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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이성 친구
장자끄 상뻬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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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의 삽화가로 국내에 소개된 장자끄 상뻬의 책이다.  그는 글쟁이이기보다는 그림쟁이다.  이 책은 그의 그림과 글이 함께한 책이다.  왼쪽에는 글이 오른쪽에는 그림이 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자면 바로 표제다.  속깊은 이성 친구라....  뭔가 진지한 듯 하면서도 우스꽝스럽고 발랄한 느낌?  여하튼 나는 책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아, 이건 뭐랄까?  이야기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화책이라 할 수도 없고....  

  이 책의 글들은 길지 않다.  그러나 이 짧은 단락들이 우리네의 일상을 함축하고 있다.  주로 이성친구 혹은 친구들을 사귀면서 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아무튼 무어라 명명하기 모호한 이 책은 얇지만 깊고 짧지만 여운이 긴 책임에는 틀림없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 전문] 

   끌레르와 나는 친구사이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친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그 애가 니꼴과 놀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나는 마리 크리스띤을 찾아가서 우리 둘이 아주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고 말 했지요.  그 놀이란 우리가 정말로 친한 척함으로써 끌레르와 니꼴의 화를 돋우자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내가 제안한 놀이를 했습니다.  날이 저물 무렵 나는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놀았기 때문이지요.

 그 다음날 끌레르가 와서 나에게 말했습니다.  자기는 니꼴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는 얘기였어요.  자기는 니꼴과는 별로 친하지 않으며 그냥 친한 척을 했을 뿐이라더군요.  나는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는 오전 내내 함께 놀았지요.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마리 크리스띤과 친한 척하며 놀 때보다 한결 재미가 덜했어요.  그래서 나는 친한 척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더군요.

  결국 우리는 정말로 친한 사이로 남되, 그 애는 니꼴과 나는 마리 크리스띤과 노는 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 끌레르와 니꼴은 언제나 붙어 다닙니다.  그렇다고 그 애들이 정말로 친한 사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냥 친한 척을 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그럼에도 그 애들이 무척 재미있게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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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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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좀머씨 이야기' 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명성을 얻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과 같은 소설이다.  요즘 서점가에는 그의 신간 '향수'로 도배되다 시피하고 있기도 하다.  아직 '향수'는 못 읽어봤는데....  향수는 어제 주문해 두었으니 조만간 읽을 수 있겠구려~ 

  콘트라베이스는 두어번 읽었다.  연극인 이정훈의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 를 보기전에도 읽었었고....  읽을 때마다 콘트라베이스의 굵직한 음과 잔향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이 글을 읽고는 관현악단의 웅장한 연주 중에서 유독 콘트라베이스의 음색을 쫓고 연주자를 관심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역시 글이라는 건 차(茶) 와 같다.  처음 우려낸 차와 두어번 우려낸 차의 맛이 같으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듯이 말이다.  이 책은 처음 읽었을 땐 난해했고, 읽기를 거듭할 수록 매력적이다.  '좀머씨 이야기' 가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책이라면 '콘트라베이스'는 참으로 예술적이다.  쥐스킨트의 음악적 지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점....  쥐스킨트는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할 수 있을까?  만약 YES 라면 다방면에 소질이 있다고 말하고 싶고 No 라고 대답을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그리 콘트라베이스 주자와 같은 묘사를 할 수 있는지 말이다.

  색바랜 니트에 은둔작가로 더 유명한 파트리크 쥐스킨트.  역시 그만큼이나 베일에 쌓인 오묘한 작가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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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화력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독서당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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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의 것으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에 이어 세번 째 읽은 것이다.  역시 괴테는 독일이 낳은 최고의 문호다.  시대를 불문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단연 괴테, 전혜린이다.  그러고보니 두 사람 다 독일출신(?) 이구나. 

