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 악남 이야기
이경윤.정승원 지음 / 삼양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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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책들 중 하나가 삼양미디어에서 나온 '상식' 시리즈다.  이 책들은 어떤 분야의 정보를 가볍게 정리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들중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악남 이야기' 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악남이라는 단어도 생경할 뿐 아니라 상식으로 알아야 할 악남이라니.    

  악녀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악남이라는 단어는 참 낯설다.  게다가 우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왜 그런걸까?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있다.  '악남이라는 말이 따로 없는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의 역사가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경쟁상대로조차 여기지 않을 정도를 남성들이 주도한 시대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란 것이다.  그러다보니 악인=악남이란 의미로 사용되었기에 따로 '악남'이란 말이 필요가 없었고, 성에 대한 구별의 차원에서 '악녀'란 말도 생겨났으리라(머리말에서 인용)'  시대적 상황에서 악남이라는 단어가 불필요했다는 주장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책은 정말 악한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이들의 악한 이야기를 왜 알아야 하냐고?  그렇다.  악한 남자를 알아서 무엇하랴 생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악한 남자들이란 한낱 범죄자들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그들의 죄를 놓고 본다면 다르지 않지만)  이 책에서 다룬 스무명의 악한 남자들 중 어떤 이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장군을 포함, 세계적인 걸출한 영웅들이거나 나라를 이끌어가는 왕족등 사회적으로 굉장한 명성을 얻는 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 몇은 어린시절 위인전을 읽은 기억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이 악남일까?  그것이 궁금했고 그들의 이름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먼저 그들은 다음과 같다.  알렉산더, 칼리굴라, 아틸라, 칭기즈칸, 티무르, 질 드 레, 블라드 3세, 이반 4세, 헨리 8세, 루이 14세, 나폴레옹, 표트르 대제, 라스푸틴, 히틀러, 사담 후세인, 진시황제, 한 무제, 당 현종, 명 태조 주원장, 마오쩌둥.  

  이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크게 다섯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 째, 모두 나라를 위해 일했던 자들이다.  장군, 왕, 대통령 등....  둘 째, 폭군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겁쟁이들이다.  그들은 두려워 했으며 그로인해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것들을 제거해야 마음을 놓을 수 밖에 없는 약한 자들이었다.  셋 째, 한 나라에서는 영웅으로 한 나라에서는 적장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영토를 확장하는 일이 한 나라에는 영광이었겠지만 빼앗긴 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테니 말이다.  넷째, 욕망을 제어할 수 없었던 나약한 자들이다.  호색, 알콜, 세력, 권력.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위해 결코 악행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완벽주의자들이다.  자신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에 반하는 것들을 모조리 없애버린 자들이다.   

  이 책은 한 권의 역사책 같았다.  교과서만으로는 알 수 없는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담긴 역사책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들의 이면을 재조명하는 시각으로 씌여진 책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누구에게 위대하다,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오늘이 영웅이 내일의 악인으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을 것이며 반면 오늘의 악인이 내일의 영웅이자 성공자로서의 인생을 살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해 한 인간을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 시기는 숨을 거두었을 때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죽는 그 날까지 헛살아서는 안된다는 뜻이 아닐지.  이 책은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 역사의 숨은 이야기를 알 수 있었기에 더욱 즐겁게 읽었던 것 같다.  끝으로, 앞으로의 '상식' 시리즈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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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캐서린 햄린 지음, 이병렬 옮김 / 북스넛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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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사람에 따라서는 짧게 망설이다 행복, 사랑과 같은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가치의 단어를 뱉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가족이나 하고 있는 일을 위해서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아무런 대답도 못할지 모르겠다.  여하튼 대개의 대답들은 '자신'의 목표, '자신'의 가치를 위한 것일게다.  그런데 온전히 남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자는 몇이나 될까?  과연 얼마나 될까?  나를 위해 충실하고 알뜰하게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러나 전혀 낯 모르는 이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며 사는 것은 어떨까?  이것은 결코 쉽지 않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찌보면 모든 삶이 타인과 더불어 살기 위함이고 나아가 남을 위한 삶이라고 말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의 호흡과 손놀림이 온전히 남을 위한 것이기는 무척이나 힘들 것이다.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여기 있다.  캐서린 햄린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책 속 저자의 헌신과 봉사의 삶에 감동을 받고 지금의 내 삶을 귀히 여기고 지치고 힘겨운 나의 일상을 감사로 여길 수 있게 되길 바래서였다.  꼭 그래서였다.  그러나 책을 덮고나서 사실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고작 내 삶 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싶어서였다는 사실이.  내 삶을 통째로 내어놓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나를 숙연하게 했다. 

