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 열두 가지의 거짓, 열두 가지의 진실
아사노 아츠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아고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아주 오래 전 어렸을 때부터 기담을 좋아하긴 했다. 커갈수록 잔혹으로 기울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아름다운 기담을 선호한다. 우리나라 기담은 내가 아는 그런 기담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아니 기담이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 기껏, 사랑했으나 결국 이루지 못한 남녀가 따로 묻힌 관을 각각 파보니 기괴한 식물줄기로 서로 연결되어 있더라 정도였으니 뭐 말 다한 것이지. 그래서 우리나라 기담은 그냥  TV 전설의 고향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기담은 허황되기 그지 없어 오싹한 느낌이라기보다는 헛웃음을 치게 했다. 을유판 요재지이를 읽으며(다 읽지는 않았지만) 잠결을 다친 적은 없었다. 기담다운 기담은 일본에 있었다. 이쪽 작가층이 워낙 두텁다. 하루키조차도 기담을 피하지 못하니까. 사실 하루키 작품치고 기담 아닌 것이 없기도 하거니와. 어찌되었든 또 한 편의 기담을 읽었는데...  

내용으로 따지면 잔혹에 기울고, 수준으로 따지면 중상위레벨. 오싹함의 수위도 상위는 아니다. 장점이 있다면 구성적 측면이다. 스물네 편의 이야기가 나열되지만 결국 쓰루라는 악귀 한 사람의 이야기. 인간의 본성을 악귀로 보고,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무서운 생물은 거울 속에 있다는 말로 너 자신을 돌아보라가 주제인 것인데 쓰루가 바로 나라는 등식에는 갸웃할 수밖에 없음이 이 소설을 중상위에 머물게 한다. 기담이라면 기담으로 끝내야 한다는 것. 어울리지 않게 심오한 주제를 담으려고 만용을 부렸달까. 독자에게 확인시켜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야기와 주제의 핀트가 서로 어긋났다. 같은 기담이라도 나는,   

이 소설이 훨씬 좋은 기담집이라고 생각한다. 기담이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소설집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만에 읽어버린 이 기담을 리뷰까지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동화를 참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동화 쪽에 가까운 이야기는 더이상 읽기 힘들겠다는 것. 동화도 어린이를 위한 본격적 동화가 아니라 어른을 상대로 씌여지는 동화 말이다.이 소설이 그런 소설이란 뜻은 아니다. 다만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런 책들... 폼잡는 게 너무나 완연해서 진력이 나. 가르치려고 드는 게 너무나 역력한데 수준이 따라주질 못해. 아키노 마츠리가 훨씬 낫다. 기담이 고프면 이제 펫숍이나 질리도록 복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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