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미디어다. 원로 언론인 김중배 선생의 '언론학'이다. 술판에서 헛수작하는 이들이라면 새겨야 할 경구다. 더 이상 낭패당하지 않으려고 술을 끊었을 때다. 백기완 선생이 벼락처럼 꾸짖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이 사람아! 상상력이 없어져!"

   두 분과 독자들께 결례를 무릅쓰고 술타령을 술술 푸는 까닭은 물론 있다. 386 젊은 벗들과 여남은 차례 술멍석을 편 변명이다. 기존 정치권에 수혈된 386들을 바라보는 386 여론이 궁금했다. 독특한 미디어 탓일까. 다소 격앙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아름다운 386은 따로 있다고. 그래서 순진하게 물었다. 아름다운 386을 대표할 만한 사람은 누구인가. 젖은눈빛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던 후배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대표는 없어요."

   그랬다. 바로 그가 아름다운 386이었다. 그는, 아니 그들은, 자신들의 세대를 대표한다는 후보들이 선거공간에서 아무런 진보적 의제도 쟁점화하지 못한 현실을 부끄러워했다. 수구정객과 수구언론의 색깔공세 때문일까. 실제로 386들은 깨끗한 정치만 상표처럼 내건다. 정작 천박한 정치수준을 한 단계 높일 정책적 차별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어쩌면 그런 기대 자체가 턱없는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386의 '독설'을 들어보자.

   "그들은 과거만을 팔고 있다. 아니 이미 다른 386들을 착취하고 있다. 보라. 전대협 의장 명함을 내세우는데 그들 중에 누가 당시 밤새웨 함께 고민했던 학우들에게 의견을 구했는가. 의장으로 추대하며 민중의 아픔을 대변하라고 그들을 위해 밤새워 불지폈던 이들에게 오늘 그들은 누구인가."

   또 다른 386도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학생운동을 망친 자들이다. 운동의 관료화가 오늘의 학생운동 침체를 불렀다. 학생운동을 망쳐놓고 이제 보수, 게다가 수구정당까지 들어간다?"

   "조직선을 타고 들어간 후보가 있는가. 모두 당선 가능성을 따라가지 않았는가. 지역과 색깔이라는 봉건적 잣대가 지배하는 정치를 참으로 개혁하겠다면 민주당 후보로 영남에 나서가나 민주노동당에 합류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은 당선만을 좇아 지역구를 선택했다. 그 점에서 오히려 노무현이 더 개혁적이다. 김상현이 구시대 정치인이라고? 그도 30대엔 그러진 않았다. 그 시절 그는 목까지 흙에 파묻히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386들이 40. 50대가 되었을 때 무엇을 할지 눈에 보인다."

   물론 386세대의 국회진출은 16대 총선이 처음은 아니다. 민주당 김민석 의원을 비롯해 줄지어 기존 정당의 문을 두들겼다. 한 386은 사실 그들은 '얼굴미담'이었다고 회고했다. 하기야 그들이 얼굴마담이었다면, 다시 대중 정치인으로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아니다. 과거와 달리 그들의 뒤엔 아무도 없다. 과연 그들은 오늘 누구를 대변하는가. 기존 정치권 진입 또한 힘을 모아 갔는가. 아니다. 개별적 순주에서였다. 갈라진 그들이 총선 뒤에 하나가 될 수 있을까도 회의적이다. 심지어 그들은 기존 여야 정당의 얼굴마담으로 나서기도 했다. 1980년대 그들을 학생운동의 얼굴로 내세운 이들은 지금도 흔들림 없이 민주와 통일의 길을 걷고 있다. 다만 신문과 방송이 그들을 비켜가고 있을 뿐이다.

   "어차피 출마한 마당에 그들의 당선이 정치개혁을 앞당기지 않겠는가"라며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장담할 수 없단다. 술은 과연 미디어인가. 당선이 꼭 당위만은 아니라는 그도 한잔을 더 비운 뒤 마음을 비웠다. "떨어지면 더 추하지 않은가요? 아무래도 낫기야 낫겠죠."
   출마한 386들에게 권한다. 선거공간에서 과연 오늘의 모습이 최선인가 성찰할 때다. 그들이 왜 선거에 나왔는가를 적잖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한다. 수많은 386들이 삶의 현장 곳곳에서 깨끗한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아름다운 벗들의 여론에 귀기울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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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5-04-05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정치를 할 일은 없겠지만 인터넷에서 이 글을 읽다가 '나는 제대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옮겨둔다. 최근의 소위 386 세대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손석춘씨의 통찰력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모두가 불편해 하는,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나아지는데 내가 아무 도움이 되지 못 했을 때, 아니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때, 그런데도 누군가의 노력으로 이 상황이 해결되어 나에게 도움이 될 때, 나는 몹시도 부끄럽다.

   아이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 하고 윽박질러야 할 때, 아닌 건 알겠는데 왜 아닌지 이해시킬 수 없을 때, 아이들에게 돈 내는 일을 시킬 때(수련회, 보충수업...), 아이들에게 가는 피해나 부당함을 알면서도 내 일이 아니라고 돌아설 때, 나는 몹시도 부끄럽다.

