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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말고 꽃을 보라 - 정호승의 인생 동화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해냄 / 2011년 8월
평점 :
정호승 시인의 동화들을 묶은 책이다. 동화라고는 하지만 아이들보다는 성인이 읽으면 더 좋을 그런 동화들이다. (어린이들이 읽어서 안 될 것은 없다. 그런데 글이 가진 참 의미와 이야기 속에 숨겨진 '진짜 할 말'을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에 그윽한 향이 있고 울림이 있는 동화들이다. 이 책은 <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 드립니다(해냄, 1998)>,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해냄, 2004)>,<스무 살을 위한 사랑의 동화(해냄, 2003)>등을 다시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란다.
이야기 사이 간혹 볼 수 있는 박항률 화백의 그림들도 참 포근했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은 모닥불(2008, 열림원)의 표지 그림과 같은데 여인은 새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여인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듯한 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의 글들 역시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부터 나온 이야기들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동물, 식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5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장 '기다림 없는 사랑은 없다', 2장 '뼈저린 후회', 3장 '수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4장 '완벽하면 무너진다', 5장 '겨울의 의미'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들의 제목은 거기에 딸린 작은 동화들의 제목 중 하나씩을 따와 붙인 것이다. 가수의 앨범으로 이해하자면 타이틀곡 정도가 될 것 같다. 교훈이 있고 감동이 있고 사랑이 있고 애잔함이 있다. 이 책은 들고 다니며 읽기에 참 좋을 것 같다. 긴 글을 읽기 힘들 때 한 편씩 읽다 보면 어제보다 예쁘고 정직한 하루를 살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더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동화가 몇 편 있었는데 '고슴도치의 첫사랑'은 참 슬펐다. 그 절절한 사랑이 짧은 동화에 진득하게 배어 있었다. '조화와 생화의 대화'는 진정한 아름다움과 세상에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했다. 그리고 이런 동화들에서 볼 수 있는 관찰력과 사물에 대한 진지한 시선들(통찰력)이 작가의 애정과 함께 글로 지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글이 지어진 것은 정호승 시인의 시인다운 면모가 충분히 녹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지.
글들이 그리 길지 않아 읽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글의 향기를 맡고 글을 맛보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한 편, 한 편을 읽어나가며 잠시 책을 덮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유독 길었던 책이다. 아침에는 햇살의 찬란함이, 밤에는 어둠의 적막함이, 낮에는 밝음의 진실함이 같은 이야기의 맛을 다르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같은 맛이 났는데 그 맛은 담백함이었다. 맵고 짜지 않은 자극적이지 않은 이야기들. 그 누구의 입맛에든 잘 맞을 맛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소리 내어 읽기가 참 좋았는데 이야기가 길지 않아 쉬이 읽을 수 있다. 눈으로만 읽는 것과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은 너무 다른데 이 책은 소리를 내어 읽을 수록 더욱 깊이 와 닿았다. 시인의 지혜와 고운 심상이 모두 내 것이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왜 표제가 '울지 말고 끛을 보라'일까? 나는 여기서 말하는 꽃은 표면적인 의미의 꽃을 말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꽃은 자연을 대표하는 단어로 쓰인 게 아닐까 싶다. '낙담하고 절망하고 힘들어 눈물을 쏟게 되더라도 주변의 자연들과 그 속의 동물들과 식물들을 보면 어느새 마음을 털어버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누군가의 따스한 한 마디의 위로보다 해 질 녘 노을이 위안이 되고 들에 핀 작은 꽃에 미소 짓게 하듯 말이다. 이 글들 한 편, 한 편의 작은 속삭임에 괜히 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고 다시 읽어도 좋을 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