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더라면
티에리 코엔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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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우연, 우연이라....  책을 읽는데 '정말 우연'이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책장 앞에서 눈을 감고 집어든 책이 이 책이었소' 하는 경우?  아니면 '친구한테 선물받았어요.  그래서 읽게 된 책이죠' 같은 경우?  가만 생각해보면 그 중에도 선택은 따랐기 마련이다.  그냥 집어 들었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읽지 않을수도 있고 선물을 받았더라도 반드시 읽기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기에.  다시 말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이다.  음악처럼 그냥 귀를 통해 들려오는 것도 아니고 영상처럼 눈을 통해 보여지는 것도 아니다.  책은 반드시 '능독적으로 읽어나가는 행위를 통해 진정으로 읽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입수하게 된 경위는 읽고 싶은 책들을 카트에 담다가 도서구입총액이 구입목표치에 약간 미달했고 그러다 눈에 띈 이 책을 카트에 담음으로써 나름의 완벽하게 빵빵한 카트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쓰잘데기 없어보이는 이야기를 뒤에서 하도록 하자.

  이 책은 자살을 시도했던 한 남자 제레미의 이야기이다.  자살미수(어쩌면 자살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이런 애매함을 못견디는 자라면 직접 한 번 읽어보도록)에 그친 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이어지는 삶의 고통.  스스로의 의지로 이겨낼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  정말 안타깝고 답답했다.  나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생경하고 낯선 것들로 가득차 있다면 어떨까.  그것은 매 순간이 두려움일 것이다.  낯선 장소, 알지 못할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이해못할 관계들.  더군다나 이것들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들이라면.  나는 차리라 제레미가 죽음에 성공했어야 한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나갈수록 내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것들을 내 마음대로 내 의지대로 헤쳐나갈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 땅에 태어났고 그리고 인생이라는 것도 더불어 나에게 주어졌다.  그 인생이라는 것은 나의 것이고 또한 내 삶안의 것들은 대부분이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나의 선택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부모, 인종, 성별, 성씨 등등)  나는 오늘 점심을 먹고 누구를 만날지 그 사람과 어떤 곳에서 어떤 차를 마실지 선택하고 저녁에는 텔레비젼의 어떤 프로그램을 시청할지를 선택할 수 있고 할 수 있고 몇 시에 잠들지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여 읽을 수도 있다.  이처럼 인생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우연처럼 주어지지만 우리는 수없이 많은 찰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연으로 시작한 것들도 모두 우리의 선택으로 그것이 내 삶안에 여전히 머무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이것을 그 순간 몰아낼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렇게 주도적으로 내 삶을 영위할 수 있음에 감사한 일이 있는지, 내가 선택할 수 있음을 감사한 일이 있는지.

  최근들어서 심심찮게 자살을 보게 된다.  얼마전에도 연예인 C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반면 살기 위한 몸부림 끝에도 죽음을 맞게 되는 사람들을 본다.  이들 모두에게 탄생과 동시에 생이 주어졌다.  그러나 어떤 생은 견디기 힘든 일 투정이며 죽음으로 그것을 종결짓고 싶어하고 또 다른 생은 제대로 해보지 못한 일들이 떠오르고 사랑할 사람들을 놓을 수가 없어 끝나지 않기만을 바란다.  이들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로 생을 바라보는 자세다.  그리고 생을 살아내는 자세다.  이 책에서는 그 두 인물을 제레미라는 한 남자를 통해 모두 볼 수 있었다.  때로는 다 버리고 싶은 그 찰나의 삶이 때로는 정말 간절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은 삶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푸시킨의 시 중 '삶의 그대를 속일지라도' 에는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라는 싯구가 있다.  미래를 향해 달린다, 앞만 보며 전진한다....  등등.  이처럼 삶이 오로지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설사 자신이 목표로한 미래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은 좀 더 나은 미래를 여전히 갈망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도 미래를 꿈꾸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내일 죽게 될 자도 미래를 갈망할 것이다.  그러나 미래라는 순간이 반드시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어떻게 살아내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지금을 나답게 사는 일이 아닐까 말이다.

