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캐서린 햄린 지음, 이병렬 옮김 / 북스넛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사람에 따라서는 짧게 망설이다 행복, 사랑과 같은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가치의 단어를 뱉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가족이나 하고 있는 일을 위해서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아무런 대답도 못할지 모르겠다.  여하튼 대개의 대답들은 '자신'의 목표, '자신'의 가치를 위한 것일게다.  그런데 온전히 남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자는 몇이나 될까?  과연 얼마나 될까?  나를 위해 충실하고 알뜰하게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러나 전혀 낯 모르는 이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며 사는 것은 어떨까?  이것은 결코 쉽지 않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찌보면 모든 삶이 타인과 더불어 살기 위함이고 나아가 남을 위한 삶이라고 말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의 호흡과 손놀림이 온전히 남을 위한 것이기는 무척이나 힘들 것이다.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여기 있다.  캐서린 햄린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책 속 저자의 헌신과 봉사의 삶에 감동을 받고 지금의 내 삶을 귀히 여기고 지치고 힘겨운 나의 일상을 감사로 여길 수 있게 되길 바래서였다.  꼭 그래서였다.  그러나 책을 덮고나서 사실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고작 내 삶 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싶어서였다는 사실이.  내 삶을 통째로 내어놓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나를 숙연하게 했다. 

  이 이야기는 에디오피아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있는 캐서린 햄린과 그의 남편 레그 햄린 그리고 그의 동역자와 치료가 필요한 많은 난민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명망있는 의사 부부는 커다랗고 반짝이는 대리석으로 지어진 시설좋은 산부인과가 아닌 아프리카 오지의 작은 곳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한다.  지금은 많은 후원자와 그들의 선행으로 병원의 모양새를 갖게 되었다고 하지만 말이다.  그 곳에서 혼신을 다해 생명을 건져내는 의사 부부의 이야기였다.  최빈국의 어린 신부들.  그들의 열악한 의료 시스템과 치료 서비스.  난산과 사산등으로 인해 수십년 병이 든 여자들을 살려내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의 임신한 여자라면 대개 열달 남짓의 수태기간을 지나 산부인과 전문 병원에서 출산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아름답고 고귀하고 신비롭기만할 출산의 순간이 인생을 망치는 기회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험 아래 그들은 출산을 감행하고 있었다.    나 역시 여자여서일까?  그들이 겪은(겪고 있을) 고통이 마디 마디 깊이 느껴졌다.  그리고 버려진 그 곳의 죽어가는 여자들에게 빛으로 희망으로 삶의 기쁨을 되찾아 준 햄린 부부와 많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어찌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역시 남을 위해 자신을 움직이는 삶은 결코 쉽지 않다.   

  지금 당장 나에게 아프리카로 가서 그곳에서 어린 아이들을 모아서 가르치라고 한다면(나는 유치원 교사이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봉사하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그곳이 나에게 미지의 곳이라는 이유 뿐만 아니라 나는 이 곳에서 문화의 혜택을 누리고 편하게(매일 매일 조금씩 조금씩 더 편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좋다.  나는 이 일을 평생하고 싶어하니 말이다.  그러나 겨우 몇 일의 야근이면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도대체 나는 언제 쉬라고?' '아무래도 내년에는 쉬어야 겠어' 하며 금방이라도 그 곳을 박차고 나올 듯 힘든 기색을 하는 것이 나다.  정말이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 마져도 그저 적당히 내가 즐거울 만큼만 하길 바라고 있었다.  물론 '일과 자원봉사는 달라요.  자신을 너무 질책하지 말아요' 하면 나를 위로해줄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편한 것을 좋아하고 가능하다면 조금 더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내게 그들이 택했던 불편한(?) 삶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아름다운 헌신에 숭고함이 솟았다. 

  지금도 지구상의 많은 나라는 허덕이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또는 전쟁 중에 있거나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 우리는 매일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요기거리를 달래 줄 음식들이 지천에 있으며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얼마나 깊이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이런 삶을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곳이 반드시 햄린 부부처럼 아프리카 오지거나 저 멀리 가난한 나라이어야지만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선 이 곳,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어렵고 힘든 자들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나의 삶을 나누기에는 어떤 곳이든 망설일 이유가 없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나는 고아원에 매달 일정 금액을 후원한 적도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눈에 띄면 도와주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부나 일시적인 선행만으로 인간된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 안에 그들을 향한 얼마만의 온기와 온정을 담았던지도 말이다. 

  물론 나는 또 이것들을 잊고 바쁜 나날들을 살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역시 더 편한 삶만을 꿈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토록 선하고 아름다운 삶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인류를 위해 바쳐지는 육신이 있다는 것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도울 수 있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아직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땅 위의 모든 자원봉사자들과 인류를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놓는 그들에게 가슴 깊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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