이고 고단하고 힘든 선택을 한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난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다.
그래서 극적이긴 하되 리얼리티는 반감되었다.
에피들의 끝도 언제나 반전이 있음이 즐겁긴 했으나
그 반전이라는 게 항상 상투적인 그림이다.
덕분에 내게 밑줄 하나 남은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역시 절대 읽은 것을 후회하게는 않을 것이다.
약속한다. 

 

목차:
 

프롤로그

1,000ㆍ영웅의 죽음
2,000ㆍ성직자의 짐
5,000ㆍ동생의 약속
10,000ㆍ장애인을 위한 배려
50,000ㆍ아니, 어떻게 호주말까지 알았지?
100,000ㆍ단추를 떨어뜨리지 마라
200,000ㆍ웨스턴 익스프레스 살인사건
500,000ㆍ어느 군인의 이야기
1,000,000ㆍ살인면허
1,000,000ㆍ비극의 여왕
100,000,000ㆍ러브 스토리, 혹은 엑스 그크르즈 오프크누
1,000,000,000ㆍ열세번째 문제
에필로그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 행운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

 

:::: 번역자의 단정적인 해석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어쩌면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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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이거 - 2008년 부커상 수상작
아라빈드 아디가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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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 내게는 인도시즌인 듯.
어째 손에 잡히는 책이 다 인도 소설...
아마도 영화 슬럼독...을 보고 나서 이렇게 된 것 같다. 

발람은 인도 하층민 요리사계급 출신으로 IT 신도시 방갈로르의 자칭 기업가다.
그가 인도를 방문하는 중국의 원지아바오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가 바로 이 소설.
총 일곱 번의 밤 동안 발람은 인도 하층민이 부자들의 세계로 진입하는 방법을 설파한다. 

슬픈 아버지와 거머리 같은 가족, 자기 계급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부자와 빈자의 모습이
주워 들은 것들로 자기 지식의 80%를 채운 발람의 눈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내가 속해 있는 계급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은 필수이고
내가 속하지 않은 그룹의 눈으로 내 계급과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그보다 앞에 있어야 할 필수코스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계급을 바꾸고자 하지 않는다면 두 과정 모두 쓸데없는 짓거리.
발람은 정글에서 찾아보기 힘든, 그러나 반드시 존재하는, 한 마리 화이트 타이거. 

상실의 상속과는 사뭇 다른, 의외로 훨씬 희망에 기울어 있는 영문 버전 소설.  
작가의 입담도 좋고, 반성도 보기 좋긴 했지만
아디가 그가 인도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조국 인도에 결코 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부자의 몸은 하얗고 부드러운 데다 속이 텅 빈 게, 마치 품질 좋은 면 베개와도 같지요. 유리들의 몸은 완전히 다릅니다. 제 아버지의 등뼈는 매듭을 지운 로프, 그러니까 마을 우물에서 여인네들이 물을 깃는 데 쓰는 로프였고, 목 주위를 휘감고 있는 쇄골은 마치 개목걸이마냥 불쑥 튀어나왔으며, 꼭 채찍 맞은 자국처럼 살갗을 뒤덮은 베인 곳, 흠집, 흉터 따위는 가슴과 허리를 거쳐 저 아래 엉덩이의 좌골에 이르기까지 뻗쳐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의 인생은 날카로운 팬으로 온몸에 쓰여 있지요. 44 

위대한 사회주의자 자신도 어둠의 세계로부터 무려 십억 루피를 횡령하여, 하얀 인간들과 새까만 돈으로 가득한 유럽의 어느 조그맣고 아름다운 나라에 있는 은행구좌로 그 돈을 보내버렸다고들 하더군요. 122 

기억하십니까, 총리각하, 맨 처음, 그러니까 아마도 소년이었을 때, 각하께서 자동차의 엔진뚜껑을 열고서 그 내부를 들여다보았을 때를? 엔진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휘어져있는 채색 와이어들, 노란 뚜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까만 박스, 쉬익쉭 소리를 내며 사방팔방으로 스팀과 기름과 그리스가 뿜어져 나오던 그 신기한 튜브들을 기억하십니까? 모든 게 신비롭고 마술과도 같던 것, 기억하시죠? 저의 이야기 중에서 뉴델리에서 펼쳐졌던 부분을 들여다 볼 때면, 저도 바로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는가, 또는 하나의 동기가 어떻게 다음 동기를 튼튼하게 혹은 허약하게 만드는가, 또는 제가 제 주인님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다가 어찌해서 저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 각하께서 저에게 이런 것들을 설명해보라고 하신다면 아, 저 자신도 이런 것들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140 