  이제 서두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보도록 하자.  인생은 우연처럼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생 속의 모든 것이 우연은 아니다.  생각해보라.  아주 많은 부분이 당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선택은 내 생을 만들어갈 재료들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반면 나의 선택이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있다.  때로는 이 모든 선택들이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오판으로 인한 그릇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재를 잘 살아가다보면 신중하게 삶의 재료들을 선택하게 된다면 내가 바라는 미래는 분명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당신, 아직도 잃은 것과 상처받은 것과 절망의 순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가?  내 인생은 편안한 소파에 기대앉아 드라마보듯 바라만 보고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은 반드시 '내 스스로 능동적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 진정으로 값진 삶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 속 카트에 담겨있는 것들이 불완전해보이고 아쉽게 느껴지는가?  아직까지 내 인생의 카트는 빈 공간이 많으며 그 곳에 채울만한 찬란하게 아름다운 것들과 값진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이렇듯 나의 삶은 내가 DIY 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 어떤 것으로 채워나가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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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 Free - 자기를 찾아 떠나는 젊음의 세계방랑기
다카하시 아유무 글, 사진, 차수연 옮김 / 동아시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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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전부터 참 읽고 싶던 책이었다.  뭐가 그렇게 나를 끌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노란빛의 상큼한 표지와 아이의 사랑스러운 미소 때문이 아니었는지.  여하튼 나는 이 책을 한참이 지난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다카하시 아유무라는 일본인의 신혼여행을 담고 있다.  무려 1년 8개월의 여행이니 일반적인 신혼여행과는 조금 다르지만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여행이니 신혼여행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겠지.  아, 여행의 내용 역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신혼여행과는 조금 다르다.  그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자.    

  이 책은 모두 7chapter로 나누어져 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시아, 유라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와 북미, 일본 이렇게다.  다카하시 아유무와 아내가 함께 여행을 하고 그 곳에서 찍은 사진들과 단상들을 옮겨 놓은 책이다.  이 책을 읽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앉은 자리에서 펼친 자리에서 다 읽어낼만큼 읽을거리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일기도 문학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그것이 너무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예술적이거나 문학적이지 않다면 나는 그런 것들을 구태여 문학으로 보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이 딱 그랬다.  이 책의 저자 다카하시 아유무가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출간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래서 이 책이 탄생되었을 것'이라는 다소 무례한 생각이 든다.  이런 사진과 원고를 가지고 다른 출판사를 통해 출판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무례하지만 이런 사진과 원고는 그냥 개인의 노트에 붙여두고 오래토록 꺼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너무 행복한 순간(결혼 직후)의 여행기였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개인적인 감삼들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쉽게 말해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연극인 셈이다. 

  앞서 말한 바처럼 일반적인 신혼여행과는 조금 다르다고 했는데 쓰레기 더미에서 고물을 찾고 그것을 팔아 여행 경비를 마련하거나 이웃들을 돕거나 하는 식의 여행이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경비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경비를 조달하고 충당하는 몇 몇 사람들의 여행기를 들을 때면 정말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타지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그 곳에서의 찰나를 제대로 살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도전적인 여행 발상은 참 신선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여자라서인지 읽는 내내 아내에 대한 사랑의 메세지와 사랑의 글과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에게 이처럼 사랑을 받는다는 일은 언제나 흥분되고 설레는 일이기 때문이다.  너무 기대를 했기 때문인지 그만큼의 아쉬움이 기억에 남는 책이다.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  무엇이든 그리고 쓰기 좋은 편한 무지의 노트 한 권과 카메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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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끝내는 퍼펙트 프라하 - 초이와 돌다리의 색깔있는 여행 01
최미선 지음 / 안그라픽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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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여름, 남편과 체코여행을 계획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일 중 하나가 체코를 제대로 소개하고 있는 훌륭한 여행 책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몇 권의 여행서적을 고르기로 했다.  당시 우리는 체코 중에서도 프라하만 여행할 계획이었기에 키워드를 ’프라하’로 검색했는데 그 때 검색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한 권으로 끝내는 퍼펙트 프라하’ 

  체코 여행서적 몇 권 중, 남편이 이 책을 제일 먼저 읽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시종일관, "이번 여행 너무 기대대" "이 책 너무 좋다.  당신도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을 읽어봐" 하며 한껏 들떠 있었다.  남편이 이 책을 다 읽고 나도 앞서 읽던 책을 다 읽고 ’어디, 나도 한 번 읽어볼까?’ 하며 이 책을 집었다.   

