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저렇게 달아놓았다만 강연 준비는 이제부터가 아닌가 싶다. ㅎㅎ

   훌륭하신 분들의 말씀들이 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만, 그래도 부쩍 주변에 아주 솔깃한 강연 계획이 많이 잡혔다.  며칠 전에는 정욱식님의 강연이 있었고, 며칠 후에는 신영복 교수님과 영화평론가 심명섭님의 강연도 예정되어 있더라. 모두 욕심 나는 것들이지만 정작 그 날은 또 어떻게 움직여질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도 강연 계획을 하나 세웠다. 그것도 아주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었다. 평소에 꼭 모시고 싶은 분이었는데, 순천에 계신 선생님이시라 평일에 부산까지 오실 수 있을까 많이 망설였다. 그 선생님을 모시자는 얘기는 학기 초부터 있었지만, 우리끼리도 '너무 멀지 않으실까?', '바쁘실텐데...'하며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며칠 전에 '오마이뉴스'에서 선생님의 글을 읽고는 인사도 드릴 겸 해서 내가 조심스럽게 여쭤봤더니 의외로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이런 행운이 다 있나 싶다. 작년에 내가 그 선생님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쓴 것을 읽으시고 직접 메일까지 보내주셨는데, 그걸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셨다. 제가 '느티나무'라고 말씀드리니까 강연 날짜를 조정해 보자고 하셨고, 몇 번의 메일이 오고 간 끝에 7월 5일로 정했다.

  강연 주제는 강사님께서 알아서 하실 테고, 장소도 확정 단계에 있으니 안심이다. 좋은 강연을 널리 알려서 많은 선생님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강연해 주실 분은 안준철선생님이시고, 그 선생님의 책은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이다. 이 책을 세상의 모든 교사들이 늘 책상 위에 두고 날마다 읽고 마음에 새겼으면 지금과 같은 학교의 문제점이 많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교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교단의 서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하리라고 믿는다.

   아무튼 어서 7월 5일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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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6-1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 기대되요. 무지.. 뒷풀이 자리에서 따로 조용히?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을까요?

심상이최고야 2005-06-1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그 분과 함께 하는 뒷풀이 기대되요!! 떨려요~~

2005-06-17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5-06-18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풀이에 대한 기대는 좀 그렇지 않을까요? 먼 길 가셔야 하는데...후후 저도 어찌 될지 모르겠네요. 근데 의외로 사람들은 메일의 내용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메일을 꾸준히 보시는 분도 안준철샘이 누군지 잘 모른다고 하네요.^^

해콩 2005-06-26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연 전에 특집으로 안준쳘 샘의 글을 두어편 보내볼까요? 그리고 열심히 홍보! 합시다. ^^

느티나무 2005-07-0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글이 가장 맘에 듭디까? 샘이 생각하는 좋은 글로 보내도록 하지요 ^^
 

강민구, 강상규, 고상영, 공창헌, 김기환, 김동범, 김민우, 김복규, 김성훈, 김준대, 김태훈, 김호준, 김휘빈, 라호철, 류종항, 류명진, 맹주성, 문인환, 박   건, 박대웅, 박명수, 박병인, 박성우, 박정근, 박정한, 배한동, 서   웅, 서웅석, 손호진, 염순조, 오창근, 유승근, 윤종훈, 이길현, 이명해, 이성현, 이재웅, 이헌재, 전상원, 최필준, 김태우, 배동일

   우리반 녀석들... 가끔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사랑스럽고 이쁜!