   아직도 학교는 왜 이렇게 나에게 부끄러움을 강요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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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5-04-05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느티나무님 처음 인사재요. 저는 엊그제 수련회를 갔다왔는데 애들데리고 수련회는 처음이었어요. 늘 수학여행만 따라다니다가,,,, 힘든 수학여행과는 다르게 수련회는 정말 편하기가 천국이더군요. 하지만 몸은 무지 편했지만 마음은 불편하고 부끄러운 날들이었습니다.
내가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아도 되는 학교... 아직 멀까요?

느티나무 2005-04-06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반갑습니다. 교사들이 아이들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학교요? 쉽지 않겠지요. 그러나 언제나 희망이 있다는 믿음으로 삽니다. 가끔 나아질 희망이 보일 때 기운도 나고 그렇지 않습니까? ㅎㅎㅎ
 

   며칠 전부터 감기 몸살 기운으로 학교 생활하는데 힘이 좀 들었다. 그래도 이래저래 가야할 모임도 생기고 학교에서도 해야할 일이 밀려오는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토요일인 오늘은 일찍 들어와서 좀 쉬면서 책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토요일이 2분 남은 지금껏 책은 펼치지 못하고 있다.

   일찍 퇴근했으나, 계속되는 기침과 몸살 기운으로 축 늘어져 있다가 5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저녁에는 부모님께서 우리집에 오셔서 저녁을 드시기로 했기 때문에 안해는 신경이 많이 쓰이는 눈치였다. 그래도 몸이 아프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깨고보니 시장도 혼자 다녀왔는지 거의 음식 준비를 끝냈다.

   나도 일어나서는 지금껏 밀린 집안 청소를 대충 하고, 저녁 차리는 것을 도왔다. 부모님께서는 저녁 7시에 오셔서 저녁을 드시고 조금 앉아 계시다가 가셨다. 그리고 안해는 몹시 피곤했던지 지금껏 방에서 자고 있다. 나는 텔레비전도 보면서, 심심하면 인터넷도 하면서, 커피도 마셔가며, 군것질도 하며 쉬엄쉬엄 설거지를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12시를 넘겼다. 이제부터는 컴퓨터를 끄고 책을 읽어야 할 시간이다. 어제 그 아픈 와중에도 최순덕의 성령충만기를 읽다가 웃음도 나왔는데, 오늘 그 책을 마무리 하고 이번에 산 다른 책으로 넘어가야 할까보다.

   내일은 가까운 화훼단지에 나가서 꽃나무를 몇 그루 사려고 했는데 오늘 일기예보에 오늘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었다. 지금도 밖에 비가 오는지 모르겠다. 아쉬운 봄밤이 후딱 달아나기 전에 얼른 책 속으로 달아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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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07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4-07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 화순 운주사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우리는 그런 호젓한 분위기가 좋아 여유있게 절집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정말 천불천탑이 있었던 것처럼 갖가지 모양의 탑들이 눈을 돌리는 곳마다 솟아 있었고, 불상들은 무더기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절집 커피는 물이 좋아 그런가 더욱 좋았다. 우산을 받쳐들고, 말썽부리던 사진기가 조금은 기운을 차린 사진기를 조심스럽게 다루느라 정작 아름다운 풍광을 마음에 담지는 못하고 왔다는 후회가 조금은 들었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절집을 거닐며 행복했다. 사진에서도 행복한 표정이 묻어났으면 좋겠다.

 

운주사의 천불천탑


 

운주사 대웅전

 

운주사 석불군 (라)

 

운주사의 석탑

운주사의 와불 1


 

운주사의 와불 2

 

운주사의 칠성바위


 

운주사 공사바위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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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5-03-29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호~ 저기 가볼까봐요;

느티나무 2005-03-3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주사와 보림사를 같이 둘러보시면 아주 좋을 듯 하네요 ^^ 먼걸음이시겠지만 꼭 한 번 가보실만 합니다. 안녕하시죠? 이번에 가을산님께 받은 장서인이 너무 예쁘더군요.
 



   선운사에서 돌아오는 길, 명옥헌 원림을 지나치고 면앙정과 식영정을 지나 도착한 대나무의 고장 담양의  소쇄원에 닿았다. 해가 이제 설핏 넘어가는 때였으나 조선의 양반 정원을 대표한다는 소쇄원의 높은 이름 덕분인지 소쇄원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저마다 가지고온 사진기로 연신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 나도 몇 장 찍었다. 마침 이 때부터 사진기의 LCD 화면이 말썽을 부려서 고생을 많이 해서 많이 찍지는 못 해서 아쉬웠다. 사진기는 말을 안 듣지 시간은 별로 없지... 그래서 좀 부실하다는 느낌이다.

 

소쇄원 전경 1

 

 



소쇄원의 전경 2

 

 

소쇄원의 담장

 

외나무다리와 담장


 

소쇄원의 전경 3

 

소쇄원의 전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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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5-03-30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퍼갔어요. 꾸벅.

느티나무 2005-03-3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감사하여라. 고맙습니다. 꾸벅! 마로의 근황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