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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 - 신화 속에서 찾은 24가지 사랑 이야기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따온 스물 다섯가지의 사랑 이야기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처음 읽은게 중학교때였는데 나는 그것을 읽지 않으면 안되는 숙제같은 기분으로 읽었다. 누군가의 강요에 의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숙제가 되었던 책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중학교때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물론 여러번 이야기 하게 되는 것이겠지만 그 때 당시 나의 절친한 친구의 (가까스로 그녀를 동경하기까지 이르렀다.) 영향이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나에게 2가지였다. 첫째, 그 당시 읽었던 많은 책들 중에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이나 그들의 일화에 빗댄 대목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수선화의 유래가 된 나르키소스에 관한 언급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럴 때 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 겠어'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했던 것이다. 두번째, 앞서 말한 나의 친구, 그녀가 어느날 받는이의 란에 '아프로디테' 라고 적힌 편지를 내게 건냈다. 물론 보낸이의 란에는 '헤라'라고 쓰여진. 아프로디테와 헤라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임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를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라 부른 그녀의 우정에 적절하게 반응하므로 그녀의 문학적 감각(내지는 수준)에 발맞추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해서 처음 읽게 되었다. 인간을 닮은 신들의 이야기. 사랑, 죽음, 복수, 분노.... 이 책은 그런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 사랑이야기만 모은 25가지 이야기다. 저자의 생각이 적절히 가미되긴 하였지만 순수한 창작물이라 볼 순 없기에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몇 번을 씹어도 짬조름한 맛을 내는 한 조각의 육포를 씹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우스개 소리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 '신의 경지에 이르렀어' '신에게 도전장을 내야겠어' 등등. 높은 수준 혹은 그것에 상응할 만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신의 수준에 도전하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사랑에 만큼은 예외가 아닐까? 신이나 인간이나 사랑앞에서는 매한가지였다. 똑같이 슬퍼하고 가슴아파하고 불같이 타오르는 마음을 가졌다가도 이내 식고 복수하고 분노하는.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영역이 바로 사랑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신화에서도 인간과 신의 사랑에 관해서도 여러 편 볼 수가 있었는데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은 만물이 소통 가능한 언어일지도.
그리고 신화의 매력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한 가지는 자연의 신비로움과 그 시초에 사연을 담았다는 점이다. 이는 바람, 풀, 새, 꽃.... 어느 하나를 가벼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하고 있다. 자연의 고귀함과 신비로움에 눈을 돌리도록 하는 이야기라는 점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그 또한 억지스럽지 않고 '실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절묘하다.
끝으로, 스물 다섯가지의 사랑이야기 중 가장 감동적이고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는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사랑이야기였다. 이런 진부한 스토리의 순애보적 사랑이야기는 개성이 없긴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말로 비통함의 극치고 애절함 끝에 애잔함을 남기는 것 같다. 오늘도 그 어딘가에서 에로스의 황금화살과 납화살에 맞아 가슴앓이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 그러나 에로스의 화살이 운명의 화살이라고는 믿지 말자. 나는 에로스의 황금화살을 맞은 것일까 납화살을 맞은 것일까? 납화살을 맞은 가슴이랄지라도 실망하지 말자. 여전히 뜨거운 심장을 지킨다면 아마 신들도 그 심장에 감동하지 않을까? 그대의 눈물겨운 사랑에 감동한 나머지 가슴에 박힌 납화살을 어느새 뽑아버리고 황금화살을 바꾸어 꽂아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