   지난 4월 어느날부터 어제까지 매일 점심시간에 그것도 상담이랍시고 우리반의 한 녀석 한 녀석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가 마지막이었는데, 어제 만난 OO이는 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왜 자기만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푹 쉬는 녀석에게 별로 해 줄 말이 없었다. 저도 부모님이랑 좋은 곳에 놀러가고 싶고,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한 번 다녀보고 싶고, 참고서 살 때 눈치 안 보고 샀으면 좋겠다는 녀석의 소박한 바람 앞에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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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사과 2005-06-1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지요..그 기분 이해해요.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않은 사람은 그런 마음을 모르죠. 아이들이 가끔가다가 던지는 말에 상처입기도 하고, 그 흔한 매점에 가기도 힘들죠...하지만 어쩌겠어요..방도가 없는걸..그래도 걔는 선생님이랑 상담이라도 했네요..그럴수도 없으면 얼마나 괴로운지 아시나요?혼자서 속앓이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해콩 2005-06-17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난 것도 힘이 된다].. 이 제목을 정할 때 '힘'이라는 단어가 걸린다고 이상석 샘께서 그러셨는데 그래도 못난 것도 힘이 된다고 말해주셨으면 해요. 결국..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더군요. 易地思之.. 처지-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 경지임을 역설한 신영복 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샘의 따뜻한 마음이 녀석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네요.. 아마도.. 이미! ^^

느티나무 2005-06-1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 사과님-음, 맞아요. 혼자서 속앓이를 하는 녀석들이 많지요.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한 녀석들을 보면 답답해요. 저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럴까 싶다가도 그 녀석의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지요. 휴=3=3=3
해콩님-대부분은 자신감이 있는데요, 한 번씩 실제로 아이들에게 다가갈 때를 보면 스스로 무지하게 약점이 많이 보여요.ㅎㅎ 따뜻한 사람이면 더 좋겠지요?
 

 

  동지들, 안녕하신가요?

  얼마 전에 우리의 길고도 지루한 소송이 끝나 증거물을 찾아가라는 연락을 법원에서 받았지요. 그래서 제가 법원에 가서 판결문을 구했습니다. 같이 보내는 판결문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짧게 요약하면, 1심에서는 우리의 고소 내용이 대부분 인정되어 벌금 300만원의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피선고인이 부당하다고 항소하였고, 항소심에서는 저작권 위반죄는 인정이 되나 1심의 형량이 너무 과하다고 판단되어 선고 유예를 판결하였습니다. 

  제 개인의 생각은 300만원도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싶지만, 판결은 판사가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겠지요. 다만 ‘변호사’라는 존재의 힘이 참 크게 느껴집니다.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나 우리들의 관심도 시들해졌고 판결의 결과도 이렇게 되고 말아서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일을 처음 시작했던 사람의 책임을 이제야 마무리 짓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이제는 모두 흩어져 서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식도 뜸하지만, 지금도 당신들은 내 청춘의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 했던 소중한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모두의 건승을 빕니다.


2005년 6월 16일


OO고등학교에서 느티나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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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6-1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일!이 그렇게 마무리 되었나보군요.. 더 자세한 이야기를 판결문과 함께 보고 싶네요.. 억울하시겠어요.. 명백한 저작권 위반, 아닌가?

아영엄마 2005-06-1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제가 요즘 서재 마실이 뜸해서 놓친 글이 있나 봐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마무리를 지으셨다니 다행입니다만 흡족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억울하실 듯..

느티나무 2005-06-1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께서 슬쩍 판결문을 보여드렸었죠? 억울이라~! 살면서 억울한 느낌은 거의 없어요. 그냥 자기 양심대로 사는 거죠. 그냥, 그래야 하는 것이니 그런 것일 뿐! 판결에서도 명백한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명시하고 있어요.
아영엄마님께서 놓치시는 글이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처음 올리는 겁니다. 뭐 덕분에 좋은 경험했어요. 재판정에 가서 증인 선서도 해 보고-떨리기는 커녕 머리가 아주 맑아지던데요.- 증언도 했지요. 판사는 저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더군요. 아, 또 경찰, 검찰 이런 곳에도 가서 참고인 조사도 받았습니다. 변호사도 만나 보았고, 합의를 하려고 시도도 해 봤지요. 생각하면 여러 사건이 있었네요. 그 상황엔 최선을 다 해서 억울한 건 없는데, 같이 소송을 제기한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좀 미안하네요.

