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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4 - 임진왜란 ㅣ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4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5년 10월
평점 :

역사(History)는 이야기(Story)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일상이 바로 이야기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곧 역사가 된다.
KBS에서 재미진 역사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수십 명의 PD와 작가, 스태프와 패널들이 모여 2013년 가을 「역사저널 그날」을 첫 방송했다.
‘그날’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끼리의 만남이나 빅 이벤트가 있었던 날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조선 개국을 연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이나 세조와 한명회의 만남 같은 것이다.
이 책으로 벌써 네 권째다. 이번 이야기는 한국사 최대의 국난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다룬다. 모두 7장으로 이루어졌다. 1장은 조선 통신사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상반된 보고를 다루고, 2장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700여 척의 배가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임진왜란의 서막을 이야기한다.
이어 3장은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는 구한 이순신 같은 영웅과 의병들의 활약을 전개하고, 4장은 1597년부터 1598년까지 이어진 정유재란의 배경과 주요 전투들을 소개한다. 5장과 6장은 인재를 알아보고 이순신과 권율 등을 적극 추천한 류성룡과 그가 쓴 『징비록』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7장은 세자가 된 광해군이 선조와 갈등을 겪는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서술 방식은 대담 형식이다. 진행자와 전문가 등 패널 출연진은 가독성을 고려해 ‘그날’로 묶고,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 류근 시인 그리고 이해영 영화감독·시나리오 작가 등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신 교수가 서문을 썼다.
임진왜란은 조선과 명 그리고 일본이 총 30만 명의 대군을 동원한 대전쟁이었다. 이 전쟁으로 명과 일본은 왕조나 정권이 바뀌는 격변이 일어난 반면, 조선은 체제를 잘 수습하여 더 오랜 기간 왕조를 존속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한편 전쟁 당시 조선은 200년 이상 평화가 지속된 탓에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느슨해져 있었다. 가령 백성들의 병역 기피 문제나 1589년 대마도 사신이 바친 조총에 대한 무시,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 통신사의 보고에 대한 선조의 판단 미스 등은 반드시 되짚어보아야 한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대처하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 아닐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일지언정 제대로 고칠 수만 있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뒤 곧바로 거북선을 만들고 맹훈련을 실시하여 군사들이 매뉴얼을 익히게 했다. 거북선이 실전 투입 준비를 마친 것은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이라고 하니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각본없는 드라마가 따로 없어요”
당시 류성룡 같은 명재상과 이순신, 권율과 김시민 같은 명장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반격다운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선조는 “내부의 적”(76쪽)이었다. 선조는 분조시킨 광해군이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자 ‘선위 선언’(왕위를 넘기겠는 소리, 전란 때 모두 15차례)을 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되찾고자 했던 못난이였다. 이순신을 시기하여 틈을 노려 ‘토사구팽’하고자 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감내해야 했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내주긴 어렵다”며 겹겹이 둘러싼 왜군을 보고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패널진들은 이 말을 비틀어 이순신 장군의 유비무환 자세를 일컬어 “낙관하긴 쉬워도 직관하긴 어렵다”고 평한다.
사실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하고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14개월간 철저히 전쟁에 대비했다. 맡은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곤장을 쳤으며, 탈영한 자는 끝까지 찾아내어 목을 쳤다. 이렇듯 군기를 다잡는 것은 물론이고 거북선, 총통 같은 비밀 병기도 개발했으니, 이순신은 지도자요 발명가였다. 당시 조총의 사정거리가 약 50미터, 활은 약 360~400미터였던 반면 총통은 1540미터나 되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총통의 종류에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실은 천자문 천지현황(天地玄黃)의 순서를 딴 것이라고.
한편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의 참여는 조선의 사기를 한껏 북돋웠다. 이때 명의 척계광 장군이 고안한 진법 ‘절강병법’(일명 원앙진)이 위력적이었다고 전한다. 조선은 이 병법을 훈련하기 위해 훈련도감을 설치할 정도였다. 나는 원앙진에 관해 호기심이 생긴다.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또 있다. 정유재란의 전개다. 정유재란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선봉대가 울산에 상륙하면서 시작되었다. 원균이 이끄는 수군이 칠천량에서 참패하면서 남원과 전주가 함락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없던 일이었다. 당시 이순신은 조정에 소환되어 자리에 없었다.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순조가 아닌 인조와 정조대에 이루어졌다. 인조는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정조는 영의정으로 추존하고 『이충무공전서』를 간행했다.
나는 역사의 팩트가 지닌 미덕 중 하나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불씨라고 본다. 그 팩트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깨어있는 독자들의 몫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책을 통해 제법 다양한 팩트를 얻을 수 있다.
한편 독특한 구성과 풍부한 사진 자료는 읽는 맛을 한층 더해 준다. 지면을 통해 만나는 역사 토크! 흥미롭다. 부족한 2퍼센트의 행간을 읽어내는 일은 또 다른 지적 즐거움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