  이 이야기는 에디오피아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있는 캐서린 햄린과 그의 남편 레그 햄린 그리고 그의 동역자와 치료가 필요한 많은 난민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명망있는 의사 부부는 커다랗고 반짝이는 대리석으로 지어진 시설좋은 산부인과가 아닌 아프리카 오지의 작은 곳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한다.  지금은 많은 후원자와 그들의 선행으로 병원의 모양새를 갖게 되었다고 하지만 말이다.  그 곳에서 혼신을 다해 생명을 건져내는 의사 부부의 이야기였다.  최빈국의 어린 신부들.  그들의 열악한 의료 시스템과 치료 서비스.  난산과 사산등으로 인해 수십년 병이 든 여자들을 살려내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의 임신한 여자라면 대개 열달 남짓의 수태기간을 지나 산부인과 전문 병원에서 출산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아름답고 고귀하고 신비롭기만할 출산의 순간이 인생을 망치는 기회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험 아래 그들은 출산을 감행하고 있었다.    나 역시 여자여서일까?  그들이 겪은(겪고 있을) 고통이 마디 마디 깊이 느껴졌다.  그리고 버려진 그 곳의 죽어가는 여자들에게 빛으로 희망으로 삶의 기쁨을 되찾아 준 햄린 부부와 많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어찌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역시 남을 위해 자신을 움직이는 삶은 결코 쉽지 않다.   

  지금 당장 나에게 아프리카로 가서 그곳에서 어린 아이들을 모아서 가르치라고 한다면(나는 유치원 교사이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봉사하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그곳이 나에게 미지의 곳이라는 이유 뿐만 아니라 나는 이 곳에서 문화의 혜택을 누리고 편하게(매일 매일 조금씩 조금씩 더 편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좋다.  나는 이 일을 평생하고 싶어하니 말이다.  그러나 겨우 몇 일의 야근이면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도대체 나는 언제 쉬라고?' '아무래도 내년에는 쉬어야 겠어' 하며 금방이라도 그 곳을 박차고 나올 듯 힘든 기색을 하는 것이 나다.  정말이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 마져도 그저 적당히 내가 즐거울 만큼만 하길 바라고 있었다.  물론 '일과 자원봉사는 달라요.  자신을 너무 질책하지 말아요' 하면 나를 위로해줄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편한 것을 좋아하고 가능하다면 조금 더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내게 그들이 택했던 불편한(?) 삶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아름다운 헌신에 숭고함이 솟았다. 

  지금도 지구상의 많은 나라는 허덕이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또는 전쟁 중에 있거나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 우리는 매일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요기거리를 달래 줄 음식들이 지천에 있으며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얼마나 깊이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이런 삶을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곳이 반드시 햄린 부부처럼 아프리카 오지거나 저 멀리 가난한 나라이어야지만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선 이 곳,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어렵고 힘든 자들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나의 삶을 나누기에는 어떤 곳이든 망설일 이유가 없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나는 고아원에 매달 일정 금액을 후원한 적도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눈에 띄면 도와주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부나 일시적인 선행만으로 인간된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 안에 그들을 향한 얼마만의 온기와 온정을 담았던지도 말이다. 