아영엄마 2005-06-17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놓친 글이 없다니 어찌나 다행인지..^^;;-법으로 문제 해결하려면 절차도 복잡하고, 따지는 것도 많은 것 같네요. 최선을 다하셨으니 친구, 후배분들과 식사라도 함께 하시며 마음을 달래시길 바랍니다.(__)

느티나무 2005-06-19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식사라도 함께 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서 오히려 가뿐합니다. 늘 관심 가지고 지켜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나무를 심는 사람


쟝 지오노


  40년 전에 나는 프로방스 지방으로 뻗어내린 알프스 산지의, 여행자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고지대로 장거리 하이킹을 하였다. 프로방스 고지의 알프스 지역과 드롬의 남쪽 부분과 보끌뤼즈의 조그마한 분지를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나는 그 빈 땅에서 헐벗고 단조로운 황무지가 3, 4천 피트 높이까지 뻗어있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야생의 라벤다나무 말고는 아무것도 자라고 있지 않았다. 사흘 동안 걸은 후에 나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황량한 장소에 도달하였다.

  나는 버려진 마을의 폐허 옆에 천막을 치고 물을 찾으려 했다. 다 무너져 가고 있었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오래된 집들이 과거에는 샘이나 우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게 하였다. 사실 샘이 있기는 했지만 다 말라버렸다. 비바람에 지붕이 내려앉고 벽이 무너진 예닐 곱 채의 집과 종각이 무너진 작은 교회는 살아있는 마을의 집과 교회처럼 모여 앉아 있었지만 생명이라고는 그곳에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유월의 맑은 날이었고 해가 빛나고 있었지만 하늘을 가린 것이 없는 이 높은 황무지에는 바람이 차고 거칠었다. 바람은 껍질뿐인 버려진 집에서 먹이를 빼앗긴 짐승 같은 소리를 내었다.

  나는 그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다섯 시간을 더 걸은 후에도 물을 찾지 못했고 물을 발견할 희망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똑같은 메마르고 거친 관목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때 저 멀리에 검은 모습이 조그맣게 서 있는 것이 얼핏 보였다. 나는 그것이 홀로 서 있는 나무의 둥치라고 생각하고 별 목적도 없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것은 양치는 사람이었다. 서른 마리 가량의 양들이 그 사람 주위의 메마른 풀밭에 쉬고 있었다.

  그는 호리병박의 물을 한 모금 마시게 해주었고, 고원의 우묵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그의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는 깊은 자연우물에서 물을 길었는데-그 물은 정말 맛있었다.-우물 위에 조잡한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별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명백히 자립적이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헐벗고 황량한 장소에서 그를 만난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집은 오두막이 아니라 돌로 지은 조그만 가옥이었고, 그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발견한 폐가를 어떻게 고쳤는지를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지붕은 든든했고 비를 막아 주었다. 벽돌에 부딪치는 바람은 해변이 파도 같은 소리를 내었다.

  그의 집은 정갈하였다. 접시는 씻겨져 있었고 바닥은 쓰레질이 되어 있었으며 총에는 기름칠이 되어 있었다. 화덕에는 그의 저녁식사가 김을 내고 있었다. 나는 또 그가 면도한지 얼마 되지 않으며 옷은 어찌나 잘 수선되어 있던지 고친 것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이고 단추 하나도 떨어지거나 느슨하게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의 저녁을 나와 나누어 먹었고, 식사 후에 내가 담배를 권하자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인처럼 조용한 그의 개는 사람에게 아양을 떨지 않았고 순했다.

