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영한대역문고 5
생 텍쥐페리 지음, 시사영어사 편집부 옮김 / 와이비엠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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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왕자는 정말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다.  장미꽃 그리고 어린왕자와 여우, 사막....  또 한 때 유행처럼(?) 번졌던 '길들인다'는 말....  일요일 <어린왕자>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것도 영한대역문고로.  영한대역 문고를 읽었다면 의례 영어로 읽고 한국어로 독해 했겠거니 생각할 것이다.  근데 나는 이 책을 한글로 읽었다.  그런데 굳이 영한대역문고오 읽은 이유는....  한 등반가가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올랐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이 거기에 있기에 읽은 것 뿐.  이번에 대구에 내려가며 들고간 책을 기차 안에서 다 읽어버리는 바람에 '올라오는 길에 읽을 책 뭐 없을까?' 하며 책꽂이를 훑다가 이 책과 눈이 마주쳤을 뿐이다.  그런데 영한대역문고인 이유는 예전, 영문으로 한 번 읽어보고픈 욕심에 이 책을 샀던 기억이 있다. 
 
  다시 읽어보는 어린시절 동화, <어린왕자>  이 책은 동화같이 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다분히 철학적이다.  그런 면에서 <어린왕자>는 동화지만 어린이 보다는 어른이 더 맛있게 읽을 수 있는 동화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가 국민학교(당시는) 6학년쯤으로 기억된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나 역시 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속을 들여다볼 생각은 않고 오로지 겉으로 보이는 형상만으로 모자라고 섣불리 생각을 맺어버린 것이 못내 아쉽기도 했던 기억.  그러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짧은 몇 초만에 나는 그 그림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그림은 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key다.  '보이지 않는 것' 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그림뿐 아니라 인상적인 그림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양을 그려달라는 어린왕자의 말에 그려준 상자이다.  양이 들어있다고 상상만 하면 되는 상자.  그러나 보이지 않는 실체가 분명히 존재하는 그 상자.  이 이야기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 양이 들어있는 상자' 와 같은 맥락이다.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그 무언가를 우리는 어린왕자의 여행기를 통해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어린왕자의 우주여행 이야기를 통해 저어 먼 곳,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철학적이기도 했지만 무한한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 단지 멀리 떨어진 별에 사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은 내 옆에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별을 지배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해냈기에 별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폐하, 찬미받고 싶어하는 젠체하는 사나이, 허구헛날 술고래, 숫자 계산에 바쁜 사업가, 가로등을 켰다 껐다 하는 사람, 지리학자.  그리고 지구에서 만난 비행기 조종사(화자)와 여우.  어린 왕자는 별을 여행하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지천에 널려있는 장미와 꼭 같이 생겼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어린왕자의 장미꽃.  길을 들이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여우.  이 여우 또한 여느 여우와는 다른, 어린왕자에게는 특별한 여우이다.
  어린왕자가 꽃을 가꾸는 일을 통해, 낯선 지구라는 별에서 여우를 길들이게 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귐에 대해,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곁에 머무는 사람들.  내가 가꾸는 화초.  이 모든 것이 특별한 사귐을 통해 맺어진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면 한 시도 소홀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어린왕자가 미워하기도 했던 그 장미꽃이 양에게 먹이지나 않을지 걱정하게 되는 것처럼.  이 동화는 무언가를 알려주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오로지 생각하게 만드는 동화이다.   
 
  슬플때면 의자의 방향을 바꾸어가며 해질녁 노을을 한없이 바라본다는 어린왕자.  퇴근 길, 저무는 저녁 놀을 보니 B-612 혹은 어느 별에선가 이 노을을 바라보고 있을 어린왕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손 한 번 흔들어주면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푸훗~  그리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작은 의자 하나들고 찾아가 나란히 앉아 저녁 놀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길들이는 과정을 통해 또 소중한 사귐을 나누게 되겠지.  막연히 꿈꾸어 본다.  어린왕자가 사는 별 B-612에 쓩 하고 날아갈 수 있을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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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알약 - 증보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레데릭 페테르스 글.그림, 유영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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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만화책의 다른 이름, 그림소설이라로 불려지길 바라는 것 같은데 쉽게 말해, 만화책이다.  이 책은 에이즈에 걸린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남자의 위험천만한 이야기다.  그 위험한 남자가 바로 만화가 자신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것이라 한간에 화제를 모은 책이기도 하다.  