오히려 각하께서 바지에 오줌을 싸도록 겁을 내셔야 할 때는, 기사가 간디라든지 부처님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할 때입니다, 지아바오선생. 151 

운전기사들이란 절대로 큰 그림을 보지 못합니다. 그저 얼핏 지나가는 말들, 운 좋게 훔쳐본 것, 대화의 단편들, 뭐, 그런 것들뿐이죠. 그러다가 주인들이 핵심부분에 들어가려는 순간, 네, 일은 항상 그럴 때 일어나는 법입니다. 167 

수탉장 201, 202 

부자들의 꿈, 빈자들의 꿈--- 그 둘은 절대 겹치는 법이 없습니다. 257

근데요,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를 속임으로써 만든 현금을 볼 때마다 제가 느낀 것은 죄의식이 아니라, 무엇이었는지 아시겠습니까?
분노였습니다.
그로부터 더 많은 것을 훔쳐내면 낼수록, 그가 저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훔쳐가고 있는지를 더욱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263 

역시 넌 최고야!
그도 역시 어둠의 세계 출신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 삶을 향한 야망을 보일 때, 우리는 자랑스러워지는 점이잖아요?  264 

저에겐 어째서 만사가 단순할 수 없는 걸까요? 284 

그대는 여러 해를 두고 열쇠를 찾고 있었도다. 그러나 문은 줄곧 열려 있었던 것을. 288 

그래도 부자들이 일 만년 전쟁에서 승리를 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날, 몇몇 현자들이, 빈자들을 향한 동정심에서시를 짓고 거기에 기호와 상징 따위를 남기지요. 이 시란 것은 장미나, 아름다운 아가씨나 뭐, 그런 것들을 노래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걸 똑바로 이해하고 보면 천하에 가난에 빠진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일만 년 전쟁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끝낼 수 있 해주는 비밀을 폭로하는것이랍니다. 자, 이러한 현명한 시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네 명이 루미, 이크발, 미르자 갈립,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이름을 듣고도 잊어버렸습니다. 289 

날이면 날마다 수천 명의 외국인들이 깨달음을 얻겠노라고 우리나라를 찾습니다. 그들은 히말라야나, 베나라스나, 혹은 보드가야 같은 곳으로 갑니다. 그들은 괴이한 요가자세를 취하고, 대마초를 피우고, 이런저런 성자들이랑 질펀하게 놀아나고, 그리고는 깨달음을 얻었노라고 생각하지요.
쳇, 깨달음은 무슨!
혹시 깨달음을 얻으려고 인도롤 찾아오신 분들이 있다면, 여러분들, 제발 갠지스강은--그리고 은둔하는 현자는--잊어주시고, 뉴델리 한복판의 국립동물원으로 곧바로 가보시길 바랍니다. 313

짐승들은 짐승답게 살도록 내버려두고, 인간들은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것. 한 마디로 그것이 저의 철학이랍니다. 314 

아침 내내 비가 내렸습니다. 가볍고 끈질기게 내리는 그런 비, 있죠? 비 내리는 소리는 들리는데 보이지는 않대요. 317 

아,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323 

저는 제가 그 말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한번 종살이를 하면 평생 종살이라고, 그 본능은 언제나 거기 제 몸속, 등뼈 제일 아래쪽 근처에, 있는 걸까요? 총리 각하. 언제 저의 사무실을 한번 찾아주신다면, 전 아마도 곧장 각하의 발을 주물러드리겠다고 나설지 모르겠습니다. 338 

방갈로르에서는--아니 인도의 어떤 도시나 마을에서든 마찬가지죠--귀를 항상 열어두고 계십시오. 그러면 이런저런 동요와 소문과 반란의 소리를 들으실 겁니다. 밤이면 사내들은 가로등 아래 앉아서 글을 읽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토론도 하고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그들은 함께 뭉칠까요? 뭉쳐서 수탉장을 부수고 나올까요?
흥! 343 

이곳에서는 선량한 사람이 되고자 하기만 한다면, 선량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락스만가르에서라면 그런 선택조차 할 수가 없지요. 이 인도와 저 인도의 차이점이라면 바로 이 선택이라는 것에 있는 겁니다. 346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도둑들 사이에도 정의는 있다고. 349 

충분히 많은 숫자의 사람을 죽이게 되면, 사람들은 델리의 국회의사당 근처에다 동상을 세워줄 테지만, 그런 건 영광일 뿐, 제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단 한 번의 살인으로 족했던 거죠. 361 