  다음 마을은 아직도 하루하고 반나절을 더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그 날 밤을 그의 집에서 보내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 날 저녁 늦게 그 양치는 사람은 작은 자루를 들고 와서 테이블 위에다 도토리 한 무더기를 쏟아내었다. 그는 조심스레 하나씩 조사를 해서 상한 것과 온전한 것을 가려내었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그것은 자기의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것이 모두였다. 성한 도토리를 상당히 큰 무더기가 되게 골랐을 때 그는 열 개씩 세어서 나누어 놓았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또 아주 작은 것이나 약간 금이 간 것들을 골라내었다. 그는 계속해서 도토리를 자세히 조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 개의 완전한 도토리를 골라내고 나서 그는 일을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은 아주 평화로웠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에게 그의 집에서 하루 쉬어도 되겠는지 물었다. 그는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도 아무것도 그를 성가시게 할 수는 없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사실은 정말로 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서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는 양떼를 내어놓고 풀을 뜯게 데리고 갔다. 집을 떠나기 전에 그는 그렇게나 조심스레 골랐던 도토리가 든 자루를 물통에 담갔다가 꺼내었다.

  그는 지팡이로서 남자의 엄지손가락 굵기에 4피트 가량 되는 쇠막대기를 가지고 갔다. 나는 슬슬 산책을 하는 사람 같은 태도로 그가 가는 길과 나란히 걸었다. 그의 양은 골짜기 아래에서 풀을 먹고 있었고 그는 양을 지키도록 개를 남겨두고 내가 서 있는 비탈을 올라왔다. 나는 그가 내 호기심을 나무래려나 하고 겁이 났지만 그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가 가는 길이 그쪽이었고 내가 달리 할 일이 없으면 자기와 같이 가자고 청했다. 그는 비탈의 꼭대기까지 2백 야드를 더 올라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는 쇠막대기로 땅에다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도토리를 하나 넣고 흙으로 덮었다. 그는 도토리나무를 심고 있었다. 나는 그 땅이 그의 땅이냐고 물었다. “아니오” 하고 그는 말했다. “땅 주인이 누군지 아는가?” “아니”, 그는 몰랐다. 그는 주인이 누군지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저 백 개의 도토리를 아주 조심스레 계속 심고 있을 뿐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그는 또 도토리를 골랐다. 내가 좀 꼬치꼬치 캐물었을 텐데도 그는 기꺼이 자세히 대답을 해주었다. 3년 동안 그는 이 외로운 곳에서 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는 도토리 10만개를 심었는데 이중에서 2만개가 뿌리를 내렸다. 그 2만 중에서 절반은 작은 동물이나 예측할 수 없는 일로 없어져 버릴 것으로 그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면 전에는 나무라고는 없던 곳에 만 그루의 도토리나무가 남아서 자랄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그 양치는 사람의 나이가 얼마인지 궁금해졌다. 쉰 다섯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이름은 엘지아 부피에였다. 그는 평지에 농장을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서 평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하나뿐이던 아들을 잃었고 그러고 나서 아내도 잃었다. 그는 물러나 외롭게 살아가기로 하였고 양들과 개를 데리고 조용히 사는 것이 좋았다. 그는 그 지역이 나무가 없어서 죽어가고 있다고 느꼈고 바삐 해야 할 다른 일도 없었으므로 무언가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앞으로 30년 후면 이 만 그루의 도토리나무가 굉장한 숲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그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30년 동안에 그가 굉장히 많은 나무를 더 심어서 지금 뿌리를 내린 만 그루의 나무는 바다에 물 한 방울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라고 소박하게 대답했다.

  그는 또 너도밤나무를 키우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집 가까이에 너도밤나무 열매로 싹을 틔우는 묘목장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어린 나무들은, 양들이 다치지 않도록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는데, 튼튼하고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다. 그는 또 골짜기 바닥에는 자작나무를 심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그의 말로는, 지표에서 1, 2피트만 내려가면 흙 속에 물이 있다고 했다.