  물론 나는 또 이것들을 잊고 바쁜 나날들을 살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역시 더 편한 삶만을 꿈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토록 선하고 아름다운 삶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인류를 위해 바쳐지는 육신이 있다는 것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도울 수 있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아직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땅 위의 모든 자원봉사자들과 인류를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놓는 그들에게 가슴 깊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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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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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라.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본 순간, 나는 제목의 쉼표에 제일 먼저 눈길이 갔다.  쉼표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얼마나 클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쉼표를 보는 순간 쉼과 같은 책이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나의 관심을 끓었는데 아니, 뭐라고?  게다가 저자가 루시드폴이라니.  오오~  루시드폴의 팬이라고 하기엔 조금 아쉬운 구석이 있겠지만 나는 그의 많은 노래들을 참 좋아한다.  처음 그의 노래를 들었을때는 그 읊조림이 얼마나 신선하던지.  또한 가사 역시 참으로 아름다웠다.  세간에 불려지고 들려지는 곡과는 약간 다른,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마종기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글이라니. 

  망설임없이 선택한 책.  한 장 한 장씩 얼마나 야금야금 읽어내려갔던지.  한번에 쓰윽 읽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그렇게 조금씩 읽어가고 싶었다.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이면 다 읽을 이 책을, 나는 꼬박 일주일동안 읽었다.  편지글이라는 사적인 느낌을 나도 고스란히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도 이들처럼 한 작가와 편지를 나눈 일이 있다.  잠깐 소개하자면 그 작가는 동화작가였고 나의 어린시절(당시, 국민학교 3학년) 나에게 책읽는 즐거움을 알게 하고 내게 작가라는 꿈을 소망하게 한 동화의 저자와 편지를 나눈 일이다.  나는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어디론가 사라진 그 책을 찾았고 내게 없다는 것을 알고 출판사며 헌책방을 전전했다.  그렇게 책을 쫓다 그 책의 작가와 인연이 닿았다.  나는 책을 구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 동화가 나의 인생을 크게 바꾼 책이었다는 점을 메일로 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그렇게 시작된 메일 교환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었다.  나는 나의 글이야기, 책이야기, 일이야기를 했고 그도 그의 글과 책, 그리고 사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던 그 동화책의 작가인 선생님의 편지글 앞에서는 항상 숙연한 마음으로 답장을 했고 그러다 보니 나는 편지에 답을 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던게 사실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몇 해전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느낌, 동경의 대상, 존경의 대상으로부터 오는 그 소중한 메세지의 설레임.  나는 루시드폴과 같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소박했다.  학업, 일, 음악, 여행, 가족, 타국 이야기.  그리고 그에 빠질 수 없는 고국에 대한 향수.  이국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의 영원한 화두, 노스탤지어.  나는 마종기라는 시인의 시를 일부러 찾아 읽은 기억은 없다.  우연히 몇 편의 시를 읽은 듯 하다.  그러나 사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그가 마해송씨의 아들이라니.  나는 아동문학가였던 마해송씨를 더 잘 알았다.  아니 그가 내겐 더 귀익은 사람이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이 책에서 나는 나이와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가 좋아할만한 음반을 선물하고 그 곳이 서울이건, 로잔이건 그 어디건 서로의 편지에 회신을 하고.  열정의 삶을 서로 반추해보는 그들의 애정어린 우정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내게도 이렇게 삶을 나누고 '니가 보고싶어' '널 사랑해' 라고 말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편지와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인 소통이 가능한 누군가의 깊이 있는 편지는 삶의 아주 큰 활력과 용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편지의 후미부분에서 그들이 만났다.  서울의 한 곳에서.  그 둘의 정겨운 사진에 괜시리 내가 다 즐거워졌다.  지금도 그들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겠지?  서로를 위한 격려와 사랑의 메세지는 여전하겠지.   

