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2001년부터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의 지은이처럼 오로지 걷기만 하는 도보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01년에는 부산에서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2002년에는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2003년에는 제주도 해안도로 일주, 2005년에는 목포에서 태안까지 다녔지요. 걸어서 여행한 거리를 정확하게 재보지는 않았지만, 어림잡아 1,500km는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때마다 여행일기를 꼬박꼬박 쓰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메일로 보내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이 나서 컴퓨터를 뒤적여 보니, 다 있을 줄 알았던 2005년 여행기는 아예 남아 있지도 않고, 2003년 일기도 한 편 밖에 안 남아 있습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알라딘에 다 옮겨 두는 건데, 어디 가서 잃어버린 내 글을 찾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여기 부끄럽지만 제가 걸어 다니면서 썼던 여행기를 맛보기로 옮깁니다. 혹, 이 글을 읽고 도보 여행에 약간의 흥미가 생기는 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 혹시 제 글을 읽고 오히려 흥미가 떨어진 분들도 이 책은 제 글보다 100배나 생각이 깊고 잘 쓴 글이기에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사실, 저도 알라딘 대표님의 마이리스트 보고 고른 책이거든요. 좋았어요.) 

   이 책은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걸은 한 남자의 여행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년 동안 이어진 이 여행을 세 권의 책으로 정리했고, 그 중 제 1권은 아나톨리아 횡단을 하면서 겪은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곧 떠나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시는 분이나,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라는 말이 읽으시는 분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켜 도보 여행은 어떨까?하고 한 번쯤 떠올리는 분들이 읽으시면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2001년 8월 6일 : 부산에서 해남까지 남도횡단 5일째


  오늘은 평소대로 일어나 바로 문산가는 버스를 탔습니다.[이 때는 문산까지 걷고 숙소를 구하기 위해 진주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서 진주에서 잤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다시 문산으로 되돌아가는 버스를 탄 것이지요.] 문산 터미널 근처의 슈퍼에서 빵과 우유를 하나씩 사 먹고, 진주 시내를 향하여 걸었습니다. 문산읍에서 진주로 넘어오는 국도는 위험해도 무척 예쁜 길이었습니다. 시내 변두리에는 금방 도착했으나 중심지까지 가는 길도 무척 멀어서 둘이서 많이 지쳤습니다. 은행에 앉아서 한 번 쉬고는 계속 걸었구요. 가다가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기에 아예 깃발을 마련하자고 의기투합해서 진짜로 현수막 공장에 들어가서 "부산에서 해남까지" 플랜카드를 만들어 달라고도 했답니다. 아쉽게도 그 집은 실제로 제작은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발로 끝났지만… 진주 남강을 끼고 돌아서 망경동으로 빠져 나와 경전선(慶全線)을 나란히 하며 하동 방면으로 걸었습니다. 중간에 식당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는데, 한 사람당 500원씩 깎아 주셨습니다.

  12시 반부터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저는 계속 잤습니다. (동행자는 뭘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림도 그리고, 책도 보고, 엽서도 쓰고 하는 것 같았는데….) 3시쯤에 일어나 다시 강행군을 했습니다. 3시 좀 넘어서 걷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며, 비가 엄청나게 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마음 졸아서 계속 걸었습니다.

  근데 아무리아무리 걸어도 마을이 안 나오는 겁니다. 한 3시간을 걸어도 마을다운 마을이 안 나오고, 찻길은 넓어져서 차들은 쌩쌩 달리는데, 마을이 있어도 구멍가게 하나 없는 마을도 많더라구요. 3시간을 넘게 걸어서 도착한 마을이 완사(浣紗). 그곳에서 자고 가기로 마음먹고, 보건소, 복지회관, 초등학교…. 부탁할 만한 곳을 다 돌아다녀도 허탕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더 가기로 마음을 먹고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근데 마을을 둘러보니 좀 이상하더군요. 여느 시골 마을과는 다르게 건물들이 모두 양옥집이고, 지어진 시기도 비슷하게 보이고, 문패도 모두 똑같습니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서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이 마을이 진양호가 만들어지면서 생긴 수몰주민들의 집단 이주지역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는 이 마을은 "꿈꾸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녁도 공짜로 먹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그냥 주시더군요. 우리는 작은 돈이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막무가내로 받지 않으셔서 그냥 주소만 적어왔습니다. 부산가면 엽서 한 장 써야지요.