  자유롭게 나열된 큰 사진들, 여행지의 요점을 빠뜨리지 않은데다 딱딱하지 않은 편안한 여행기라 더욱 좋았던 것 같다.  게다가 아내가 글을 쓰고 남편이 사진을 찍었단다.  부부여행가라니.  참 우습게도 무엇엔가 어떤 공통점을 찾게 되면 그것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우리 부부 역시 부부여행가가 쓴 프라하 여행기에 몹시 설렜다.   

  이 책은 프라하를 담고 있었다.  대개 체코여행서적은 프라하와 그 밖의 도시들을 적절히 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책들도 대부분의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를 60% 이상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 책의 표제처럼 ’프라하’만을 위한 책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 밖의 다른 도시의 여행지도 담고 있지만 그것들은 정말 대표적인 곳들만을 담고 있다.  어쩌면 프라하만을 여행하기로 했던 우리에게는 이처럼 잘 맞는 책은 없는게 당연한게 아니었을지.   

  프라하를 다녀온지 두 달 정도가 지났다.  이 책의 서평을 기록하기 위해 다시 책장에서 책을 빼들었다.  여행기라는거, 참 매력적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그토록 설레게 하더니 그 곳을 다녀온 지금, 내게는 너무 큰 그리움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는 그토록 생경하고 낯설고 신비롭기만 했던 모든 사진들이 이제는 그 때 그 곳에 있던 그 때를 돌이키게 하고 그 곳에서 보았던 많은 것들이 지금도 잘 있을지 궁금해지고 그리워지니 말이다.   

  책을 다시 펼치니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그 때, 그 곳을 꿈꾸던 우리 부부의 설레임을 가득 담은 호흡과 눈길이 이 책에 머물렀기 때문일지도.  한 부부의 여행기가 이제는 우리 부부의 여행기가 되었다.  그들이 앵글에 담아왔던 그 모든 풍경들은 우리 가슴 속 앵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너무나도 아름답던 빨간 지붕의 프라하 시내들, 유난히 마음에 들던 도로의 잿빛 벽돌 조각들.  참 많이 생각난다.  프라하가 그리워질때면 다시 이 책을 꺼내야겠다.  한 번 더 그 곳을 밟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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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못 읽는 남자 - 실서증 없는 실독증
하워드 엥겔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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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못 읽는 남자>라....  무슨 책이지?  이 책의 표제에 호기심이 일었다.  올리버 색스 추천이라고?  올리버 색스라면 작년 읽었던 '뮤지코필리아'의 저자였다.  음악을 인지하는 뇌의 활동을 연구한 책으로, 인상적으로 읽었다.  그 자가 추천하는 책이라는 이유에 또 한 번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 얼마지 않아 이 책을 읽고 말았다.  이런 기이한 일이 실제할 수 있을지가 몹시 궁금했기에 말이다. 

  뭐라고?  글은 쓸 수 있지만 자신의 글을 읽을 수 없는 작가라고?  게다가 모든 것이 뒤죽 박죽 헷갈리게 되고 예전에 기억하던 그 어떤 것들을 기억해내기 힘들어지다니....  이와 같은 고통이 또 있을까?  분명이 활자들이 눈에 보이나 이것들을 해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견디지 못할 고통이자 두려움이리라.  게다가 그가 추리소설 작가라면....  추리소설 작가는 자신의 글을 되읽어보고 여러번의 퇴고를 거쳐 '문제없음'을 확인해야 할터인데,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거의 작가로서의 삶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난 뼛 속까지 작가'라는 자에게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일순간 사라졌다는 것은 너무나 큰 절망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경험없이 그저 상상만으로는 그를 다 헤아릴 수는 없겠으나 그 고통과 낙담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글을 읽지 않고 산다는 것은 정말 갑갑한 일이다.  아주 갑갑한 일이고 말고.  그런데 이 장난과 같은 일을 실제 겪은 자가 있다.  바로 하워드 엥겔이다.

