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인제대학교 2학기 수시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응모했으니 희비가 엇갈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오후 수업시간이 무척 어수선했다. 교실은 세 분위기가 섞여서 아주 묘했다. 수시 2학기에 합격해서 이젠 수능시험 준비가 필요 없는 학생, 수시 2학기에 떨어져 낙담한 얼굴로 멍하게 있는 학생, 수시와는 상관 없이 오로지 수능만 보고 공부하려는 학생이 한 교실에 앉아 있으니 그날은 제대로 공부가 될 리 없었다.

   금요일에도 동아대학교 수시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점심 시간에 도서실에 앉아 있었더니, 3학년의 이OO 학생과 김OO 학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도서실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슬쩍 다가갔더니, 후다닥 무엇인가를 감추는 분위기. 뭐 하냐고 물었더니, 수시 2학기 합격자 발표를 보려는데 떨린단다. 그러다가 같이 봤더니 결과는 불합격! 실망한 빛이 가득했다. 괜히 옆에 있었다가 난처해져 버렸다. 위로의 말을 건넸더니, "떨어진 기념으로 맛있는 거 사주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냥 그 순간은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녁에 다시 찾아와서 무엇을 사 줄 거냐고 물었다. 좀 생각해 보다가 토요일, 간단한 점심이 좋을 것 같아서 약속했다. 토요일 점심, 이OO과 김OO, 셋이서 칼국수집에서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그런데 평소에 말 없이 차분한 두 녀석이 담임선생님과의 갈등 상황을 털어놓았다. 학생의 말은 수시 입학 전형에 떨어져서 마음의 상처가 컸는데, 평소에 불편했던 담임선생님께서 그 사건을 두고 비꼬아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담임선생님의 입장에서 이야기해 주었는데, 얼마나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다.

   칼국수를 먹으면서도 담임선생님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나는 좀 난처해졌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학생의 예민한 감정도 이해가 되고, 다른 선생님의 입장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누군가가 나에게 서운했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풀고 있다고 생각하면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니까.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른 선생님의 이야기가 나올 때 참 어렵다. 학생들이 아직도 선생님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서운했던 이야기를 하기가 더 쉽다.

   아무튼 칼국수를 먹고, 학교 주변을 잠깐 산책했다. 그 짧은 순간이 어찌나 평온하던지. 정말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하늘은 아주 맑았고, 거리는 한산했다. 적당한 기온과 따사로운 햇살, 떨어지는 낙엽과 붉은 단풍, 200미터 정도의 짧은 거리를 걸어오면서 '옛날에는...'과 '앞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했던 것 같다. 기억나는 대로, 꾸미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그 가을날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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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전에 병산서원과 청량산에 갔다가 돌아왔다. 병산서원은 지난 겨울처럼 여전했고, 청량산의 단풍과 기암은 절경이었다. 특히, 한밤에 올라본 병산서원의 만대루는 새로운 분위기였다. 늦은 뒷풀이로 식사 시간에 맞춰서 일어난 탓에 아침에 병산 앞 낙동강의 물안개 속의 백사장을 거닐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청량산의 응진전과 김생굴, 청량사로 이어지는 단풍 산행은 수 많은 사람들이 왜 그곳이 모여 있는지를 말없이 설명해 주었다.

   사진도 몇 장 찍었는데, 사진기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선이 학교에 있기 때문에 오늘은 올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 안동 병산서원과 봉화 청량산 답사

1. 전체 일정
 가. 일자 : 2004년 10월 23(토) ~ 24일(일)

 나. 시간 계획
   ¤ 23일 토요일
   ‧ 14:30-18:00 : 부산  -> 안동
   ‧ 18:00-19:00 : 저녁식사 (안동찜닭)
   ‧ 19:00-20:00 : 병산서원 도착, 숙소배정, 짐풀기
   ‧ 20:00-22:00 : 병산서원 답사  
   ‧ 22:00-24:00 : 뒷풀이