  아,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렀다가 뜻하지 않게 그 동네 아이들의 환영을 무지 받았습니다. 어찌나 OOO샘을 좋아하던지요. 덕분에 OOO샘의 발차기 시범, 마술쇼, 달리기 등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 먹고, 교회 담을 타고 널린 포도를 따먹으며 걸었습니다. 한 '1시간 정도 가겠지'하며 나섰는데, 실제로 한 시간쯤 지나니까 마음이 좀 급해집디다. 날은 완전히 어둡고, 잠자리는 아직 마련하지 못했고. 겨우, 사천시 곤양면이라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파출소부터 들어가서 단도직입적으로 "하룻밤 재워 주세요."라는 말씀드리니 돌아오는 건 어이없어 하는 웃음. 숙박은 곤란하다는 말에 난감해하는 우리들에게 가장 가까운 숙소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하시자, 냉큼 나와서 차를 얻어 타고 가까운 읍으로 나왔습니다. (여기는 아마도 곤양읍쯤) 별루인 여관이었지만 차들이 많아서 비싸지 않을까 순간, 졸았는데, 아주머니가 25000원 부르시기에 20000원에 하자고 말씀드리니 선선히 승낙하시네요. (에이, 15000원이라고 하는 건데...^*.*^)

  씻고, 빨래하고, 뭘 할까 하다가 3일 전부터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동네 한 바퀴 둘러보자고 나왔다가 피시방으로 들어왔습니다. 한 30분 정도 되었는데, 전 글을 다 썼으니 먼저 가서 자야지요.


  내일은 일단 하동까지 갈 예정입니다. 하동까지는 한 30킬로미터 정도거든요. 부지런히 걸으면 도착하겠죠. 그리고 여기 '도솔사'가 근처에 있어서 잠깐 들를 겁니다. 아침에 잠깐. 다음날은 벌교까지 가구요. 다음날은 보성으로 갈 생각입니다.


  오늘 길가에 가장 흔하게 널린 게 잡초였습니다. ‘잡초는 왜 이름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길가에 숱하게 널려 우리에게 이름을 얻지 못한 잡초와 우리가 흔히 알고 있고 예뻐하는 꽃들이 차이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는 온전한 한 생명으로서 잡초와 꽃에게 제 몫의 삶을 주셨겠지요? 잡초의 생명도 예쁜 꽃의 삶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아시고 계신 생각을 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의 삶도(특히, 우리학교 학생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잡초처럼 쓸모 없을 지라도 다 그 나름대로 소중한 가치가 있고, 충분히 제 몫을 해나가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자기 몫의 삶이 있는 것이고, 자기 몫은 다른 사람과는 경중(輕重)을 가리는 게 아니라 자기 몫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 것과 스스로가 자기 몫의 삶의 살도록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랑 그렇게 많이 싸웠던(?) OO이가 새벽에 술 먹다가 문자로 "샘,뭐 하는데요?"라고 묻고, 제가 "걸어서 여행 다니는데, 힘들어 죽겠다"고 하자, "샘, 화이팅"이라는 메세지를 보내오는 걸 보면서 나름대로는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그래도 의미 없이 흘러가 버린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술 마시다가도 누군가가 생각나서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면 적어도 사람에 대해서 실망한 사람은 아니니 크게 나쁜 사람으로 크지는 않겠지요. 제 자랑이 과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걷고 힘내서 가겠습니다. 이번 여행은 제가 얼마나 열심히 가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 같습니다. 저만 힘들어하고 OOO샘은 무척 잘 걸어가네요. 저는 아무데서나 퍼질러 자고, 일어나지도 않고, 게으름도 많이 부리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계속 꾀만 부리려고 하네요. 내일부터는 아프더라도 좀 열심히 가 보렵니다.

