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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계절 ㅣ 범우문고 10
전혜린 지음 / 범우사 / 1994년 7월
평점 :
품절
우연히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눈에 띄어 바로 산 책이다. 그것두 내가 좋아하는 범우사에서 나온거잖아? 올~ 범우사 책은 좋다. 어떤 점에서냐면.... 첫째, 읽을만한(혹은 읽어야 할) 책을 출판한다. 고전이나 사상서나.... 둘째, 기절할만큼 저렴하다. (문고판의 경우는 2,000원대) 실은 내가 젤 좋아하는 이유야. 제대로 커피 한 잔 마시기보다 저렴해도 되는거야? 셋째, 깔끔하다. 오자나 탈자가 비교적 적고 시리즈 출판인 경우는 얇고 가벼워 들고 다니기에두 좋아.
이 책 또한 위의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조건이었다. 전혜린의 글은 항상 좋다. 멋있다. 음.... 그녀처럼 글을 쓸 수 있다면.... 가끔은 군데 군데 독일어가 낯설고 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쓸데없는 은유나 비유가 없어 바삭거린다. 치렁치렁한 장신구보다는 굵은 실로 짜여진 편안한 니트같은 느낌. 똑똑한 여자, 전혜린. 남달라야만 했고 남다르길 원했던 여자다. 결국은 자살로 막을 내렸지만.... 질척한(?) 목숨 이어왔다면 그녀에 대한 간절함은 적어졌겠지? 오히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녀는 굵고 짧게 살았다.
이 책의 많은 부분 중에서 '가을이면 앓는 병' 이 기억에 남는다. 자살은 인간의 권리다던.... 그녀는 우울증이 있었나 보다. 삶을 부정하는 듯 하지만 그것은 그녀 자신의 삶에 권태였으리라.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녀의 일, 딸 정화에 대한 모정, 삶의 조각들을 담고 있다. 전혜린 그녀이기에 읽는 내내 좋았다. 아, 간혹 발견되는 서방문화에 대한 찬양이 조금 거슬리더군. 1950년대면 우리나라는 말할 것 없이 피폐했을테지. 하지만 독일 젊은이들을 묘사하면서 (결코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흉내낼 수도 없는) 그들은 그들만의 선진 문화를 누리고 있다는 선민사상(?) 같은 것이 비춰졌다. 나는 스스로 애국자라 칭할만큼 애국 행위를 한 일은 없지만 가끔 외국에서 생활하는(혹은 생활했던) 한국인이 정신과 피의 모국인 한국을 멸시하고 외국 땅에 대한 지나친 극찬을 하는 것을 보면 진저리가 쳐진다.
이 책은 다른 책을 읽던 중에 읽었다. 좀처럼 먼저 읽은 책을 다 읽기전에 다른 책을 펼치는 일은 하지 않는데.... 전혜린이기에. 그녀의 글이기에.... 급했다. 읽고 싶어 못견뎠으니까. 이 책은 오늘 미용실에서 다 읽었다. 아, 머리는 다 태워먹었지만 그녀와 함께였던 시간은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