   ¤ 24일 일요일
   ‧ 07:30-08:00 : 병산서원 둘러보기
   ‧ 08:00-08:30 : 아침식사
   ‧ 08:30-09:30 : 부용대 둘러보기
   ‧ 09:30-10:30 : 청량산 도착, 가벼운 등반
   ‧ 10:30-13:30 : 하산
   ‧ 13:30-14:30 : 점심식사
   ‧ 14:30-19:00 : 봉화 ->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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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2004-10-25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산 서원에 다녀오셨군요. 나중에 사진 올려 주세요. 전에 갔을 때 부용대에는 못 가봤어요. 가을이라 훨씬 더 좋았겠어요. 언제고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곳이에요.
 

   지난 여름에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은 이후로, 여름방학 때 우리 학교 도서관에 이 책을 사 놓았다. 한 두 달 동안 지켜 보았으나 아무도 빌려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대학의 1학기 수시 합격생에게 이 책을 권겼더니, 아주 흥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책을 많이 읽기로 소문난 국어선생님께서 도서실에 오셔서 지나가는 말로, 뭐 재밌는 책, 없을까요? 하시기에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빼들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이 책, '비밀노트'를 읽기 시작해서 이틀을 넘긴다면 선생님의 인내심은 정말 대단하신 겁니다."

   이 정도면 모두 무슨 말인지 알아채시고 빌려 보신다. 역시 반응은 예상대로 '다음 권, 어디 있더라?' 였다. 그리고 며칠 후에 또 한 분의 선생님께서 이 책에 빠지셔서 허우적거린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 점심시간에 국어선생님 두 분이 오셔서 읽을 책을 찾으시기에 잽싸게 또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추천해 드렸다. 그랬더니, '소문 들었다'고 하셨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조만간 우리 학교 인기도서 순위에 오를 듯! ㅋㅋ (얼마 전에 대학 도서관 대출 순위 상위권에 판타지 소설들만 올라 있어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던데... 그런 학교들 보다 우리 학교의 수준이 더 높은 거 아니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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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10-2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할만한 도서라니 혹하긴 합니다만.. 음.. 3권짜리이군요. ㅜㅜ

느티나무 2004-10-24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회가 되신다면 그래도 읽어 보시는 게 좋을 듯... 추천합니다.
 

   창원 신월중학교의 박경화선생님께 부탁해서 강연회를 열었다. 거침없는 입담과 오랜 경험과 성교육에 대한 투철한 신념,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분이라는 소문을 익히 듣고 있었던지라 보름 전에 강연을 부탁드려 놓고는 내심 설레였다. 강사 섭외도 시원시원하게 응낙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고, 준비물도 별달리 부탁하시는 것이 없어서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편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강연회에 선생님들이 적에 오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었기에, 선생님들께 메일도 보내고, 문자메세지도 보냈는데도 얼마나 오실까, 120석 자리가 텅텅 비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늘 이런 걱정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어느 곳에도 사람이 잘 모이지 않는다. 사람 모으는 것이 젤 큰 일이요, 걱정이다. 사람들은 '돈내라'고 하면 아깝지 않게 낸다. 그러나 시간 좀 내 달라면 모두 '바쁘다'고 한다.

   5시에 우리 학교에 열리기로 한 강연회에 정작 나는 늦게 참석했다. 8,9교시 수업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더욱 수업이 없는 시간에 강사님과 연락하실 선생님을 대신 정하고-길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행사 준비를 끝내야 했다. 아무튼 내가 수업을 하고 있는 동안 행사는 무사히 시작되었는가 보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도 안 먹고 내려갔더니 강연이 한창이었다.

   전화 통화는 했지만, 실제로 박경화선생님을 뵌 건 처음이었다. 강의는 바로 그 다음의 분위기를 알 수 없는 드라마틱한 공연이었다. 너무 솔직하게, 진지하게, 진심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모두 그 말씀에 공감했고, 지금껏 우리가 덮고 입던 겉옷을 한꺼풀을 벗지 않았나 싶다.