  나라면, 어느 순간 책이나 편지나 신문따위를 읽을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아마 정상적인 읽기를 포기하고 절망하거나 후천적 시각장애인(그러나 여기서 말한 실독증은 시각과는 관련이 없다.) 으로서의 삶을 사는데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하워드 엥겔, 그의 의지가 얼마나 강인하던지, 그는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읽기를 계속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의지에 참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은 정말 큰 용기가 아닐지.  실제로 그는 이 책에서 보여준 것처럼 '읽기'를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히 여겼으며 그의 삶 모두를 다 내어맡긴 행위였다.  그런데 더 이상 그런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 순간 이토록 간절하게 읽고 싶었는지, 또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솔직히, 없었을 것이다.  자음과 모음을 익히고 글자를 알게 되고 단어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생긴 이 '기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일은 결코 없다.  마치 숨쉬기와 같이 자연스러운 이것이 일순간 불가능해지리라는 생각을 한 일은 없는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읽을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읽고 또 쓰고 고치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 책은 내게 여러가지를 일깨웠다.  읽기가 얼마나 소중한 기능이며 생존과 직결된 것인지를.  또 인간의 의지는 그 어떤 불가능도 기꺼이 이겨낼 수 있음을.  또한 우리의 뇌라는 것은 정말 오묘하고 복잡해서 이런 난처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작용하고 우리를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뇌의 이상으로 인해 한 작가가 글 읽기 능력을 소실하게 된 것처럼 모든 의식과 행위를 관장하는 뇌의 위력에 다시금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읽기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꼭 맞는 하나 뿐인 작가'로서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은 하워드 엥겔에게도 깊은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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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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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중권의 <폭력과 상스러움>을 이제서야 읽었다.  이 책은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읽으며 일고 싶어졌던 책이다.  사실 그 책을 통해 난 읽고 싶은 몇 권의 책을 더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들 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이다.  이 책을 읽겠다 혼자 다짐을 하고 아홉여달이 지난 이제사 읽게 되었지만, 아무튼 내게는 제법 서둘러 읽게 된 책이기도 하다.  왜 이토록 이 책이 읽고 싶었냐고?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나는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그래서였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백분토론의 단골손님이기도 한 그의 언변이 얼마나 유창한지, 또 얼마나 논리적으로 탄탄한지 말이다.  솔직히....  솔직히 말이다.  그냥 '진중권, 당신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자!'  내심 뭐 이런 불손한 의도로 이 책을 집었다.  이게 다다. 

  폭력과 상스러움.  폭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자비함과 상스러움이라는 단어의 경박함.  그러나 난 이 표제가 싫지 않았다.  도리어 단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를 훌렁 벗어던질 수 있는 멋진 조합이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책이 담은 내용을 이처럼 함축적인 표제로 쐐기를 박을 수 있음이란.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책에서 말한 그의 개인적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진중권, 그가 이 책을 이리 간단 명료한 두 단어 속에 담았다는 것은 제법 경쾌했다. 

  먼저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자.  이 책은 그의 말을 빌자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인용'과 거기에 붙인 그의 코멘트로 이루어져 있(머리말에서)'다.  다시 말해, 한 문장을 씹고 삼켜 제 나름대로 걸쭉하게 배설해냈다는게 아닐지.  그러니 나는 이제 진중권의 똥맛을 볼 일만 남았다.  얼마나 이쁘게 잘 싸놨는지 말이다.  오오, 이 책은 정말 아주 특별할 뻔 했다.  또 다시 그의 말을 빌자면, '실현되지 않았지만 원래의 의도는 인용에 붙인 코멘트마저도 남의 말의 인용으로 채우는 것이었(역시 머리말에서)'단다.  이 책이 이렇게 쓰여졌다면 필시 나는 읽기도 전에 이 책을 나의 베스트에 단숨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바로 발터 벤야민의 <파사주>에서 '인용부호를 붙이지 않고 인용을 하는 법....(또 머리말이야)' 이라는 대목을 거론했다.  한 마디로, 그는 인용구의 코멘트들을 전부 남의 말의 인용으로 채우지는 못했으나 결국 인용구를 붙이지 아니하고 남의 말의 인용으로 채우려는 자신의 의도와 그리 멀지 않게 접근한 글이라는 점을 짚어 주었다.  논증 없이 주장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것을 아는 자 다운 서술이 아닌지.        

