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한 권 들고 나는 상하이로 간다!

 

Go to Shanghai with book 

 

 안녕하세요?  김동운의 <상하이> 한 권 들고 떠난 상해 여행을 소개하려 합니다.  

책에서 봤던 곳을 직접 찾아가보거나 이용해 본 것들을 쭈욱~ 안내해드릴께요. 

현재 상하이에서는 2010 세계 엑스포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답니다. 

올 여름방학 혹은 휴가에 상해여행을 하신다면 엑스포도 보고  

상해도 보는 1석 2조가 되시리라 생각해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바로 여기!  이 집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짐을 풀고 인민광장 쪽으로 나왔어요.
 여행 전에 '깐궈지' 라는 맛집이 있다는 것을 '상하이' 책에서 보고 그 곳을 찾았습니다.
아주 쉽게 찾았답니다.  닭볶음 전문점이라더군요. 

 



정말 사람들이 많더군요.  대기하고 앉아있다가 테이블에 자리가 나면 테이블로 갑니다.
우리나라 맛집들과 시스템이 비슷해요.  여기서 제목과 같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어찌된 일인고 하니 점원이 와서 메뉴판을 내밀더군요.  온통 중문.
게다가 점원이 중국어로 말을 겁니다.  "쏘리 위 아 코리언" 그래도 중국어로 샬라샬라.
에라잇~ 모르겠다.  그림보고 시키자.  접시에 곱게 담겨 맛있어 보이는 걸 2개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런 철판요리가.  메뉴 사진에서는 접시에 담겨 있었는데....
"자기야 2개 시켰는데 왜 이걸주지?  여기 안에 두 가지가 들어있나봐. 어서 먹자"
먹고있는데....  대형사고 발생.  점원이 똑같은 큰 팬에 담긴 요리를 또 가져오더군요.
음식을 가져다주는 점원도 놀라더군요.  그제서야 상황파악.
우리가 시킨 것은 큰 팬 요리 두개였던 것입니다.
음식을 놓아주려던 점원이 매니저를 부르러가더군요.
매니저가 왔어요.  다시 주문을 받은 점원이 불려왔어요.  몇 분을 그렇게 옥신각신하더군요. 
알아듣지 못하지만 대략 이런 분위기.
"매니저님 주문한 걸 갖다주려는데 이미 먹고 있길래 확인해보니 이 분들이 이걸 두 개 시켰더라구요"
 

"매니저?  그래??  이 인간들 돼지군.  어쩜 이리 많이 먹어?  누가 주문받았어?"
"제가 주문받았어요.  근데 저도 몰라요.  영어로 뭐라고 하고 틀림없이 두 개를 가르켰다구요"
결국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임 쏘리.  위 아 코리언.  위 돈 노 차이니스.  위 띵크 이너프.  벗 잇즈 매니, 매니.... 쏘리"
여전히 중국어로 답합니다.  아놔~  영어 좀 해봐요.  답답.
결국 재스춰를 이해하더니 "오케이" 합니다.  그리고는 영수증에 하나를 볼펜으로 벅벅 지워주더군요.
아, 정말 소통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답니다.  휴~ 

 




조금 정신이 들고 맛집 찾았다고 좋아라 하며 사진도 찍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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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낭독 훈련 실천 다이어리 - 전3권 (책 + MP3 CD 1장) - 하루 20분 영어 낭독 훈련 실천 다이어리
박광희. 캐나다 교사 영낭훈 연구팀 지음 / 사람in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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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내가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초등학교 6학년때 시작된 해외펜팔 때문이다.  그 해외펜팔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데 당시 나는 외국인 친구들의 이국적인 생김새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리고 무작정 한 알선 단체를  통해 해외펜팔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해외펜팔을 신청하면 외국인 친구의 주소와 함께 조그마한 소책자가 딸려 왔다.  그 책에 있는 예문을 옮겨 한 통의 편지를 완성해 보냈고 몇 주 뒤 거짓말처럼 답장이 왔다.  그 때의 설렘이란.  나는 사전을 끼고 앉아 편지를 해석하고 또 답장을 만들고....  그러다 해외펜팔이 몇으로 늘면서 다른 친구가 써 보내온 문장을 단어만 바꾸어 변형하여 쓰기도 했다.  이런 재미가 내게 영어를 좋아하도록 만들었다. 

