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雲寺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禪雲寺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때문에

그까짓 여자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禪雲寺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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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5-03-2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운사에 가게 될 모양이다. 이번 주말쯤이면 선운사 부근의 어느 뒷방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테지. 이 시가 생각날 것이다.
 

   OO, 잘 지내고 있지? 


   거긴 너에게 낯설고 물설은 곳이라 견뎌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척척 잘 해 나가리라 믿는다. 예전에 너에게 주기로 한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다른 사람의 차지(OO)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고르고 고른 책이다. 책상 위에 두었다가 언젠가 네 처지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때 읽어도 좋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아직은 네가 이해하기엔 실감나지 않는 말이겠지?) 간난신고를 겪고도 그 끝엔 아무 것도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닌가 한다.

   언제나 나만 옳다고 믿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교사라는 점은 네가 기억해 주기 바란다. 그게 아주 작은 차이였을지라도 말이다.

   너의 건강과 즐거운 학교 생활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안녕.

- 느티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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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5-03-2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O이에게서 책 고맙게 잘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멋진 대학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준비도 열심히 했으면 한다. ^^
 

   이 글 때문에 우리반 아이들에게 이 서재가 있다는 걸 비밀로 해야할지 모르겠다.

   요즘 새학기라서 조사해서 통계를 내는 게 많다. 뭐, 대부분은 교육적인 필요에 의해서 한다고 생각하지만 별로 쓸 데도 없는 걸 받아내는 걸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대표적으로 서약서) 그리고 행정 편의주의적인 사고 때문에 받아내는 것도 나를 우울하게 한다.(대표적으로 자율학습 희망서-일단 시작하고 나서, 희망서는 나중에 형식적으로 받는다. 나중에 장학지도 나왔을 때 학생 희망의 근거로 활용될 것이다.) 더구나 올해 맡은 업무는 그런 공문을 만들고, 거두고, 통계를 내는 학년 기획 업무라 더 곤혹스럽다.

   일이야 지금은 못해도 차차 배우면 되는 것이고, 언젠가는 하게 될 일이고, 밀려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니 괜찮은데 내가 피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게 되니 영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담당이 아니면 못하는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할 때도 있을텐데, 지금 사정이 영 곤란하게 되어서 그냥 개인적은 문제로 한정시켜서 말하게 된다. (교육방송 시청할 계획이라고 하기에 나는 돈 받고 하는 방송시청 감독이라면 못 하겠다고, 다른 사람을 구하든지 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 혼자 안 하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절대로 하기 싫은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

   며칠 전부터 급식비 면제자를 선정해 달라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희망자는 개인적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두 번 세 번 말해도 찾아오는 학생이 없기에, 점심시간에 슬쩍 나가서 물로 배를 채우는 건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밥을 먹어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고 얘기했더니 슬금슬금 네 명의 학생들이 차례로 찾아왔다.

   아직은 학년초라 아이들의 환경을 잘 모르니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정이 딱하면 추천서를 써 주면 되는데, 제일 먼저 찾아 온 OO이의 사정은 너무 딱했다. OO이는 이야기를 시작하자 말자 울기 시작하더니 거의 통곡하다시피 했다. 처음엔 약간 당황스러웠으나 자연스럽게 한바탕 우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내버려 두었다. 어린 녀석이 마음에 맺힌 서러움이 많았던 가 보다. 통곡하는 녀석을 한 번 꼭 안아 주고, 벌겋게 충혈된 눈을 식히기 위해 내가 쓰는 교무실의 뒷문을 열고 나가서 바람을 쐬었다.

   그 이후에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나는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늦게까지 혼자 있는 동생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어쩌면 흔해 빠진, 어쩌면 지금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도 했다.(지금 생각하니 조금 후회스럽다. 왜 그런 이야기 밖에 못 했지.) 그래도 돌아갈 때는 씩씩해 보였다. 나는 고마웠다.

   그 녀석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이 눈물이 세상에서 자기가 꿋꿋하게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나 역시도 이 한번의 눈물이 그 녀석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다.

   지금은 봄이지 않는가? 초록의 물결로 밀려오는 봄 같은 아이들이 아닌가? 이 봄에, 봄 같은 아이들을 두고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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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3-1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람되게도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이 아이가 선생님 반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어제는 3월 공부방 교사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오후 1시에 수업이 끝났지만, 학교로 찾아오신 학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2시 반이 넘어서야 학교를 나설 수 있었다. 점심도 거른 탓에 집에서 싸온 빵을 먹으며 지하철역으로 서둘러 갔다.