기도라든지, 신이나 간디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 아이들의 머리를 더럽히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학교, 오직 아이들을 위한 삶의 진실만을 가르치는 그런 학교 말입니다. 방갈로르에 풀어놓은 화이트 타이거들로 가득 찬 학교! 363 

저는 진영(陣營)을 바꾸었습니다. 이제 전 인도에서 절대로 잡힐 수 없는 사람이 된 거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저는 이 샹들리에를 올려다본답니다. 363
 


근데 말이다. 책 표지 가지고 오리기 같은 장난은 안 했으면 싶다.
발람의 혼다 시티가 자꾸 손가락에 걸려.
표지 찢어지는 거 싫다.
내가 싫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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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예쁜 말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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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말 괜찮은 소설이었다.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읽어봐야할 듯. 서부소설이라고 장르소설이라는데 아주 색다르고, 담긴 철학이 냉정하고 조리가 있어 매력적이었다. 좋은 작가에 작품 걸렸다. 작년에 본 아카데미 대상 받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깔린 정서를 확인할 수 있기도 했다.
 

205   
 - 말씀 좀 해 주세요. 내가 가난뱅이인 것과 미국인인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쁜 거죠?
- 좋은 열쇠는 어느 문이든 여는 법이지.
- .........
- 내 생각을 듣고 싶을테고 어쩌면 조언을 바라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도 조언해 줄 수는 없어.    

139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거든.
흉터를 얻게된 사연은 결코 잊을 수 없지. 안 그런가?    

230   
 접이식 철제의자 세 개가 맞은편 벽에 기대어 거북한 공허를 안고 있었다.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버리기라도 한 양. 오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은 양.      

325   
 용기는 언제나 지속되는 법이며, 겁쟁이가 가장 먼저 버리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 말이야. 자기 자신을 버리게 되면 남들을 배신하는 것도 쉬워지지.      

329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 유대감은 슬픔의 유대감이며, 가장 견고한 단체는 비통의 단체이지.  


330
과학자들은 실험할 때 박테리아든, 쥐든, 사람이든 일부를 택해 특정한 조건을 부여하지. 그러고는 자연 상태 그대로 있었던 두 번째 무리와 비교해. 그 두번째 무리를 대조군이라고 부르지. 대조군 덕분에 실험 효과를 측정하고 그 중요성을 판단할 수 있는 거야. 역사에는 대조군이 없어. 달리 이랬을 수도 있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거지. 그저 이랬을 수도 있다고 한탄할 뿐,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는 없어. 역사를 모르면 실수를 되풀이한다고들 말하지. 하지만 역사를 안다고 해서 실수를 피할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해. 탐욕과 어리석음과 피에 대한 욕망은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네. 심지어 모든 것을 안다는 신마저도 세상을 바꿀 힘은 없는 게 아닌가 싶어.   

341   
 겁에 질려서는 돈을 벌 수 없고, 걱정에 눌려서는 사랑을 할 수 없다.  

386   
 세계의 심장은 끔찍한 희생을 바탕으로 뛰는 것이며 세계의 고통과 아름다움은 각자 지분을 나눠 가지는데, 끔찍한 적자로 허덕이는 와중에 단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어마어마한 피를 바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88   
 신께서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시작할 때 삶의 진실을 모르게 하신 것은 정말 옳은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젊은이들은 아예 인생을 시작할 엄두도 못 낼 것이기 때문이다.   

393   
 피고는 질문의 답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거짓말쟁이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396   
 자, 말해 보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법이거든.    

397   
 무언가를 너무 되씹다 보면 그것이 너를 먹어버릴 수도 있다고.    

398   
 마음을 바꾸면서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지.    

404   
 세상 만물에는 다 제각각 쓰임새가 있기 마련이라네.      

408   
 -계속 갈 생각이야.
-여긴 썩 괜찮은 나라야.
-그래.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나의 나라는 아니야.  

410   
 그는 마음을 진정하려는 듯, 혹은 땅을 축복하려는 듯, 혹은 늙든 젊든 부자든 가난하든 검든 희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쏜살같이 달려가는 세상을 늦추려는 듯 잠시 양손을 뻗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리 몸부림치든, 그 이름이 무엇이든, 살아 있든 죽어 있는 세상은 달려갔다.    

411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안다는 듯이. 그들은 다가왔다 멀어지는 그를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저 그가 지나가는 길이기에. 그저 그가 사라질 것이기에.   

415   
 행위 하나하나를 'and'로 연결시켜 묘사하면서도지루하기는커녕 매혹적인가 하면, 툭툭 떨어지는 단문이 줄을 잇는데도 묘하게 착착 감기는 것이었다. -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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