  '오~ 그러면 영어 잘하시겠네요' 할런지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언어는 Feel이다'고 생각한다.  어설픈 콩글리쉬를 구사해도 내 친구들은 용하게 이해했고 답장을 보내왔다.  나 또한 문법을 모르지만 그들의 문장을 해석할 수 있었다.  지금도 해외펜팔들과 편지를 주고 받는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영어를 잘하고 싶고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변함없다.   

  나에게 이 책은 정말 딱이다.  영어를 Listening & Speaking(듣기*말하기), Writing(작문), Reading(독해)로 보자면 writing과 reading은 소싯적부터 하던데 이것이라 남들로부터 '잘한다'라는 소리를 꽤나 듣는 편이다.  문제는 요 Listening과 Speaking에 있다.  그나마 Listening은 낫다.  그런데 당체 Speaking은 개선하기가 힘들었다.  Speaking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하는데 주변에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고 더욱이 네이티브 사운드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헤스셋을 준비하고 Yahoo 챗팅에 들어가 외국인들과의 대화(?)를 해보기도 했다.  나는 10분을 채 말할 수 없었다.  간단한 인사, 내 소개만 하면 그 뒤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상대편은 유창하게 영어로 말해댔고 그들은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한 나에게 "Hello?  Hello?  Can you hear me?만을 연발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안되겠다' 포기.  해외여행을 해도 영어를 잘하는 남편이 말하고 나는 옆에서 주섬주섬 듣고 "저쪽으로 가라는거지?  쭉 가서 좌측으로 돌면 나온다고 했지?" 하고 남편에게 확인하는게 전부다.  들리기는 들리는데 나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왜?  틀릴까봐.  내 구린 발음에 저 외국인이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지.  '국위선양을 위해서라도 나같은 사람은 입을 꼭 다무는게 미덕이야.' 하며 아껴왔던 Speaking.  그렇게 'Speaking에 대한 막연한 간절함'만 느끼다가 가는 세월, 오는 세월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발견한 이 책.  이 책으로 공부를 한지는 불과 얼마되지 않았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매일 이 교재를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정해진 분량을 소화하기에는 솔직히 20분으로는 부족하고 30분이상은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영어 낭독 단계가 있다.  첫 단계: 오디오를 반복해서 듣기, 두번째 단계: 텍스트를 보고 오디오를 들으면서 따라읽기, 세번째 단게: 텍스트없이 오디오만 들으며 따라해보기,  네번째 단계: 텍스트만 보고 읽기다.  이것을 수회씩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따분하지 않다.  또 반복에 반복,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는 단계이다보니 뒤로 갈 수도 매끄럽게 읽혀지고 '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잘한다 하겠어' 싶은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니 말이다.  또 구린 발음,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이 단계를 따라 하다보니 드는 생각!  역시 영어는 직접 부딪쳐야 한다.  많은 책들이 '이 책 한 번 읽어봐. 자고 읽어나면 영어가 술술나와' 하는 서커스 약 파는 식의 책들도 굉장히 많이 봤다.  자고 일어나도 그 다음 날도 나는 그대로 콩글리쉬의 나일 뿐 책이 약속하던 영어 술술 나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왜하냐면 이 책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책들처럼 '자신들이 알고 있는 비법' 이 있다고 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훈련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에 조금 거들고 싶다' 가 이 책이 내게 전한 메세지다.   