그럼 늦은 밤! 편안히 주무십시오.


경남 사천시 곤양에서. 느티나무 드립니다.



2002년 8월 11일 :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길 위에서 보내는 편지9


 잡초의 힘


  안동시내 한 복판의 여관에서 잠이 깨자 창밖부터 봅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아니, 아직은- 비가 오지 않습니다. 서둘러서 짐을 꾸려 아직 잠이 덜 깬 안동 시내를 걸어 나옵니다. 여전히 아침은 빵과 우유입니다.

  오늘 걷기로 한 길은 안동에서 북쪽으로 난 35번 국도를 따라 도산서원까지입니다. 오늘은 아마도 거대한 안동호가 우리와 함께 걸을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안동호는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로 숨을 고르고 있겠지요. 징그러울 수도 있고, 안쓰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 게걸스러움에 돌을 던질까요? 그 넉넉함에 푸근히 잠길까요?

안동 시내를 벗어나 서원으로 가는 길 입구는 참 예쁘게 나 있습니다. 안동 북쪽은 전형적인 시골길입니다. 예쁜 길 주변으로는 엄청난 비에도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벼와 포도, 호박, 고추, 수박들이 보입니다. 다들 이제는 비가 그만 와도 괜찮다는 표정들입니다.

  단조롭고, 긴장감이 별로 들지 않는 길을 걸으니 무엇이든 자세하게 보려는 버릇이 생기는 가 봅니다. 주의할 게 적은 길에서는 마음도 풀어져서 한눈도 팔게 되고, 콧노래도 부르고, 도로 주변을 왔다 갔다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은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시선이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점점 눈은 아스팔트 주변으로 고정되고,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이야~! 정말 대단하다!  그곳에는 잡초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습니다. 조금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서 말입니다. 땅을 숨 막히게 덮고 있는 아스팔트 위로 올라와서는 참았던 숨을 내쉬듯 싱싱하게 잡초들이 자랍니다.

  아스팔트를 뚫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잡초뿐인가 봅니다.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다른 것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아스팔트를 뚫은 잡초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요? 정말 그 힘이 대단함과 신기함을 넘어 두려운 생각까지도 들게 합니다. 사실, 잡초는 제가 보는 풍경의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식물의 대부분이 이름을 얻지 못한 잡초들입니다. 우리는 포도, 사과, 고추, 호박, 수박을 보고는 감탄하지만, 흔하디흔한 잡초에게 눈길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잡초를 보며 '우리 모두'의 삶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냥 이름을 얻지 못한 채 열심히 제 몫을 하며 사는 것! 누군가가 알아주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자존감으로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서는 것! 잘난 사람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세상의 허한 구석을 채워야 할 운명 같은 것!(도무지 잡초를 빼고 생각하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제가 좀 억지를 많이 부리나요? 히!)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중간 중간에 일하시는 분들께 이것저것 여쭙습니다. 일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이 분들의 말씀마다 수줍은 듯이 ‘했니껴’로 끝나는 이 지역 말투가 너무도 순박하고,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으며 가야할 길을 잊은 것처럼 마냥 퍼질러 앉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 점심은 아주 특별합니다. 옛날에 살던 마을이 안동호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되어 집단으로 이사 온 마을에 들릅니다. 우연히 들른 식당이  나그네식당 이랍니다. 이 식당에 들고 보니 하나하나가 다 신기합니다. 허름한 간판하며, 가격표하며, 해 주시는 음식하며…. 이렇게도 장사를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지역에서는 메밀묵을 '메물묵'이라고 하신 답니다. 그리고 노란색 조가 많이 섞인 밥을 내 주시면서 묵밥을 만들어 주십니다. 덤으로 할머니의 구수한 말씀이 곁들여져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점심을 먹습니다.