  친화력이라....  제목이 참 깔끔하다.  친화력은 어떤 원자들끼리 결합해서 화합하려는 힘을 말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인간 사이에서 친화력에 대해 담고 있다.  뭐랄까?  괴테의 글은 격정적이고 열정적인 그런 감정의 묘사에서 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이 또한 내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길들여졌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내 인생의 책(후훗)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과 비교하자면 감정묘사는 많이 자제된 것 같다.  아, 그러나 나는 부던히도 에드아르트에게서 베르테르를 찾으려 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감성적인 글이 었다면 '친화력'은 지성이나 이성에 어필하고 있다.  이 이야기 역시 어긋난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소설이다.  오히려 그보다 훌륭한 사교모임을 통해 인간관계의 이런저런 면모, 관계가 가진 속성, 인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 이 부분들에 펼쳐지는 그들의 대화란 참으로 난해하더소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격정적인 멈출 수 없는 사랑으로 짝사랑하는 숱한 가슴들을 위로했다면 이 이야기는 부부간의 정조와 절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한다.  만약 에드아르트의 소망처럼 에드아르트는 오틸리에와, 샬르롯테는 대위와 맺어짐으로 끝이 났다면 어떠했을까?


  결국 오틸리에는 자신의 의지로 아사(餓死)하고 에드아르트는 오틸리에를 자신의 의지로 뒤따른다.  샬르롯테와 대위의 이야기는 이어짐이 없었지만 대위의 성격 상 샬르롯테를 얼씨구나 취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이야기 역시 비극적인 결말이다.  그런데 이 비극적인 결말을 희망차게 묘사하고 있는 마지막 부분은 더한 비극이었다.  아, 그보다 더한 비극은 바로 번역이 너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  그것 때문에 줄곧 우울했고 잡생각이라는 삼천포로 나를 한없이 데려가 준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어로 번역된 글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원서를 읽는 듯 까마득함은 무슨 연유인지.  번역의 중요성을 또 한 번, 또 한 번 느낀다.   역시 문학서적 번역은 어학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문학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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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 감정 코치
존 가트맨 지음, 남은영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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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이라....  이 책의 독자들은 대개 자녀를 가진 부모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녀도 없을뿐더러 아직 미혼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선택한데는 이유가 있다.  내 배로 낳은 자식은 없지만 나에게는 마음으로 낳은 자식 32명의 아들, 딸들이 있다. ^^  (참고로, 나는 유치원 교사다.)  이런 무수히 많은 내 아이들을 위한 사랑의 기술이라....  나는 아직 어떤 아이의 엄마도 아니지만 분명 나를  위한 책이기도 했다.  그 사랑의 기술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지 급한 마음에 책장을 넘겼다. 

  나는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올해로 8년째 유치원 교사로 생활하면서 바람직한 부모역할에 대해 지침서나 교육서적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왔다.    

  그간의 부모교육서들은 도덕교과서 마냥 모두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 책이 부모로 하여금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은 거의 미미해보였다.  부모교육서를 읽고나서 '누가 몰라서 못하는거야?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는거지' 라는 생각은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 내게 이 책의 '기술(skill)' 이라는 단어는 솔깃했다.  아, 이 책은 적어도 단순히 부모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만을 일러주는 책은 아니리라는 막연한 기대감.