  모국어를 배울때 어땠는가? 옹알옹알 말하고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는 부모를 통해 많이 들으며 익혔다.  영어 역시 같은 것 같다.  무조건 옹알옹알 말하고 듣고 따라하는 수 밖에 없다.  개인차에 따라 좀 더 빨리 배우고 늦게 배우고의 차이지 이 과정을 아주 꾸준히 실천하고 노력해도 못하는 영어란 없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영어 비법서가 아니다.  영어를 말하고 듣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이어리다.  올 컬러에 재미있기도 해서 매일 30분 정도 투자하는 일이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책은 3권으로 분권되어 있는데 3번째 책은 동화다.  와, 어서 저 단계에 이르렀으면.  삽화가 어찌나 이쁜지 훌쩍 3권으로 가버리고 싶기까지 하다.  그러나 차근차근.  하루에 30분이라면 설령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 그리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매일 30분을 듣고 말하는데 변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루 30분 안에도 처음 봤던 텍스트도 반복해서 말하기를 거듭하다보니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지는데 꾸준히 하다보면 나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듯.  나는 옹알이부터 시작할테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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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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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유원 교수의 강연회가 있을 예정인데 참석하기 전 한 권 정도는 저서를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읽은 책이다.  강유원 교수의 많은 저서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철학박사라 그런지 대다수 주제가 '철학'이었고 그의 서평집들이 두어권 출간되어 있었다.  철학 서적들은 대학교재 쯤 되어보이는 묵직함에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져 포기했고 서평집들은 패스.  결국 제일 얇고(^^;;) '책'이라는 주제를 담은 이 소책자를 선택! 

  철퍼덕.  이 무슨 소린가 하면 이 책 <책과 세계>를 다 읽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는 소리다.  아아, 이럴 수는 없어.  굉장히 어려웠다.   책은 얇을지언정 이 안에 담긴 내용은 왠만한 학술서적을 통째로 믹서기로 갈아놓은 듯한 수준이다.  이 좌절감.  간혹 이렇게 넘지 못할 산과 같은 텍스트를 만나게 되면 나는 한 동안 헤어나질 못한다.  '왜 내가 이것을 이해할 수 없는가?' '어떤 것들에 더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달라지려나?'  급기야 시건방지게 저자를 원망하기도 한다.  '뭐야? 왜 이렇게 어려워? 이 자는 가독성을 살린 글쓰기가 전혀 안되는군!' 하는 것도 잠시.  곧 다시 한숨....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더라도 설명해줬는데도 이해를 못하는 내 자신은 결코 용서 못한다.  그래, 나는 이런 면에서 있어서는 스스로에게는 절대적으로 가학적이다.  그렇지만 OTL 자세는 이제 그만. 

  저자는 이 책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썼다고 책 날개에 밝히고 있다.  '하나는 고전에 대한 자극을 주면서 그것들로 직접 다가가는 길을 알려주고, 다른 하나는 그 책들을 읽기 전에 미리 그 책들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 있고 대화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목적이든지 이루어지면다면, 이 책은 불필요해진다.  결국 이 책은 잊혀지고 버려지기 위해 쓰여진 셈이다.' 라고 말이다.  와, 굉장히 기대가 돼.  안그래도 요즘 매 달 읽는 책 중에 한 두권은 반드시 고전을 읽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멋져.  잊혀지고 버려지기 위해 쓰여진 책이라니. 꺄악~ 그것도 잠시.  책장을 넘기고 나는 어리둥절 해졌다.  너무나 철학적인 문장들.  이 정도일 줄이야.  적어도 내게 저자의 첫 번째 목적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플라톤의 <국가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이와 같은 고전들을 너무나도 읽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러한 것들에 완전하리만큼 몽매한 내가 과연 무엇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어라?  이거 아직까지 OTL 자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듯 한데?)  그러나 다른 하나의 목적은 부디 훗날 내게도 적용되길 기대한다. 

  애석하게도 이 책은 내게 '무진장 어려워 젠장' 이라는 굵고 단명한 깨닳음을 주었다.  언제까지나 내 입에 혀처럼 노는 텍스트만을 읽을 수는 없는 일이고 보다 수준 높은 독서와 앎의 세계로 나를 초대할 거대한 고전들에 맞서 싸워야 함을 처절하게 깨닳았다.  책 꽤나 읽는 나의 나의 실상을 부끄러우리만치 발가벗겨 놓았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책도 모르고 세계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자다.  이 안에서 안주하느냐 아니면 좀 더 넓은 세계를 마주하느냐는 나의 선택에 달린 일이리라. 