  에이즈.  모두가 겁을 내는 이 무서운 질병에 관해 작가는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야기야 담담하게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엄청 떨고 있었음.  하하.  물론 에이즈를 처음 받아들이는 누구나다 다 그럴 것이다.  처음 아니라 에이즈 환자 몇 백명을 지인으로 두다 할지라도 떨리는건 매한가지겠지만.

  그런데 사랑하는 연인이 에이즈 환자라면....  이미 사랑하게 되어버린 그녀가 에이즈 환자라면.  어떨까?  물론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을 받겠지.  어찌보면 그 사랑을 접을 수만 있다면 접으리만치 당황할 것이다.  접을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한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 사람 없이는 안돼' 라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골머리가 아픈 일이다.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감염인데,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며칠 콜록대고 낫는 정도의 질병이라면 까짓거 뭐 하고 배짱 한 번 부릴 수도 있을 터인데, 이 질병은 결국 목숨을 앗아가는--그리고 번듯한 치료법도 없는- 질병이라면 얘기가 틀려진다.  더군다나 그녀는 한 번 결혼했던 여자이고 그 여자의 하나뿐인 아들도 에이즈라면.

  그런데 프레데릭은 그 여자와 '영원한 콘돔형' 을 선고받은 연인으로 살게 된다.  연인이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혼란해 하던 프레데릭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 또 나 자신의 모습이다.  나에게 이런 일이 없어서 말인데....  나의 소중한 누군가가 에이즈라면 정말 힘들꺼야.  물론 당사자는 몇 배나 더 무섭고 두렵고 힘들겠지만.  

  사람들은 흔히 에이즈를 성의 문란으로 인해 얻는 병 따위, 즉 형벌로 생각한다.  그리고 더러운 것, 병의 주체인 사람에 대해서는 사생활이 건전하지 못한 사람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그러나 사실 에이즈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감염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타액이나 혈액이나 정액이나 질 분비물로 인해 감염이 쉽게 된단다.  키스로 인해 감염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단다.  그리 높지는 않다지만 어쨌든 감염 확률이 있다는 사실.  일단 성관계를 피하면 어느정도 예방은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키스 한 번 맘놓고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기 전 신발을 벗는 의식처럼 평생 콘돔을 착용해야 하는 하나의 의식을 반드시 행해야 한다면, 사실 불편은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참 아찔한 순간을 소개했는데 프레데릭의 콘돔이 찢어진 경우와 관계를 마친 콘돔의 바깥부분을 상처난 손으로 만진 일이다.  결코 특별하지 않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 벌어진 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성의 질분비물에 에이즈 바이러스가 많은 량이 있단다.  다행히 프레데릭은 감염되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검사 결과가 나오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죄책감에 슬퍼하는 여자와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한 남자.  이 모든 것을 감내하며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의 이야기다.

  그리고 프레데릭은 이렇게 말한다.  "난 카티가 정말 좋아.  예전부터 줄곧 그랬어.  게다가 우린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맞는 커플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게 이런 것 아냐?  그러니 이따금 성기에다 20분의 1밀리짜리 얇은 고무를 끼워야 한다는 이유로 이 모든 걸 포기할 순 없잖아" 라고.  어찌보니 에이즈 환자들의 '밤의 영역(?)'에 많은 부분을 치중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이 서로 사랑하는, 사랑에 충실에 연인들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이 책은 에이즈, 에이즈 환자,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는 만화책이다.  쾌발랄 웃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만화책은 분명 아니다.  아주 무겁(무섭)지만 무겁(무섭)지 않게 바라보라고 말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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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안중식 옮김 / 지식여행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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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보다는 영화를 봤었다.  그것도 우연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보고 싶었던 영화가 아니었다.  그 날 함께 영화를 보러 간 대다수가 이걸 보자고 해서 봤던 영화.  영화도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틀림없이 졸거나 잔 일은 없는데 이렇게 기억이 안날 수가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의 느낌은 '별루다' 'OST가 좋구나' 정도?  그런데 그렇게도 별 감동이 없는 이 작품을 다시 책으로 본데는 이유가 있다.   얼마전 <만약 내가 그 곳에 있었다면> 이라는 책을 참 인상깊게 읽었다.  근데 그 작가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책이 바로 이 책이란다.  내가 감동적으로 보았던 <만약 내가 그 곳에 있었다면> 을 쓴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역시 사랑이야기는....  더더군다나 이런 사랑이야기는 너무 진부하다. 