  나는 다음날 그곳을 떠났다. 그 다음해가 1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고, 나는 5년 간 군복무를 하였다. 군인은 나무 생각을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사실 그 일은 나에게 그리 큰 인상을 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해로울 것 없는 취미 정도로 보았고 그것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나는 약간의 제대비도 받았고 순수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다른 아무런 생각 없이 나는 그 외로운 고지대를 향했다. 그곳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버려진 마을 너머로 더 높은 땅 위에 베일처럼 드리워진 일종의 회색 안개 같은 것이 멀리 보였다. 바로 전날부터 나의 생각은 나무를 심던 양치는 사람에게 행하고 있었다. 만 그루의 도토리나무는 정말 상당한 땅을 차지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5년 동안 나는 하도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엘지아 부피에가 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특히 스무 살의 젊은이는 쉰 살이 넘은 사람을 죽는 것밖에 남은 일이 없는 늙은이로 생각하였으니까. 그는 죽지 않았다. 그는 아주 정정했다. 그는 직업을 바꾸었다. 양은 네 마리밖에 없고 백통의 벌집을 가지고 있었다. 양들이 나무 심는 일에 위협이 되어서 양들을 없애버린 것이다. 나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는 전쟁이 있은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나무심기를 계속해 왔다.

  그가 1910년에 심은 도토리나무들은 이제 10년이 되었고 우리보다 키가 더 컸다. 그것은 놀라운 광경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도 거의 말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그의 숲 속을 말없이 거닐며 하루를 보냈다. 숲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었고 가장 넓은 지점은 폭이 11킬로미터나 되었다. 그 모든 것이 현대기술의 도움도 없이 그의 생각과 한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임을 생각할 때 나는 인간이 파괴가 아닌 문제에서는 하느님만큼이나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의 생각을 실천하였다. 눈길이 미치는 곳까지 뻗어있는 어깨높이의 자작나무가 그 증거였다. 도토리나무는 굵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고 이제는 작은 동물들에게 피해를 입을 염려가 없었다. 섭리라고 하더라도 큰 폭풍이나 불면 모를까 그 밖의 어떤 일로도 이제는 그 성취를 파괴할 수는 없었다. 그는 1915년, 내가 베르뒨에서 싸우고 있던 때에 심은 5년 된 건강한 자작나무 무리를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으로 그는 골짜기의 바닥을 덮어놓았는데 그곳에는 그가 옳게 짐작한 대로 거의 지표높이에 지하수면이 있었다. 그 나무들은 사춘기의 부드러움과 생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작업은 연쇄적인 영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것에 관심이 없었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일만 똑바로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마을로 가는 길을 다시 따라가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언제나 말라 있던 개울에 다시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씨앗을 흩어 놓았다. 개울이 다시 소생한 것처럼 버드나무, 갈대, 목초지, 정원과 꽃 그리고 어떤 삶의 방식이 다시 소생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아주 서서히 생겨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고 쉽게 적응했다. 토끼나 멧돼지를 쫓아서 고지대로 올라가 본 사냥꾼들은 어린 나무들이 새롭게 많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자연의 변덕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아무도 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그 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었으면 누군가가 그 일을 중단시켰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누가, 마을 사람이거나 관리이거나 간에 그러한 굳건한 헌신을 꿈이라도 꿀 수 있었겠는가?

  1920년 이후로 나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엘지아 부피에를 찾아갔다. 그가 자기의 노력에 대하여 주저하거나 의심을 보이는 것을 나는 한번도 본 일이 없다. 그러나 그에게 어떤 시련이 있었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내가 그의 실패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성공을 위해서는 그가 역경을 극복해야 했으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가 마음에 그렇게나 깊이 품은 일을 훌륭하게 성취하기 위해서 절망과 싸워야 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어느 한 해 동안에 그는 단풍나무 씨앗을 만개 이상 심었는데 그것이 모두 죽었다. 그 다음해에는 너도밤나무를 심었는데 그것은 도토리나무보다 더 성공적이었다.