  이런 중에서도 내게 인상깊은 구절은 존재했는데 그것들을 옮겨보자.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동안 살아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책이 그들의 삶에 파고들 여지는 전혀 없으며 그런 까닭에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과 같은게 있을 리 없다.  책을 읽지 않는 그들은 자연과 자신의 일치 속에서 살아가므로 원초적으로 행복하다.  또한 그들은 지구에게도 행복을 준다.  지구가 원하는 것은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순환의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인데 그들은 나무를 베어 그걸로 책을 만들고 한쪽 구석에 쌓아놓는, 이른바 순환의 톱니바퀴에서 이빨을 빼내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생을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나 얼룩말처럼 살다가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겨서 잠든다.  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번의 자기반성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자가 지금까지의 얼룩말 잡아먹기를 반성하고 남은 생을 풀만 뜯어 먹으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 것처럼.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오늘날의 사람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책을 읽은 이는 전체 숫자에 비해서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하고 있다고 하여 반드시 옳은 일은 아니며, 압도적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수의 책 읽는 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음모임에 틀림없다.(p. 3~4)' 

  섬뜩한 글이다.  '독서는 중요하다. 이러쿵 저러쿵....  그래서 읽어야만 해' 하고 설득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무섭고 날카롭다.  '평생 그렇게 짐승처럼 살다가 죽고싶니?'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까?  그는 도리어 인간은 병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육체적 병이나 정신적 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앎에 대한 갈망, 지적 결핍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깊이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 '앎'이란 굉장히 중요하다.  이러한 '앎'의 재료들을 조합해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프리즘을 갖게 된다.  나만의 그 프리즘을 통해 내게 보여지는 세상만큼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풍부한 재료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앞에 펼쳐지는 세계란, 다를 수 밖에 없다.  쉽게 말해, 나 역시 이 텍스트들을 읽기 위한 '앎'이 부족했기에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아는만큼 보인다'가 바로 이러한 것들을 깔끔하게 집약한 것이 아닐지.  나는 항상 병들어 있기를 원한다.   '지적 결핍'을 느끼고 싶다.  그게 내게 독서와 학업에 대한 동기가 되고 크게는 삶의 핵심 키워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내게 도전이 된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조금은 다를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배움을 위해 방황하고 어지러이 편력하고 싶다.  결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텍스트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 이상의 일깨움을 준 책이기에 나는 이 책이 좋다.  그리고 다시 읽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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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떠난 마카롱 - 트렌드의 탄생과 확산의 미스터리
기욤 에르네 지음, 권지현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언듯 보면 트렌드나 사회학을 다루고 있는 책 같지는 않다.  (아니 사실 여러번 봐도 그렇다)  책 표지가 비슷한 분야의 다른 책들과는 많이 다르다.  표지만 보았을 때는 한 권의 소설책 같다.  이러한 정보서들이 주로 채택하고 있는 책들에는 그 그룹들을 상징하는 이미지나 분위기가 있다.  그것들을 하나의 트렌드라고 본다면 이 책은 그런 트렌드를 과감하게 깬 책이 아닐까 싶다.  