  이 작가의 이 책을 <만약 내가 그 곳에 있었다면> 보다 먼저 읽었다면....  아마 이 작가의 다른 책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책을 나중 읽었음은 참 다행이다.  쉽게 말해서 이 책은 역시 영화를 보았을 때와 같은 느낌이다.  별로.  그러나 단 두 작품으로 작가에 대해 판단하기는 섣부른 것 같다.  아무튼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더 보고 싶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 곳에 있었다면> 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일본 소설 특유의 간결함과 명쾌함으로는 후자쪽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섬세하고 정교한 글은 전자다.  무엇보다 <만약 내가 그 곳에 있었다면> 에서 이 작가의 표현력이 마음에 들었는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같은 작가의 글이라 느껴지리 않으리만치 느낌이 달랐다.

  읽은 책과는 직접적이지 않은 이야기지만, 나는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별로 감동을 받은 기억이 없고 '로맨스소설' 이나 '로맨스영화' 에 재미를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유일무이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야기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물론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도 베르테르와 로테의 어긋난 사랑보다는 베르테르가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 부분, 그리고 괴테의 섬세한 감성적인 또는 격한 감정의 표현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여간해서는 사랑이야기에 감동하지 않는 스타일인지 사랑이 전부인 이 소설은 역시 나에게 잘 맞지 않았다.  더 이상한 것은(정말 이상하다) 내가 본 영화의 원작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생소하다는 것이었다.  음....  이상한 일인데 정말 내가 그 영화를 제대로 보기나 한 것이 맞는지 영화를 다시 보고픈 생각도 든다.  만약 영화까지 다시 본다면, 아주 우스운 일이다.  별 감동도 없던 이야기를 책으로 한 번, 영화로 두번 씩 보게되는 기이한 일을 벌이게 되는 셈이다.  물론 영화는 다시 보지 않겠다. ^^;;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아키가 죽은 후 사쿠라타와 그의 할아버지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다.  죽음이란 정말 무엇일까?  사쿠라타는 죽음 역시 이미 죽어버린 이에게는 무의미한 것이고 '끝' 이지만 살아서 남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사후세계니 천국이니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죽은 이에게 죽음이 마지막인지 아니면 소위 말하는 영생의 입문인지는....  죽어봐야 아는 수밖에.  그렇다고 죽어보고 그것을 증명하고픈 생각은, 지금은 없다!  만약 어느 순간 내가 죽게 된다면 이승으로 돌아와 집을 잃은 영혼의 귀로는 소멸인지 불멸인지에 대해 전하리라.  어떤 방법으로?  차차 생각해보아야지.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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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
김미진 지음 / 민음사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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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간 당시부터 참 읽고 싶던 책이었다.  근데 이제서야 읽게 됐네.  참 오래도 걸렸다.  이런걸 보면 그 많은 읽고 싶은 책들 중 실지 내가 읽는 책은 얼마나 될까?  책을 보면 '읽고싶은 책일세' 하다가 정작 내 눈 앞에 그 책이 사라지게 되면 또 잊었다가 다시 눈에 띄게되면 '아!  이 책 읽고 싶어했었지?' 하고 다시 읽을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다 상황과 여건이 잘 맞아 그 책을 내 수중에 넣게 되면 읽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읽고싶은 책' 으로 남게 된다.  결국 이 책도 '아,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책이지?' 하며 번뜩하는 생각과 함께 헌책방에서 데려온 책이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절대적으로 절실하지 않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 책을 보고 싶다는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이 책은 읽고 싶은 책이었다.   