  그런데 이는 비단 책의 머리말에서 뿐만 아녔다.  1장 폭력에서 첫 chapter인 '마이너스1의 평화' 를 읽고는 감탄했다.  '오호~ 최고봉 논객다워'  그는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에서의 '비폭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화해의 희생양을 하나 뺀 모든 사람의 일치다' 라는 인용구에 붙임글이었다.  아, 르네 지라르라는 자가 말한 이 문장은 그의 이름처럼 얼마나 지라-ㄹ스러운지 모르겠다.  아니, 그렇지 않다면 이 문장을 한국어로 초기번역한 자의 죄로 치부해야 할까?  그런데 진중권은 이 문장을 아주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것도 아주 알아 듣기 쉽게.  (근데 뒤로 갈수록....  음, 소위 말해 지식인만이 해독할 수 있을 법한 어투와 단어로 내게 큰 소외감을 안겼지만 말이다.)  나는 이 chapter를 읽고 그에게 살짝 매력을 느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근데 이 매력이 오래갈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폭력에 이어, 죽음, 자유, 공동체, 처벌, 성, 지식인, 공포, 정체성, 민족, 힘, 그리고 프랙털을 끝으로 그의 엑스리브리스는 끝이 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화가 나기도 했고(그가 거론한 자들과 사건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이 책을 읽었음에) 답답하기도 했고 또 톡쏘는 탄산음료 한 잔을 원샷하고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한 알싸함을 느껴야 했다.  이 여러 cahpter 중 특히 내게 관심이 있었던 chapter는 5장 처벌이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내 관심사이자 고민의 대상이 되어왔던 사형제 존치, 폐지에 대한 대립과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우스 12세의 <국제형법에 관하여>에서 형벌의 보복 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p.127' 라고 빌어온 것을 보면 굳이 가릴 필요는 없겠지만 그는 사형제 폐지론자인 듯.  이건 뭐 중요한 건 아니다.)  여하튼 그는 사회적인 이슈와 화두를 곱게 지나치지 못한다.  꼭 칼질을 하든, 똥칠(어떤 것을 소화하고 자기 방식대로 뱉아낸다는 뜻으로 쓴 말이다.)을 하든 하고야 만다.  어쩌면 이는 이 시대를 사는 생명력있는 철학자가 되고 싶음이 아닐런지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고 싶다.  혹자는 '지가 뭔데 자꾸 여기 저기 들쑤셔?'' 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 자가 정말 수준높은(아무도 규명한 일은 없음) 논객이 맞나, 자질이 의심스럽다고 생각되는 대목 또한 여럿 있었다.  이를테면, 독자의 무지와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이 단죄하고 정죄할 자에 대해서는 거침없다는 점이다.  왜 그러한지, 그들이 왜 그리 당신께 욕을 잡숴야 하는지는 거두절미하고 막말을 해댄다.  어쩌면 그의 이런 태도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거침없고, 일부러 고상한 척 하지 않는 그의 언변으로 인해 때로는 통쾌해지기도 하고 우리와 같은 단어의 욕지거리를 하는 자라는데서는 동질감을 느끼며 그에게서 매운 고춧가루의 후끈함을 찾는게 아닐까 싶다.  이에 너무 심취하다보면 이게 무김치인지 배추김치인지도 모르고 그저 매운 맛만 알게 되는게 아닐지 염려스럽다.  비슷한 예로 와이텐 뉴스의 전유경기자가 변희재를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고 공중파 방송에서 말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놈이 듣보잡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신인데 왜 우리가 그를 듣보잡으로 여겨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듣보잡이고 아니고를 판단하는 기준은 각 개인에게 있는 것이다.  누가 감히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몹쓸 것으로 단죄할 수 있느냔 말이다.  (나 살짝 흥분한듯;;) 

  각설하고 이 책은 굉장히 강렬하다.  그가 빌어온 인용구들에서부터 그러하고 '김이 모락모락나게 예쁘게 눈' 그것들은 더욱 그러하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그를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진중권이라는 자에 대해, 그의 사유방법에 대해 조금이나 접근하게 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미학 오디세이>도 한 번 읽어보련다.  아무튼 이 책은 나에게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었다.  진중권씨,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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