  그의 예외적인 성품에 대해서 더 잘 알기 위해서 그가 오직 혼자서만 일을 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실제로 만년에 가까워서는 그는 말하는 습관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1933년에 삼림관리인이 놀라서 그를 찾아갔다. 이 관리 양반은 그에게 " 자생한 " 숲의 성장을 위협할 염려가 있으니 집 밖에서는 불을 피우지  말라고 경고를 하였다. 그 높은 분의 말로는 숲이 혼자서 자라난 일은 도대체 처음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 때 부피에는 자기 집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너도밤나무 열매를 심고 있었다. 왔다 갔다 하는 일을 덜기 위해서-그는 그때 일흔 다섯이었다-그는 나무를 심고 있는 곳에 돌로 오두막을 지을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해에 그 일을 했다.

  1935년에 진짜 정부 조사관들이 이 "자연의 숲"을 보러왔다. 삼림국의 "대단히 중요한 분"도 있었고 국회의원 한사람과 여러 명의 전문 기술자가 있었다. 별 내용은 없이 연설이 행해졌고 무슨 일인가 해야 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다행하게도 그 숲을 국가의 관리 하에 두기고 하고 숯 굽는 일을 금지하는 쓸모 있는 조처를 취한 것밖에는 아무 일도 행해지지 않았다. 그 건강한 젊은 나무들의 매력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것에 대하여 무감각하지 않았다.

  삼림전문가중의 한사람이 내 친구였는데, 나는 그 신비로운 일을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한 주일 뒤에 우리는 엘지아 부피에를 찾아갔다. 그는 조사관들이 찾아간 곳으로부터 20킬로미터 떨어진 데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이 삼림관리는 내 친구가 될 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일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었고, 언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선물로 가져온 달걀 여섯 개를 부피에에게 주었다. 우리 세 사람은 함께 걸어다녔고 몇 시간을 조용히 경치를 바라보며 보냈다.

  우리가 지나간 곳에는 18-20피트 높이의 나무로 된 숲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1913년에 헐벗은 황무지였던 그곳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던가를 회상했다. 조용하고 꾸준한 노동, 기운을 북돋우는 고지의 공기, 검소한 생활,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화가 그 노인에게 거의 완벽하다고 할 만한 건강을 주었다. 그는 천부의 원기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숲을 ‘그가 만들어낼까’하고 생각하였다.

  우리가 떠나기 전에 내 친구는 그 땅에서 아마도 잘 자랄 것 같은 수종에 대하여 간략한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내 친구는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가 나보다 더 많이 알기 때문에 "라고 친구는 말했다. 한 시간을 더 걸은 후에 그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지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사람은 그 일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어. 그는 행복해지는 멋진 방법을 발견한 거야."

  새로운 삼림지대와 부피에의 행복이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이 친구 덕분이었다. 세 명의 삼림감시인이 지명되었고 내 친구가 그들에게 아주 강력한 지시를 해두었기 때문에 그들은 숯 굽는 사람들의 뇌물과 아첨을 알은 체하지 않았다.

  그 일은 오직 제 2차 세계대전 동안에만 위협을 받았다. 차량은 그 당시 가솔린으로 운행하였고 나무가 부족했다. 1910년에 심은 도토리나무들에서부터 벌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숲이 길에서부터 너무나 멀어서 그 일은 수지가 맞지 않아 중단되었다. 그 양치는 사람은 그 일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는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자기 일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에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서.

  나는 그를 1945년 6월에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때 그는 여든 일곱 살이었다, 나는 벌거벗은 황무지였건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이제는 전쟁이 남긴 상처에도 불구하고 듀란스 계곡에서 언덕들 위로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나는 전보다 빠른 속도로 여행을 하고 있으므로 전에 걸어서 지나다녔던 곳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버스가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을의 이름을 듣고서야 한 때 황량했고 폐허였던 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베르뇽에서 버스를 내렸다. 1913년에 열 두 채 정도의 집이 있던 이 촌락에는 사람이라고는 세 명이 살고 있었다. 주위의 버려진 집들에는 가시덤불이 자라고 있었다. 주민들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그들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공기마저도 달라졌다. 건조하고 휘몰아치던 바람은 향기를 실은 부드러운 미풍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다의 웅얼거림 같은 소리가 산비탈로부터 들려왔다. 그것은 나무들 사이를 부는 바람소리였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제대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은 것이다, 새로운 샘이 있었는데 인색하게 쫄쫄 흐르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게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또, 나에게 가장 감동적인 것은 가까이에 보리수가 한 그루 심겨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이미 한 4년 간 튼튼하게 자란 것이었으며, 부정할 수 없는 재생의 상징이었다.