   처음엔 성지식을 올바르게 알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셨단다. 그러다가 성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보면서 性을 보는(대하는) 태도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기본으로 한 '性태도'의 문제로 성교육을 시작하게 되셨다고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는, 개인의 성지식과 성태도의 문제와 함께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도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고 했다.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억압하는 이런 사회구조의 개혁 없이는 性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하셨다. 왜 미국이 약한 나라에 휘두르는 폭력에는 분노하면서 우리 사회 안의 제도화된 폭력에는 현실이라는 논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가슴이 뜨듯해지는 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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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10-22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간을 보내셨군요. 앞을 놓친 것이 좀 아쉬우시겠지만...
 

   이번주 화요일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학생토론대회가 모고등학교에서 열렸다. 우리 학교에서는 박OO양이 교내 대표로 선발되어 이 토론대회에 참가했다. 지난주 화요일은 19일이었는데, 이 날은 중간고사 시험 둘째날이라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본인이 참가해 보고 싶다고 해서 그냥 준비해서 토론대회에 나갔었다.

   토론대회의 주제는 미리 정해졌었는데, 호주제 찬반이었다. 박OO 양은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토론하기로 정해졌고, 우리는 일주일 전부터 저녁 식사시간에 도서실에서 예비 토론을 했다. 시험기간과 겹쳐서 본인은 괜찮다고 하는데도, 옆에서 보는 내가 조금 안쓰러웠다. 좀 준비가 부족했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평소 닦아둔 실력이 만만치 않은 토론자여서 내심 좋은 성과를 기대했었다.

   토론 대회가 열리는 당일. 나와 시험을 마치고 내려온 박OO 학생을 푸른나무님께서 차를 태워주신다기에 근처에서 간단한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다. 먹으면서 정작 호주제 찬반에 대한 토론은 없고, 그냥 일상적인 학교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아무튼 무사히 토론대회에 참가했고 토론은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결과는 즉석에서 발표되었는데, 주최한 학교의 학생이 최우수 학생으로 뽑혔고, 나머지 5명의 학생들이 우수 학생이 되었고, 박OO 학생은 아쉽게도 수상권에는 들지 못했다.

   나는 학교로 다시 돌아가 밤늦은 특기적성 수업을 해야했기 때문에 서둘러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짜증이 팍 났다. 이건 우연일 수 있지만, 너무도 신기한 우연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심사는 토론대회에 지도교사로 참가한 8명의 교사 중에서 4명이 했다. 그리고 심사위원장은 주최 학교의 교사가 맡았다. 수상 결과는 앞에서 말한 대로 주최 학교의 학생이 최우수, 나머지 심사위원 4명의 교사들이 근무하는 학교 학생들이 우수였다. (물론 5명이 우수상을 받기 때문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지 않은 한 학교의 학생도 우수상을 받기는 했다.) 택시 안에서 그 생각이 하다 보니 '울컥' 했다. 그러니까, 어른스러운 박OO 학생이 '선생님께서 제가 젤 잘하는 것처럼 생각하시듯이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자기 학교 학생이 젤 잘하는 것으로 보셨을 겁니다. 저에게 좋은 경험이었어요' 하면서 위로까지 했다.

   오늘 다시 이 글을 올리면서 또 그날 일이 생각나고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주최학교에 전화를 걸어서 비디오테입을 좀 보내달라고 해야겠다. 두번째는 심사결과표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해서 누가 어떻게 심사했는지 확인을 해야겠다. 비디오를 보면서 분석을 해 보고 싶다. 아무튼 대회는 공정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이 글이 일방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내가 느낀 건 이랬다는 것이다. 여기는 나만의 공간이니까, 이래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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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4-10-23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스러운 박00.... 어째 시상이 좀 그렇네요. 짜고치는 고스톱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