  <파리로 떠난 마카롱> 나는 '마카롱'이 무엇인지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책을 펴기 전까지만 해도 '건장한 청년 이름'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프랑스 과자란다.  오오~ 맙소사.  국내에도 상륙해서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는 이 간식을....  나는 여지껏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물론 먹어본 적도 없다.  세계적 트렌드가 된 이 간식을 나는 어찌해서 한 번도 보지도, 먹지도 못했을까.  역시 나는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  집단의 취향에 무관심한 사람?  음.  나는 내가 마카롱을 먹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고 또 가급적 빠른 기회에 '마카롱'을 먹어보아야 겠다고 생각 중이다.  이것이야 말로 트렌드를 형성하는 기류가 아닐까?  그들만의 집합 속에 속하지 못함이 주는 '조급함, 불안감'이야 말로 트렌드를 발빠르게 전파하는 동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트렌드를 정의하라면 '개인이 집단에 소속하고 싶어하는 열망과 적극적인 행위 혹은 무의식적 선망이 만나 그 대상을 향한 하나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쉽게 말해 '모두가 좋아한다는 마카롱.  나는 왜 못 먹어본거야? 어서 먹어봐야겠어' 하는 심리의 군집들 말이다.  사람들은 대개 집단에 속하지 못하고, 남들이 하는 것 하지 못할 때 인간은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보자면 트렌드란 앞서 말한 것처럼 조급함과 불안함에서 시작해 안정감을 누리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트렌드를 다루고 있는 여느 책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지금까지 출간된 책들은(물론 다 읽어본 것은 아니나) 트렌드를 소개하고 알리는게 치중했는가 하면 이 책은 그러한 트렌드가 생성되는 현상과 그것을 바라보아야 할 사회학적 통찰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기에 후자에 속하는 이 책은, 어려웠다.  너무 어려웠다.  이러한 현상이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의 연구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오오~ 이전에도 후덜덜하게 만든 '피에르 부르디외' 가 곳곳에 등장하며 내게 위협을 가했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이 자의 저서, 정말. 어렵다!) 전자에 속하는 책들을 잠깐 떠올려 보자면 사회를 점령하고 있는 트렌드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이 때로는 '신생 트렌드 홍보'에 앞장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들어보지도 못한 ~족 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 족(집단)의 다양함도 함께 제시했기 때문이다.  '맞아맞아' 도 물론 존재했지만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들이 많이 들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약간의 가십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후자인 이 책은 '트렌드' 자체가 아닌 이에 따른 현상들과 운용구조를 소개한 책이기에 상당히 어려웠다. 

  이 책 대로라면 트렌드는 예견이 가능하다 (실제 WGSN이라는 트렌드 컨설팅 에이전시가 운영되고 있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상업성을 목적으로 일부러 생성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트렌드를 '자본주의 모순의 해결책'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 따른 본문에서는 ....자본주의는 소비자들의 재화를 새것으로 바꾸도록 부추김으로써 과잉생산의 위험을 낮추는 법을 찾아냈다....(p.66) 라고 말하고 있다.  그 밖의 가우스곡선과 롱테일 현상, 마태법칙 등에 연관하여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수차례 말했지만 내게는 너무나 어려웠기에 모든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100이라면 내가 이해한 것은 불과 50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동분야의 여느 서적들과 확실히 차별되어 있다.  그렇기에 트렌드라는 것을 문화의 코드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보고 이를 사회학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이보다 좋은 책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트렌드, 유행, 집단 취향, 대세....  이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또  '더 깊이 있게' 그리고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관점을 전향해 준 책이다.  그나저나 나는 마카롱을 하루 빨리 먹어보고 마카롱 집단에 속함으로 인해 소외되고 도태된 듯한 이 기분을 떨쳐야만 할 것 같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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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겐 을유세계문학전집 14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홍진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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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과의 만남은 표지그림 때문이었다.  에곤 쉴레의 그림 '앉아있는 소녀'.  에곤 쉴레의 그림은 전부터 참 좋아했는데 작년 여름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을 하며 더욱 관심을 갖게 된 화가이기도 하다.  때마침 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가는 곳곳마다 그의 그림으로 만든 포스터와 플랜카드가 펄럭여 한참을 바라보았던 적이 있다.  여행 일정상 그의 전시회는 갈 수 없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그의 그림을 더 찾아보게 되었고 그 그림들은 하나같이 내 마음에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고 무언가 이야기거리를 가진 듯한 인물들.  아무튼 나는 이 책의 표지에 눈길을 빼앗겼고 그것이 이 책을 좀 더 살펴본 계기가 되었다.   