  감정코치?  이 책은 이 생소한 단어의 개념에서부터 실천 방법까지 단계별로 제시하고 있는데 요컨대, 자녀의 감정을 공감해주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도록 도와주고 자녀 스스로 행동방향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말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유아교육자다.  그러므로 누구 보다도 아이에게 적절한 교육적인 행동과 반응을 보일 줄 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서 실로 부끄러웠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곱살은 생각을 말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XX는 울기부터 하네요"
  "지금 선생님에게 화를 내는거예요?  누가 이런 못난 행동을 하래요?"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실꺼예요.  어서 뚝해요"
  얼마나 많은 숱한 순간의 아이들의 감정표현을 막아왔는지....  그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나의 32명의 천사들.  아니 지난 7년이라는 세월동안 무수히 많은 나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반성과 되돌아봄의 기회를 안겨준 이 책의 매력은 첫째, 허황되지 않고 구체적이다.  '부모는 아이들의 감정을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가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이렇 식으로 이해해 주세요' 하고 구체적인 실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둘째, 자녀양육 수기나 상담사례가 아니라 연구결과를 통해 입증된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존 가트맨 교사의 수년간에 걸친 연구의 결과이기에 좀 더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감정코치'는 대상을 막론하고 적용할 수 있다.  이 책은 마치 부모교육서 같지만 반드시 부모에게만 읽혀져야 할 책은 아니다.  나의 친구에게, 직장동료에게, 가족에게, 애인에게 '감정코치' 법은 대상을 막론하고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책의 '감정코치' 라는 단계별 가르침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들과 소통할 때에 '그들의 감정을 인정해주자' 단지, 이 한가지를 얻은 것 만으로 충분히 값졌다.  내일의 교실에서는 어제, 오늘과는 달랐던 나의 모습을 기대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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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
p. 54       45번 문항
45. 나는 슬픔을 다른 감정을 바꿀 수 있는 방법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 45. 나는 슬픔을 다른 감정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탈자]
p. 129     4번째 줄
엄마 가기 싫다고?  그것 참 이상하네.  보통은 좋아했잖아.  뭐 안 좋은 일이 있니?  궁금하구나.
┗ 엄마 : 가기 싫다고?  그것 참 이상하네.  보통은 좋아했잖아.  뭐 안 좋은 일이 있니?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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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전혜린 - 두리소설 2
정도상 / 두리미디어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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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자 전혜린.  이 책은 전혜린을 만나는 또 다른 통로였다.  그녀 자신의 수필도 아니었고 타인의 평전도 아니었다.  소설이다.  그러나 완전한 픽션으로 볼 수도 없다.  이 책은 또 다른 평전이기도 하다.  기존의 평전들이 그녀와 그녀의 작품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이 소설은 단지 그녀의 내면세계를 유추하고 파악했다(혹은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것은 소설이라는 점.  잊지 말아야 한다. 소설이라는 점. 

  필자, 정도상은 1960년생.  전혜린이 한참 생을 살아갈 당시에 필자는 태어나지도 않았거니와 그녀와 공존했던 기간은 불과 5년이다.  결국 이 소설은 이 소설은 오로지 그녀의 수필만을 통해 세워졌으리라.  필자는 고인이 된 전혜린 여사에게 누가 가지 않을까 조심했기 때문인지 글 속 전혜린을 주영채라는 가상의 인물로 풀어나가고 있다.

  이 소설은 '소설가 소설' 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 전혜린이 소설을 쓰고 그 소설속 내용이 주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소설 속 전혜린은 자신의 소설 속에 주영채라는 인물을 등장시키지만 독자는 누구나 주영채=전혜린이며 주희=주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백창우, 쟌느, 강문철을 가상의 인물로 내세워 허구와 재미를 가미했지만 전혜린 그녀의 본질은 손상시키지 않고 가미하지 않으려 애쓴 내색이 역력했다.  주로 그녀의 수필을 인용하는 것으로 모든 대사를 풀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절절하게 느낀 점은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들을 그녀의 지식과 인식의 열정을 추앙하지만 그녀 자신에게는 아버지로부터 만들어진 삶이었으며 한 남자의 아내로도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전혜린.  그녀는 철학과 문학에 대한 인식에의 욕망과 열정, 주혜와의 우정, 딸 정화를 향한 모정, 그리고 장 아제베도를 향한 사랑만이 그녀로 하여금 삶을 살아지도록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장 아제베도는 누구일까?  원래 그녀의 수필에는 실명이 거론되어 있었지만 유작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친지 및 측근에 의해 그 남자는 '장 아제베도' 가 되었다.  미지의 인물이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긴 전혜린이 시시한 남자를 사랑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의 실명이 거론된다면 사회적인 파장이 있으리 만한 인물이었으리라는 생각.  잡. 생. 각일지도....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는 궁금하지 않다.  오히려 장 아제베도로 나타났기에 우리 모두 전혜린과 함께 그에게 연정을 품을 수 있는 것일지도.

  아, 너무 짧은 생을 산 전혜린.  그녀가 길디 긴 삶을 살았다면 이토록 아름답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적어도 '불꽃같은 생' 이라는 꾸밈말이 붙지는 못했으리라.  나는 전혜린처럼 고독하고 싶다.  인식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찬 육신이고 싶다.  불운했다면 불운했을 그녀의 삶이지만 오로지 그녀의 그런 철학적인 성향은 나를 매혹하기에 충분하다.  아, 전혜린.  파헤칠수록 기묘한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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