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때문에 우리반 아이들에게 이 서재가 있다는 걸 비밀로 해야할지 모르겠다.
요즘 새학기라서 조사해서 통계를 내는 게 많다. 뭐, 대부분은 교육적인 필요에 의해서 한다고 생각하지만 별로 쓸 데도 없는 걸 받아내는 걸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대표적으로 서약서) 그리고 행정 편의주의적인 사고 때문에 받아내는 것도 나를 우울하게 한다.(대표적으로 자율학습 희망서-일단 시작하고 나서, 희망서는 나중에 형식적으로 받는다. 나중에 장학지도 나왔을 때 학생 희망의 근거로 활용될 것이다.) 더구나 올해 맡은 업무는 그런 공문을 만들고, 거두고, 통계를 내는 학년 기획 업무라 더 곤혹스럽다.
일이야 지금은 못해도 차차 배우면 되는 것이고, 언젠가는 하게 될 일이고, 밀려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니 괜찮은데 내가 피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게 되니 영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담당이 아니면 못하는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할 때도 있을텐데, 지금 사정이 영 곤란하게 되어서 그냥 개인적은 문제로 한정시켜서 말하게 된다. (교육방송 시청할 계획이라고 하기에 나는 돈 받고 하는 방송시청 감독이라면 못 하겠다고, 다른 사람을 구하든지 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 혼자 안 하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절대로 하기 싫은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
며칠 전부터 급식비 면제자를 선정해 달라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희망자는 개인적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두 번 세 번 말해도 찾아오는 학생이 없기에, 점심시간에 슬쩍 나가서 물로 배를 채우는 건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밥을 먹어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고 얘기했더니 슬금슬금 네 명의 학생들이 차례로 찾아왔다.
아직은 학년초라 아이들의 환경을 잘 모르니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정이 딱하면 추천서를 써 주면 되는데, 제일 먼저 찾아 온 OO이의 사정은 너무 딱했다. OO이는 이야기를 시작하자 말자 울기 시작하더니 거의 통곡하다시피 했다. 처음엔 약간 당황스러웠으나 자연스럽게 한바탕 우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내버려 두었다. 어린 녀석이 마음에 맺힌 서러움이 많았던 가 보다. 통곡하는 녀석을 한 번 꼭 안아 주고, 벌겋게 충혈된 눈을 식히기 위해 내가 쓰는 교무실의 뒷문을 열고 나가서 바람을 쐬었다.
그 이후에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나는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늦게까지 혼자 있는 동생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어쩌면 흔해 빠진, 어쩌면 지금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도 했다.(지금 생각하니 조금 후회스럽다. 왜 그런 이야기 밖에 못 했지.) 그래도 돌아갈 때는 씩씩해 보였다. 나는 고마웠다.
그 녀석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이 눈물이 세상에서 자기가 꿋꿋하게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나 역시도 이 한번의 눈물이 그 녀석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다.
지금은 봄이지 않는가? 초록의 물결로 밀려오는 봄 같은 아이들이 아닌가? 이 봄에, 봄 같은 아이들을 두고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