  도산서원은 그냥 지나칩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요. 한참을 더 북쪽으로 가니 토계면에 숙소를 정하기로 하고, 면사무소에 들러 쉬면서 잠 잘 곳을 여쭈니 이 마을엔 없다고 합니다. 좀 전에 일하시는 아주머니께 여쭈었을 땐 분명히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다시 안동까지 돌아가서 자야할 것 같아서 난감합니다. 그래서 서둘러서 마을로 내려가다 보니, 바로 앞에 숙소가 보입니다. 황당해서 헛웃음만 나옵니다.

  바로 숙소에서 짐을 풀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왜냐면 내일 걸어야 할 거리가 만만찮은 까닭에 오늘 조금이라도 더 걸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6km를 더 걸어서 갔다가 옵니다.

  이곳은 떠나와서 처음으로 pc방이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입니다. 오는 길 내내 그 흔한 '여관' 하나 없는 그런 곳입니다. (요즘 국도를 가시다가 큰집을 짓고 있으면 십중팔구는 '러브호텔'이더군요.)

  저번 편지에 안동의 힘! 말씀을 드렸지요? 안동의 힘은 곳곳에 자리 잡은 고택이나 문화재가 아니라 아직은 저질 소비문화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선 논과 밭에서-아직은 러브호텔로 변하지 않은 논과 밭에서, 그리고 그 밭에서 정직하게 땀 흘리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봅니다.

  바로 그것이 잡초의 힘이겠지요. 안동의 힘이기도 하구요.


  밤하늘에 별이 총총한 그 날이 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늘 함께 해 주시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2002년 8월 11일 경북 안동시 토계면에서 느티나무 올림.



2003년 8월 14일 : 제주도 해안도로 일주


  어제 밤에는 무척 운 좋게, 깔끔하고 편한 숙소를 구했습니다. 어줍지 않은 글이나마 써 놓고 숙소를 잡았으니 무척 여유도 있었습니다. 느긋하게 내일 일정을 정하고 일출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잠도 일찍 잤습니다. 

  이른 새벽 저도 모르게 잠을 깨고 창밖을 내다보니 날이 잔뜩 흐립니다. 이것으로 성산봉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어제 잡은 일정은 어그러진 셈입니다. 그래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들었답니다. 한참 후에 깨어보니 어느덧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침에 잠을 깨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늦어지는 걸 보니 이젠 몸이 제법 피곤한 가 봅니다.

  여전히 빵과 우유로 늦은 아침을 먹습니다. 가방을 챙겨들고 느릿느릿 성산봉 아랫동네를 돌아 성산항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햇살이 따갑습니다. 오늘도 날이 푹푹 찌려나 봅니다. 성상항에서 우도로 가는 배를 타고 우도를 둘러보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로로 들어가는 배에서 보니 일출봉의 모습이 마치 코뿔소가 바닷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숙인 모습입니다. 먼저 소머리 오름에 올라서 제주도의 모습을 보니, 어느새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데, 한라산이 수많은 오름들을 품에서 벌려놓은 듯한 모습이 장관입니다. 소머리 오름에서 바라본 바다는 막힘이 없어 보는 이의 눈맛이 시원합니다. 오름의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사진은 찍습니다.

  이후에 그 옛날 고래가 살았다는 동안경굴을 지나 고운 산호모래로 유명한 서빈백사를 둘러봤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우도의 모습은 때가 덜 묻은 순박한 마을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제주도가 원래 모습이 이랬지 싶은 생각이 들어, 뱃길로 15분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 세월의 시간 차이를 느꼈습니다.