  김미진씨가 이 책으로 무슨 상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혼동하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소설책이지만 예술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소신있게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책의 표제에 '모짜르트' 라는 음악가의 이름이 거론되어 이 책이 음악과 관련된 책이 아닐까 할 수도 있는데, 정작 모짜르트는 찾아보기 힘든 책이다.  그런데 굳이 모짜르트라는 음악가를 지칭하여 제목을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용을 함축하고 정확히 꼬집은 제목이 아니라면 뭔가 상징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베토벤' 도 '브람스'도 '바하' 도 아닌 왜 모짜르트일까?  뭐 이렇게 말하니 모짜르트의 이름이 사용된 것에 불만이 있다는 늬앙스네.  그런 것은 아니고. ^^  왜 하고많은 음악가 중에 모짜르트냐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자, 계속 한 번 고민해보자.  이 책은 음악보다는 오히려 그림을 이야기 하고 있다.  등장인물들도 대개 화가거나 미대생들이다.  그렇다면 '고호가 살아있다면' '다빈치가 살아있다면' 뭐 이럴법한 제목이 왜 굳이 모짜르트냔 말이다.  한 번쯤 생각해 볼 법하지 않을까?  이 역시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격이 되는 것일까?  적어도 난 뭔가가 놓여진 상황에 대해 '이게 여기 놓여 있구나' 가 아니가 '이게 왜 여기 놓여있을까?' 를 고민하는 쪽이다.  내 성향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미술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그림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다.  실제 이 책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많은 사람들(쌍, 글라스, 지후, 지니, R등....)이 등장하고 그리고 소설쓰기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류 또한 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문학과 미술이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작가의 소신을 피력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완전한 예술을 총망라 했다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그렇다.  음악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음악적인 요소를 접목시키기 위해 표제를 이렇게 정한 것이 아닐까?  뭐 음악가의 이름을 빌어 쓴 것이야 이렇게 생각을 해볼 수 있겠다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남게 된다.  왜 모짜르트일까?  하필이면.    이건 필시 모짜르트 라는 음악가의 성향이나 일생에 뭔가 다른 음악가의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될--그가 아니면 안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 생각해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무엇보다 자명한 것은 모짜르트는 음악의 신동으로 인정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두가 그림에 대해 그리고 예술에 대해 고민하고 번뇌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천재적인 음악가의 대명사인 모짜르트가 살아있다면 이렇게 예술에 대해 고민하고 붓질 한 번에 작품 하나에 울기도 웃기도 하는 자들에게 뭔가 해답을 내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가의 암호가 아닐까?

