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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ㅣ 영한대역문고 5
생 텍쥐페리 지음, 시사영어사 편집부 옮김 / 와이비엠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어린왕자는 정말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다. 장미꽃 그리고 어린왕자와 여우, 사막.... 또 한 때 유행처럼(?) 번졌던 '길들인다'는 말.... 일요일 <어린왕자>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것도 영한대역문고로. 영한대역 문고를 읽었다면 의례 영어로 읽고 한국어로 독해 했겠거니 생각할 것이다. 근데 나는 이 책을 한글로 읽었다. 그런데 굳이 영한대역문고오 읽은 이유는.... 한 등반가가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올랐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이 거기에 있기에 읽은 것 뿐. 이번에 대구에 내려가며 들고간 책을 기차 안에서 다 읽어버리는 바람에 '올라오는 길에 읽을 책 뭐 없을까?' 하며 책꽂이를 훑다가 이 책과 눈이 마주쳤을 뿐이다. 그런데 영한대역문고인 이유는 예전, 영문으로 한 번 읽어보고픈 욕심에 이 책을 샀던 기억이 있다.
다시 읽어보는 어린시절 동화, <어린왕자> 이 책은 동화같이 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다분히 철학적이다. 그런 면에서 <어린왕자>는 동화지만 어린이 보다는 어른이 더 맛있게 읽을 수 있는 동화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가 국민학교(당시는) 6학년쯤으로 기억된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나 역시 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속을 들여다볼 생각은 않고 오로지 겉으로 보이는 형상만으로 모자라고 섣불리 생각을 맺어버린 것이 못내 아쉽기도 했던 기억. 그러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짧은 몇 초만에 나는 그 그림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그림은 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key다. '보이지 않는 것' 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그림뿐 아니라 인상적인 그림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양을 그려달라는 어린왕자의 말에 그려준 상자이다. 양이 들어있다고 상상만 하면 되는 상자. 그러나 보이지 않는 실체가 분명히 존재하는 그 상자. 이 이야기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 양이 들어있는 상자' 와 같은 맥락이다.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그 무언가를 우리는 어린왕자의 여행기를 통해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어린왕자의 우주여행 이야기를 통해 저어 먼 곳,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철학적이기도 했지만 무한한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 단지 멀리 떨어진 별에 사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은 내 옆에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별을 지배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해냈기에 별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폐하, 찬미받고 싶어하는 젠체하는 사나이, 허구헛날 술고래, 숫자 계산에 바쁜 사업가, 가로등을 켰다 껐다 하는 사람, 지리학자. 그리고 지구에서 만난 비행기 조종사(화자)와 여우. 어린 왕자는 별을 여행하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지천에 널려있는 장미와 꼭 같이 생겼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어린왕자의 장미꽃. 길을 들이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여우. 이 여우 또한 여느 여우와는 다른, 어린왕자에게는 특별한 여우이다.
어린왕자가 꽃을 가꾸는 일을 통해, 낯선 지구라는 별에서 여우를 길들이게 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귐에 대해,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곁에 머무는 사람들. 내가 가꾸는 화초. 이 모든 것이 특별한 사귐을 통해 맺어진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면 한 시도 소홀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어린왕자가 미워하기도 했던 그 장미꽃이 양에게 먹이지나 않을지 걱정하게 되는 것처럼. 이 동화는 무언가를 알려주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오로지 생각하게 만드는 동화이다.
슬플때면 의자의 방향을 바꾸어가며 해질녁 노을을 한없이 바라본다는 어린왕자. 퇴근 길, 저무는 저녁 놀을 보니 B-612 혹은 어느 별에선가 이 노을을 바라보고 있을 어린왕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손 한 번 흔들어주면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푸훗~ 그리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작은 의자 하나들고 찾아가 나란히 앉아 저녁 놀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길들이는 과정을 통해 또 소중한 사귐을 나누게 되겠지. 막연히 꿈꾸어 본다. 어린왕자가 사는 별 B-612에 쓩 하고 날아갈 수 있을 그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