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쓰는가?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나의 약속장소는 항상 서점이다.  일찍 도착해 기다리게 되는 날에는 읽을 거리도 많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그야 말로 나의 초대형 서재(?)인 셈이다.  또 만나기로 한 사람을 위해 갑작스레 한 권의 책을 고르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역시 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읽게 된 책이다.  어쩌다보니 2009년 새해 첫 날 읽은 책이 되었다.  <왜 쓰는가?> 폴 오스터의 책으로는 <타자기를 치켜세움> 이후 두 번 째다.   

  많고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남은 약속 시간동안 충분히 읽을 분량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책장을 열자 붉은 선이 그어진 노트가 펼쳐졌다.  그 위에 새겨진 글자는 컴퓨터로 찍어낸 필체가 아니가 손글씨체였다.  '이 책 뭔가 아주 사적인 느낌을 주는군'  그렇게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을 덮은 후의 느낌 역시 같았다.  '참으로 사적인 책이야.'  누구에게?  폴 오스터 자신에게!   

  이 책은 짧은 폴 오스터에게 있었던 일화들을 기록한 자전적 메모(단편이라기도 꽁트라기도 뭔가 부족해 ^^;;)들이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어린시절 굉장히 좋아하는 야구선수를 만났는데 아무도 펜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인을 받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단다.  그 이후부터는 그런 날을 대비해 펜을 항상 가지고 다니게 되었고 그 펜은 폴 오스터에게 무언가를 끼적거리는 습관을 가져다 주었고 그로 그는 작가가 되었다고 회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나도 메모지나 펜이 없이는 길을 나서지 못한다.  갑작스레 내 머리와 가슴을 옮겨줄 것들이 없을 때는 참 답답하다.  그것이 일상에 대한 단상이거나 편린을 기록하기 위함 뿐 아니라 급히 누군가에게 편지 아닌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많기 때문이다.  냅킨, 영수증, 종이 봉투등은 나의 편지 패드가 되어 주었다.  어쩌다 깜빡 잊은 날 한 자루, 한 자루 사들고 다닌 볼펜 수를 보면 아마 평생을 쓰고도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폴 오스터도 우연히 갖고 다니게 된 펜으로 무언가를 쓰게 되고 그것이 작가가 되게 한 계기라 믿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 어떤 재능 있는 작가도 쓰지 않으면, 꾸준히, 정신없이 쓰지 않으면 결코 훌륭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화를 제외하고 이 사적인 기록들의 모음은 내게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한 편으로는 폴 오스터이기에 이런 별스럽지 않은 글도 책으로 묶여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내심 부러웠다.  역시 명망있는 작가란 그의 말 한미다가 활자로 남길 구실이 되고 단 하나의 문장이 종이에 새겨질 위대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대단할 것 없는 한 권의 책은 그의 모든 기록을 가치롭게 소중히 여겨주는 출판사의 마음이겠지.  그러나 이 얇은 책을 양장으로 만들고 가름끈까지 넣어 제작을 한 것은 지나친 포장이었다.  이 책의 분량으로 보나 내용으로(폴 오스터씨, 죄송해요) 볼 때는 한 권의 책에 부록 정도로 붙여도 좋을 법했는데 이 얇은 책은 왜 이토록 갖출 것 다 갖춘 모양새로 나와야 했을까?  폴 오스터 팬들의 소장욕을 자극하고자 계산한 것이 아니었을지.  개인적으로는 글로나 책으로나 많이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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