  둘의 편지글을 담은 이 책은 그들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를 주는 책일테다.  어쩌면 이 책으로 인해 그들은 정말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들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두 사람 사이의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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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 음악사
오카다 아케오 지음, 이진주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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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작년 겨울부터 올 봄까지는 정말 책을 읽지 못했다.  항상 곁에 두긴 했으나 서너권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읽고도 서평도 남기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유를 되찾았던 것인지, 부지런히 책을 읽지 못하는(않는) 내 스스로가 못마땅했던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음악사>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서양음악사에 유달리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오랜 공백기간을 깨고 책을 읽는 내 본연(?)의 삶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 하나로 급작스럽게 선택한 책이었다.  하지만 많고 많은 책들 중에서 내가 이 책을 나의 '회복'의 도서로 삼았던 이유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전에 삼양미디어의 상식 시리즈 중 두 권을 읽어 본 적이 있다.  독자로 하여금 '상식'을 목적으로 하는 책인만큼 굉장히 쉬웠고 재미있었다.  무언가 알고 싶으나 너무 어렵게 여겨지는 어떤 것을 처음 접할 때는 상식을 목적으로 하는 책들이 참 유익한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펼치고 저자의 머리말을 읽으며 참 설렜다.  '대놓고 어렵게 기술하지 않겠다 하니 서양 음악사에 대해 조금 쉽게 다가갈 수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예술서적이나 전문서적을 읽다보면 전문가의 젠 체 하는 자세들을 참 많이 보게 된다.  독자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 나 이만큼이나 알고 있는 대단한 작자라구' 하는 식의 오만한 저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머리말에서'예비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을 전제해서(갖고 있어야만 하는 것 같은)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집필의도가 얼마나 편안한 마음을 갖게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책장마다 가득 담긴 컬러 사진들과 삽화는 더욱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일으켰던 것 같다.  그리고 지난 번, 상식 시리즈 중 클래식 음악에 관한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음악들을 담은 CD도 함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CD까지 함께.  오우~  제대로 즐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  

  그러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사실 이런 책은 읽고서 모든 것을 명확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전 지식이 깊었던 사람들에게는 정확한 라인을 그어 줄 것이며 나같이 전혀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흐릿하게나마 서양 음악의 역사를 그려주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잘 모른다.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이 어떻고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어떤지를....  그런데 이 책은 내게 음악을 단순히 귀로 듣는 일 뿐 아니라 그 곡의 흐름과 그 곡의 늬앙스를 유심히 바라보도록 해 준 책이다.  모든 곡이 그저 작곡가의 취향과 스타일대로 지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런 곡들이 당대의 시대상 흐름과 느낌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니 말이다.   

  그리고 모든 예술은 본디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음악들의 그 기원이 성가에서 시작한 것들이 많고 수많은 화가들이 성화와 수태고지 등을 그렸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모든 음악과 모든 그림들이 이것들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그 시작에는 신의 영화로움과 찬양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이 책은 쉽지 않았다.  아니 나에게 쉽지 않은 책이었다.  특히 이 책은 당대의 창작배경과 음악의 발전화 그 역사를 말하는 것이라 화성에 대해 여러 부분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화성을 다룬 부분은 내게는 굉장히 어려웠다.  아니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뭐랄까?  화성학은 다분히 수학적이기에 두렵다.(나는 수학.... 오노~)  이처럼 눈으로 훑을 뿐인 부분들도 있었지만 반면 오페라를 좋아하는 내게 베르디 등의 작곡가와 오페라에 대해 다룬 부분은 정말 즐겁게 읽었다. 