  앞서 표지 이야기를 했지만, 단순히 표지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가 책을 읽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아니었다.  '성을 노골적으로 테마화하여 가장 커다란 스캔들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란다.  과연 어떤 내용이길래.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문학에서의 프로이트' 라는 작가의 수식어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학계의 프로이트라니.  뭔가 인간의 내밀한 심리묘사나 표현들, 감정에 대한 분석들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라이겐>은 짧은 희곡들의 모음집이다.  라이겐, 아나톨, 구스틀 소위 이렇게 3가지의 큰 테마로 19가지의 희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이겐'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춤의 형태로 원형으로 둘러서 추는 춤이란다.  이 중 '라이겐' 테마는 특히나 이 춤과 닮은 구성이다.  창녀, 군인, 하녀, 젊은 주인, 젊은 부인, 남편, 귀여운 아가씨, 시인, 여배우, 백작이 10개의 단막극에 등장한다.  '라이겐' 은 주로 성애가 주제가 된다.  그러나 전혀 외설적인 느낌이 든다거나 소위 말해 '야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왜냐면 '성을 테마화 한 것'이지 성행위를 테마화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직접적인 성행위에 있어서는 묘사되지 않고 있다. 작가가 성행위를 표현하는 부분은 ----------------------------------- 이렇게 긴 점선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나는 특히나 이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인상적이었다.  여자들은 파트너로 하여금 이렇게 묻는다.  '말해봐.  나를 정말 사랑해?'  그리고  남자들은 행위가 끝난 후에는 여자들에게 전과 같이 다정하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여성들은 건전한 여성들은 아니다.  남편이 아닌 남자를 사랑하는 우뷰녀, 창녀, 십대소녀등이다.  물론 상대남성 또한 건전하지는 않겠지만 백작, 군인, 하녀를 거느리는 주인등 사회적 권위가 있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들은 대개 남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여성들은 비교적 수동적인데 당대의 분위기가 희곡 속에 녹아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아나톨' 테마의 8작품이 인상 깊었다.  아나톨은 신경쇠약증 환자 같았다.  극도로 민감하고 신경질적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는 심지어 그 동안 만나왔던 여자들에게 각 각의 이미지에 맞는 짧은 문장들이나 단어를 부여하기도 하고 결정적인 물건들을(머리카락, 먼지도 있음) 비닐팩에 보관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여자 친구외에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지만 여자친구에게는 자신만을 바라보기를 원한다든지 이별통보를 하러 나선 자리에서 이별 통보를 당하고는 억울해 하기도 한다.  뭐랄까.  이 책은 절대, 절대 줄거리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작가의 문장들을 직접 맛보지 않고서는 미치광이 이야기들처럼 느껴질 뿐이다.  '읽는' 다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행위 없이 다른 어떤 걸로도 이해할 수 없는(이해하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마지막 '구스틀 소위' 이 작품은 오로지 내적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쉽게 말해, 혼자 하는 생각을 글로 옮겨둔 것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구스틀 소위는 오페라를 보러갔으나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이 어지러운 상태다.  그는 제빵사와 사소한 다툼을 하게 되고 그 다툼으로 인해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런데 죽음을 실행에 앞두고 그 제빵사가 뇌졸증으로 급작스레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고 자살을 포기하고 기쁜 마음에 열심히 살기를 결심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 책은 난해하다.  하지만 희곡의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나 구스틀 소위의 속말들을 읽으며 그들의 심리상태나 관계, 감정들을 쫓아가는 재미가 있다.  희곡이라고는 하지만 형식이 그러할 뿐 극적인 요소도 없고 대개 잔잔하게 이어진다.  병적일 정도로 불안정하고 감정의 폭이 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오죽하면 이 작품을 '문학 작품이라기 보다 병원 검사 기록에 가깝다' 고 할까.  그러나 나에게는 그들 간의 대화에서 독자만이 찾아낼 수 있는 공간을 즐기며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아나톨'의 서곡에서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말한 문장들.  나는 마치 그것들이 이 작품을 요악하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들을 여기 옮기며 마친다.  

 

....(상략)....  자 우리 연극을 하자, 우리 자신의 작품들을 공연하자,
일찍 성숙했고 부드러우며 비극적인, 우리 영혼의 비극, 우리 감정의 오늘과 어제,
사악한 것들의 아름다운 형식, 매끄러운 말들, 화려한 그림들, 절반의, 비밀스러운 느낌,
죽기 전에 몸부림, 에피소크......  몇몇 사람은 귀를 기울인다, 모두는 아니리...... 
몇몇 사람은 꿈을 꾸고, 몇몇은 웃는다.  몇몇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그리고 또 몇몇은 매우 도색적인 것들을 이야기 한다.....(하략).... p.123,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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