   지하철을 타고 공부방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45분. 그 때까지만 해도 영도 봉래산 중턱(공부방이 있는 곳)은 해가 쨍쨍했다. 조금 있으니 누군가가 밖에서 '눈 온다'는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호기심에 밖으로 나가 햇살이 비치는데 눈이 내리는 광경을 신기한 듯, 어이 없다는 듯 그렇게 장난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들 공부방에 앉아 열띤 교사모임이 진행되었다. 회의에 집중하느라 그 이후엔 눈이 오는지도 잘 몰랐는데 한참이 지나서 들어온 선생님이 눈 내리는 게 장난이 아니라는 귀뜸을 해 주셨다. 회의는 2시간 정도로 마치고 창문을 여니 이미 햇빛은 들어갔고, 눈은 펑펑 내려 바닥에 두껍게 쌓이고 있었다.

   그래도 별로 걱정은 없었다. 눈앞에 맛있게 준비된 밥상이 있었기 때문에 여유를 부리며 밥을 맛나게 먹고, 언제나 남자선생님들의 몫인 설거지도 깔끔해게 끝냈다. 그 때쯤에서야 슬슬 집에 갈 일이 걱정이 되었다. 공부방은 산중턱-집들이 있는 맨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마을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가려면 10분 정도 걸어내려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 때쯤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마을버스가 다니는 중복도로는 통제되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모두들 서둘렀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중복도로까지 내려오는데도 20분 정도가 걸렸다. 모두들 엉금엉금 기어서 가파른 길을 내려온 탓이다. 여전히 눈은 펑펑 내리고, 길은 빙판이었다. 그나저나 중복도로가 막혔으니 걸어서 시내버스가 다니는 산복도로까지 가야하는데, 이런 날씨라면 산복도로도 버스가 다닐지 의심스러웠다.

   눈이 내리는, 가파른 빙판길을 다시 40분이나 걸어서 산복도로로 내려왔으나 가물에 콩 나듯이 시내버스가 다녔다. 우리는 버스를 타는 거나 걷는 거나 비슷할 것 같아서 지하철 남포동역까지 걷기로 했다. 대부분 서너번씩 넘어진지라 웃음도 묻혔고, 눈을 많이 맞은 탓에 옷도 젖어 무겁고, 손이 무척 시렸다. 내려오면서 오늘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공부방 교사모임이 될 것 같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살면서 두고두고 말하게 될 그런 교사모임이 아닐까?

   공부방에서부터 거의 2시간을 걸어서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졌다. 머리도 눈이 녹아 물이 줄줄 흐르고, 옷은 젖었고, 도무지 사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 집 근처에 도착해서 음료수를 사러 들어간 가게에 이번에 졸업한 OO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그 OO의 친구인 혜은이도 그 가게에서 놀고 있었다. 참고로 혜은이는 지난 금요일에 내가 이번에 옮긴 학교로 놀러온, 귀여운 녀석인데 다음주 토요일에 우리집에 놀러오기로 약속까지 해 두었다. 이제는 어른스럽게 우리집 앞까지 나에게 우산을 씌워준 혜은이.

   집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었다. 공부방에서 출발한 게 오후 7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으니까 세 시간이 좀 넘게 걸린 셈이다. 눈 덕분에 아주 기나긴 하루였다. 따뜻한 물에 몸을 적시니 몸이 노곤해서 잠이 몰려왔다.

   눈이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지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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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나무 2005-03-07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나이라... ^^ 저도 딸아이와 밤에 나가서 사진도 찍고 강아지도 데리고 나가서 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주었답니다. 사람들이 눈인지 강아진지 구별이 안된다면... 하얀색 강아지라... 녀석.. 난생 겪어본 눈밭에서의 산책. 개평생 기억에 남을겁니다.

느티나무 2005-03-08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라... 후후 개가 평생을 인식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푸른나무님 잘 계시지요? 여전히 열심히 살림하시고, 글쓰시고, 가무를 즐기시고, 또 바쁘신지요? 벌써, 그 때 그 시간들과 그 공간이 그리워지네요 ^^
 

12월


- 이외수


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 쓸쓸하라고
눈이 내린다.

닫혀 있는 거리
아직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고
종말처럼
날이 저문다.

가난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그대 더욱 목메이라고
길이 막힌다.

흑백 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시간
누군가
흐느끼고 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폭설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이 한 해의
마지막 언덕길
지워지고 있다.

 

* 부산에 그 전의 기록을 알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눈이 내렸다. 나는 눈이 내리는 걸 보면 항상 이 시가 생각이 난다. 지금이 12월은 아니지만 눈이 내리는 날은 조금 더 감상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전화기를 만지작거려야 했다. 그래 어제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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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03-07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 쪽에 눈이 많이 내렸다던데..
"폭설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서..설마 이 정도로 온 건 아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