  그리고 내가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책을 읽기 전에는 서양음악사라 함은 클래식음악의 역사를 다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오해였다.  서양음악사는 말그대로 서양 음악의 역사를 다룬 것이기에 20세기의 파퓰러 음악(이를테면 비틀즈 음악) 역시 이것들의 역사적인 행보로 본다는 사실이다.  역사라는 단어가 주는 엔틱한 느낌과 고전적인 늬앙스로 인한 나의 오해였으리라.  이제 누군가와 서양음악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나는 구태여 고전파니, 낭만파니 그 안에서만 허덕이지는 않아도 되겠지.   

  천천히 이해하며 읽으려고 했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오랫시간만큼 귀한 경험을 안겨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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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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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약속장소는 항상 서점이다.  일찍 도착해 기다리게 되는 날에는 읽을 거리도 많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그야 말로 나의 초대형 서재(?)인 셈이다.  또 만나기로 한 사람을 위해 갑작스레 한 권의 책을 고르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역시 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읽게 된 책이다.  어쩌다보니 2009년 새해 첫 날 읽은 책이 되었다.  <왜 쓰는가?> 폴 오스터의 책으로는 <타자기를 치켜세움> 이후 두 번 째다.   

  많고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남은 약속 시간동안 충분히 읽을 분량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책장을 열자 붉은 선이 그어진 노트가 펼쳐졌다.  그 위에 새겨진 글자는 컴퓨터로 찍어낸 필체가 아니가 손글씨체였다.  '이 책 뭔가 아주 사적인 느낌을 주는군'  그렇게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을 덮은 후의 느낌 역시 같았다.  '참으로 사적인 책이야.'  누구에게?  폴 오스터 자신에게!   

  이 책은 짧은 폴 오스터에게 있었던 일화들을 기록한 자전적 메모(단편이라기도 꽁트라기도 뭔가 부족해 ^^;;)들이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어린시절 굉장히 좋아하는 야구선수를 만났는데 아무도 펜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인을 받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단다.  그 이후부터는 그런 날을 대비해 펜을 항상 가지고 다니게 되었고 그 펜은 폴 오스터에게 무언가를 끼적거리는 습관을 가져다 주었고 그로 그는 작가가 되었다고 회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나도 메모지나 펜이 없이는 길을 나서지 못한다.  갑작스레 내 머리와 가슴을 옮겨줄 것들이 없을 때는 참 답답하다.  그것이 일상에 대한 단상이거나 편린을 기록하기 위함 뿐 아니라 급히 누군가에게 편지 아닌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많기 때문이다.  냅킨, 영수증, 종이 봉투등은 나의 편지 패드가 되어 주었다.  어쩌다 깜빡 잊은 날 한 자루, 한 자루 사들고 다닌 볼펜 수를 보면 아마 평생을 쓰고도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폴 오스터도 우연히 갖고 다니게 된 펜으로 무언가를 쓰게 되고 그것이 작가가 되게 한 계기라 믿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 어떤 재능 있는 작가도 쓰지 않으면, 꾸준히, 정신없이 쓰지 않으면 결코 훌륭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화를 제외하고 이 사적인 기록들의 모음은 내게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한 편으로는 폴 오스터이기에 이런 별스럽지 않은 글도 책으로 묶여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내심 부러웠다.  역시 명망있는 작가란 그의 말 한미다가 활자로 남길 구실이 되고 단 하나의 문장이 종이에 새겨질 위대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대단할 것 없는 한 권의 책은 그의 모든 기록을 가치롭게 소중히 여겨주는 출판사의 마음이겠지.  그러나 이 얇은 책을 양장으로 만들고 가름끈까지 넣어 제작을 한 것은 지나친 포장이었다.  이 책의 분량으로 보나 내용으로(폴 오스터씨, 죄송해요) 볼 때는 한 권의 책에 부록 정도로 붙여도 좋을 법했는데 이 얇은 책은 왜 이토록 갖출 것 다 갖춘 모양새로 나와야 했을까?  폴 오스터 팬들의 소장욕을 자극하고자 계산한 것이 아니었을지.  개인적으로는 글로나 책으로나 많이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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