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밖에는 비가 장맛비답게 후두둑 쏟아집니다. 시험 기간이라 모두 퇴근한 날 오후, ‘비도 오는데,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오늘 모인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서야 글을 썼습니다. 언제 쓰나 앞뒤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6월 우리 반은……
느티나무
아, 유월! 이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요? 지금 되돌아 본 한 달이라는 시간이 정말 까마득하게만 느껴집니다. 뭐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답답함과 막막함이 지난 한 달 동안 저를 무척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새롭게 제 마음의 밭을 갈아주고 있는 듯 합니다. 조금은 게으르고, 자신감에 차 있고, 뭔가 길이 보인다고 느낌이 들었던 제 마음이 다시 살얼음을 디딜 때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녀석들이 일깨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지혜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야자’와의 전쟁
먼저, 유월의 우리 반은 야자와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라도 더 붙들어 앉히려고 하는 저와 어떻게든 학교를 벗어나려고 하는 우리 반 아이들과의 ‘전쟁’말이지요. 처음에는 부모님의 허락을 핑계로 당당하게 집에 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저는 그게 ‘옳은 말이다’ 싶어서 보내주었는데, 그렇게 집에 가는 녀석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면서 그 다음엔 학원 보충을 들어야 한다는 녀석들이 잇따랐고, 집이 더 공부가 잘 된다거나 몸이 아파서 쉬고 싶다며 찾아오는 녀석들도 늘었습니다. 저는 그 녀석들과의 신경전 때문에 매일 저녁 마다 한바탕 전쟁을 해야 합니다.
고백하건데, 더 큰 문제는 담임인 저는 도무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어쩔 때는 정규수업이 끝난 시간인데 집에 가겠다고 요구하는데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하루 저녁에 마흔 두 명 중에서 서른 명이나 되는 녀석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갖가지 사연으로 집에 보내달라고 요청할 때 ‘이러다 내가 이 녀석들의 인생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하소연도, 잔소리도, 위협도 해 보지만 전혀 먹히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는 야자를 빠지려면 조퇴증(?)을 끊어야 하는데, 며칠 전에는 하루에 30장까지 끊어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너 장이던 것이 서른 장으로까지 불어난 것이지요.]
저는 왜 아이들이 집에 가는 것을 막으려고 할까요? 교실에 잡아두고 있으면 학생들은 더 공부할까요? 실제로 모든 학생들이 교실에 앉아 있어 봐야 제대로 공부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죠. 그래도 제가 잔소리를 그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포기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두 번째는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학생(부모)들에게 원망을 듣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이 상황은-그것이 옳든 그르든- 우리 교육 현실의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목표가 대학 진학이라고 모두들 굳게 믿고 있는 현실에서 교사는 학교 밖을 벗어나려는 아이들이 불안하게 보일 수밖에 없고, 아이들은 공부 외에 대안이 없는 현실에서 순응과 저항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학교와 학년에서는 심각한 간섭이 없지만, 그런 경우도 생긴다면 그것 역시도 무시하지 못할 변수가 되겠지요? 이럴 때 담임은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까요? [제가 집에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던지라 집에서 공부하는 게 더 잘 된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6월 우리 반은…
야자 전쟁 이야기를 빼고 나면 무슨 일이 기억에 남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날적이’는 쓰고 개별 상담을 마무리 지은 것에 큰 위안을 얻어야 할까요?
6월 4일, 토요일에는 학급에서 비빔밥 만들기를 했습니다. 일반계 학교라 평일에는 전혀 시간이 나지 않고, 기껏 토요일 점심 하루 밖에 없는데, 그 시간을 온전히 쓰기도 빠듯했습니다. 툴툴대면서도 대부분이 준비를 잘 해 와서 저는 흐뭇했지만, 막상 펼쳐놓고 보니 너무 먹는 데 집중해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한 번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고, 이것도 꾸준히 해 본다면 비빔밥을 앞에 두고도 잠깐이나마 여유를 찾을 수도 있을 테지요? 무엇보다도 같이 어울리고 함께 한다는 것이 ‘일상(日常)’적인 일로 느끼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앞으로 우리 반은?
지금까지 해 온 일을 꾸준하게 해서 1학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날적이’도 지금껏 해 온 대로 계속 써 나갈 것이고, 개별상담도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날적이’는 서로의 생각을 얻어갈 수 있는 보물단지입니다. 이 ‘날적이’가 없었다면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욱 더 모르지 않았을까요?
개별 상담이랍시고 매일 점심시간에 하던 이야기를 6월 중순에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것을 끝내고 나니 속이 참 가벼워졌습니다. 점심시간도 한결 여유로워지긴 했는데 그 한편으로 아쉬움도 남습니다. 다시 시작해야겠지요? 이어지는 기말고사 때문에 아직 두 번째 상담은 시작하지 못 했지만, 서로에게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조금 더 힘을 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런 말을 꼭 해 둡니다. 우린 매일 얼굴을 보면서 살고 가끔 이야기도 하지만, 선생인 나에게 진짜 네 이야기를 할 기회는 기껏 두 세 번이다. 어쩌면 올해 1년 동안에만 두 세 번의 기회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게 고등학교 생활 내내 일수도 있다. 그러니 너도 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꼭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기말고사를 끝으로 조금 더 여유 있는 학급운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차례 예고한 대로 ‘수박먹기대회’가 열릴 예정인데, 학급운영비로 수박을 사려니 절차가 좀 복잡하네요. ‘수박먹기대회’야 이미 검증된 행사고 저도 서너 번의 진행 경험이 있으니 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학급운영비로 학급활동이나 학급비품 구입해 보신 분 좋은 경험을 이야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학기말에 앞서서 학부모 가정통신문을 보내려고 합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관심이 많으나 여전히 정보를 얻을 곳과 정보의 양은 부족합니다. 학기말 성적표와 함께 지금껏 써 둔 이 글을 바탕으로 학기말 가정통신문을 보내서 학부모들에게 학급 활동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조금만 더 마음을 썼더라면 가정통신문을 자주 보내고, ‘개별적으로 만나자는 전화도 덜 받게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에서야 듭니다. 그러고 보면 몰라서 못하는 것 보다는 알면서도 안 하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학급야영은 학기 초부터 하려고 했으니 날짜를 잡으면 되는데, 그 날짜를 잡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첫 번째로 떠오른 날짜는 7월 15-16일이었는데, 그래도 방학 하는 날인데 학교에 있자고 하려니까 아이들이 얼마나 호응을 할는지 잘 모르겠고, 다음으로는 보충수업이 끝나는 8월 6-7일도 괜찮을 듯한데, 너무 더운데다가 그 때까지 미루면 정말 야영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선생님들께서 학급야영을 준비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