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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권혁준 옮김 / 해냄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제바스티안 피체크는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작가다. 그의 신간<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해냄, 2011)>를 읽고 이 책도 찾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는 결심했다.(무슨 결심까지. 하지만 나는 아무에게나 마음주지 않는 여자랍니다. 호호.) 이 작가의 팬이 되기로! 부라보! 그런데 뭐냐? <파편(리더스맵, 2010)>이란 책이 국내 출간된 것이 또 있다. 그런 줄 알았다면 이 책이랑 같이 주문했을 텐데. 어찌 되었건 나는 그 책도 사놓았다. 어서 읽어야지.
이 책을 읽고 확실히 이 작가의 스타일을 알 것 같다. 정말 흡인력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어쩜 이렇게 눈을 뗄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인지. 그런데 <테라피>는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보다 무서웠다. 딱히 공포소설은 아닌데 음산한 분위기 때문인지 밤에 읽기는 좀. 읽은 책이 이 두 권이라 자꾸 이 두 권을 비교하게 되는데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가 스릴러라면 <테라피>는 확실히 공포다. 그런데 너무 재밌다.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유희로서의 책의 의미가 굉장히 크다. 그리고 이야기는 무조건 재미있고 봐야 한다고 믿는 독자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충실했다.
그런데 이 책을 덮고 나서 드는 이 기시감은 뭐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셔터아일랜드(마틴 스콜세지,(2010)>가 떠올랐다. 이 정도면 모티브는 거의 동일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만약 내가 <셔터 아일랜드>를 보지 못하고 이 책 먼저 봤다면 이 책은 내 열 손 안에 꼽히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래서 창작에서는 선후가 중요하다. 누가 먼저냐에 따라 독창성마저 의심스러우니 말이다. 이렇게 신선한 작품일수록 '독창적인가?' 하는 문제는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그것이 만약 전대미문의 것이라면 그것이 top이 되는 일은 시간 문제다. 발명가들이 그토록 특허를 먼저 받으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알아본 바로는 <셔터 아일랜드>의 원작 소설인 <살인자들의 섬(데니스 루헤인, 황금가지, 2004)>가 먼저다. 그러나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하기로 마음 먹은 이상, 비슷한 모티브를 가지고 쓴 글이라도 인정해 주고 싶다. 홍홍.
스토리가 참 탄탄하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 그려지게 묘사하는 장기, 다음 장을 보지 않고 책을 덮지 못하도록 하는 글의 구성. 모두 마음에 든다.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줘도 어떤 이의 그것은 그저 그렇고 어떤 이의 것은 매우 재미있게 여겨진다. 그게 바로 말하는 능력(작가에게는 쓰는 능력)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게끔 구성된 장들을 보며 이 작가가 얼마나 많이 퇴고를 거듭했을지가 눈에 선했다.
작가의 태도도 마음에 든다. 나는 '내가 난데' 하는 전문가를 상당히 안 좋아한다. 이것은 자신감과는 조금 다르다. 이런 이에게는 고집과 아집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글에 대해 독자와 소통하고 싶어하고 읽은 느낌이나 스토리에 관한 부분을 (출판사의 개입없이) 직접적으로 나누고 싶어했다.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에서도 그랬다. 정말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독자들의 감동이나 찬사와 지적에 자신의 글을 다시 구성해보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태도다. 그리고 작가 후기에는 왜 이렇게 진정성이 묻어나는 거지? (아 정말 친구하고 싶어!!) 작품보다 잔뜩 겉멋들린 난해한 작가 후기가 아니라 글을 짓는데 협력해준 이들에게 던지는 다정다감한 한마디들이 참 좋았다.
이 책의 스토리에 관해서는 별로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음, 그러면 이 글은 서평이 아니라 짧은 평전이 되어버리는 건가? 나는 <파편>이 너무 기대된다. 어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