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3월 공부방 교사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오후 1시에 수업이 끝났지만, 학교로 찾아오신 학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2시 반이 넘어서야 학교를 나설 수 있었다. 점심도 거른 탓에 집에서 싸온 빵을 먹으며 지하철역으로 서둘러 갔다.

   지하철을 타고 공부방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45분. 그 때까지만 해도 영도 봉래산 중턱(공부방이 있는 곳)은 해가 쨍쨍했다. 조금 있으니 누군가가 밖에서 '눈 온다'는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호기심에 밖으로 나가 햇살이 비치는데 눈이 내리는 광경을 신기한 듯, 어이 없다는 듯 그렇게 장난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들 공부방에 앉아 열띤 교사모임이 진행되었다. 회의에 집중하느라 그 이후엔 눈이 오는지도 잘 몰랐는데 한참이 지나서 들어온 선생님이 눈 내리는 게 장난이 아니라는 귀뜸을 해 주셨다. 회의는 2시간 정도로 마치고 창문을 여니 이미 햇빛은 들어갔고, 눈은 펑펑 내려 바닥에 두껍게 쌓이고 있었다.

   그래도 별로 걱정은 없었다. 눈앞에 맛있게 준비된 밥상이 있었기 때문에 여유를 부리며 밥을 맛나게 먹고, 언제나 남자선생님들의 몫인 설거지도 깔끔해게 끝냈다. 그 때쯤에서야 슬슬 집에 갈 일이 걱정이 되었다. 공부방은 산중턱-집들이 있는 맨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마을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가려면 10분 정도 걸어내려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 때쯤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마을버스가 다니는 중복도로는 통제되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모두들 서둘렀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중복도로까지 내려오는데도 20분 정도가 걸렸다. 모두들 엉금엉금 기어서 가파른 길을 내려온 탓이다. 여전히 눈은 펑펑 내리고, 길은 빙판이었다. 그나저나 중복도로가 막혔으니 걸어서 시내버스가 다니는 산복도로까지 가야하는데, 이런 날씨라면 산복도로도 버스가 다닐지 의심스러웠다.

   눈이 내리는, 가파른 빙판길을 다시 40분이나 걸어서 산복도로로 내려왔으나 가물에 콩 나듯이 시내버스가 다녔다. 우리는 버스를 타는 거나 걷는 거나 비슷할 것 같아서 지하철 남포동역까지 걷기로 했다. 대부분 서너번씩 넘어진지라 웃음도 묻혔고, 눈을 많이 맞은 탓에 옷도 젖어 무겁고, 손이 무척 시렸다. 내려오면서 오늘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공부방 교사모임이 될 것 같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살면서 두고두고 말하게 될 그런 교사모임이 아닐까?

   공부방에서부터 거의 2시간을 걸어서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졌다. 머리도 눈이 녹아 물이 줄줄 흐르고, 옷은 젖었고, 도무지 사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 집 근처에 도착해서 음료수를 사러 들어간 가게에 이번에 졸업한 OO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그 OO의 친구인 혜은이도 그 가게에서 놀고 있었다. 참고로 혜은이는 지난 금요일에 내가 이번에 옮긴 학교로 놀러온, 귀여운 녀석인데 다음주 토요일에 우리집에 놀러오기로 약속까지 해 두었다. 이제는 어른스럽게 우리집 앞까지 나에게 우산을 씌워준 혜은이.

   집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었다. 공부방에서 출발한 게 오후 7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으니까 세 시간이 좀 넘게 걸린 셈이다. 눈 덕분에 아주 기나긴 하루였다. 따뜻한 물에 몸을 적시니 몸이 노곤해서 잠이 몰려왔다.

   눈이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지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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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나무 2005-03-07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나이라... ^^ 저도 딸아이와 밤에 나가서 사진도 찍고 강아지도 데리고 나가서 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주었답니다. 사람들이 눈인지 강아진지 구별이 안된다면... 하얀색 강아지라... 녀석.. 난생 겪어본 눈밭에서의 산책. 개평생 기억에 남을겁니다.

느티나무 2005-03-08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라... 후후 개가 평생을 인식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푸른나무님 잘 계시지요? 여전히 열심히 살림하시고, 글쓰시고, 가무를 즐기시고, 또 바쁘신지요? 벌써, 그 때 그 시간들과 그 공간이 그리워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