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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못 읽는 남자 - 실서증 없는 실독증
하워드 엥겔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책, 못 읽는 남자>라.... 무슨 책이지? 이 책의 표제에 호기심이 일었다. 올리버 색스 추천이라고? 올리버 색스라면 작년 읽었던 '뮤지코필리아'의 저자였다. 음악을 인지하는 뇌의 활동을 연구한 책으로, 인상적으로 읽었다. 그 자가 추천하는 책이라는 이유에 또 한 번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 얼마지 않아 이 책을 읽고 말았다. 이런 기이한 일이 실제할 수 있을지가 몹시 궁금했기에 말이다.
뭐라고? 글은 쓸 수 있지만 자신의 글을 읽을 수 없는 작가라고? 게다가 모든 것이 뒤죽 박죽 헷갈리게 되고 예전에 기억하던 그 어떤 것들을 기억해내기 힘들어지다니.... 이와 같은 고통이 또 있을까? 분명이 활자들이 눈에 보이나 이것들을 해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견디지 못할 고통이자 두려움이리라. 게다가 그가 추리소설 작가라면.... 추리소설 작가는 자신의 글을 되읽어보고 여러번의 퇴고를 거쳐 '문제없음'을 확인해야 할터인데,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거의 작가로서의 삶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난 뼛 속까지 작가'라는 자에게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일순간 사라졌다는 것은 너무나 큰 절망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경험없이 그저 상상만으로는 그를 다 헤아릴 수는 없겠으나 그 고통과 낙담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글을 읽지 않고 산다는 것은 정말 갑갑한 일이다. 아주 갑갑한 일이고 말고. 그런데 이 장난과 같은 일을 실제 겪은 자가 있다. 바로 하워드 엥겔이다.
나라면, 어느 순간 책이나 편지나 신문따위를 읽을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아마 정상적인 읽기를 포기하고 절망하거나 후천적 시각장애인(그러나 여기서 말한 실독증은 시각과는 관련이 없다.) 으로서의 삶을 사는데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하워드 엥겔, 그의 의지가 얼마나 강인하던지, 그는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읽기를 계속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의지에 참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은 정말 큰 용기가 아닐지. 실제로 그는 이 책에서 보여준 것처럼 '읽기'를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히 여겼으며 그의 삶 모두를 다 내어맡긴 행위였다. 그런데 더 이상 그런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 순간 이토록 간절하게 읽고 싶었는지, 또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솔직히, 없었을 것이다. 자음과 모음을 익히고 글자를 알게 되고 단어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생긴 이 '기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일은 결코 없다. 마치 숨쉬기와 같이 자연스러운 이것이 일순간 불가능해지리라는 생각을 한 일은 없는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읽을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읽고 또 쓰고 고치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 책은 내게 여러가지를 일깨웠다. 읽기가 얼마나 소중한 기능이며 생존과 직결된 것인지를. 또 인간의 의지는 그 어떤 불가능도 기꺼이 이겨낼 수 있음을. 또한 우리의 뇌라는 것은 정말 오묘하고 복잡해서 이런 난처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작용하고 우리를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뇌의 이상으로 인해 한 작가가 글 읽기 능력을 소실하게 된 것처럼 모든 의식과 행위를 관장하는 뇌의 위력에 다시금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읽기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꼭 맞는 하나 뿐인 작가'로서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은 하워드 엥겔에게도 깊은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