  소설 속 윤이 한 이야기가 있다.  20년 평생을 쓴 작품은 불과 몇 시간만에 읽고 이것을 먹었노라 뿌듯해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의 그런 예측이 불가능하며 끝까지 공을 들여 읽지 않고는 안되도록 하는 소설을 쓰겠다는 윤.  이는 작가 김미진이 윤의 입을 빌어 한 말이 아니었을까?  두어번 정도 예술가의 결과물을 너무나도 쉽게 날로 먹으려 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누구도 이견이 없을 만한 천재적인 음악가가 살아있다면 예술에 대한 분분한 의견과 입장들, 그 속에 만연한 혼란함을 잠식시키고 무언가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겠느냐는 뜻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생각기에는 모짜르트가 바로 그에 적임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짜르트가 죽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안타까울 동시에 영원히 예술에 대해서 끊이지 않는 고민을 해야한다 뭐 이런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시작과 끝이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서로 만나는 이 소설처럼.  영원히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뜻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우리에게 예술에 대해 시원한 해답을 줄 사람은 이미 죽었고 그러기에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험난하고 머나먼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또 이 책은 점, 선, 면, 보이지 않는 풍경.  이렇게 4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 2부, 3부를 유심히 보자.  1부 '점'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모든 대화가 "(따옴표) 안에 들어있다.  그리고 2부 선에서는 -----(선)으로 대화를 표시했으며 3부 면에서는 『 로 대화를 표시하고 있다.  따옴표는 일종의 점으로 보고 『 이 기호를 영역을 지정해주는 기호로 이해한다면 면을 상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윤의 입을 빌어 말한 작가의 암호가 아닐까?  그리고 윤은 또 그렇게 말했다.  각 독자의 지적수준 정도에 따라 달리 읽혀지고 의미 파악도 다를 수 있는 소설을 쓰겠으며 그런 방법으로 하나가 군데 군데 암호를 넣는 것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독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어지는 소설을 쓰겠다는 말이다.  그것은 김미진씨가 글쓰기에 있어 지향하는 바일터인데 그것이 이 소설로 인해 이루어졌다 할 수 있을지 여전히 그런 글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일지는 모를 일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참 무거운 소재 (소위 말하는 예술, 예술가) 를 김미진씨의 경쾌한 입담으로 하여 독자에게 아주 성큼 가깝게 다가와 앉는다는 것이다.  독자는 그런 소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거나 경계할 겨를도 없이 작가의 날렵하고 신세대적 필치에 의식의 자리를 내줘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쉽게 화두를 들고 와서는 그것을 대놓고 함께 고민하자고 말한다.  돈이 가득든 가방의 행방에 그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라고 대놓고 의문을 던지고 독자는 자기 나름의 가치와 잿대로 그 가방에 비할 무언가를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또 감각적인 언어의 재미를 느끼며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던 책인데 역시 읽은 후 뭔가 여운과 고민을 남겨주는 가볍지 않은 책임에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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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 - 신화 속에서 찾은 24가지 사랑 이야기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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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따온 스물 다섯가지의 사랑 이야기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처음 읽은게 중학교때였는데 나는 그것을 읽지 않으면 안되는 숙제같은 기분으로 읽었다.  누군가의 강요에 의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숙제가 되었던 책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중학교때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물론 여러번 이야기 하게 되는 것이겠지만 그 때 당시 나의 절친한 친구의 (가까스로 그녀를 동경하기까지 이르렀다.) 영향이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나에게 2가지였다.  첫째, 그 당시 읽었던 많은 책들 중에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이나 그들의 일화에 빗댄 대목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수선화의 유래가 된 나르키소스에 관한 언급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럴 때 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 겠어'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했던 것이다.  두번째, 앞서 말한 나의 친구, 그녀가 어느날 받는이의 란에 '아프로디테' 라고 적힌 편지를 내게 건냈다.  물론 보낸이의 란에는 '헤라'라고 쓰여진.  아프로디테와 헤라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임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를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라 부른 그녀의 우정에 적절하게 반응하므로 그녀의 문학적 감각(내지는 수준)에 발맞추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해서 처음 읽게 되었다.  인간을 닮은 신들의 이야기.  사랑, 죽음, 복수, 분노....  이 책은 그런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 사랑이야기만 모은 25가지 이야기다.  저자의 생각이 적절히 가미되긴 하였지만 순수한 창작물이라 볼 순 없기에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몇 번을 씹어도 짬조름한 맛을 내는 한 조각의 육포를 씹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우스개 소리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  '신의 경지에 이르렀어' '신에게 도전장을 내야겠어' 등등.  높은 수준 혹은 그것에 상응할 만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신의 수준에 도전하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사랑에 만큼은 예외가 아닐까?  신이나 인간이나 사랑앞에서는 매한가지였다.  똑같이 슬퍼하고 가슴아파하고 불같이 타오르는 마음을 가졌다가도 이내 식고 복수하고 분노하는.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영역이 바로 사랑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신화에서도 인간과 신의 사랑에 관해서도 여러 편 볼 수가 있었는데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은 만물이 소통 가능한 언어일지도. 

  그리고 신화의 매력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한 가지는 자연의 신비로움과 그 시초에 사연을 담았다는 점이다.  이는 바람, 풀, 새, 꽃....  어느 하나를 가벼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하고 있다.  자연의 고귀함과 신비로움에 눈을 돌리도록 하는 이야기라는 점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그 또한 억지스럽지 않고 '실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절묘하다.

  끝으로, 스물 다섯가지의 사랑이야기 중 가장 감동적이고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는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사랑이야기였다.  이런 진부한 스토리의 순애보적 사랑이야기는 개성이 없긴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말로 비통함의 극치고 애절함 끝에 애잔함을 남기는 것 같다.  오늘도 그 어딘가에서 에로스의 황금화살과 납화살에 맞아 가슴앓이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  그러나 에로스의 화살이 운명의 화살이라고는 믿지 말자.  나는 에로스의 황금화살을 맞은 것일까 납화살을 맞은 것일까?  납화살을 맞은 가슴이랄지라도 실망하지 말자.  여전히 뜨거운 심장을 지킨다면 아마 신들도 그 심장에 감동하지 않을까?  그대의 눈물겨운 사랑에 감동한 나머지 가슴에 박힌 납화살을 어느새 뽑아버리고 황금화살을 바꾸어 꽂아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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