  성산읍으로 나오는 배에서는 그냥 드러누워 또 일정을 잡습니다. 배는 야속하게도 금방 닿고 저는 점심을 먹고 움직이려고 어슬렁거렸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이리저리 머뭇거리다가 번잡한 거리를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다시 해는 구름 속에서 나왔고, 곧 이어 땀이 쏟아집니다. 그나마 오른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다 바람 덕에 쓰러지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는가 봅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조개잡이 체험장에 들렀는데, 저는 물집 잡힌 발이 걱정이 되어 사람들이 조개 잡는 모습만 구경하다 빠져나왔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동작이 굼뜨는 것 같아 걱정이 슬그머니 들어 이제부터는 발걸음을 좀 빨리 놀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빵빵! 하는 차 소리. 누가 길을 물어보나 싶어 의아해하고 있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선생님”하고 부릅니다. OOO선생님께서 여행하시다가 알아보시고 내리셨더라구요. 일행들 때문에 시원한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금방 헤어졌지만, 이런 곳에서도 반가운 사람을 만난 기쁨으로 또 얼마 동안은 힘내서 갈 수 있을 듯 합니다.

  점심을 제대로 먹기 위해 찾으려니 또 제법 큰 마을이 안 나타나네요. 오후 4시쯤에야 겨우 구좌읍내에 닿았습니다. 일단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학교가 개학을 했는지 하얀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로 좁은 읍내가 무척 활기찹니다. 학생들이 예뻐서 몇 마디 말도 붙여 보았는데, 답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경쾌한지…….

  점심을 먹고 내일 돌아갈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은 아무리 걸어도 더 큰 마을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숙소를 구하려고 했답니다. 발에 물집이 더 심해지고 발목이 시큰거려서요. 하루만 푹 쉬면 좋겠는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 그럴 수도 없고 걸음은 더 걷기 힘들고…… 그러나 지금 숙소를 잡으면 방값이 조금 비싸거든요. 얼마 전에 만난 제주도의 OOO선생님의 추천대로 근처에 있는 ‘다랑쉬오름’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가방은 마을 끝 빵집에 맡겨두고 가볍게 몸만 움직이기로 했지요.

  저 멀리 비자림(榧子林)들 돌아서 다랑쉬오름에 오르려고 하는데 구름이 잔뜩 끼었던 날이 더욱 흐려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변했습니다. 다랑쉬오름의 입구를 못 찾아서 여러 번 헤매고 있었으나, 사람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어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앞은 점점 더 안 보이고……. 겨우 찾은 입구는 철망으로 막혀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되지만 철망의 개구멍을 찾아서 그냥 오르기로 하고 가파른 길을 꾸역꾸역 올라갔습니다. 암팡진 막사발을 엎어 놓은 듯 한 다랑쉬오름의 오르막길을 오르며 얼마나 쉬었는지 모릅니다.

 다랑쉬오름은 이번 제주도 도보여행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다랑쉬오름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의 가장 극적인 한 순간이 아닐까요? 특히, 제주 사람이라면 그 슬픔을 말로 풀지 못했을 뿐이었구요. 가슴에 켜켜이 쌓여있는 한의 상징일테지요. 궂은 날씨에 저 혼자여서 더욱 마음이 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좀 으스스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다랑쉬오름에 올라야, 제주도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관광지만 따라다녀서는 제주도의 한 쪽만 보게 되는 것이지요.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곳을 떠나도 쉽게 잊히지 않을 풍경을 담았습니다. 이제는 이곳을 떠나려고 합니다. 도착해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 말씀드리지 않아도 늘 고마워하고 있는 거, 아시겠지요?


홀로 잠드는 제주도의 푸른 밤, 느티나무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07-03-04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걷는 거 참 좋아하는 편인데... 요즘은 영 게을러지네요. 느티나무님도 복이 덕에 좀 쉬시다 보면 배가 나오지 않을까요? ㅎㅎㅎ

드팀전 2007-03-0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서울 시내는 무척 많이 걸어다녔지만..^^ 아들 크면 한번 해볼까요.같이가요.^^

느티나무 2007-03-0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예전엔 진짜 빼빼했는데, 결혼하면 살 찐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이젠 제 몸 가누기도 쉽지 않네요. 그래도 도보여행을 꿈꾸는 건... 왜 그럴까요?
드팀전님, 아드님 크면 같이 해 봅시다, 정말이요^^

느티나무 2007-03-06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저러나 책의 평가가 좀 박한 느낌이다. 4 1/2는 없을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