  베르뇽 마을은 희망의 분위기가 없었더라면 시작될 수 없었을 새로운 노력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희망이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폐허는 정리되고 무너진 담은 치워졌고 회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다섯 채의 새 집이 있었다. 그 집들마다 뜰이 있었고 그곳에는 뒤섞여 있긴 해도 질서 있게 꽃과 채소들, 장미와 양배추, 금어초와 부추, 아네모네와 샐러리 등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곳은 이제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서부터 나는 계속해서 걸어갔다. 막 끝난 전쟁이 새로운 생명이 활짝 피어나는 것을 막고 있었지만 그러나 생명은 도처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다. 낮은 경사지에는 보리와 호밀을 심은 밭이 아직 푸른 채 있었고 좁은 골짜기에는 신선한 초록색 풀밭이 있었다.

  그 후 겨우 8년이 지난 지금 그 지역 전체가 풍요롭게 번성하고 있다. 폐허가 있던 곳에는 이제 잘 가꾸어진 농장이 있어 만족스러운 안락한 생활의 증거가 되고 있다. 오래된 샘들은 비와 나무들이 머금고 있던 눈 녹은 물로 다시 흐르고 있고 개울은 쓸모가 있도록 만들어진 수로로 흐르고 있다. 농가 옆에는 단풍나무 숲 속에 샘이 솟아 신선한 박하풀이 양탄자처럼 자라고 있는 곳으로 흘러들고 있다. 마을은 점차로 다시 건설되었다. 땅이 비싼 평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젊음과 활동과 모험의 정신을 가져왔다. 오솔길에서는 건강한 남녀들을 만날 수 있고 시골 잔칫날의 즐거움을 다시 발견한 아이들의 쾌활한 얼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이 훨씬 더 편해졌으므로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달라진 그전의 주민들과 새로 온 사람들을 합쳐서 일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엘지아 부피에 덕분에 행복을 누리고 있다.

  한 사람이 혼자서 오직 자기 자신의 육체와 정성에 의해서 황무지를 평화와 풍요의 땅으로 꽃피울 수 있었음을 생각할 때 나는 인간의 성품이 찬양할 만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에 이르는 대 필요했던 꾸준하고 너그러운 정신과 헌신을 생각하면 나는 하느님이 이루실 만한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 이 글자도 모르는 시골사람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 차게 된다.

  엘지아 부피에는 1947년에 바농에 있는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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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5-06-16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한 사람의 불굴의 의지가 세상을 변화시키다???

해콩 2005-06-1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이 원문 어디서 구하셨어요? 감사히 퍼갑니다. ^^

느티나무 2005-06-16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활용해 주시면 저야 고맙지요..

비로그인 2005-06-16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감사히 퍼가겠습니다!

느티나무 2005-06-16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께서 역시 고맙다는 인사를~! ㅋ 잘 계신가요?
 

* 모두 10권이다. 이번에도 역시 별다른 기준 없이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거나이다. 단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알라딘 고객 평점이 낮은 책은 망설여진다는 것이고, 알라딘에서 고객 평점이 높으면 덜컥 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 한 동안 배부르겠다.

* 1984 -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광기와 우연의 역사 ,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네오북)

* 만월 - 창비시선 10, 이시영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바람의 그림자 1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바람의 그림자 2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오만과 편견 -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전승희 옮김 / 민음사

* 은빛 호각 - 창비시선 230, 이시영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Alice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원작, 마틴 가드너 주석, 존 테니엘 그림, 최인자 옮김 / 북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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